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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821화 (821/916)

821화. 익숙한 화권

우르릉!

물의 영맥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눈부신 빛이 영맥 속에 나타나 점점 부풀었다.

용 모양 영맥은 순식간에 커지면서 겉에 수많은 균열이 갈라졌다. 이어서 검은빛이 균열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큰일이야! 저놈이 현천 영보를 자폭시켜 물의 영맥을 파괴하려고 해! 빨리 막아!”

수령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이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조극의 앞에 나타나서는 번천곤에 금빛을 감은 후에 힘껏 내리쳤다.

조극은 진즉에 모든 걸 파괴하려고 생각해 영맥 속으로 들어간 영보를 막아내는 건 이미 늦어버렸다. 그러니 조극을 죽이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이었다.

번천곤이 금색 문양을 번쩍이며 찬란한 금빛을 뿜어냈다. 그렇게 곤봉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아마 석목은 모든 위력을 전부 쏟아 부은 것만 같았다.

곤봉이 내리치기도 전에 허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금빛 파동이 폭발하였다.

“날 죽이겠다고? 흥! 너무 늦었어!”

조극이 냉소를 지으며 주문을 외웠다.

순간, 조극의 몸에서 은빛이 반짝이더니 은색 구슬이 소매에서 줄줄이 날아 나와 주변을 감쌌다.

은색 구슬은 빛을 번쩍이다가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퍽!

은색 구슬이 터지며 뿜어져 나오던 빛들이 전부 한 곳으로 모여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은색 진법을 이루었다.

은색 부문이 진법 속에서 흘러나오자 진법 주변의 허공이 일그러졌다.

진법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마치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주문을 외우는 것만 같아 석목은 속이 울렁거렸다.

이 모든 일은 단 한순간에 이뤄진 것이었다.

번천곤이 끝없는 힘을 이끌고 은색 진법을 내리치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쾅!

그 여파에 수십 장 안쪽에 있던 공기가 거울처럼 부서져 버렸다.

하지만 번천곤이 내리친 은색 진법은 흔들리기만 하다가 이내 안정을 되찾았는데 마치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은색 진법 속에 있던 조극은 어떤 부상도 입지 않아 냉소를 지으며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

다시 생각해보니 주작성에서 조극은 은색 구슬을 써서 석목의 손에서 벗어난 적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석목은 그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석목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번천곤으로 금빛을 내뿜으며 다시 공격을 날리려 했다.

“이건 환영허공도(幻影虛空道)다! 상고 시기의 유명한 공간 신통이지. 아직도 이걸 쓰는 사람이 있다니! 이놈아, 힘 빼지 마라. 저 공간은 천 배 가까이 줄어든 거야. 네 힘으로는 절대 부숴버릴 수 없어.”

수령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때, 굉음이 울려 퍼졌다.

눈부신 검은빛이 뿜어져 나와 동굴을 묻어버렸는데 그 모습은 마치 검은 태양 열 개와도 같았다.

동굴이 격하게 흔들리며 돌들이 굴러 떨어졌다.

석목은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그리고 조극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아래를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검은빛 속에서 용 모양 물의 영맥에 갈라진 균열은 점점 커지더니 결국 영맥을 찢어버렸다. 그러자 무수히 많은 파란빛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슥!

사람 머리만한 파란색 무엇인가가 찢어진 영맥 속에서 날아 나왔다. 그리고 그건 공 같았는데 때마침 물의 영맥이 흐르던 통로로 향했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니 그런 것들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물의 영맥이 폭발하자 오행마굴은 스스로를 배척해 석목과 조극에게 향하던 공격이 부서져 버렸다.

다른 네 갈래 영맥 속에서 흐르던 굵기가 다양한 번개들도 사라져버렸다.

오행마굴의 균형이 단번에 깨져버려 공간 속에 이는 형태가 없는 진동이 빠르게 오행마굴 곳곳으로 퍼져갔다.

우르릉!

균형을 이루던 천지의 영기가 갑자기 무너져버렸고, 질서를 잃어 서로 격렬하게 충돌했다.

오행마굴에 검은 구름이 수도 없이 나타나 미친 듯이 용솟음쳤다. 그리고 먹구름 속에서 번개가 번쩍였고, 온 공간이 암흑의 혼돈 속에 빠져버려 세계가 끝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석목은 비록 가장 깊은 지하에 있었지만 바깥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뚜렷이 느껴졌다.

“어떻게 된 거지?”

석목이 굳은 얼굴로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저놈이 영보를 자폭시켜 주맥 하나를 파괴했어. 다섯 갈래 주맥은 이 세계를 지탱하는 기반이야. 주맥이 단 하나만 파괴되어도 오행마굴을 이루는 오행 균형이 흐트러져 오행 영력이 격렬하게 충돌을 일으키겠지. 그리고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이 공간은 전부 무너질 거야!”

수령자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석목, 내가 여기에 흐르던 영맥을 파괴시켰다. 이 오행마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철저히 무너지겠지. 내가 갖지 못한 건 너도 절대 가질 수 없을 것이고, 너는 절대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에 진입하지 못할 거야!”

조극이 터져버린 영맥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드러냈다가 이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얼굴이 굳어버렸다.

“아, 맞다. 네게 말해주지 못한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이 오행마굴이 없어도 나는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에 오를 방법이 있지. 너는 내게 가장 훌륭한 양분이 될 거야! 하하!”

조극이 큰소리로 웃으며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조극을 감싼 은색 진법이 커다란 은빛 공으로 변해 은색 화염을 튕기며 허공과 부딪쳤다.

퍽!

허공이 녹으면서 검은 동굴이 나타났다.

그리고 은빛 공은 동굴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져버렸다.

* * *

오행마굴 밖에 자리한 청란 유적지.

굉음이 울려 퍼지며 다양한 빛깔과 영기가 끊임없이 얽히고설켰다.

두 갈래 그림자가 허공에서 들끓으며 격렬한 전투를 벌이자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공간에서 두 신경 강자가 맞부딪치니 그 위력으로 공간이 계속 흔들려 언제든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연나와 고명 사이에 벌어진 교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고명은 일전에 조극을 도와주느라 원기를 많이 쓴데다가 연나와 싸우면서 민목을 여러 번 시전했다. 물론 신경 중기 강자라 고명은 끊임없이 천지의 원기를 흡입할 수 있지만 연나와 치르는 싸움은 공격을 하는 순간보다 막아내는 횟수가 많아 고명은 계속 밀렸다.

연나는 물러나지 않고 공격을 날리며 고명의 방어막을 뚫어버렸지만 고명이 워낙 잘 막아내기도 했고, 민목의 위력을 무시할 수도 없어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때문에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대치 상태를 이루며 계속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이때, 연나가 눈에 빛을 반짝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고명을 둘러쌌던 칠색 꽃봉오리 허상 중에 세 송이가 분리되어 나와 빠른 속도로 오행마굴 속에 자리한 칠흑 같이 검은 공간으로 날아갔다.

방어만 하고 공격을 하지 않던 고명이 갑자기 막강한 기세를 풍기며 또다시 하얀 눈알 허상을 시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눈알이 단 하나였고, 허상을 소환하는 순간, 고명은 반듯했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이어서 하얀빛이 눈알 허상에서 말려 나오며 자신을 둘러쌌던 꽃봉오리 허상을 스쳐지나 오행마굴의 입구에 떨어졌다.

퍽!

하얀빛이 터지면서 둥그런 물결이 퍼져 동굴의 입구를 물샐 틈 없이 막아버려 동굴로 날아가던 세 송이 꽃봉오리를 밖으로 밀어냈다.

이때, 오행마굴의 입구에서 파동이 일렁이더니 은빛 구체 하나가 날아 나왔다.

빛나는 구체가 터지며 조극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극은 안색이 몹시 어두웠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게 마치 낭패를 본 것 같았다. 이윽고 조극은 자신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곧바로 연나와 고명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초조한 눈빛을 내비쳤다.

고명은 망설이지 않고 손바닥에 자란 눈에 빛을 크게 드리웠다. 그러자 열 몇 갈래 민멸지광(泯滅之光)이 날아 나와 하얀 손바닥을 이루며 연나를 내리쳤다.

하얀 손바닥이 스친 허공은 희미해져 마치 시공간에 단층이 생긴 것만 같았다.

연나는 곧바로 칠보묘수에 빛을 드리우며 일곱 송이 꽃봉오리 허상을 전부 거두어들였다. 이어서 꽃봉오리에서 칠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두터운 빛 벽을 이루며 연나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칠색 빛 벽이 하얀 손바닥에 닿는 순간, 마치 불에 닿은 얼음처럼 순식간에 녹으며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

하얀 손바닥이 빠른 속도로 칠보묘수를 내리쳤다.

쾅!

칠보묘수가 격하게 흔들리더니 연나와 함께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하지만 손바닥 허상도 드디어 모든 힘을 소모한 것처럼 두어 번 번쩍이더니 터져버렸다.

고명은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버렸고, 손바닥에 붙은 눈도 어두워졌다. 그리고 고명은 빠르게 조극의 옆으로 날아갔다.

이어서 고명이 주문을 외워 하얀빛으로 자신과 조극을 감쌌다.

“보화 선자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한 판 붙어보지요.”

고명이 큰소리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을 드리운 하얀빛이 번쩍이며 무수히 많은 부문들을 뿜어내더니 하얀 진법을 이루었다.

진법의 빛이 반짝이더니 두 사람은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연나는 곧장 몇 장 밖으로 날아가다가 멈춰 섰다. 그리고 더는 쫓아가지 않고 칠보묘수를 거두어들였다.

낭패를 본 조극의 모습을 보자 연나는 곧바로 무엇인가를 알아차려 눈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오행마굴의 입구를 바라보던 연나는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마굴의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천지의 영기는 크게 파동을 일으켰는데 점점 격해지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연나가 은빛으로 변하여 마굴의 입구로 날아갔다.

이때, 허공에 떠있던 오행강역도가 하늘을 찌를 듯한 빛을 뿜어냈다.

앞으로 날아가던 연나는 오행강역도가 흘려보낸 오색 빛에 밀려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오행강역도에서 ‘슥!’ 소리가 나며 오색 빛 그림자로 변하더니 빠르게 마굴의 입구 속으로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마굴의 입구가 막혀버렸다.

연나가 몸을 멈춰 세우며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순간, 연나는 몹시 초조했다.

오행마굴 속에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게 분명했지만 입구가 사라져버려 연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 * *

지하 동굴이 흔들리며 돌들이 굴러 떨어졌다.

다른 네 갈래 용 모양 영맥에서도 빛이 번쩍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 갈래 영맥은 가장 짙은 영력을 머금고 있었기에 혼란스러워진 바깥쪽 영력에서 파동이 일자 네 영맥도 영향을 받아 서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이놈아, 빨리 여길 떠나야 해. 영맥 네 갈래가 서로 부딪치면 그 여파만으로도 우린 죽어버리고 말 거야.”

수령자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석목은 깊은 고민에 빠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이렇게 떠나 버리면 오행마굴이 붕괴되어 구전현공을 대성할 수 없게 된다.

“수령자, 물의 영맥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석목이 물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파란빛이 반짝이며 수령자가 참지 못하고 현명신주에서 날아 나와 석목의 어깨에 서서 놀란 얼굴로 말했다.

“영맥을 복구할 방법이 없을까? 물의 영맥을 조극의 영보가 망쳤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어. 영력은 단지 흩어졌을 뿐이야…… 다시 합칠 수만 있다면 물의 영맥을 복구할 수 있으니 공간도 안정을 되찾을 거야.”

석목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수령자가 그 말을 듣고는 멈칫하다가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다.

이때, 지하 공간 가운데 허공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틈이 하나 벌어졌다.

석목이 흠칫 놀라며 틈을 바라보았다.

오색 빛을 뿜어내는 화권 하나가 틈에서 날아 나왔다.

석목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화권이었는데 그건 바로 청란 유적지에서 오행마굴의 입구를 열었던 오행강역도였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오행강역도가 이곳에 나타났는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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