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22화 (822/916)

822화. 기회

윙, 윙, 윙!

오행강역도는 나타나는 순간 빛을 뿜으며 빠르게 불어났다. 그렇게 단 두어 번 호흡을 할 사이에 크기가 열 장에 이르는 커다란 그림이 되어 펼쳐졌다.

펼쳐진 그림은 한참 동안 흔들렸고, 다섯 가마 모양 그림이 오행강역도에서 튀어나와 각각 색이 다른 커다란 가마로 불어났다.

다섯 가마가 튀어나온 순간, 네 가마는 곧장 아래에 자리한 영맥 네 갈래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파란 가마는 물의 영맥이 사라져버렸기에 무기력하게 허공에 떠 있었다.

네 갈래 용 모양 영맥은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아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석목은 오행강역도에 이런 효능이 있는 줄 몰라 깜짝 놀랐다.

“아! 이 오행강역도는 누군가가 영맥의 일부 영력을 뽑아 만든 법보일 거야. 아마도 네가 말하는 백원왕인 듯하구나.”

수령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 같아!”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령자가 한 말이 맞았다.

“이놈아, 영맥을 복구하겠다고 했지? 지금 네가 이룬 실력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오행강역도만 있으면 가능할 것 같구나!”

수령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석목은 화색을 드러내며 물었다.

수령자가 입을 벌려 석목의 머릿속으로 파란빛을 날렸다. 그러자 파란빛은 수많은 글자들로 변하였다.

“이 방법은 조금 위험해. 오행강역도가 있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채 사 할도 되지 않지. 게다가 실패하면 죽을 거야. 그러니 이제 네가 결정해.”

수령자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빠르게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모든 글자를 읽은 석목은 침묵을 지키며 망설였다.

하지만 망설이는 시간은 잠깐이었으며 석목은 표정이 곧장 단단하게 변했다.

“어찌됐든 해봐야겠어!”

석목이 단호하게 말했다.

오행마굴이 무너진다면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대성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석목은 이미 여덟 번째 단계 정상에 도달했다. 그리고 여덟 번째 단계 정상과 아홉 번째 단계는 마치 넘을 수 없는 드넓은 바다를 사이 두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조극은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에 진입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고 말했는데 천정이 갖춘 세력을 떠올려 본다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만약 이대로 오행마굴을 떠난다면 정말로 조극에게 양분이 될지도 몰랐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려 오행강역도 밑으로 다가가 섰다.

그리고 적, 금, 녹, 황, 남색 다섯 갈래의 빛을 뿜어냈는데 이 다섯 색이 바로 구전현공 오행의 힘이었다.

석목은 주문을 외우며 끊임없이 오색 빛을 번쩍였다. 그리고 다섯 갈래 빛기둥을 만들어 머리 위에 뜬 오행강역도 속으로 날렸다.

그러자 오행강역도에서 빛이 번지며 형태가 없는 파동이 오행강역도에서 흘러나와 순식간에 주변 수백 리에 드리웠다.

파동이 스치자 혼란스럽던 영력들은 순식간에 멈춰버렸다.

이 시각, 오행 마굴에 자리한 다른 곳들은 이미 완전히 혼란해졌는데 특히 바깥쪽 구역일수록 더욱 혼란스러웠다.

천지의 영기는 마치 기름이 들끓는 가마 같았고, 혼란스러운 천지의 영력이 먹구름으로 뭉쳐져서는 천둥 번개를 내리쳤다. 그러자 바닥이 갈라졌고, 공간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 온 세상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마굴은 외곽에서부터 깊은 곳으로 밀려오며 무너졌는데 그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 * *

지하 공간 속.

석목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두 손을 흔들며 오행강역도로 법결을 줄줄이 날렸다.

형태가 없는 파동으로 혼잡하던 천지의 영기가 흩어져버렸고, 다시 다섯 갈래로 나뉘더니 석목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지금이야! 오행의 균형으로 영력을 조종하면 물의 영맥을 복구할 수 있어!”

수령자가 큰소리로 말했다.

이건 수령자가 알려준 영맥을 복구하는 방법이었는데 오행강역도로 공간 속에 흐르는 천지의 영력을 소환하여 강제로 끌어당긴 다음에 다시 석목의 몸을 매개체로 천지의 영력을 재조합하여 영맥을 복구하는 방법이었다.

균형이 깨져버린 천지의 영력은 매우 흉포했다.

만약 이런 영력을 영맥에 직접 불어넣게 되면 물의 영맥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다른 네 갈래 영맥도 붕괴될 것이라 석목은 영력을 다시 조합하여 순화시킨 후에 제련해야만 했다.

이 방법은 석목의 육신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일이었으나 다행히 석목은 육신이 단단하고 경지가 월등히 높은데다가 이미 오행 균형의 도리를 깨우쳤기에 이러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단전으로 기운을 모아 몸속 오행의 힘을 시전하여 바깥에 흐르는 천지의 영력을 받아들였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방대한 오행의 영력이 끊임없이 석목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석목의 얼굴은 곧 터져버릴 듯이 붉게 부풀었는데 다섯 갈래 영력이 너무 방대한데다 광폭하기 그지없어 석목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전(轉)”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조금 전에 깨우친 오행 균형의 도리를 시전하여 구전현공 오행의 힘으로 방대한 영력을 녹였다.

오행의 힘은 서로 연결되면서 석목의 단전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간장에 모여 있던 나무의 힘이 뿜어져 나와 비장으로 흘러 들어갔고, 비장에 담긴 흙의 힘이 흘러나와 신장으로 향했다. 또한 신장에 담긴 물의 힘은 심장으로, 심장에 담긴 불의 심은 폐로, 폐에 담긴 금의 힘은 다시 간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오행의 힘이 석목의 몸속에서 완벽한 순환을 이루며 가운데에 놓인 단전으로 향했는데 이게 바로 석목이 깨우친 오행 균형의 도리였다.

석목은 주문을 외우며 모든 진기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석목의 몸에서 다섯 갈래 빛 적, 금, 녹, 황, 남색이 번졌다.

오색 빛 속에는 주먹만 한 오색 부문들이 위아래로 흘러 다녔다.

오색 빛은 석목의 몸에서 빠르게 치솟으며 커다란 오색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소용돌이는 밖에서 몰려온 다섯 갈래 방대한 영력을 삼켜버렸다.

기승을 부리던 영력들은 곧바로 차분해지더니 소용돌이 밑에서 빛을 번쩍이며 다섯 갈래 적, 금, 녹, 황, 남색 굵은 빛기둥이 아래에 자리한 영맥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오색 소용돌이 속에 선 석목이 눈을 뜨고는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런 방법은 육신을 매개체로 사용하는 것이라 자칫 잘못하면 육신이 터져버릴 터였다.

네 갈래 용 모양 영맥에서 빛이 밝아지더니 영력 파동이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네 갈래 영맥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데 가장 중요한 건 물의 영맥을 다시 복구하는 일이었다.

석목이 손을 흔들며 법결을 줄줄이 날렸다.

그러자 파란 빛기둥이 반짝이며 오행강역도에서 날아 나온 파란 가마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파란 가마에서 빛이 번지며 운무가 뿜어져 나왔다.

“좋아! 내가 도와줄게!”

수령자가 화색을 드러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어서 수령자가 몸을 담고 있는 하얀 구슬인 현명신주와 함께 날아 나와 파란 가마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신비스러운 주문이 파란 가마에서 흘러나오자 얇은 부문들도 줄줄이 나타났다. 그런데 부문은 질서 없이 흐르는 듯 보였지만 어떤 규칙에 따라 흘러 다니고 있었다.

가마 주변에 감도는 파란 운무는 점점 변하며 희미한 용 모양이 되었다.

운무 용은 처음엔 크기가 고작 열 몇 장 정도라 다른 네 갈래 용 모양 영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는데 마치 네 마리 신룡(神龍) 옆에 있는 작은 뱀 한 마리 같았다.

하지만 작은 운무 용이 나타나는 순간, 다른 네 갈래 용 모양 영맥들도 순식간에 멈춰버려 지하 공간에 감돌던 천지의 영기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물의 영맥을 복구하는 일이 이미 반은 성공한 셈이라 석목은 기쁨을 드러냈다.

석목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오행의 힘을 시전하였다.

오색 소용돌이가 윙윙 돌아가며 빠르게 모여드는 천지의 영기를 흡수하였다. 그리고 석목은 몰려온 영기를 순수하게 제련하여 다시 다섯 갈래 영맥 속으로 흘려보냈다.

시간이 흐르자 석목의 몸속에서 이뤄지는 오행의 순환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러자 오색 소용돌이도 빠르게 불어났고, 바깥에서 천지의 영기를 흡수하고 전환하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파란 운무 용도 놀라운 속도로 불어나더니 점점 짙어지는 것 같았다.

은연중에 균형을 이룬 법칙의 힘이 지하 공간에 흩어지며 순식간에 오행마굴로 퍼져나갔다.

무너지고 있던 오행마굴의 외곽은 순간 멈추더니 혼란스럽던 천지의 영력이 다시 질서 있게 흐르기 시작했다.

석목은 지하 공간 속에서 오행마굴이 전반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느낄 수는 없었지만 마굴이 무너지려는 기세가 드디어 꺾였다는 사실은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석목은 가볍게 숨을 내뱉고는 다시 집중했다.

우선 물의 영맥을 다시 복구해야하니 아직 긴장을 놓을 때가 아니었다.

석목은 눈을 감고는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끊임없이 법결을 날려 점점 형태를 갖추고 있는 물의 영맥 속으로 날렸다……

* * *

이 시각, 천정.

이곳은 금빛이 환하게 드리웠고, 구름이 들끓고 있었다.

드높은 금색 궁전 앞에 놓인 하얀 옥이 깔린 광장에서 갑자기 빛이 번지더니 소박한 부문들이 줄줄이 나타나 하얀색 진법을 이루었다.

진법 속에서 빛이 한참 동안 흐르다가 부문으로 이루어진 빛 고리가 줄줄이 날아오르더니 이어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중 한 명은 서른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눈에 안대를 감고 있었지만 하얗게 질린 반듯한 얼굴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청년이었는데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검은 머리카락이 정리가 안된 듯 너저분했다. 또한 문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은 얼굴에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고명과 조극이었다.

“드디어 도착했군요!”

조극은 침묵을 지키다가 복잡한 표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가 봐. 존상께서 기다리고 있어.”

고명은 궁전의 금색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조극은 아무 말도 없이 고명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고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꽉 닫힌 궁전의 문을 바라보던 조극은 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돈하고는 새로운 달처럼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후에 궁전으로 걸어갔다.

묵직한 금색 대전의 문을 밀자 두 줄로 나란히 선 금색 기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대전의 안쪽에는 키가 훤칠한 사람의 그림자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금색 그림자를 본 조극은 얼굴이 유난히 심각해 보였는데 보아하니 금색 그림자는 조극이 매우 위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조극은 입구에서 멈칫하다가 다시 옷매무새를 한 번 더 만지고는 앞으로 다가가 금색 그림자와 열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처음부터 끝까지 금색 그림자는 마치 조극이 들어온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존, 저……”

조극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돌아왔으니 바로 귀현탑(歸玄塔)으로 가거라. 이 보물을 제련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게다.”

금색 사람 그림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조극은 깊게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뚫어져라 바닥만 바라보았다. 그러자 대리석 바닥에는 패배한 조극의 얼굴이 그대로 비쳤다.

“왜? 두 번 말해야 알아듣겠느냐?”

금색 사람 그림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그 말을 들은 조극은 심장이 쿵 내려앉아 식은땀만 흘렸다.

“제자, 알겠습니다.”

조극은 대답을 하고는 천천히 대전에서 걸어 나왔다.

금색 대전에서 나온 조극은 깊게 숨을 내뱉으며 실눈을 뜬 채 남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눈에 흉악한 기색을 스치더니 조극은 하늘로 몸을 날려 하얀 구름 속으로 질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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