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3화. 두 가지 균형
구름 속에서 대략 반각 정도 날던 조극은 구름의 다른 한쪽에서 날아 나왔다.
눈앞이 환해지며 백 리 가까이 구름 한 점 없는 구역이 나타났다.
이 구역은 하얀 구름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하늘은 매우 푸르렀고, 도처에 짙은 영력이 흐르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높이가 만 장이나 되는 하얀 영탑이 서있었다.
영탑은 온통 하얀색이었으며 층마다 팔각 모양이었는데 층층이 겹쳐진 탑은 족히 구천 층은 되어 보였다. 그리고 탑의 가장 아래층은 지름이 만 장이 넘었지만 가장 높은 곳은 지름이 단 한 장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탑신 위에는 각 층마다 평좌(平座)와 의주(倚柱)가 있었는데 평좌와 의주 사이에는 아치형 문이 있었고, 문 위로 화염 모양의 조각과 함께 양쪽에 각각 기괴한 짐승이 새겨져 있었다.
이때, 허공에서 갑자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만 장이나 되는 금빛 사람 모양 형상이 나타났다.
“시작하자.”
금빛 형상이 말했다.
금빛 형상이 내는 묵직한 목소리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한참 동안 하늘에서 맴돌았다.
“네.”
조극이 대답을 하고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법결을 짚었다. 그러자 조극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는 하얀 영탑 위로 날아갔다.
영탑의 꼭대기는 팔각형 평대였는데 평대에는 다양한 부문들이 새겨져있었다.
팔각형 평대 아래에는 모양이 전부 다른 기괴한 짐승 여덟 마리가 있었는데 짐승들은 전부 고개를 든 채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조극은 평대에 서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입을 벌려 정혈을 뿜어냈다. 이어서 조극은 열 손가락으로 정혈을 몇 번 튕겼다.
정혈은 혈무로 변해 번쩍이더니 팔각형 평대로 스며들어갔다.
순간, 아래쪽 팔각형 평대의 겉면에서 문양이 밝아지더니 빛이 줄줄이 날아 나와 온 탑을 드리웠다.
조극은 다시 빠르게 법결을 짚었다. 그러자 조극의 가슴 앞에 빛이 다섯 갈래 밝아지면서 작은 가마 문양이 줄줄이 날아 나와 커다란 가마 다섯 개로 변하여 주위에 떨어졌다.
* * *
보름 뒤.
오행 마굴의 지하 공간.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 허공에 앉아있었다. 그러자 석목의 주변에 오색 소용돌이가 맴돌며 족히 백 장 가까이 불어나 계속 커졌다.
오행 영력은 끊임없이 모여들어 석목의 몸을 통해 전환 되어 다섯 갈래 용 모양 영맥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특히 물의 영력은 석목이 이끄는 가운데 다른 네 갈래 영력들보다 훨씬 커졌다.
윙!
이때, 물의 영맥에서 청량한 소리가 흘러나오면 파란빛이 더욱 환하게 번졌다.
석목은 여전히 법결을 짚으며 조금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
물의 영맥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은 족히 한 시진이나 지속되었다. 그러더니 파란빛이 점점 사라지자 빛 속에 감춰진 존재가 드러났다.
다른 네 갈래 영맥과 비슷하게 생긴 파란 용 모양 영맥 한 줄기가 다시 마굴에 나타났다.
다섯 갈래 영맥은 석목이 있는 곳에서 서로 얽히고설켰다. 그러자 방대한 파동이 맹렬하게 흘러나와 빠르게 마굴로 퍼졌다.
마굴 속에서 혼란스럽던 천지의 영기가 안정을 찾자 곧바로 모든 게 평온해졌다.
다섯 갈래 영맥의 상공에서 석목이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러냈다.
드디어 끝났다.
석목은 숨을 내뱉고 주문을 외우며 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오색 소용돌이가 희미해지며 이내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여전히 몸을 편 채로 꼿꼿이 앉아 있었지만 얼굴에 드리운 긴장은 많이 풀린 것 같았다.
구전현공을 시전하여 오행 영력을 연화하는 건 아주 막대한 부담을 떠안는 일이라 그건 마치 커다란 산을 등에 지고 앞으로 걸어가는 짓과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이제 큰 산을 무사히 내려놓았으니 석목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져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잠시 후에 석목이 흥분한 눈빛을 내비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밤낮없이 오행의 영력을 시전하는 건 매우 고된 일이었지만 수확도 꽤 컸다.
석목은 몸속에 흐르는 오행의 힘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뤄 심지어 공법을 시전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힘이 서로 연결이 되었다. 그렇게 석목은 오행의 힘에 대한 깨우침이 깊어졌다.
그리고 석목은 구전현공 말고도 수련 경지 또한 크게 강해졌다.
그동안 무궁무진한 천지의 영기를 몸속으로 빨아들였는데 비록 석목의 육신은 매개체가 되어 거의 모든 오행의 영력이 결국 아래에 있는 영맥 속으로 흘러 들어갔지만 여전히 적잖은 영력들이 아직 석목의 몸속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남겨진 영력은 가장 순수한 본원의 힘이었는데 이것들은 수련자에겐 매우 진귀한 재산이었다. 그리고 석목의 단전은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탐욕스럽게 영력을 삼켜 석목의 경지를 곧장 신경 중기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게다가 석목은 몸속에 흐르는 진기도 두 배나 늘어났다.
하지만 새롭게 더해진 진기는 어려운 수련을 거쳐서 얻은 힘이 아니라 다루기 조금 어려워 진기가 미친 듯이 경맥 속에서 흘러 다니자 근맥이 팽창하여 언제든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고통은 평범한 사람이 이겨낼 수 없을 정도였지만 석목은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석목은 단전으로 기를 모아 온 힘을 다해 구전현공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진기가 석목의 몸속에서 수십 바퀴나 더 돌더니 천천히 적응하여 다시 조용히 단전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하지만 이 힘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석목은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비록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어찌됐든 신경 중기 정상에 도달했다.
하지만 신경 후기에 도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수련 경지가 신경 중기에 도달한 사람은 모든 성역을 놓고 봐도 그리 흔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런 실력을 갖춘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자질을 타고 나는 건 물론이거니와 비범한 일들을 겪으며 조화를 이루는 자만이 갖출 수 있는 실력이었다.
다시 말해 이런 사람들은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신경 중기에서 후기에 도달하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었는데 천 년이 넘도록 수련을 해도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천하 성역의 삼대 종족만 놓고 봐도 많은 사람들이 신경 중기 정상에 머물러있었다. 그리고 천정의 십이 선장들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경 중기 정상이며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석목은 고개를 흔들며 잡생각을 뿌리쳤다. 그리고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석목은 이곳에서 급하게 신경 후기에 도달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석목은 조극이 막강한 위협이 되어 우선 구전현공을 수련하는 쪽이 시급했다.
오행의 영맥은 이미 균형을 이루었으니 이 힘을 빌려 빨리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돌파해야만 했다.
석목은 허공에 떠 있는 오행강역도를 바라보며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오행강역도로 법결을 날려 다시 강역도를 거두어들였다.
오행강역도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소환하는 힘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다섯 갈래 영맥이 파동을 일으키며 다섯 가마 속으로 흘러들어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오행강역도로 날아갔다.
수령자도 하얀빛 한 줄기가 되어 파란 가마를 따라 물의 영맥에서 날아 나와 석목의 옆으로 다가왔다.
“수령자, 고생했어.”
석목이 말했다.
“후후, 우리는 지금 운명을 함께 하고 있지.”
수령자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석목은 가볍게 웃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행강역도는 빠르게 줄어들어 원래 크기대로 돌아와 석목의 손으로 향했다.
오행강역도는 석목의 손에 닿는 순간, 빛을 찬란하게 드리우며 오색 빛으로 변하여 석목의 몸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어떻게 된 거지?”
석목이 깜짝 놀라 다급하게 눈을 감고는 몸속을 들여다보았다.
오행강역도가 석목의 영해 속에 놓여있었는데 별다른 특이한 점은 없었고, 그제야 석목은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이때, 화권에 그려진 가마 모양 그림에서 오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색 빛이 얽히고설키며 서로 연결되어서는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는데 그건 마치 석목의 몸속에 흐르는 오행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것 같았고, 또한 매우 현묘한 의경을 드러냈다.
석목은 오행강역도 속에도 오행 균형의 도리가 담겨 있을 줄 몰라 눈썹을 치켜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오행강역도를 깨우쳤을 터였는데. 만약 그랬다면 더 빨리 오행 균형의 현묘한 이치를 깨우칠 수 있었을 터였고, 적어도 이토록 험난한 여정을 거쳐 오행마굴에 와서야 뒤늦게 깨우치지는 않았을 터였다.
“음!”
석목은 다시 오행강역도를 자세히 훑어보고는 흠칫 놀랐다.
오행강역도에 나타난 오행의 균형은 석목의 몸속에 이뤄진 오행의 균형과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림 속에 그려진 작은 가마 다섯 개는 별달리 특별한 점이 없어 보였지만 석목이 이룬 균형과 오행의 힘이 연결된 방식이 달랐다.
푸른 나무의 영력은 강역도에서는 푸른 가마에서 날아 나와 붉은 가마로 흘러 들어갔고, 붉은 가마에서 불빛이 흘러나와 노란 가마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노란색 가마도 마찬가지로 노란빛을 뿜으며 금색 가마로 흘러 들어갔다.
또한 금빛이 금색 가마에서 날아 나와 파란 가마로 향했으며, 파란 가마의 영력은 푸른 가마와 연결되었다.
작은 가마 다섯 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하나로 연결되어 완벽한 순환을 이루었고, 어떠한 균형을 이루었다.
석목의 몸속에 이뤄진 오행의 균형은 상극이었다. 이른바 금은 나무를 배척하고, 나무는 흙은 배척하며, 흙은 물을, 물은 불을, 불은 금을 배척하는 원리였는데 이건 오행 마굴에서 오행의 영력이 이룬 형태에서 깨우친 이치였다.
하지만 오행강역도에 그려진 균형의 도리는 석목이 이룬 균형과 반대로, 즉 오행 상생의 균형이었다. 때문에 금은 물을 일으키고, 물은 나무를 일으키며, 나무는 불을, 불은 흙을, 흙은 금을……
두 가지 오행 균형의 도리는 전부 오행의 힘으로 이룬 균형이지만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상생…… 상극……”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수령자는 의아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석목은 오행강역도가 몸속으로 날아들어간 후로 계속 눈을 감고 앉아있었는데 마치 수련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령자는 한참 동안 석목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석목을 방해하지 않고는 다시 현명신주로 들어갔다.
물의 영맥에서 한 달 가까이 있었으니 석목은 제대로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석목은 영해 속에 담긴 오행강역도를 자세히 느꼈다. 그러자 그 위로 오행의 힘이 상생과 순환을 하며 끊임없는 의경을 흘려보냈는데 석목이 몸속에 이룬 오행 상극과는 많이 달라보였다.
“오행 마굴 속에선 오행 상극으로 인해 다른 힘이 진입했을 때 균형이 위협을 받아 밀어내는 힘으로 균형을 유지했지.”
석목은 무엇인가를 깨우쳤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석목은 한참 동안 생각에 빠져있다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벌써 조극이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넘어 석목은 지금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여기까지 생각을 한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속에 흐르는 오행의 힘을 상극 순환의 균형에 따라 시전하여 오색 빛을 뿜어냈다.
석목은 두 눈을 감고는 물 흐르듯이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방대한 기운이 석목의 몸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