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4화. 귀현계(歸玄啟)
석목의 몸에서 오색 빛이 들끓다가 이내 점점 수그러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색 소용돌이가 생기지 않고, 크기가 일고여덟 장 되는 오색 꽃봉오리로 변하여 석목을 안으로 드리웠다.
“음!”
석목이 멈칫했다.
오행마굴은 다시 안정되었고, 오행의 힘도 다시 균형을 이루었다. 그런데 원래대로라면 석목이 진기를 사용했을 때, 공간으로부터 배척을 받아야만 정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공간은 석목에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내가 오행마굴의 영맥을 복구해서 공간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석목은 한참 동안 추측하다가 더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어찌됐든 공간이 더 이상 밀어내지 않으니 좋은 일이라 이제 마음 편히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수련하면 되었다.
묵직한 주문 소리가 꽃봉오리 속에서 흘러나오더니 오색 꽃봉오리가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공간에 흐르던 풍성한 오행 영력이 갑자기 파동을 일으키며 묵직한 소리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무수히 많은 오색 빛이 나타나 온 공간을 가득 채웠다.
오색 빛점은 꽃봉오리로 모여들어 안으로 스며들었다.
오색 꽃봉오리가 천천히 불어나더니 꽃봉오리 위에 비치는 오색 빛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면서 서로 합쳐지려고 했다.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일깨우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오행의 힘을 합치는 것이었다.
* * *
천정.
이 시각, 커다란 귀현탑이 허공에 뜬 채로 층마다 빛을 밝혔다.
귀현탑 전체가 금빛으로 둘러싸여 휘황찬란한 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장엄한 기운을 풍겼다.
탑 꼭대기에 놓인 팔각형 평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조극이 갑자기 두 눈을 뜨더니 눈에 화색을 잔뜩 내비쳤다.
“드디어 끝났군!”
조극이 두 팔을 교차했다가 떼어내며 가볍게 한 글자를 내뱉었다.
“계(啟).”
거대한 탑에 있던 권문 수십 만 개가 갑자기 불이 켜지듯이 밝아지더니 다양한 색깔을 띠는 크고 작은 빛 덩어리들이 나타났다.
채색 빛덩어리들 속에서 구전현공의 힘이 흘러나와 영탑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조극은 방대한 힘을 느끼자 눈에서 맴돌던 화색이 더욱 짙어졌다.
허공에서 금빛이 흐르더니 금빛 사람 모양 허상이 다시 나타났다.
“이 귀현 대진은 내가 구전현공의 법의를 깨우치면서 성역에 흐르는 태고의 기운까지 끌어 모아 만든 것이란다. 때가 되면 성역 세계에서 구전현공을 수련한 경지가 너보다 낮은 녀석들의 경지가 전부 이 탑을 통해 네게 흡수되겠지. 그때 너는 강제로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뚫을 수 있을 거란다.”
금빛 허상은 말을 마친 후에 다시 몸을 번쩍이며 사라져버렸다.
금빛 허상이 사라진 곳에서 빛이 일렁이더니 하얀 영탑을 환하게 비추었다.
순간, 금빛이 퍼지며 조극의 두 눈이 금색으로 물들었다.
의기소침하던 조극의 얼굴은 사라지고 없었으며 미칠 듯이 흉악한 기색만 역력히 내비치며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석목, 네가 날 이겼다고 한들 어쩔 테냐? 결국 이기는 건 나야. 하하하하하!”
* * *
천정의 금색 대전 앞, 새하얀 옷을 차려입은 서문설이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살짝 들고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문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하얀 구름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고, 구름 속에서 찬란한 금빛이 번쩍였다.
구름에서 전해지는 막강한 영력 파동을 느끼자 서문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서 서문설은 무엇인가가 떠올랐는지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순간, 서문설은 빛으로 변하여 한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금색 대전과 백 리 정도 떨어진 곳에 뜬 구름 속에선 푸른 옷을 입은 반듯하게 생긴 청년이 검을 지닌 채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청년의 푸른 머리카락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 청년은 요와 일족의 강능풍이었다.
앞으로 날아가던 강능풍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주변을 한참 동안 주변을 훑어보다가 시선을 귀현탑으로 던졌다.
한참 동안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빠져있던 강능풍은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는지 갑자기 속도를 더해 가고 있던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 * *
미양 성역.
천은성 현철대륙, 이진종 종문이 자리한 극양봉의 주전.
신도남이 심각한 얼굴로 대전 가운데에 앉아있었고, 양쪽에는 이진종의 복식을 입은 장로 여러 명이 앉아있었다.
“각지의 현공 대회는 이미 시작되었는가?”
신도남이 물었다.
“성주님,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장로가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신도남은 가볍게 흔들고 있던 부채를 거두어들이고는 의자에서 일어서서 천천히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장로들도 곧장 신도남을 따라 나갔다.
대전 밖으로 나온 신도남은 고개를 들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게 매우 고요했다. 하지만 신도남은 이 성역에 이제 커다란 폭풍이 휘몰아치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 * *
요담성에서 가장 큰 종문인 육도종 안은 지금 유난히 시끌벅적했고, 종문 안에 자리한 광장엔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사람들은 전부 흥분한 얼굴로 광장의 북쪽에 놓인 높은 평대를 바라보았다.
평대 위에는 여러 남자가 한 줄로 서있었고,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은 키가 훤칠한 중년 남자와 도포를 입은 노인이었다.
“그간 우리 육도종은 빠르게 발전을 하며 요담성에서 제일가는 대종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종문에는 육도 현공을 수련한 사람들이 이미 육 천 명이나 되니 이 성과는 전부 명감(明鑒) 존자님 덕분입니다.”
키가 훤칠한 중년이 웃는 얼굴로 공손하게 말했다.
과거 석목이 육도종의 원래 종주를 죽여 버린 후로 이 사람이 새로운 종주가 되었다.
그 뒤로 이진종에서 육도종으로 새로운 사자를 보냈으며 두 사람이 이끄는 가운데 육도종은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
“네가 노력한 결과지. 아, 네가 익힌 현공은 어떻게 되었는가?”
도포를 입은 노인이 물었다.
“존자님, 저는 이미 팔중까지 수련했습죠. 그래서 나무 속성의 영력을 거의 원만에 가깝게 수련했습니다.”
키가 훤칠한 중년이 답했다.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육도 현공은 구전 현공의 잔편이라 팔중이라면 구전현공의 네 번째 단계였다. 하지만 잔편으로 이 정도까지 수련을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현공 대회를 열게 된 이유는 성주가 종문 안에 나천대진(羅天大陣)을 펼쳐 대법력으로 현공을 수련한 모든 제자들의 수련 경지를 올려주기 위해서지. 너도 함께 하거라.”
도포를 입은 노인이 광장의 육도종의 제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키가 훤칠한 중년 남자는 좋아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그리고 광장으로 날아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평대에 선 육도종의 장로 몇 명도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전부 광장으로 따라갔다.
이때, 하늘에서 굉음이 간간이 울려 퍼졌는데 마치 선악(仙樂) 같기도 했으며 범음(梵音)같기도 했다.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파랗던 하늘에서 옅은 금빛이 반짝였고, 하얀 구름의 변두리도 금색으로 빛나 마치 신적(神跡)이 강림한 것처럼 매우 성스러워 보였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한참 동안 그 광경에 취해있었다.
이런 신적은 요담성에 나타난 것만이 아니라 미양 성역에 있는 행성 수백 곳에서 똑같이 부드러운 구름이 나타나 행성을 둘러쌌다.
육도종처럼, 이진종이 일으켜 세운 종문 수백 곳 안에는 육도 현공, 음양취정공, 팔황륜전공 같은 이름이 다양한 공법을 수련한 제자들이 전부 각자가 속한 종문에 모여 소위 나천대진이 강림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 * *
천하 성역.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행성 위에는 몸집이 거대한 푸른 요족 수백 명이 푸른 석산의 꼭대기에 모여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하늘에 뜬 금색 구름을 바라보았다.
푸른 요족들은 오래된 요족들의 방계 혈맥이 흐르는 이들이라 몸 속에 천수 혈맥이 한 줄기씩 있었기에 천정으로부터 간택을 받아 구전현공의 잔편을 수련하게 되었다.
이때, 하늘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금색 구름이 흔들리면서 커다랗고 둥그런 구멍이 뚫어졌다.
점이 되어 흩날리는 금빛은 구멍 속으로 들어가 눈처럼 흩날렸다.
푸른 요족들은 기대하는 얼굴로 금빛을 향해 팔을 뻗었다.
요족들은 이 빛들이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빛이 가장 훤칠한 요족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음……”
푸른 요족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요족은 손바닥이 뜨거워졌고, 불의 힘이 손바닥을 타고서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으아……”
푸른 요족은 안색이 갑자기 흉악해지면서 하늘을 향해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몸속에 깃든 현공의 힘이 빠르게 밖으로 흘러나왔다.
훅!
푸른 요족의 몸에서 갑자기 푸른빛이 빠르게 뿜어져 나와 금색 구름에 난 둥그런 구멍으로 날아갔다.
이어서 고통스러워 울부짖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더니 청석 봉우리 위에서 수많은 빛기둥들이 나타나 하늘에 난 구멍으로 날아갔다.
몸 속에 깃든 구전현공의 힘이 사라지면 생명력도 함께 쇠락했는데 요족들 수십 명이 전부 영력을 시전하여 지금 처한 상황을 막아보려 했지만 구전현공의 힘이 사라지는 속도는 빨라지기만 했다.
잠시 후에 푸른 요족들은 절망으로 휩싸여 목 놓아 울기만 했다.
* * *
알 수 없는 성역.
망망한 별하늘에서 푸른색 옷을 입은 백발노인이 비주를 몰며 날아다녔다.
순간, 노인의 몸은 그대로 별하늘에서 멈춰버렸다.
노인의 머리 꼭대기에서 빛이 밝아지더니 금색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백발노인은 깜짝 놀라 손을 휘두르며 찬란한 은빛을 금색 소용돌이로 날렸다.
금색 소용돌이는 잠깐 흔들리는 듯하더니 금빛 부스러기를 쏟아내 노인의 어깨에 떨어뜨렸다.
노인은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지더니 구전현공의 힘을 겉으로 뿜어냈다. 그러자 구전현공의 힘은 굵직한 붉은 빛기둥으로 변하여 금색 소용돌이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백발노인은 어렵게 수련하여 얻어낸 구전현공의 일곱 번째 단계의 힘이 사라지자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이 성역 대세계의 곳곳에서 일어났다.
* * *
조극이 이제 막 귀현탑을 제련한 순간, 오행마굴 가운데에 자리한 지하 공간 속.
오색 꽃봉오리가 오행의 영력을 흡수하며 점점 불어나서는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렀다.
찬란한 오색 빛이 꽃봉오리에서 흘러나와 지하 공간을 환하게 비췄다.
하지만 꽃봉오리의 다섯 빛깔은, 다시 말해 오행의 힘은 합쳐지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꽃봉오리 속에서 두 눈을 감고는 차분하게 앉았다.
석목은 두 손을 흔들며 현묘한 동작을 취하였다. 그러자 오색 빛이 점점 격하게 들끓었다.
순간, 석목이 눈을 뜨고는 신비스러운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가슴을 감쌌다.
윙!
석목의 두 손 사이에서 오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사람 머리만한 빛 덩어리를 이루었다.
이어서 오색 빛이 얽히고설킨 채 꿈틀거리며 힘겹게 합쳐지려고 시도하였지만 그리 순조롭게 뭉치진 못했다.
빛 덩어리에서 굉음이 울리며 점점 커지면서 더욱 격하게 흔들렸다.
석목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온힘을 다해 빛 덩어리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균형은 단 몇 번 호흡을 할 동안만 유지되다가 이내 터져버리고 말았다.
석목은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몹시 초조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마굴은 오행의 영력이 아주 짙은 장소라 수련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었지만 석목은 지금 성공을 할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불안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