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7화. 혈맥 원만 (1)
하얀 원숭이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채색 빛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이어서 원숭이는 주먹으로 검은 소용돌이를 내리쳤다.
조극의 거대한 몸통이 하늘로 날아올랐고, 몸에서는 빛이 흘렀다. 그러자 구전현공의 힘 또한 이전보다 백 배나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조극은 소용돌이 앞으로 날아가기도 전에 영력이 부족해져 거대한 몸을 유지하지도 못했다.
몸집이 서서히 줄어들던 조극은 드디어 다시 인족으로 돌아와 평대로 내려왔다.
조극의 주변에 있던 다섯 가마도 점점 희미해지더니 다섯 갈래 빛으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갔다.
조극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으나 피곤이 몰려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게 희미해졌다.
순간, 희미한 얼굴 하나가 조극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어서 두 번째 얼굴, 세 번째 얼굴……
전부 낯선 얼굴들이었지만 스쳐지나가는 얼굴마다 흉악한 기색이 어렸는데 모두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가득한 눈빛으로 조극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얼굴들은 거친 목소리로 조극의 귓전에 대고 저주를 하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에 조극은 드디어 얼굴들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는데 흉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들은 전부 조극이 제물로 삼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는데 이제 곧 조극도 다른 누군가에게 제물이 될 터이기 때문이었다.
퍽!
조극의 팔 쪽 살갗이 떨어져 나가 하늘에 드리운 소용돌이로 날아갔다. 이윽고 팔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오더니 다시 굳어선 춤을 추면서 날아갔다.
막무가내로 구전현공의 힘을 흡수한 탓에 조극의 몸에는 너무 많은 구전현공의 힘이 붙어버려 쉬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조극의 피와 살은 현공의 힘과 범벅이 되어 함께 소용돌이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이게 숙명인가?”
조극은 이미 자신의 몸을 가눌 힘도 없어 눈빛이 온통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찼다가 결국에는 평온한 기색으로 돌아왔다.
화라락!
조극의 몸통은 마치 종잇장처럼 부서져 버렸고 피와 살, 그리고 뼈까지 전부 조각조각 부서져 하늘에 드리운 검은 소용돌이로 날아가더니 ‘성운’ 속으로 스며들었다.
귀현탑 꼭대기에 놓인 평대는 다시 고요해졌고, 허무로 돌아갔다.
* * *
오행 마굴 속, 석목의 머리 위쪽이 번쩍이더니 공간 통로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수많은 빛이 통로에서 쏟아지며 석목의 몸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석목은 몸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구전현공의 힘이 석목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와 순식간에 영해를 채워버렸다. 그러자 석목은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석목은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이유를 알아차려 다급하게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신통을 시전하여 방대한 원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몸에서 맴돌던 회색빛도 빠르게 불어났다.
석목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행의 힘이 합쳐진 후로 석목은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에 진입하긴 했지만 회색 본원의 힘을 강화시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석목은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정진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하늘에서 쏟아지는 풍성한 원기는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급속도로 정진시켰다.
이 속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가 곧 대성에 이를 터였다.
수령자는 석목과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 놀라운 얼굴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지금 방대하기 그지없는 흡입력을 풍기면서 갑자기 쏟아지는 구전현공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굴 속에 흐르는 오행의 영력도 흡수하고 있었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 족히 한 시진 반이 지나자 통로에서 쏟아져 나오던 원기의 빛들도 드디어 멈췄다.
허공에 선 석목이 풍기는 회색빛은 아주 짙어져 주변 열 몇 장까지 드리웠다.
방대한 기운이 석목의 몸에서 폭발하여 나와 사방팔방으로 부딪쳤다.
쾅!
지하 공간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암벽에 굵직한 균열이 나타났다.
하지만 회색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충격은 멈추지 않았고, 도리어 계속해서 퍼져갔다.
지하 공간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곧 무너질 기세를 보이며 무수히 많은 돌들이 부서져 비처럼 쏟아졌다.
수령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기운이 일으키는 진동마저 이 정도라면 석목이 갖춘 실력은 대체 얼마나 강해졌을까?
회색빛이 들끓으며 기운이 줄줄이 폭발했다. 하지만 깊은 빛 가운데에 있던 석목은 아주 고통스러운 안색을 내비쳤다.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는 이제 대성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홉 번째 단계에서 다루는 회색 원기는 앞선 여덟 번째 단계와 완전히 달랐다.
이 시각, 석목이 다루는 회색 본원의 힘은 온몸으로 퍼져나가 그의 골격과 근육으로 스며들었다.
칙, 칙……
괴상한 소리가 석목의 몸속에서 흘러나오자 그는 부들부들 떨었다.
석목은 마치 무수히 많은 개미들이 몸속을 물어뜯는 것만 같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석목은 이를 악물고 참아내면서도 속으로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회색 본원의 힘이 석목의 몸속 곳곳으로 녹아들자 혈자리와 경맥이 전부 열리면서 육신이 다시금 빠르게 강해져 하늘을 뒤엎을 만큼 변했다.
윙, 윙!
석목의 뼈가 격하게 흔들리며 ‘윙, 윙’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주변 공간에도 파장이 일었다.
드디어 육신의 힘도 극한에 도달한 것이었다.
석목은 체수를 아주 깊이 깨우쳐 아마 성역 세계를 통틀어도 석목보다 체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이건 인체에 깃든 잠재력의 한계였는데 체수를 익히는 사람들이라면 전부 한계를 느꼈다.
만약 육신의 한계를 뚫어버릴 수 없다면 육신을 수련하는 건 아마 여기서 끝일 터였다.
하지만 한계를 뚫어버리기만 하면 육신은 완전히 새로운 경계에 진입하여 불사신이 될 터였다.
회색 본원의 힘은 멈추지 않았고, 여전히 석목의 몸속에서 빠르게 흘러 다녔다. 하지만 아쉽게도 석목의 육신은 더 이상 본원의 힘을 계속 빨아들일 수 없었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자 몸속에 자리한 혈해가 갑자기 열렸다.
혈해는 마치 커다란 입처럼 본원의 힘을 빨아들였다.
석목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정신을 가다듬고는 온 힘을 다해 <천화신체공> 속에 적힌 혈해 수련법을 시전하였다.
동시에 단전 속에 깃든 진기도 함께 움직이면서 머릿속으로 신식 파동을 흘려보냈다.
혈해, 영해, 식해가 전부 필사적으로 움직이자 막대한 힘이 석목의 몸에서 한참 동안 들끓었다.
석목은 육신이 천천히 불어나더니 근육과 경맥, 그리고 피부 한 겹까지 전부 부풀었다. 그리고 피부 겉면에 붉은빛이 드러나 매우 두렵게 변했다.
비록 육신은 흉측했지만 석목의 눈은 물처럼 맑아졌다.
삼해(三海) 사이에서 현묘한 공명이 어우러지더니 석목의 머릿속에서 불사신으로 가는 길목이 순식간에 뚫렸다.
“그렇군! 이게 환골탈태의 경지지! 불사신의 경지란 이런 것이었어!”
석목이 갑자기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육신은 이미 한계에 닿아 힘을 터뜨리더니 순수한 원기로 변하였다.
“저놈이 정말로 불사신이 되었군!”
먼 곳에 서 있던 수령자는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오늘은 석목에게 그야말로 좋은 일만 가득한 날이었다.
지하 공간 속에 흐르던 거센 원기들은 마치 고삐가 풀린 말처럼 도처에 부딪치며 흘러 다녔고, 방대한 기운의 파동이 사방팔방으로 흘러가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갔다.
우르릉!
지하 공간에 흐르던 기운 파동이 격하게 들끓어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암벽이 무너질 정도가 되자 먼지와 부서진 돌들이 흩날려 곧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때, 다섯 갈래 영맥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동시에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빛이 점점 밝아지자 충격을 주던 기운들이 잦아들더니 빛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순식간에 온 지하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곧 무너져버릴 것 같던 암벽도 순식간에 오색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자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는데 곧 붕괴될 것 같던 산맥은 오색 빛이 드리우자 곧바로 안정을 되찾았고, 석목이 흘려보낸 원기 충격을 막아내었다.
두텁고 우렁찬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주변으로 흩어져나간 원기가 빠르게 줄어들더니 가운데로 모여들었고 희미한 사람 그림자의 머리 위로 흘러들어갔다.
희미한 사람 그림자가 점점 뚜렷해지자 석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석목은 눈에서 맑은 빛을 번쩍였고,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석목은 긴 옷자락과 소매를 바람에 휘날렸다.
석목이 풍기는 분위기는 엄청나게 달라졌는데 마치 전지전능한 위력을 풍기는 것 같았다.
석목은 두 손을 몸 옆으로 가지런히 떨군 채 살짝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몸속에 흐르는 힘이 느껴져 석목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체수 전집이 ‘불사신’이라는 경지를 극찬한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구전현공을 대성하자 석목의 몸에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는데 그는 단번에 육신의 한계를 뚫어버려 이전보다 몇 배나 더 강력해졌다.
이제 석목은 육신의 힘만으로도 같은 경지에 오른 다른 신경 강자를 죽일 수 있었다.
게다가 불사신의 막강한 위력은 공격을 할 때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 이제 석목의 몸은 가볍게 허와 실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석목을 향한 모든 공격들은 위력이 크게 줄어들 것이며 석목은 공격들을 가볍게 피할 수 있을 터였다.
심지어 석목은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준을 만나더라도 도망갈 수 있을 정도는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순간, 석목의 머리 위쪽에 난 공간 통로에서 다시 격렬한 파동이 일어났다.
석목이 눈썹을 치켜떴다가 이내 미간을 펼쳤다.
파동 속에서 거의 들리지 않게 울부짖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서 피구름 한 덩어리가 날아 나왔는데 그 모양은 마치 원숭이 같았다. 그런데 원숭이는 사지가 이리저리 꺾여있어 마치 허우적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발버둥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 석목이 공격을 하지 않아도 어떤 형태가 없는 힘이 피구름을 찢어버리더니 조금씩 아래로 떨어뜨려 석목의 몸 속으로 불어넣었다.
석목의 몸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온몸에 핏빛이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어서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마비가 되는 느낌이 사지로 뻗어 나갔는데 그건 마치 수많은 개미가 경맥과 뼈 위에서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아 석목은 참지 못하고 웃기만 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잠깐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순간, 석목은 기분이 묘해지다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해졌다.
피구름은 석목이 지닌 혈맥의 힘과 완전히 겹치는 것 같았다. 덕분에 피구름이 석목의 육신과 완벽하게 합쳐졌고, 혈맥의 힘도 크게 강해져 곧 경지가 원만에 이를 것 같았다.
석목은 피구름이 무엇인지 알아차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피구름은 다름 아닌 제준이 백원왕에게서 가져간 정혈이었다. 그리고 제준이 어떤 술수를 부려 조극의 몸속으로 정혈을 녹여 넣었는데 조극이 그걸 이용해 철저히 각성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극은 인족임에도 불구하고 구전현공을 수련할 수 있었으며 석목과 같이 백원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조극은 석목이 자신과 닮아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연유라면 그 말이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석목은 천수 혈맥을 각성한 후로 줄곧 몸속의 일부가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이제야 해답을 찾았다.
어찌됐든 모든 일들이 무탈하게 지나갔다.
조극에게 무슨 변고가 생겼는지 그는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에 진입한 후로 석목의 공력을 빨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석목은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에 진입한 후에 반대로 조극의 공력을 흡수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석목은 조극의 몸속에 있던 백원왕의 정혈마저 빨아들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자 목소리가 구름을 찌르더니 사방팔방으로 흘러나갔다.
찬란한 금빛이 석목의 몸에서 폭발하여 나왔는데 그 모습은 마치 금색 태양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