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화. 혈맥 원만 (2)
금빛 속에서 석목의 육신은 미친 듯이 불어났고, 순식간에 그는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원숭이로 변하였다. 그리고 갈비뼈 아래로 팔이 두 개 더 자라났으며 머리 한쪽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원숭이 머리도 하나 더 자라났다.
하지만 이번에 변신한 거원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랐는데 몸통부터 족히 만 장이나 되어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이 밖에도 몸을 뒤덮은 털들이 금색으로 변하였는데 마치 굵은 침과 같았다. 또한 털에서는 수많은 금색 문양들이 흘러 다녀 그 모습이 마치 금색 갑옷을 입은 것과 같았다.
막대한 위압감이 석목의 몸에서 폭발하여 나오자 암벽은 또다시 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오색 빛도 금색 원숭이가 풍기는 위압감을 막아내지 못해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석목은 거원으로 변신한 후에 온몸에서 들끓는 두려운 힘을 느끼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미천거원 혈맥의 힘이 원만에 이르러 거원 변신도 막강해졌다. 물론 꿈속에서 느꼈던 백원왕 만큼은 강하지 않았지만 그 정도 경지도 그리 멀지 않았다.
이때, 격한 진동과 함께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주변의 공간이 거의 무너지려고 하자 석목은 곧장 눈을 깜빡이며 다급하게 기운을 거두었다.
오행마굴의 영맥은 이미 조극의 차천곤 때문에 훼손되었다. 그러니 석목이 흥분을 한 탓에 자칫 잘못하여 기운을 숨기지 않아 마굴이 무너진다면 크게 아쉬울 터였다.
석목이 기운을 숨기자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다.
순간, 알 수 없는 뜨거운 느낌이 사지로 흘러갔다가 빠르게 석목의 단전 속으로 모여들더니 이어서 두 갈래의 뜨거운 열기가 단전에서 피어올라 석목의 눈으로 향했다.
석목은 마치 뜨거운 화염 두 덩이가 눈에서 활활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석목이 신음 소리를 내며 손으로 두 눈을 막았다.
한참 후에야 눈에서 느껴지던 열기가 사라지자 석목은 두 손을 내려놓았다. 이어서 석목의 두 눈에서 찬란한 금빛 두 갈래가 날아 나오며 동공에 금색 문양이 줄줄이 나타났다.
“이것은……”
석목이 흠칫 놀랐다.
눈앞의 시야도 크게 달라졌는데 석목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게 이전보다 훨씬 뚜렷해졌다.
특히 석목은 천지의 영기가 일으키는 파동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석목은 지하 공간 속에 흐르는 모든 미세한 영력의 파동을 다스릴 수 있었고, 마치 자기 손금을 내려다보듯이 영력이 흐르는 모습이 눈에 훤했다.
뿐만 아니라 벽도 투명하게 변하여 바깥의 상황을 투시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내 눈……”
석목이 깜짝 놀랐다.
순간 석목은 백원왕이 했던 말이 떠올랐는데 백원왕도 천형 신겁을 만난 적이 있어 그때 얻은 조화의 기운 한 줄기로 두 눈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들었다.
석목은 비록 백원왕의 영목신통을 일부 물려받긴 했지만 그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보아하니 조화의 기운은 백원왕이 죽었다고 해서 사라진 게 아니라 혈맥의 힘과 합쳐진 것 같았다.
이제 석목은 드디어 백원왕의 모든 혈맥의 힘을 모았고, 조화의 기운 한 갈래까지 각성하여 백원왕의 영목신통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백원 선조님, 감사합니다. 선조님의 원한은 제가 꼭 갚겠습니다! 때가 되면 모든 원한을 한 번에 갚겠습니다.”
석목은 화색을 드러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거원 변신을 해제했다.
석목은 육신이 빠르게 줄어들더니 곧장 원래 크기대로 돌아왔다. 그러자 지하 공간은 다시 천천히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얀빛이 반짝이더니 수령자가 날아와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이놈아, 이번에 큰 수확을 이뤘구나! 축하해.”
수령자의 목소리는 조금 장엄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오행마굴로 와서 석목은 많은 수확을 얻었는데 일단 구전현공이 대성에 이르렀고, 불사신의 경지가 되었다. 또한 석목은 미천거원 혈맥의 힘도 완벽하게 얻어 영목신통까지 각성했다.
실력이 열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었다.
“오행마굴에 온 목적도 달성했으니 이제 어떻게 움직일래!”
수령자가 물었다.
“모든 일을 마쳤으니 여길 떠난 다음에 다시 생각하려고.”
석목이 깊은 숨을 내뱉으며 벅차오르는 마음을 짓눌렀다.
석목이 이곳에서 한 달이 넘도록 수련했기 때문에 연나가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석목은 연나가 걱정되지 않았는데 그는 이미 연나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고명이 뛰어나다고 해도 연나와 비겼을 정도이니 연나는 아마 부상을 당하지 않았을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몸을 날려 들어왔던 물의 영맥이 흐르는 통로로 날아갔다.
“음!”
석목이 손을 흔들자 파란 구체가 통로에서 날아 나와 손에 떨어졌다.
석목은 눈을 깜빡거리며 생각을 되짚었다.
이 구체는 조극이 물의 영맥을 훼손했을 때, 영맥에서 날아 나온 물건이었다. 물론 석목은 이걸 보긴 했지만 상황이 긴박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건 혹시…… 요수의 알?”
구체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아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에 오는 동안 석목은 수많은 오행의 힘을 익힌 영수들을 만났지만 요수는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요수의 알이 있을까?
“이것은…… 한리지란(寒螭之卵)!”
수령자는 두 눈에 빛이 크게 번졌다. 그리고 뚫어져라 석목이 손에 든 파란 요수의 알을 바라보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한리? 그건 뭐야? 요수의 이름인가?”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후후, 이놈아. 그래. 너는 한리를 모를 수도 있지. 이 짐승은 절대 평범한 요수가 아냐. 태고 시대 때 있었던 교룡 중 하나지. 천지에 흐르는 지극한 음기와 한기 사이에서 탄생한 요수로 가장 막강한 물속성 요수 중 하나야.”
수령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
수령자가 하는 말을 듣자 석목은 눈썹을 치켜떴다. 과연 이 파란 알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라니.
“한리 같은 홍황 유종은 상고 시대에 이미 멸종되었을 텐데 여기에 나타나다니! 너는 너무 운이 좋아!”
수령자가 석목에게 말하며 파란 수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좋아해? 알일 뿐이잖아. 영수를 부화시키기라도 하게?”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홍황 유종이라 할지라도 일단 자라려면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석목은 한리의 알 따위엔 큰 관심이 없었다.
“아니지. 이 한리는 물 속성 혈맥 중엔 최고 등급이니 내 육신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야.”
수령자가 말했다.
“이 한리의 알을 몸으로 쓴다고? 선천 수원 혈맥이 흐르는 육신을 찾을 거라면서?”
석목이 놀라며 물었다.
“후후, 한리 혈맥은 선천 수원 혈맥과도 같아. 게다가 선천 수원 혈맥은 너무 희소하여 찾기도 쉽지가 않지. 그러니 이 한리를 내 몸으로 삼으면 돼. 난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야.”
수령자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석목은 수령자만 만족한다면야 자신은 크게 상관이 없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한리의 알이 왜 오행마굴에 흐르는 물의 영맥에 있었지? 이런 한리는 홍황 유종이라며. 그렇다면 이 알은 생명력이 다했을 텐데 너무 오랫동안 부화되지 않아 죽은 알이 된 게 아닐까?”
한리의 알을 바라보는 석목은 두 눈에 금색 문양을 내비쳤다.
“아마 예전에 오행 마굴에 들어왔던 사람이 영맥 속에 넣어놨겠지. 아마도 물의 영맥이 지닌 힘을 이용해 한리의 알을 부화시키려고 했던 것 같아. 물론 이 알이 지닌 생명력이 쇠약하긴 해도 크게 상관없어. 나는 기생 비술을 익혀 강제로 이 한리의 알을 부화시킬 수 있으니.”
수령자가 침묵하다가 말했다.
이어서 수령자가 감고 있던 현명신주에서 빛이 밝아지더니 한리의 알을 감쌌다.
어려운 주문이 수령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며 주먹만 한 파란빛 수십 개가 현명신주에서 날아 나와 전부 한리의 알 속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파란빛 덩이는 전부 수령자의 신혼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수단을 썼는지 수령자는 신혼을 여러 개로 분리시켜 놓았다.
게다가 파란빛 덩어리마다 방대한 신혼의 힘을 머금고 있는 게 만약 신혼의 힘 열 몇 덩어리를 전부 합치면 석목이 지닌 신혼의 힘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할 터였다.
그리고 빛 덩어리들은 현묘한 변화를 일으켰는데 석목은 그걸 잘 알지 못했다.
“역시 상고 시대의 괴물이야. 이렇게 오랜 세월을 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
석목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놈아, 비술을 시전할 시간이 필요해. 집중을 해야 되니까 별다른 일이 없다면 전음을 보내서 방해하지 마.”
수령자의 묵직한 목소리가 한리의 알 속에서 흘러나왔다.
“걱정 말고 비술에 집중해.”
석목이 대답했다.
수령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한리의 알에서 파란빛이 반짝이는 게 수령자가 비술을 시전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한리의 알 속에 담긴 생명력에서 파동이 일자 은은하게 복구되려는 기미가 보였다.
수령자가 쓰는 비술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한리의 알을 두어 번 바라보고는 영수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빠르게 밖으로 날아갔다.
* * *
이 시각, 천정의 귀현탑.
허공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금색 옷을 입은 키가 훤칠한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금관을 쓰고 있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는데 얼굴을 마치 칼로 조각한 것 같았다.
무궁무진한 위엄 또한 이 사람의 몸에서 풍겼는데 그 모습은 마치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스릴 수 있는 제왕의 모습과도 같아 누구든지 남자에게서 풍기는 기세에 굴복할 것 같았다.
금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는 귀현탑을 한번 훑어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남자가 손을 흔들자 금빛 한 줄기가 손에서 날아 나와 허공에 스며들었다.
퍽!
허공이 찢어지며 공간 통로가 하나 나타났는데 통로의 끝에는 전당이 있었다.
“고명. 이리 와봐라.”
금색 옷을 입은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 갈래 하얀빛이 공간 통로에서 날아 나와 귀현탑에 나타났다.
“존상님!”
고명은 매우 공손한 자세로 금색 옷을 입은 남자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귀현탑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가 다시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제준은 대충 손을 흔들고는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극의 원기 속에 네가 남긴 표식이 있으니 천안(天眼)을 시전해 누가 마지막에 구전현공을 수련했는지 알아보거라.”
“네.”
고명이 다급하게 대답을 하고는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자 몸에서 하얀빛이 번졌다.
고명은 두 손을 흔들어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손바닥에 세로로 자라난 눈에서 빛이 번지더니 무수히 많은 하얀 부문들이 날아 나와 머리 위로 모여들다가 이윽고 커다란 눈으로 변하였다.
윙!
세로로 자라난 눈이 벌어지면서 화면 하나가 나타났다.
온몸에 회색빛을 드리운 사람의 그림자가 화면에 나타났는데 그는 몸통이 빠르게 불어나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금색 거원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거원이 다시 줄어들자 석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면을 바라보던 제준은 얼굴이 굳어버렸는데 특히 석목이 변신한 원숭이의 모습을 살펴보자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하지만 이때, 세로로 자라난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화면이 찢어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수많은 하얀 부문들으로 변하여 고명의 몸속으로 날아갔다.
“죄송합니다, 존상님. 제가 조극의 원기에 남겨둔 표식이 사라져버렸군요. 누군가가 연화시킨 것 같습니다.”
고명이 일어서며 말했다.
“저 자가 네가 말한 석목인가?”
제준이 고명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고명이 담백하게 대답했다.
제준은 안색이 더욱 싸늘해졌다.
“존상님, 이놈이 천 년 전에 백원왕이 남긴 정혈을 이어받는 놈입니까?”
고명이 망설이는 듯하더니 물었다.
제준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시선은 고명이 아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현, 역시 살아있었어.”
고명은 조용히 한쪽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명, 천정의 모든 선장들을 소집해 천제궁(天帝宫)에 모이도록 해라.”
제준이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네!”
고명이 다급하게 대답을 하며 하얀빛으로 변하여 먼 곳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