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화. 하늘을 거스르다
천정의 깊은 곳, 금색 대전이 허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대전 주변에는 금빛 구름들이 떠다녔고, 금빛이 대전에서 뿜어져 나와 금색 빛 고리를 이루었다. 또한 낮은 범음이 빛 고리에서 흘러나와 경외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대전은 족히 백 장이나 되었고, 금색으로 물들어있는 것이 마치 어떤 금색 재질로 지은 것 같았는데 옅은 금빛이 풍기는 모습이 유난히 화려하고 웅장한 것 같았다.
대전 앞에는 커다란 편액이 걸려있었고, ‘천제궁’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천제궁 안에 자리한 한 전당, 여긴 텅텅 비어있었고, 어떤 장식도 없이 양쪽에 금색 기둥만이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
대전 위쪽에는 금색 의자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모두 열두 개였고 두 줄로 선 의자에는 각각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열두 의자 중 절반 정도만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각각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열 번째, 열한 번째, 열 두 번째 자리였다.
하얀 옷을 입은 고명은 세 번째 의자에 앉아있었고, 네 번째 의자에는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이 앉아있었다.
이 여인은 스무 살 정도로 되어보였고, 용모가 매우 뛰어났다. 하지만 안색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연약한 낯색을 보니 마치 병을 앓고 있는 미인 같았다.
다섯 번째 자리에 앉은 사람은 눈썹이 검 모양인 청년이었는데 등 뒤로 각각 검고 하얀 검을 한 자루씩 매고 있었다.
청년은 얼굴도 흑백 두 가지 색이라 마치 음양을 드러내는 듯했다. 또한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실로 소름 돋았다.
열 번째 자리엔 하얀 가사(袈裟)를 입은 스님이 앉아있었는데 젊어 보이는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고, 그는 손에 금색 염주를 들고 있었다.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 자리의 두 사람 중에 한 명은 하얀 궁장을 입은 소녀였고, 다른 한 명은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이었다.
궁장을 입은 소녀는 서문설이었으며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은 얼마 전에 석목과 헤어진 풍리였다.
여섯 사람은 전부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이때, 주좌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제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존상님!”
여섯 사람은 급하게 일어서서는 제준에게 인사를 올렸다.
“앉거라.”
제준은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여섯 사람은 대답을 하고는 각자 자리에 앉았다.
“여섯 명 뿐인가?”
제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존상님, 다른 사람들은 전부 밖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서……”
고명이 다급하게 일어서서 말했다.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제준이 손을 흔들면서 물었다.
“존상님, 모든 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진은 이미 전부 준비되었고, 영석도 충분히 모았습니다. 이제 진안지물(陣眼之物) 두 가지만 남았습니다.”
고명이 말했다.
“그래. 좋아.”
제준은 그 말을 듣고는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보였다.
다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십이 선장들은 전부 제준을 오랫동안 모신 사람들이라 제준이 극히 드물게 칭찬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제준은 칭찬을 할 때마다 풍성한 포상을 내려주었다.
“존상님, 진안지물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조극이 실패하면서 원래 세운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고명이 물었다.
“조극은 비록 실패했지만 누군가는 성공했겠지. 이 일은 네게 맡기마.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편하게 쓰거라.”
제준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고명은 멈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서문설은 눈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는데 고명과 제준이 나누는 대화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풍리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선장들은 전부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서문설은 많은 노력을 들이면서 드디어 선장의 자리에 앉게 되었지만 순위가 가장 뒤쪽인 선장일 뿐이라 속으로 실망했다. 아마도 서문설은 절대 천정의 핵심으로 다가갈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서문설은 낙심하지 않았는데 이제 십이 선장이 되었으니 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결국 그녀가 원하는 목표에 이를 수 있을 터였다.
“지금 처한 상황은 다들 잘 알 게다. 우리는 이미 성역 세계 대부분을 정복했지만 여전히 많은 적들이 완고하게 저항하고 있지. 허나 현문 계획이 막바지에 다다랐으니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제준이 말했다.
“네!”
선장들이 다급하게 일어서며 일제히 대답했다.
잠시 후에 고명을 비롯한 사람들이 인사를 올리고 떠나자 제준은 혼자 대전에 남게 되었다.
제준은 시선을 허공에 던진 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얼굴에는 차가운 웃음이 어렸다. 그리고 제준은 다시 대전에서 사라져버렸다.
* * *
오행마굴 속.
석목은 영맥이 있는 지하 공간에서 밖으로 날아 나왔다.
산맥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는데 높게 치솟았던 산봉우리는 절반이나 무너졌고, 심지어 땅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 온통 푸르던 산이 부서진 돌과 폐허로 바뀌어 동천복지(洞天福地)와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쉽군……”
석목은 안타까운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모든 일을 마친 후에 석목은 산맥에서 영초와 영과를 채집하려 했었는데, 비록 석목에게는 필요가 없었지만 미천 연합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보물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석목이 밟고 있던 땅이 갈라지더니 커다랗고 흉악한 머리 하나가 땅 속을 비집고 나왔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는 번개 같은 속도로 석목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윙!
석목은 아래쪽 상황을 쳐다보지도 않고는 발에 노란빛을 반짝였다. 그러자 노란 계란 모양의 광막이 나타나더니 석목의 몸을 받쳤다.
석목이 흡수한 오행의 힘은 전부 회색 본원의 힘으로 전환되었지만 본원의 힘을 거꾸로 돌리면 오행 공격을 시전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거꾸로 전환시킨 오행의 힘은 예전보다 훨씬 짙었고 위력도 크게 강해졌다.
광막에 노란 암석 모양 문양이 나타났는데 비록 얇은 광막 한 층이었지만 산처럼 두터운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커다란 입이 노란 계란 모양의 광막을 물자 광막은 가볍게 흔들리는 듯하더니 반석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흉악한 머리는 지네 모양의 영수였는데 땅 속에서 튀어나온 몸통의 절반이 족히 이삼십 장이나 되는 엄연한 신경 초기였다.
지네뿐만 아니라 산맥 곳곳에는 생김새가 흉측한 영수들이 잔뜩 있었다.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망연한 기색을 내비쳤다.
오행마굴의 변두리가 무너지면서 영수들이 중심 구역으로 모인 것이었다.
지네 영수는 공격이 실패하자 커다란 몸집을 말면서 꼬리를 땅 속에서 뽑아냈다. 그리고 눈부신 노란빛을 뿜으며 가로로 휩쓸더니 두려운 기운 파동으로 석목을 내리쳤다.
석목이 한 손을 흔들자 회색빛이 석목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며 옆을 막아섰다.
펑!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지네의 꼬리 공격이 가볍게 튕겨져 날아갔다. 그러나 회색빛은 흔들리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았다.
회색빛이 한참 동안 흐르더니 지네의 꼬리를 감아버렸다.
지네는 마치 불을 만난 얼음처럼 녹아버렸고, 노란 원기로 변하여 회색빛으로 삼켜졌다.
지네 영수가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며 몸을 말아 도망가려고 했다.
이에 석목이 손가락을 튕기자 회색빛이 날아 나와 크기가 몇 장에 이르는 회색 검영으로 변하더니 빠른 속도로 지네 영수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펑!
지네 영수는 머리가 터져버리면서 몸통이 노란 원기로 변해 흩어졌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며 화색을 내비쳤다.
새롭게 탄생한 오행 본원의 힘은 매우 강력해 거의 모든 오행의 힘을 꺾어버릴 것만 같았다. 만약 석목이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수련하기 전이었더라면 지네 영수를 죽이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을 터였으나 지금은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
석목과 노란 지네 영수가 치른 전투는 근처에 있던 다른 영수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영수들은 석목과 같은 인간들을 아주 배척하는 듯 사방팔방에서 공격을 날려댔다.
가장 먼저 굵직한 하얀 회오리바람 기둥이 석목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석목은 눈에서 금색 무늬를 번쩍이며 곧장 회오리 속에 있던 새하얀 도마뱀 영수를 알아봤다 그리고. 도마뱀 영수는 몸에 하얀 매미 날개가 수십 쌍 붙어있었다.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뼈를 찌를 듯한 한기가 하얀 바람기둥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도마뱀은 엄연히 얼음 속성 영수였다.
도마뱀 영수가 날개를 펼치자 그 모습이 마치 한 쌍의 팔 같았다.
칙, 칙, 칙!
크기가 문짝만 한 하얀 얼음 칼바람이 촘촘하게 나타나 차가운 기운을 감고는 석목을 향해 공격을 날리며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를 냈다.
“덤벼라!”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회색빛이 넓게 펼쳐지면서 회색 구름으로 변하여 석목의 앞을 막았다.
칙, 칙!
무수히 많은 하얀 칼바람이 회색 구름을 내리쳤으나 화려한 빛이 빠르게 사라지며 물의 원기가 되어 녹았다. 이어서 회색 구름이 물의 원기를 삼켜버리니 파동도 일지 않았다.
석목은 희열이 차올랐다.
석목은 드디어 구전현공이 지닌 막강한 위력을 깨닫게 되었는데 구전현공이 지닌 힘은 모든 오행 속성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이었다.
오행의 도는 성역 세계를 이루는 본원이었다. 때문에 오행으로 연화한 법칙은 더욱 무궁무진했고, 이 세상 만물의 위에 있었으니 만물을 이루는 상생과 상극은 위도 없고 아래도 없으며 끊임없이 반복되어 자연스럽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석목은 이제 몸속에 흐르던 오행의 힘을 하나로 합쳤기에 혼자만의 힘으로도 만물의 오행 균형을 깨트릴 수 있어 모든 법칙은 석목 앞에서 효용을 잃게 되었다.
이런 공법은 성역의 오행 균형을 파괴할 수 있어 하늘을 거스르는 일이라 운이 좋고 인연이 닿아야만 한다고 여겨져 단 한 사람만이 수련할 수 있었다.
석목은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한 손으로 허공을 짚었다.
그러자 회색 구름이 들끓다가 커다란 손으로 변하여 번개 같은 속도로 하얀 바람기둥 속으로 스며들었다.
바람기둥은 회색 손이 닿는 순간, 곧바로 구멍이 뚫리면서 막아내지 못했다.
훅!
회색 손이 도마뱀 영수의 머리를 붙잡았다.
석목이 주먹을 꽉 쥐자 회색 손에 달린 다섯 손가락이 합쳐지면서 도마뱀 영수의 머리를 계란처럼 가볍게 부숴버렸다. 그러자 머리 없는 시체가 허공에서 떨어지다가 흩어지더니 커다란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사자처럼 생긴 커다란 화염 짐승이 먼 곳에서 부터 입을 크게 벌리고는 화염을 뿜어내면서 다가왔다. 그렇게 사자가 내뿜는 화염은 커다란 화운과 화염구로 변하여 석목에게 날아왔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영수들도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석목은 이미 본원의 힘이 지닌 위력을 확인했으니 이런 영수들과 싸울 이유가 없어 눈살을 찌푸렸다.
석목이 몸을 날려 화염 짐승에게로 날아갔다.
순간, 석목의 몸이 들끓더니 허무로 돌아가 찬란한 회색빛으로 변하여 화염 짐승이 날린 공격을 날려버리고는 다시 화염 짐승의 몸통을 뚫어버렸다.
화염 짐승은 몸통이 곧바로 터져버려 불길이 되어 번졌다.
그러나 찬란한 회색빛은 멈추지 않고서 반짝이는 사이에 수십 리 밖으로 날아가 두어 번 반짝이는 사이에 하늘에서 사라져버렸다.
석목을 향해 덮쳐오던 영수들은 그가 사라지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회색빛이 산골짜기를 스쳐지나 먼 곳으로 사라져버렸는데 속도가 별똥별보다도 훨씬 빠른 것 같았다.
회색빛이 산맥을 전부 날아나가기 전에 산꼭대기에서 멈춰 서자 석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석목은 환하게 웃었다.
불사신에 들어선 이후 육신의 한계가 사라지자 날아가는 속도도 훨씬 빨라져 이전보다 두 배는 더 빨라진 것 같았다.
석목이 한숨을 내뱉으며 벅차오르는 마음을 억눌렀다.
영수들이 더는 방해를 하지 못하자 석목은 오행강역도를 꺼내 들었다.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가 대성에 이른 후로 석목은 이제 완벽하게 오행강역도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지도는 오행마굴로 드나들 수 있는 열쇠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마굴의 문을 열면 공간이 흔들릴 것이고, 지하 공간에 흐르는 영맥 또한 이제 막 복구가 되어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에 석목은 곧바로 통로를 열지 않았다.
석목이 오행강역도를 펼치자 오색 빛이 지도에서 뿜어져 나왔고, 허공에서 파동이 일더니 공간 통로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