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화. 내놔
사령 대군들 뒤로 가로로 그어진 깊은 골짜기가 뚜렷하게 나타나자 그 속에서 회색 안개가 피어올랐다.
“무야, 어디 있어?”
연나가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마치 마른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처럼 온 빙판을 흔들어 놓았다.
그 말을 들은 수많은 사령 생물들은 눈에서 번쩍이던 혼화를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사령들은 겁에 질려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이때, 깊은 심연 속에 드리운 회색 안개가 격하게 흔들리면서 커다란 음영이 나타났다.
자세히 바라보니 심연 속에서 튀어나온 건 크기가 백 장 가까이 되는 푸른 사자였다.
사자의 몸에는 푸른 털이 자라나 있었고, 오로지 머리 부위만 살가죽이 없는 하얀 뼈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사자의 커다란 두 눈구멍에서는 옅은 화염이 번쩍였다.
머리 위에는 또 다른 작은 그림자가 있었는데 그림자는 한 손에 검은 골도를 들고 있었고, 또 다른 손에는 추선대를 들고 있었다.
“무야?”
석목은 검은 그림자를 바라보며 멈칫했다.
연나는 눈에 싸늘한 빛이 스쳤다.
무야는 검은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거무칙칙한 뼈가 아니라 사지와 가슴 부위에 살이 돋아있었다.
하지만 두 눈구멍은 여전히 텅텅 비어있었고, 유유한 도깨비불이 번쩍이고 있었다. 또한 두 눈에 자리한 불빛이 살갗 없이 근육만 자라난 볼을 비추어 매우 흉측해 보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무야의 수련 경지가 이미 신경 중기에 도달해 연나가 말한 수준보다 훨씬 강력했다.
“컥, 컥……”
무야는 목을 파르르 떨면서 듣기 거북한 웃음소리를 냈다.
“이렇게…… 빨…… 빨리 쫓아왔다니……”
목 부위의 근육은 이제 막 생겼는지 소리를 내는 게 매우 힘겨워 보였다.
“가져와.”
연나가 손을 들어 올리며 싸늘하게 말했다.
“날 죽이러 왔지? 그런데 네가 그럴 실력이 될까?”
무야는 연나가 하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는 자기가 할 말만 지껄였다.
무야의 눈구멍에서 혼화가 한참 동안 번쩍였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던 귀왕급 사령 생물들 수십 마리가 뿔뿔이 움직이면서 포효를 했다.
귀왕들의 포효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자 수십만 망령 대군이 한참 동안 들끓기 시작해 저급 사령들은 혼화마저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무야가 내린 공격 지령이며 거의 순식간에 모든 사령에게로 전달되었다.
사령들은 지능이 없지만 석목이나 연나와 같은 신경 강자들에게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사령들은 한참 동안 아무도 먼저 두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무야는 고개를 흔들면서 대군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추선대를 들어 올리자 추선대에서 금색 무늬가 밝아졌다.
형태가 없는 파동이 추선대 속에서 전해지자 사령 대군들의 혼화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러더니 적잖은 사령들이 전부 허리를 굽히며 고통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잠시 후에 무야가 추선대를 거두어들이자 사령들은 다시 멀쩡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사령들은 무기를 치켜들고는 연나와 석목을 공격했다.
해골 병사 하나가 골도를 들고 가장 먼저 덮쳐 들었다.
이어서 수천, 수만 사령 대군이 밀물처럼 연나와 석목을 덮쳤다.
석목은 안색을 바꾸며 큰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가 사령 대군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때, 등 뒤에서 연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급 사령은 지능이 없어서 강제로 명령을 따르는 거야. 죽일 필요 없어. 귀왕급은 이미 지능이 생겨서 배신을 했으니 절대 살려두면 안 돼.”
“그래.”
석목은 짧게 대답을 하고는 금빛을 드리웠다. 그러자 석목은 근육이 툭툭 튀어나왔고, 뼈에서도 ‘뿌드득!’ 소리가 나더니 변신하기 시작했다.
석목은 순식간에 미천거원으로 변신하여 만 장 가까이 되는 금색 원숭이로 변하였다. 그렇게 원숭이가 되어 드러낸 금색 무늬는 마치 금색 갑옷 같았고, 강력한 위압감이 석목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자 땅이 격하게 흔들렸다.
석목의 앞에 있던 거대한 사령 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게 작아져 마치 개미와도 같았다.
석목이 몸을 숙이며 땅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거대한 금색 머리 두 개가 나란히 떨어지며 흉악한 이를 드러내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두 갈래 기운 파동이 석목의 입에서 뿜어져 나와 마치 거센 회오리바람처럼 몰려오는 사령 대군을 밀어냈다.
화라락!
수많은 하얀 해골들이 거센 바람에 말려 하늘에서 날아다니다가 먼 곳으로 떨어졌다.
해골들 대부분은 부서져 버렸고, 두 덩이 혼화만 머릿속에서 튀었다.
회오리가 스친 구역은 텅텅 빈 통로로 갈라져 곧장 무야에게로 향했다.
연나가 칠보묘수를 흔들면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연나의 발밑에서 칠색 빛이 밝아지면서 연꽃이 되어 펼쳐져 연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리나 날아가 무야에게로 향했다.
하얀빛이 번쩍이며 하얀 골창이 날아와 허공에서 튕기면서 희미한 창꽃을 터뜨렸다. 그러자 연나 주변 백 장 가까이 되는 구역이 전부 막혀버렸다.
하지만 연나는 신경 쓰지 않고는 영리하게 몸을 날려 앞으로 날아갔다.
연나가 창 그림자에 닿으려는 순간, 금색 팔이 허공에서 내려왔고, 석목이 손을 뻗어 희미한 창 그림자를 전부 막아냈다.
탱, 탱, 탱!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석목의 손이 스쳐 지나가면서 방대한 힘을 실은 하얀 창을 날려 크기가 천 장 가까이 되는 해골 귀왕을 날려버렸다.
해골 귀왕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뼈가 일그러지면서 부서져 버렸다.
수많은 해골들과 문드러진 시체들은 멈칫대다가 추선대가 이끄는 가운데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번에 연나의 앞길을 막아서서는 촘촘하게 뼈 칼날과 시체의 독을 날렸다.
석목이 큰 발을 들어 올려 사령 대군을 짓밟았다.
쾅!
빙판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얼어붙은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많은 해골 사령들이 방대한 힘에 튕겨 하늘로 날아갔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앞으로 몸을 날려 커다란 네 팔을 휘저으면서 금색 풍차를 만들어 사령 대군을 미친 듯이 휘저어놓았다. 그러자 사령 대군은 가볍게 흩어져버렸다.
그 광경을 본 무야가 눈에 혼화를 피어내자 추선대에서 어두운 금색 무늬가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하얀 해골 사령들은 새로운 지령을 받았는지 전부 석목에게로 몰려갔다.
나머지 몇몇 귀왕급의 사령 생물들도 석목에게로 몰려왔다.
개미가 코끼리 한 마리를 둘러싸도 해볼만 하다고 하더니 수십만에 달하는 사령 생물들이 한 번에 몰려왔다.
잠깐 사이, 석목은 밀물처럼 몰려오는 사령 생물들로 물샐 틈 없이 둘러싸였다.
연나는 곁눈으로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무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칠색 빛을 짚고는 무야의 앞으로 다가갔다.
“내놔.”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무야는 또 다시 괴상한 목소리로 웃어댔다. 그리고 검은 골도를 들고는 연나를 공격했다.
검은 빛날이 내리치자 수백 배나 커져 연나의 얼굴로 날아왔다.
연나가 칠색 묘수를 흔들자 무지갯빛이 스쳐지나며 빛날을 막아냈다.
탱!
검은빛이 채색 빛에 닿는 순간 곧바로 두 덩이로 갈라졌다. 하지만 흩어지지 않고 위 아래로 날아갔다.
쿵!
땅으로 떨어진 검은빛이 폭발하자 깊은 웅덩이가 생겼다.
연나는 연꽃을 밟으며 계속해서 무야에게로 다가갔다.
“가져와.”
연나는 낮게 소리를 지르며 한 손으로 칠보묘수를 들고는 앞쪽을 찔렀다.
칠보묘수의 가지 끝에서 빛이 폭발하며 여러 갈래 빛이 튕겨 나와 채색 창으로 변하여 무야에게로 향했다.
동시에 칠색 광막이 나타나 주변 천 장 범위를 전부 덮었다.
“영역.”
무야가 두 글자를 내뱉자 그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어서 채색 빛이 반짝이며 채색 나무가 나타나 덩굴이 자라나면서 무야의 팔과 다리를 묶어버렸다.
쩍, 쩍!
무야가 가슴 앞에 두른 검은 갑옷이 마치 도자기처럼 깨져버렸다.
채색 창이 허공에서 번쩍이며 무야의 가슴과 목을 찔러대자 갓 자라난 무야의 살에 수많은 구멍이 뚫렸다.
무야는 겁에 질려 미친 듯이 혼화를 번쩍였다.
무야가 추선대를 힘껏 틀어쥐자 검은 안개가 추선대에서 흘러나와 무야의 가슴에 뚫린 구멍으로 흘러들어가서는 빠르게 가슴과 목 부위에 난 상처를 메웠다.
뿐만 아니라 무야의 두 눈에서 일던 혼화도 더욱 왕성해졌다.
그 모습을 본 연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칠보묘수를 들어 올려 다시 무야를 내리쳤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무야가 고개를 번쩍 들고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추선대에서 금색 무늬가 찬란하게 빛나며 막강한 힘의 파동이 추선대에서 흘러나왔다.
쿵!
막대한 힘이 추선대에서 폭발하더니 검은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이어 무야의 뒤에 놓인 채색 나무가 수많은 빛이 되어 부서져 버렸다.
이제 막 속박에서 벗어난 무야는 지체하지 않고 한 손으로 추선대를 들고는 연나를 공격했다.
그 모습을 본 연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확실히 무야는 연나보다 추선대를 훨씬 잘 다루고 있었다.
이어서 연나의 칠보묘수에서 빛이 폭발하였다.
그러자 연나가 찬란한 빛을 뿜어내 직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훅!
예상치 못한 격렬한 격돌이었지만 영력 원기가 폭발하진 않았다. 그리고 무야는 잠깐 실명한 듯하더니 곧장 화려한 빛을 뚫고 지나갔으나 추선대는 허공에 떨어졌다.
무야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옆쪽 허공에서 틈이 갈라지며 채색 나뭇가지가 그 속에서 뻗어 나왔다.
이어서 연나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칠보묘수를 가로로 휘저으며 무야의 허리를 내리쳤다.
쩍!
가벼운 소리와 함께 무야가 두르고 있던 검은 파편과 푸른 진액이 사방으로 튀었고, 무야는 허리가 부러져버렸다.
“음……”
무야의 입에서 무거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게다가 두 눈에서 일던 혼화가 계속해서 불타는 게 몹시 고통스러워 보였다.
연나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얼굴에선 승리의 기쁨이나 복수를 했다는 쾌감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연나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무야를 향해 걸어갔다.
그 광경을 본 무야는 혼화를 더욱 빠르게 번쩍였다.
연나는 무야의 옆으로 다가가 옆에 나동그라진 추선대를 가져왔다.
무야의 불안하던 혼화가 다시 안정되자 무야는 목을 파르르 떨었다.
먼 곳에 있던 석목은 그 모습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그건 사람이 긴장할 때 침을 삼키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람도 시체도 아닌 괴물 같은 무야가 그런 행동을 하니 기분이 좀 껄끄러웠다.
연나는 무야에게 일어난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석목은 여기가 연나의 영역인데다 무야가 큰 부상을 당했기에 그가 다른 수단을 부리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무야의 손을 떠난 추선대에서 갑자기 빛이 번지더니 막강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신경 후기.”
연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의식을 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두 갈래의 검은 그림자가 추선대에서 튀어나와 양쪽에서 연나를 공격했다.
그림자는 속도가 매우 빨랐고, 손에 파란 낫을 들고는 연나의 머리를 내리쳤다.
연나는 몸을 뒤로 젖히며 간신히 낫을 피했다. 그 순간, 연나는 몸이 조여들더니 기이한 영력 파동을 맞아 몸 속에 깃든 영력이 순식간에 털리는 듯했고, 신혼마저 희미해졌다. 그렇게 연나는 무엇인가를 통해 속박을 당했다.
두 낫 사이에는 파란 뼈 사슬이 이어져 있었는데 두 그림자가 연나의 몸을 스쳐지나가며 그녀를 묶어버린 것이었다.
다시 돌아선 두 그림자는 낫을 들고 연나를 공격했다.
칠보묘수를 들고 있던 연나는 한 손이 사슬에 묶여 한 손만 들어 올려 낫 하나의 공격을 막았다.
낫이 일제히 떨어지며 두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검은 투구를 쓴 하얀 해골 두 구였다.
두 해골은 평범한 사령 같아 보였지만 풍기는 기운은 매우 막강했다. 그리고 두 해골은 손에 넓적한 낫을 들고 있었는데 마치 소문으로 떠도는 죽음의 신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