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2화. 화신을 복구하다
쩍!
연나는 한 손으로 낫을 덥석 붙잡고는 멍하니 다른 낫 하나가 날아오는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회색빛이 먼 곳에서 날아왔는데 석목이 여기서 일어난 상황을 파악하고는 원래 모습으로 변신하여 빠르게 다가온 것이었다.
석목이 손에 회색빛을 번쩍이며 단번에 낫을 두 조각으로 갈라놓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회색빛을 날려 신경 해골의 이마를 공격했다.
신경 해골은 겁에 질려 도망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연나가 낫을 틀어쥐고 있어서 이대로 갈 수도 없었다.
찰나의 순간, 허공에서 ‘훅!’ 소리가 울렸다.
회색빛이 신경 해골의 미간에 박혔다.
사령 생물은 혼화가 머릿속에 박혀있기에 이마가 가장 취약한 약점이었다. 때문에 신경 후기 강자라 할지라도 석목이 다루는 오행 본원의 힘으로 합쳐진 회색빛을 막아내지는 못할 터였다.
신경 해골은 몸이 굳어 낫을 놓아버리고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다가 무너져버렸다.
해골의 눈구멍과 뼈 사이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펑!
해골은 머리가 터져 버렸고, 혼화마저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석목이 연나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 한쪽에 있던 무야가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덫을 놓아 단번에 널 죽이려 했는데. 패거리를 데려오다니. 큭큭…… 나중에 또 보자.”
무야가 말을 마치자 추선대에서 빛이 번지더니 허공에서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추선대는 수 십 배나 커져 흡입력을 줄줄이 뿜어냈다.
그러자 흩어져있던 수천, 수만 구 사령들 중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삼분의 일 정도가 안개로 흩어지며 추선대로 빨려 들어갔다.
석목과 연나가 안색을 굳히며 다시 무야를 막아내려 할 때, 무야가 추선대를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신경 해골의 도움을 받아 추선대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연나는 안색이 퍼렇게 질렸다.
“갑자기 나타난 신경 사령은 또 뭐야?”
석목이 물었다.
“이 두 놈은 나도 처음 보는 거야.”
연나가 고개를 흔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남은 사령들은 어떻게 할 거야?”
석목이 물었다.
연나가 빙판을 훑어보자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다.
조금 전에 격전을 치르며 귀왕급 사령들은 이미 절반이나 석목이 변신한 거원에게 공격을 받아 사라져버렸고, 남은 사령들은 전부 등급이 높지 않은 사령들인데다가 숫자마저 절반도 안됐다.
무야와 추선대가 사라지자 사령들은 다시 혼란에 빠지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는 두리번거렸다.
“내게 방법이 있어. 하지만 시간이 좀 걸려.”
연나가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나가 갑자기 두 눈을 감고는 주문을 외웠다. 이어서 찬란한 빛이 연나의 미간에서 밝아지더니 빠른 속도로 사방으로 퍼지면서 나머지 사령 생물들에게 전부 드리웠다.
사령 생물들은 눈에서 혼화가 밝아지더니 전부 연나에게로 몰려왔다.
사령 생물들은 대략 이십만 구 정도 되었는데 원래 모은 숫자에 비하면 삼분의 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무야가 내 병력을 대부분 가져갔지만 나도 사령계면을 오래 다스렸던지라 다른 곳에 아직 병력이 좀 남아있어.”
잠시 후에 연나가 눈을 뜨며 말했다.
“그럼 추선대는 어떻게 하고? 추선대가 없으면 병력을 소환할 수 없잖아?”
석목이 물었다.
연나가 사령 대군을 소환하려면 추선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건 석목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령 대군을 성역 세계로 소환한다고 해도 자원을 막대하게 소모해야 할 터였다.
“또 다른 보물을 제련하여 추선대를 대체할 수 있어. 다만 효과가 추선대 만큼은 아닐 거야. 하지만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
연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비록 연나는 가볍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일은 그녀가 말하는 것만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 석목은 침묵을 지켰다. 게다가 석목은 연나에게 별다른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
“남은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 너는 우선 연합으로 돌아가. 나중에 연락할게.”
연나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그래. 나도 때마침 해야 할 일이 있어.”
석목이 말했다.
“그럼 데려다 줄게.”
연나가 말을 하며 손을 흔들어 석목을 보내려고 했다.
“잠깐만, 부탁할 일이 있어.”
석목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연나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내 분신.”
석목이 손을 흔들어 부상을 당한 분신을 꺼냈다.
분신은 한참 동에 훼손된 상태로 방치되어있었다. 그러나 석목은 분신을 회복시킬 적합한 재료를 찾지 못해 여태 복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 분신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연나가 놀라며 물었다.
석목은 쓴웃음을 지으며 분신이 화도 선장에게 당해 훼손된 사실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분신을 복구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재료를 찾지 못했어. 네 도움이 필요해.”
석목이 말했다.
“네 분신은 홍루 마조의 파손된 영역의 힘을 흡수해서 막강한 잠재력을 갖췄지. 헌데 아쉽게도 너는 계속 그 잠재력을 끌어내지 못했구나. 이 일은 내게 맡겨.”
연나가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럼 부탁해.”
석목은 몹시 좋아했다.
석목은 홍루 마조가 지녔던 영역의 힘이 비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분신이 신경에 진입한 후로 석목은 홍루 마조가 지녔던 영역의 힘을 깨우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계속 성공하지 못해 그 힘을 조금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나가 법결을 날리자 사령 생물 수십 만 구가 다시 땅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따라와.”
연나가 은빛을 날려 분신을 휘감아서는 먼 곳으로 날아갔다.
석목이 곧장 그 뒤를 따라갔다.
* * *
반시진 뒤, 두 사람은 검은 산봉우리 꼭대기에 도착했다.
이곳에 솟은 산봉우리는 족히 몇 만 장이나 되었고, 산봉우리 꼭대기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호수는 넓이가 수 백 장이나 되었고,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호수에서 이는 빛이 마치 핏빛 같은 게 이곳은 명수지호(冥水之湖)였다.
쿵, 쿵, 쿵!
핏빛 호수 속에서 끊임없이 기포가 터지면서 소리를 냈다.
“명수의 힘이 아주 짙군!”
석목은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눈앞에 놓인 호수 속에는 핏빛 힘이 내재되어 있는 게 예전에 봤던 명수지호와는 완전히 달랐다.
“명수에 깃든 힘은 전부 하늘 위에 뜬 핏빛 달에서 흡수한 거야. 명수지호는 높은 곳에 자리해서 핏빛 달의 힘을 훨씬 많이 흡수할 수 있었지.”
연나가 말했다.
석목도 이 점을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연나는 왜 석목을 명수지호로 데려왔을까? 혹시 명수의 힘으로 분신을 복구하려는 걸까?
연나가 말을 마치고는 곧장 호수 옆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소맷자락을 흔들었다.
그러자 훼손된 분신이 날아가서는 은빛을 드리운 채 호수 중앙의 허공에 떴다.
연나가 손을 흔들자 호수가 들끓기 시작했고, 붉은빛이 허공에서 날아 나와 분신을 감쌌다.
석목과 분신은 심신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석목은 순수한 힘이 쏟아지듯 분신에게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명수의 속성과 분신의 힘은 유난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분신이 다친 상처들이 빠르게 복구가 되면서 기운이 점점 차올랐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연나는 주문을 외우며 열 손가락을 연이어 움직이다가 굽혔다. 그러자 수십 갈래 현묘한 법결들이 날아갔다.
이런 법결 부문들은 위아래로 꿈틀거리며 허공에서 부진을 만들었다.
수많은 부진이 가로지르며 나타나 한참 동안 분신 주변에서 춤을 추다가 분신에게로 스며들어갔다.
석목은 그 광경을 보자 눈앞이 현란해졌다.
분신 주변에서 핏빛이 응고되며 붉은 구체로 변하더니 분신을 안으로 가두었다.
연나가 다시 손을 흔들자 붉은 시체 한 구가 날아 나왔다. 그런데 고작 시체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기운을 풍기는 게 살아있을 때 실력이 매우 막강했던 신경 강자인 것 같았다.
핏빛 시체가 구체로 들어가는 순간, 순식간에 폭발하여 혈무가 되어 흩날리더니 구체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구체 속에 감돌던 핏빛이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이어서 막강한 기운 파동이 흘러나와 호수에 수많은 파동이 일어났다.
핏빛 구체 위에서 수많은 빛들이 튀며 핏빛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
쾅!
순간, 호수 전체가 들끓더니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핏빛 구체를 중심으로 커다란 소용돌이가 나타나더니 막강한 흡인력이 소용돌이 속에서 흘러나왔다.
모든 명수 속에 깃든 핏빛 힘은 전부 소용돌이로 모여들어 천 리 안에 있던 핏빛 달빛마저 형태 없는 힘에 이끌려 분신에게로 흘러들어갔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연나는 천 년 전에 제준이나 장현 같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자라 수련 경지를 대부분 회복하자 제련을 하는 방법이나 천지의 원기를 다루는 실력이 그야말로 석목이 절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 * *
시간이 조금씩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여드레나 지났다.
석목은 한쪽에 서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으나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분신에게는 훨씬 유리한 점이 많았기에 석목은 조용히 기다리기만 했다.
호수 속에 감돌던 핏빛 힘은 많이 소모되어 이제 옅게 한 층만 깔려있었다.
호수 가운데에는 크기가 몇 장에 이르는 핏빛 구체가 들끓고 있었는데 그 속에 사람 그림자가 하나 서 있었다.
순간, 연나가 법결을 날리길 멈추더니 주문을 외우다가 한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다. 그러자 피 한 방울이 연나의 손가락 끝에서 날아 나와 핏빛 한 줄기로 변하여 빠르게 호수 바닥으로 스며들어갔다.
칙!
핏빛 구체는 곧바로 들끓기 시작해 곧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러자 ‘스윽!’ 소리와 함께 사람 그림자가 공에서 날아 나와 허공에 섰다.
분신의 모습을 본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였다.
그런데 분신은 외모가 천지개벽할 만큼 달라졌는데 피부에 핏빛 무늬가 줄줄이 새겨진 게 마치 마문 같았다. 또한 두 눈에선 붉은빛이 났고, 열 손가락에도 뾰족한 손톱들이 자라났다.
특히 등에는 박쥐 날개가 한 쌍 붙어있었다.
막강한 기운이 분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걸 보니 이미 신경 중기에 도달했다. 심지어 분신에게선 신경 정상에 이르려는 기미도 보였다.
석목은 분신의 힘을 느끼면서 희열이 차올랐다.
연나는 얼굴이 다소 하얗게 질린 채 천천히 일어섰다.
“고생했어.”
석목이 말했다.
연나가 손을 흔들면서 대답했다.
“생각보다 분신이 지닌 잠재력이 아주 커. 잠재력을 촉발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 과정에서 이변이 일어났어…… 분신이 물려받은 홍루 마조의 파손된 힘과 혈월(血月)의 힘, 그리고 조금 기괴한 혈도원기(血道元氣)까지 세 가지를 합쳐야만 했어.”
“혈도원기?”
석목이 물었다.
“음, 살기가 넘치는 혈도지력(血道之力)이야. 마치 검의 기운처럼 날카로워.”
연나가 말했다.
그 말을 듣던 석목은 순간 붉은 단검을 떠올렸다.
단검을 분신에게 넘겨준 이후로 석목은 한 번도 단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화도와 격전을 치른 이후로 단검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연나가 말하는 혈도원기는 그 단검인 걸까?
그러니까 분신이 원기로 변한 단검을 흡수했을까?
석목은 생각을 하며 신혼을 연결시켜 분신의 몸속에 흐르는 원기를 자세히 느껴보았다.
이전에는 연나가 제련을 할 때 방해가 될까봐 분신을 훑어보지 않았다.
순간, 석목은 안색이 바뀌었다.
분신의 몸에는 막강한 힘이 내재되어 있었는데 이 힘은 마기와 완전히 달랐다. 물론 마기의 속성이 일부 들어있긴 하나 오히려 그 힘은 혈도원기에 더 가까웠다.
게다가 혈도원기는 매우 비범하여 은연중에 원래 모양으로 복구되려는 기운을 풍겼다. 비록 석목이 지닌 오행 본원의 힘만큼은 아니지만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연나의 말대로 분신은 영해 속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풍기고 있었고,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석목은 매우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