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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833화 (833/916)

833화. 기다림의 끝을 보다

분신에게서 핏빛이 번지더니 손에 붉은빛이 반짝이면서 단검이 나타나 허공을 그었다.

쓱!

막강한 검의 기운이 호수를 갈라놓았다.

퍽!

호수가 두 덩이로 갈라졌다.

핏빛 검의 기운을 만난 명수는 칙칙 소리를 내며 곧장 증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의 기운은 계속해서 호수의 깊은 곳으로 날아갔고, 호수 밑바닥에 자리한 암석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암석은 마치 두부처럼 아무런 저항도 없이 갈라졌다.

쾅!

산봉우리가 두 덩이로 갈라지면서 한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또한 호수의 물이 ‘쏴아!’ 소리를 내며 산 아래로 쏟아지면서 핏빛 폭포를 이루더니 곧바로 메말라버렸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산 밑에서 묵직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단 한 번 공격을 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이 폭발했는데 이는 석목이 날리는 일격과도 비슷했다.

“분신은 실력이 크게 늘었어. 천정의 십이 선장 중에 순위가 뒤쪽에 있는 놈들과 비슷할 정도야. 제대로 사용하면 꽤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연나가 천천히 말했다.

석목이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분신이 허공에서 내려와 석목의 영수 주머니로 들어갔다.

“분신을 복구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썼어. 이제 법보를 제련해야하니 보내줄게.”

연나가 말했다.

“미안해.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았군. 그런데 물어볼 게 있어.”

석목이 미안한 표정을 드러내며 계속해서 물었다.

“또 무슨 일이야?”

연나가 눈을 깜빡거렸다.

“천정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석목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천정에 대하여 석목은 여전히 알고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았는데 심지어 어디에 있는지마저 잘 몰랐다.

연나는 앞쪽을 바라보며 눈에서 기이한 빛을 내뿜었다.

“천정은 선역에 있어. 거긴 아주 신비스러운 곳이지. 그곳은 마역, 명역과 함께 삼성 성역이라고 불리지만 선역은 자원이나 천지의 영기가 마역이나 명역보다 훨씬 풍성해. 그리고 선역은 기괴한 힘이 드리워져있어 들어가기가 아주 어려워.”

연나가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어렵지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있겠지.”

석목이 물었다.

연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방법은 있지. 하지만 천정과 관련된 기억은 여전히 잘 떠오르지 않아. 선역으로 가려면 아마 각 성역에 분포된 천문을 찾아야 할 거야.”

“천문?”

석목은 멈칫했다.

“자세한 건 나도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천문은 모두 네 개가 있고, 전부 천정으로 통할 수 있어. 그런데 어디에 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연나가 기억을 되짚으며 말했다.

“괜찮아, 돌아가서 알아볼게.”

석목이 말했다.

연나는 대답을 하고는 주문을 외우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석목의 앞에 파동이 일면서 공간 통로가 하나 나타났다.

“우선 돌아가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모아. 여기서 일을 마치면 찾으러 갈게. 하지만 그동안 법보를 제련하는데 집중해야하니 신식 연결이 끊길 거야.”

연나가 말했다.

“그래, 알았어. 혹시 내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나를 소환해.”

석목이 연나를 향해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공간 통로 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연나는 자리에서 잠깐 서 있다가 몸을 날려 먼 곳으로 날아갔다.

석목의 눈앞에 펼쳐진 공간이 변화를 거치면서 밝아졌다. 그리고 석목은 청란성지의 천계 공간에서 나타났다.

“왜 여기로 돌아왔지……”

여기엔 명확한 출구가 없어 나가려면 한참 애를 먹어야 할 것 같아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석목은 몸을 날려 먼 곳으로 날아갔다.

* * *

반시진 뒤에 회색빛이 동성성으로 날아오더니 빛이 사라지며 석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 동성성을 한 번 쳐다보고는 복잡한 기색을 드러냈다.

동성성은 석목이 가장 오랫동안 머무른 곳인데 이렇게 다시 돌아오게 되니 마음이 아려 한숨만 나왔다.

석목은 고개를 흔들면서 기분을 가다듬고는 자리를 떠나 다시 천하 성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순간,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한 곳을 바라보았다.

거긴 미양 성역의 북쪽 방향이다.

석목은 전에 갔었던 은련성이 떠올랐는데 백원왕이 예전에 이끌던 부하들이 아직 그곳에 숨어있었다.

천정과 결전을 치를 날도 멀지 않은데다가 예전에 백원왕을 모시던 부하들도 약한 세력은 아니었다.

석목은 잠깐 고민하다가 은련성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석목은 전송진을 이용하여 여드레 만에 은련성에 도착했다.

“음!”

은련성은 하얀 안개가 자욱해 온 행성을 안쪽으로 드리워 석목이 눈썹을 치켜떴다. 확실히 예전에 왔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었다.

“여기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석목은 은련성으로 날아가며 신식으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석목은 하얀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흠칫 놀랐다.

안개 속에서 한 갈래의 힘이 전해지는 게 누군가가 안개에 진법 금제 같은 걸 설치해놓은 것 같았다. 이로 미루어보아 은련성 안에 분명 변고가 생겼을 터였다.

석목은 경계를 하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는 계속해서 안개의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안개에서 흘러나오는 힘이 점점 커졌다.

하지만 석목이 날아가는데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깊숙한 곳으로 다가가자 하얀 안개가 점점 줄어들어 곧 바닥에 이를 것 같았다.

이때, ‘윙!’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안개 속에서 날아왔다. 그리고 꼬리 같은 무엇인가가 석목을 내리치려고 했다.

석목은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휙!

커다란 주먹 그림자가 나타나 꼬리를 내리치자 꼬리는 가볍게 튕겨져 날아갔고, 주먹 그림자가 안개 속으로 떨어지며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겁에 질린 목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땅으로 떨어졌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건 길이가 수십 장이나 되는 푸른 교룡 요수였다. 그렇게 요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쿵!’ 소리와 함께 웅덩이가 생겼다.

석목은 바닥으로 내려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얀 안개와 금제 말곤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석목이 힘을 적절하게 조절했기에 교룡은 비록 허공에서 떨어졌지만 큰 부상을 당하지 않고 곧장 일어섰다.

“뭐하는 놈이야? 은련성에 침입하다니! 천정 놈인가?”

푸른 교룡은 석목을 바라보고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며 사람이 하는 말을 내뱉었다.

석목은 푸른 교룡을 한 번 훑어보고는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푸른 교룡은 엄연히 신경 초기 수련 경지인 요수였다.

석목이 예전에 은련성에 왔을 때, 은련성에선 충오를 제외하면 전부 성계 수련 경지였다. 그러니 푸른 교룡은 아마 그 뒤로 새롭게 신경에 진입한 요수일 터였다.

그런데 푸른 교룡의 입에서 어째서 천정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혹시 은련성에 일어난 변고가 천정과 관련이 있을까?

“청홍(青虹) 어르신!”

순간, 요족 무리가 먼 곳에서 날아왔는데 그들은 전부 성계 수련 경지였다.

요족들은 매우 가지런하게 대오를 이루며 날아오는 게 훈련을 받은 엄격한 군대 같았다.

“다가오지 마! 이놈은 매우 막강한 놈이야. 빨리 가서 충오 어르신께 보고해!”

푸른 교룡은 다급하게 요족 무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석목을 경계했다.

그 말을 들은 요족 무리는 곧장 멈춰 서서는 석목을 바라보며 떠날지 말지 망설였다.

“너희가 충오의 부하인가? 긴장하지 말게. 나는 천정 놈이 아니니.”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누구냐?”

푸른 교룡이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석목이네. 예전에 은련성에 왔었지. 충오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를 충오에게로 안내하게.”

석목이 담담한 투로 말했다.

그리고 신식을 드리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은련성에선 몇몇 성계와 천위 등급 요수들만 느낄 수 있을 뿐, 충오가 어디 있는지는 감지할 수 없었다.

은련성의 요수들은 실력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았다.

신식이 드리운 범위 안엔 수많은 성계 요수들이 있었고, 천위 요수도 많았다.

“석목?”

푸른 요수는 어딘가에서 들어본 이름 같아 멈칫했다.

“아! 석목 존상님이군요! 지난번 오셨었죠. 백원왕의 후손!”

먼 곳에 있던 한 성계 뱀 요수가 날아오면서 말했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석목 존상님, 인사 올립니다. 예전에 충오 어르신 뒤에서 본 적이 있습죠.”

뱀 요족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인사는 괜찮네. 충오에게로 안내하게.”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차분하게 말했다.

“네!”

뱀 요족은 다급하게 대답을 하고는 푸른 교룡을 향해 입을 움직이며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푸른 교룡은 안색이 변하면서 곧바로 키가 훤칠한 청년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청년은 머리에 푸른 뿔이 자라나 있었다.

“석목 존상님이군요. 실례했습니다.”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이 은련성에 오던 해에 청년은 때마침 폐관 수련을 하던 중이었던지라 석목을 보지 못했다.

조금 전에 간단한 교전을 치르며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은 석목이 지닌 막강한 실력을 맛보았다.

요족은 실력이 뛰어난 자를 매우 높이 모셔 석목이 갖춘 실력이 청년의 존경심을 자아낸 것이었다.

“괜찮네.”

석목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요족 무리와 석목이 앞으로 날아갔다.

“조금 전에 천정이라고 했는데. 혹시 그동안 천정 놈들이 왔었나?”

석목이 푸른 옷을 입은 청년에게 물었다.

“천정이 미양 성역의 각 행성을 수시로 과격하게 침공했죠. 우리 은련성도 여러 번 공격을 당했습니다.”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련성은 비록 외진 곳에 있지만 여긴 천지의 영기가 워낙 짙은데다 영석 광맥도 풍성하여 천정 놈들이 여길 발견하게 된다면 아마도 영석을 채굴하려 했을 터였다.

청년을 비롯한 요수 무리는 석목이 이곳에 온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석목이 먼저 입을 열지 않자 아무도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

* * *

석목 일행은 빠른 속도로 몇 만 리나 날아 석목이 예전에 왔던 커다란 연꽃 호수에 도착했다.

호수 가운데에 놓인 작은 섬 위에는 건물이 서 있었는데 적잖은 요족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을 보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석목 존상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충오 어르신을 불러오겠습니다.”

청년이 석목을 대전으로 안내하며 다시 걸어 나가려고 했다.

“필요 없을 것 같구나!”

석목이 웃으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청년이 의아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이 시선을 던진 허공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석목 존상님! 드디어 오셨군요!”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석목을 맞이했다.

“충오, 그간 은련성을 지키느라 고생 많았구나.”

석목이 말했다.

“아닙니다.”

충오가 다급하게 답했다.

“아, 존상님. 수련 경지가 대단한 경지에 이르셨군요. 백원 혈맥의 힘도 이렇게 짙어졌다니!”

충오가 석목을 훑어보며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동안 천하 성역으로 돌아가 백원왕께 온전한 대물림을 받았다.”

석목이 설명하며 말했다.

“그렇군요!”

충오는 놀라운 감정이 가시지 않았다.

“존상님, 은련성에 오신 걸 보니, 혹시……”

충오가 눈에 빛을 반짝이며 석목에게 물었다.

“그래, 그간 수련을 하면서 계속 천정과 맞서 싸울 세력을 모으고 있었지. 이제 준비가 다 되었구나. 이번에 온 이유는 너희를 데리고 모든 전력을 동원해 함께 천정과 싸우기 위해서야!”

석목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충오가 미칠 듯한 희열을 내비치며 큰소리로 답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랐다.

백원왕과 그의 부하인 십이 요장들은 대부분 천정에 의해 격살을 당했다. 그리고 충오는 운이 좋게 살아남았지만 단 한순간도 복수를 포기한 적이 없어 그동안 원한을 품고 기다려왔다. 이렇게 복수를 할 수 있는 날을!

그런데 오늘 드디어 그 기나긴 기다림의 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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