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7화. 천정의 초대
공수자는 속승이 꺼낸 재료를 확인한 후에 다시 심각한 얼굴로 속승이 들고 있던 우피지를 가져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석목은 속승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자 속승이 석목을 향해 눈을 깜빡였다.
둘은 올바른 자세로 서서 아무 말 없이 공수자를 바라보았다.
“좋아, 묘하군! 훌륭해, 아주 훌륭해!”
잠시 후에 공수자가 우피지를 거두어들이며 감탄을 자아냈다.
“공수자 선배님, 가능하십니까?”
속승이 물었다.
“흥, 이 세상에 나 말고는 아무도 이 보물을 제련할 수 없어.”
공수자가 화가 난 듯이 말했다.
하지만 공수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이 어렸다.
석목이 앞으로 다가가서 물으려 하자 공수자가 갑자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이렇게 대단했다니. 그런데 나는 누구지?”
“선배님, 이 보물 갑옷을 제련하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석목이 물었다.
“보통 때라면 삼 년, 오 년은 걸릴 거야. 허나……”
공수자가 손을 흔들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요?”
석목이 물었다.
“허나, 이 명하지수가 있다면 사십구 일이면 충분하지.”
공수자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매우 기뻐하며 공수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공수자는 석목을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다시 우피지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사십구 일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저는 아마 계속 이곳에 머물지 못할 것 같군요. 무암성을 떠나 오행마굴을 찾아 나선 지 꽤 오래되었어요.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군심이 흔들릴 겁니다.”
석목이 속승에게 말했다.
“그래. 걱정 말고 돌아가 보려무나. 공수자가 갑옷을 복구하면 가져다줄 테니. 그때, 우리 청란성지의 남은 세력을 이끌고 합류하지.”
속승이 말했다.
“그럼 선배님, 부탁드립니다.”
석목이 공손하게 손을 굽히며 말했다.
말을 마친 석목은 다시 고개를 돌려 공수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이번은 공수자가 마지막으로 보물을 제련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구룡쇄금갑은 아마 공수자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작품이 될 터라 이제 작별 인사를 올리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터였다.
구룡쇄금갑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공수자는 석목이 짓는 심각한 표정을 보고는 멈칫하다가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손가락으로 석목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됐다. 가보거라.”
속승이 손에 빛을 반짝이며 허공을 그었다. 그러자 금색 틈이 허공에 나타났다.
석목은 다시 속승에게 인사를 올리고는 검은 틈 속으로 날아갔다.
* * *
별바다에서 반나절 정도 날아다니던 석목은 자신이 이미 천하 성역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창월 비경은 천하 성역과 미양 성역이 만나는 자리에 있던 곳이었다.
석목은 무암성이 있는 곳을 확인하고는 흑백 날개를 펄럭이며 빛으로 변하여 별바다로 사라져버렸다.
이틀 뒤에 주작성 바깥 하늘에서 흑백 빛이 먼 곳에서부터 날아왔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석목이 나타났다.
석목은 수십 리 밖에 늘어선 별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엔 금색 전함이 열 몇 척 나란히 줄지어 있었고, 그 위로 다양한 갑옷을 입은 천정의 병사들이 빼곡히 서 있었는데 그 숫자가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석목이 흠칫 놀랐다. 주작성은 이미 무너졌는데 어째서 이토록 많은 천정의 대군이 여전히 이곳에 모여 있을까? 석목을 죽이려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석목이 이미 전함 부대와 매우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아마 상대는 이미 석목을 발견했을 터였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 후퇴를 한다고 해도 이미 늦어버렸다.
석목은 다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는 금빛을 밝히며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며 대책을 세웠다.
그런데 이때, 빛 한 갈래가 전함에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석목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을 했지만 전혀 두렵지는 않았다. 지금 석목이 갖춘 실력이라면 전함 부대를 전멸시키지는 못해도 적어도 위험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다.
석목은 신경 후기에 진입한 후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오히려 한번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 맹주님, 잘 지냈습니까?”
날아오던 빛이 흩어지더니 일전에 연나와 교전을 치렀던 천정의 선장 고명이 나타나 석목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명 선장님, 무슨 일입니까?”
석목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고명이 대답을 하려다가 석목이 풍기는 방대한 기운을 느끼고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석 맹주님, 역시 자질이 뛰어나시군요. 짧은 시간 안에 이미 신경 후기에 도달하셨다니. 역시 제준 어르신마저 맹주님을 눈여겨본 이유가 있었습니다.”
잠깐 침묵이 흐른 뒤에 고명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제준이 나를 눈엣가시로 여겨 빨리 해치우지 못해 안달이 났다고 하던데.”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오해를 하시는군요. 제준 어르신께선 때마침 이런 오해를 풀고 싶어 하시는데 맹주님께선 혹시 긍정적으로 들으실 의향이 있는지요?”
고명이 물었다.
“어떻게 풀겠다는 말씀인지?”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제준 어르신이 맹주님을 초대하여 전쟁을 끝내고 협업을 할 방향으로 논의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이야말로 쌍방이 가장 아름다운 결실을 보는 방법이지 않겠습니까?”
고명이 말했다.
“나를 초대한다고? 천정으로? 덫이 아닐지는 어떻게 알까요?”
석목이 멈칫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정도 성의는 당연히 보일 겁니다. 만약 맹주님이 회담에 동의하신다면 그 전에 천하 성역을 향한 침공을 전면적으로 멈추겠습니다. 허나 맹주님이 거절한다면 또 다시 무암성을 침공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모든 선장들이 강림하면 무암성이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고명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속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미천 연합이 힘을 모으는 중요한 시기니 천정의 방해를 잠시라도 받지 않으면 다행이었으나 천정이 또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요. 그럼 제준과 한 번 만나보지요.”
석목은 심사숙고한 끝에 이렇게 대답했다.
“석 맹주님, 역시 큰일을 해내실 분이군요. 석 달 뒤에 석 맹주님은 누구든지 동행할 수 있으며 우리가 남천문에서 영접하겠습니다.”
고명이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고명을 몇 번 훑어보고는 날개를 펼쳐 천정의 전함 사이를 지나 빠른 속도로 별하늘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 * *
보름 뒤, 석목은 드디어 무암성으로 돌아왔다.
눈앞에 보이는 익숙한 행성을 바라보자 석목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비록 무암성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는 않았지만 그간 너무 많은 일들이 생겨 마치 수십 년은 지난 것 같았다.
석목은 감성이 풍부해진 자신이 조금 웃겨 고개를 흔들었다. 이윽고 석목은 잡념을 떨쳐버리고는 앞으로 날아갔다.
이제 막 무암성에 도착했을 때, 연합에서 순찰을 하던 사람들을 만났다.
순찰원들은 석목을 보자 곧바로 석목에게 인사를 올리며 연합의 고위층에게 전음을 보냈다.
석목의 위신은 하늘높이 치솟았고, 그가 갖춘 실력은 범접할 수 없을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니 석목은 미천 연합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연합 사람들이 보기에 석목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석목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연합의 총부로 내려왔다.
이때, 허공에서 소리가 들려오며 사람들이 줄줄이 연합의 총부로 모였다. 모인 이들은 족히 사 오십 명은 되었는데 전부 신경 강자였다.
가장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은 대장로와 육규종을 비롯한 팔황고족의 장로들이었고, 옆에는 다른 중소 종족의 신경 강자들이 있었으며 충오도 그 사이에 있었다.
“맹주님, 돌아오셨습니까!”
신경 강자들은 석목을 보자 줄줄이 인사했다.
석목은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합의 총부에서 깃발이 흩날리는 게 각 종족 사람들이 머무는 주거지가 시선의 끝까지 이어져 얼마나 많은지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각양각색 전함들 또한 근처에 놓여있는 것이 마치 거인들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만 같았다.
미천 연합은 세력이 더욱 강력해졌고, 석목은 큰 기쁨을 느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저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죠. 우리는 모두 한 목표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인데 고생이라니요.”
대장로가 입을 열었다.
“충오, 무사히 도착했구나.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석목이 충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왔죠. 감사합니다.”
충오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충오는 은련성의 요족을 이끌고 미천 연합에 들어와 석목을 부르는 호칭도 맹주님으로 바뀌었다.
“하! 맹주님, 맹주님의 수련 경지가! 혹시 이미 신경 후기에 들어서신 겁니까!”
옆에 있던 육규종이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대장로는 석목의 기운을 느끼고는 깜짝 놀랐다.
석목은 비록 몸에서 풍기는 기운을 숨겨버렸지만 그가 움직일 때 내뿜는 기세만으로도 대장로와 같은 신경 강자들은 그대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놀란 사람은 충오였다.
충오는 고작 얼마 전에 석목과 헤어졌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석목은 신경 중기 정상이었는데 잠깐 사이에 신경 후기에 진입했다니.
성장이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이번에 출타를 하며 우연한 기회를 만나 경지를 돌파할 수 있었지.”
석목은 가볍게 한 마디만 했다.
대장로를 비롯한 강자들은 전부 기뻐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은 원래도 실력이 막강해 신경 초기일 때도 천정의 십이 선장들을 격살해버렸는데 신경 후기에 들어섰다면 실력이 얼마나 강대해졌을까?
석목은 미천 연합의 정신적 지주일 뿐만 아니라 실력 또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니 석목이 있다면 미천 연합은 더는 천정이 두렵지 않았으며 이제는 제준과도 싸울 수도 있을 터였다.
미천 연합에 가입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안고 있던 사람들도 이제 미천 연합에 눌러앉게 될 터였다.
천하 성역에는 너무 오랫동안 신경 후기 강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석목이 신경 후기에 도달했으니 그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을 터였다.
“밖에만 서 있지 말고 대전으로 들어가서 대화를 나눕시다.”
석목이 가볍게 웃으며 가장 먼저 대전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대장로를 비롯한 이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석목을 따라 대전으로 들어갔다.
* * *
석목은 곧장 대전 가운데에 놓인 주좌에 앉았다.
장로들도 각자 자리를 찾아 착석하니 대전에는 신경 강자들이 가득했다.
석목은 비록 권력욕이 없었지만 그가 직접 만든 미천 연합이 이토록 강대해지자 마음이 벅차올랐다.
“대장로님, 제가 나가 있는 동안 천하 성역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천정의 대군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던가요?”
석목이 자리에 앉아 대장로에게 물었다.
“맹주님, 천하 성역은 그동안 아주 고요했습니다. 아무런 이변이 없었지요. 천정의 대군은 침입을 포기했는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장로가 대답했다.
석목은 오는 길에 만났던 고명 선장을 떠올리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석목은 내색하지 않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좋습니다. 연합이 처한 최근 상황은 어떻습니까?”
“맹주님, 우리 미천 연합은 팔황고족 중에 일곱 종족을 모았습니다. 다른 종족들도 육칠 할 정도가 이미 연합에 가입해 미천 연합은 병력이 이미 백만에 이르렀죠. 예전에 백공 선배님이 꾸린 연합보다 더 방대해졌습니다! 이제 천하 성역의 주도권은 다시 우리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육규종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매우 기뻐했다.
팔황고족 중에 요와 일족은 예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남아있는 종족들은 이미 천하 성역을 떠나버렸기에 미천 연합에 가입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밖에 중소 종족들까지 합한다면 역시 막강한 힘을 가진 세력들이라 백원왕의 전성기라도 지금에 비하면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세력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