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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838화 (838/916)

838화. 연나의 제자

“맹주님, 우리 천하 성역은 비록 수복되었지만 다른 성역은 날이 갈수록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대장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장로님, 혹시 다른 성역의 상황을 알아보셨나요?”

석목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천정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다른 성역에 연락을 하여 도움을 받아야만 해서 석목은 다른 성역이 처한 상황이 매우 궁금했다.

대전에 모인 다른 장로들도 전부 놀란 얼굴로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보내 우리 천하 성역 근처에 있던 몇몇 행성들을 알아보라고 했는데 대부분은 이미 천정이 점령했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성역에 있던 영석들도 대부분 채굴해갔다고 합니다.”

대장로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한 일이긴 했으니 아마 다른 성역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건 물 건너간 셈이었다.

“다른 성역이 어떻든 우리 천하 성역은 경계를 강화해야합니다. 천정이 잠시 침공하려는 기미를 보이지는 않지만 너무 방심해서는 안 되겠죠!”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사람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석목이 말했다.

대장로와 다른 장로들은 전부 인사를 올리고는 물러났다.

석목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손가락으로 의자를 튕기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천하 성역은 잠시 안전해졌지만 다른 성역들은 몰락해버려 절대 안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천정은 한숨을 돌리고 나면 아마 다시 침공해올 터였다.

그리고 고명 선장이 제시한 협상은 석목이 따로 생각해 둔 바가 있어 군심이 흔들리는 일을 막고자 당분간 대장로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다.

협상은 연나와 속승이 오면 함께 논의하여 결정을 내리기로 결심했다.

석목은 생각을 정리한 후에 대전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는 곧바로 자신이 머무는 거처로 돌아갔다.

“석두! 날 버리고 어디에 놀러 간 거야!”

이제 막 거처에 도착했을 때, 채색 그림자가 날아와 채아가 소리를 치며 날개로 석목을 때렸다.

“됐어, 돌아왔잖아. 그러니까 왜 놀러 갔어?”

채아를 보자 석목은 마음이 따뜻해져 그는 채아를 어깨에 올려놓았다.

채아는 겉으로만 툴툴댈 뿐, 더는 떠들썩하게 굴지 않았다.

석목은 이제 신경 후기라 비록 기운을 풍기지 않았지만 흘러나오는 기세만으로도 채아를 두렵게 만들었다.

“실력이 또 늘었어? 신경 초기 정상이군. 대단해.”

석목은 채아를 훑어보다가 말했다.

“흥! 나도 놀지만은 않았다고!”

채아가 고개를 치켜들고는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붉은 불 속성 영수 구슬 두 개를 꺼냈는데 그것들은 오행마굴에서 불 속성 영수 두 마리를 격살하며 얻은 것들이었다.

“열심히 수련했으니까 이건 포상이야.”

석목은 영수 구슬을 채아에게 던져주었다.

“영수 구슬!”

채아가 좋아하며 구슬을 물었다.

“이제 조금 더 열심히 수련해야 해. 앞으로 천정과 대전을 치르게 될 거야. 네 실력은 아주 뛰어나지만 아직 부족해. 신경 중기에 들어서야만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거야.”

석목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채아는 석목이 심각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하려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쁜 것 같은데 방해하지 않을게. 나가게 되면 꼭 불러.”

채아가 영수 구슬을 잡고는 밖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채아가 나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비밀 석실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연나와 속승은 며칠 더 지나야 올 터였으니 그동안 석목은 수련 경지를 다져야만 했다.

석목은 비록 성공적으로 신경 후기에 올랐지만 경지는 아직 불안했다.

석목의 몸에서 다양한 색이 번지더니 빛이 그를 드리웠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 눈 깜짝할 사이 한 달이 지났다.

비밀 석실 속에서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순간,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두 갈래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석목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 달 동안 수련을 거쳐 석목은 경지를 철저히 안정시켰다. 덕분에 이제 석목은 완벽하게 신경 후기의 신통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석목이 손가락을 튕기자 하얀빛이 날아나가더니 천지의 영기가 들끓기 시작하여 하얀빛에 붙었다.

훅!

허공이 흔들리며 긴 균열이 찢어졌다.

신경 후기에 진입한 후로 석목은 천지 영기를 조종하는 능력이 크게 늘어났다. 덕분에 석목은 이제 진기를 얼마 소모하지 않고도 예전보다 훨씬 쉽게 영기를 다룰 수 있었다.

석목은 눈앞에 갈라진 균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미소를 거두었다. 그러자 석목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순간, 석목이 공간 균열 속으로 날아갔다.

거의 동시에 연합 총부와 수 만 리 정도 떨어진 무암성의 황야 위 허공에서 빛이 반짝이며 공간 균열이 나타나 석목이 균열을 비집고 날아 나왔다.

석목은 주변을 두어 번 살펴보다가 환하게 웃었다.

신경 후기에 진입한 후로 석목은 어렴풋이 공간의 힘을 다스릴 수 있었다.

한참 동안 생각에 빠져있던 석목이 갑자기 한 손으로 법결을 짚어 손가락으로 봉우리를 가리켰다.

윙, 윙!

산봉우리 위쪽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며 눈에 보이는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용돌이가 봉우리를 짓눌렀다.

쾅!

산봉우리가 부서지면서 수많은 돌들이 부서져 내려 사방팔방으로 튀는 걸 보니 산봉우리가 종잇장처럼 가벼워 보였다.

석목은 공간의 힘을 아직 잘 다스릴 수 없지만 일부나마 힘을 조종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공격은 같은 경지에 오른 신경 후기 강자들에게는 큰 쓸모가 없었다.

“이렇게 빨리 신경 후기에 진입했다니. 공간의 힘도 사용할 수 있군.”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영수 주머니에서 파란빛이 반짝이더니 몇 뼘 정도 되는 파란 괴룡이 날아 나왔다.

석목이 멈칫하며 파란 괴룡을 바라보았다.

파란 괴룡은 교룡과 외모가 비슷했는데 파란 비늘이 몸을 덮고 있었고, 짧은 네 다리가 달려 있었다. 또한 머리에는 반달 모양 은색 뿔이 세 개 자라나 있었는데 뿔에서 찬란한 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뿐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파란 괴룡은 몸이 퉁퉁 부어있었다. 특히 배가 다른 곳보다 몇 배나 불어나 짧은 다리가 더욱 짧아 보였다.

“수령자, 이렇게 빨리 알을 부화시킨 건가? 그런데 몸통은 어찌된 일이야?”

파란 괴룡을 본 석목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흥! 뭐가 그리 웃겨? 누에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나? 나는 이제 막 부화한 상태라 아직 못생기긴 했지만 이제 완벽히 변신을 할 거야. 그렇게 상고의 기이한 짐승 한 마리가 되면 곧 엄청난 강자가 될 거라고.”

수령자가 투덜거렸다.

“그래, 그래. 안 웃을게.”

석목은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손을 흔들었다.

수령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석목은 수령자를 훑어보고는 눈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이제 막 부화한 수령자는 천위 경지 실력을 갖췄다. 그리고 막강한 한기를 뿜어내는 걸 보니 역시 태곳적의 영수 일종이었다.

수령자는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

석목은 수령자의 표정 변화를 읽어내고는 물었다.

“그동안 계속 비술을 시전해 바깥 상황을 조금 듣긴 했어. 제준이 협상을 제안했던데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

수령자가 망설이는 듯하다가 물었다.

“제준이 날 보자고 하는 건 어떤 꿍꿍이가 있겠지.”

석목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렇다면 제준과 협상을 하지 않을 예정이야?”

수령자가 물었다.

“왜? 내가 제준과 화합하기라도 바라는 거야?”

석목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제준의 막강한 힘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남궁경 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제준의 실력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 비록 네가 이미 신경 후기에 올랐고, 또 구전현공을 대성했지만 제준과 맞붙는다면 승산은 없어. 그리고 연나와 속승과 힘을 합친다고 해도 제준에겐 상대가 되지 못할 거야.”

수령자가 침묵하다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반대로, 네가 만약 화해를 받아들인다면 네가 갖춘 세력으로 요구를 할 수는 있겠지. 예를 들면 함께 현계지문으로 들어간다는 제안 같은 걸 제준이 거절하지는 않을 거야.”

수령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결국은 네가 상계에 가고 싶은 거잖아?”

여기까지 들은 석목은 오히려 웃기 시작했다.

“그게…… 물론 나는 가고 싶지. 전해들은 말에 따르면 상계에 올라가야만 진정한 영생불사에 이를 수 있다고 했으니.”

수령자가 말했다.

석목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천하의 창생을 지키는 걸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생령 수천수만을 대가로 내 사사로운 욕구를 채우는 일이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

“그래, 그럼 천정에 얽힌 일은 네가 알아서 해. 나는 계속 수련이나 해야지.”

수령자가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영수 주머니로 들어갔다.

석목은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고민에 빠졌다.

이때, 석목은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더니 허공에 틈을 만들어 그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 * *

미천 연합의 총부 근처, 허공에서 빛을 반짝이며 석목이 나타났다.

석목이 하늘로 날아올라가 성역 위에 나타났다.

수많은 연합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고, 신경 강자들과 대장로, 그리고 육규종도 이곳에 있었다.

“맹주님!”

사람들이 석목에게 인사를 올렸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날아갔다.

먼 곳에서 검은 전함들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날아왔는데 족히 사 오십 척은 되는 것 같았다.

“누구지? 천정 놈들인가? 왜 갑자기 나타났지?”

육규종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진을 치고 기다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천정 놈들이 아닙니다. 흑마 성역의 맹우들이죠!”

석목이 육규종을 말리며 말했다.

“맹우요?”

다들 놀란 얼굴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괜찮습니다. 제가 연락했죠. 이곳에서 기다리세요.”

석목이 말을 하며 앞으로 날아갔다.

대장로와 육규종을 비롯한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며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다.

다가오고 있는 전함들은 미천 연합만큼은 아니었지만 매우 큰 전력이었다.

검은 전함 위에서 은색 옷을 입은 연나가 차분하게 서 있었다.

연나의 옆에는 열한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서 있었는데 하얀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 어여쁜 모습으로 차가운 표정이 어린 게 연나와 매우 닮은 모습이었다.

한 갈래 빛이 먼 곳에서 날아오더니 석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나, 왔구나.”

석목이 말했다.

“흑마 성역의 모든 병력을 이끌고 왔어. 이제 제준과 끝을 봐야지.”

연나가 고개를 살짝 들고는 주변에 있는 전함을 가리키며 가볍고도 매우 단단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가 힘을 합치고, 또 몇몇 세력이 더해진다면 제준이 꾸미는 음모는 물거품이 될 거야.”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다시 시선을 연나의 옆에 서 있는 소녀에게로 던졌다.

“이분은 누구야?”

석목이 물었다.

“새로 들인 제자야.”

연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석목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연나는 이미 천정과 목숨을 걸고 싸울 준비를 마쳐 옥석을 구분할 결심을 세워 후계자마저 정해놓은 것이었다.

하얀 옷을 입은 소녀는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얼음판 위에 깔린 서리처럼 차가웠다.

“제자가 너와 매우 닮았군. 찬바람이 부는 것 같아.”

석목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내 제자니 당연히 나와 닮았지.”

연나는 석목을 향해 눈을 희번덕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머리를 긁적이며 하얀 소녀를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음! 실력이 또 늘었어. 신경 후기에 올랐다니. 이렇게 빠를 수가!”

연나는 석목을 훑어보고는 놀라면서 좋아하며 말했다.

“좀 길어. 나중에 자세하게 알려줄게.”

석목이 대답했다.

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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