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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843화 (843/916)

843화. 달가워하지 않다

“흥! 네가 한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이 일은 분명 감춰진 비밀일 텐데, 네가 어떻게 알게 됐지?”

금소채가 싸늘하게 물었다.

풍리가 망설이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을 못하겠나? 그렇다면 전부 거짓이겠군!”

금소채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서문설은 눈에 의심이 가득했다.

“저는 이제 곧 천정을 떠날 테니 말씀해 드리지요. 제가 쉽게 천정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제준과 인연이 있던 선배님의 가르침 덕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일부러 들어왔죠. 이 모든 일은 그분이 제게 말씀해주신 내용입니다. 믿을지 말지는 당신들에게 달린 몫이죠.”

풍리가 고개를 숙이고 한참 동안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서문설이 깜짝 놀라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가 이 사실을 다른 천정 사람들에게 알려줄 거란 걱정은 안 하나?”

금소채가 물었다.

풍리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제 곧 떠납니다. 말하고 싶으면 말하세요. 천정이 그렇게 쉽게 저를 잡지 못할 테니.”

“너……”

금소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서문 선장님, 저와 함께 떠나시지요. 제준은 용의주도한 사람인데다 의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놈이 하는 말을 절대 쉽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이곳에 남겨지면 언젠가는 그놈에게 버림을 받을 거예요. 제게 이곳을 떠날 방법이 있습니다.”

풍리가 말했다.

금소채는 그 말을 듣고는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서문설을 바라보았다.

서문설은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풍 공자님이 품으신 좋은 뜻은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하지만 함께 나가지는 않겠어요. 제 일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서문설이 하는 말을 들은 풍리는 무엇인가를 더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서문설이 갑자기 결계를 뚫고 나가서는 한려궁으로 날아갔다.

금소채도 서문설을 따라갔고, 이곳에는 풍리 혼자만 남았다.

풍리는 얼굴에 극도로 실망하는 기색이 어렸다. 그리고 깊은숨을 내뱉고는 멀어져가는 서문설을 한 번 쳐다본 후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법결을 짚어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 *

한려궁으로 돌아간 서문설은 곧장 작은 정자에 앉아 조용히 먼 산만 바라보았다.

금소채가 다가오려다 서문설이 짓는 표정을 보고는 다가가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 하루 밤낮이 지났다.

금소채는 계속해서 정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조금 지루했는지 하품이 절로 나왔다.

이때, 조각상처럼 앉아있던 서문설이 일어서서는 깊은숨을 내뱉고는 정자에서 일어섰다.

“설아, 생각이 전부 정리되었어?”

금소채가 앞으로 다가갔다.

“미안해, 너무 오래 기다렸지?”

서문설은 얼굴이 많이 차분해졌다.

“미안할 거 없어.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금소채가 물었다.

서문설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풍리가 한 말을 듣고도 계속 천정에 남을 건 아니지?”

금소채가 물었다.

“그동안 모든 걸 포기하고 천도(天道)만을 걸으며 제준을 주인으로 모셨는데, 손에서 놀아나는 한낱 도구가 될 수는 없지. 제준을 위해 목숨을 걸 이유가 없는 것 같아.”

서문설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천정을 떠나자는 뜻이지?”

금소채가 물었다.

“그래.”

서문설이 대답했다.

“허나 천정은 석목의 연합 때문에 이미 네 천문을 엄하게 수비하고 있어. 우리가 떠나는 건 쉽지 않을 거야. 이럴 줄 알았더라면 풍리와 함께 가는 건데. 그 녀석은 천정에서 나갈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던데.”

금소채가 말했다.

“걱정 마. 천정에 들어올 때, 나도 뒷길은 남겨두었어. 내가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아무도 말리지 못할 거야.”

서문설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

금소채는 깊은숨을 내뱉었다.

“따라와.”

서문설이 말을 하며 한려궁에서 걸어 나갔다.

반나절 뒤에 한려궁에서는 천정의 열한 번째 선장인 서문설이 폐관 수련을 한다는 소식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궁전 안에 금제가 드리워져 한려궁을 꽁꽁 막아버렸다.

* * *

한려궁 지하에 깊은 곳에 자리한 비밀 석실, 금소채와 서문설이 비밀 석실 속에 서 있었다.

바닥에 커다란 전송진법이 하나 있었는데 수많은 무늬가 얽히고설켜 매우 복잡해 보였다.

“전송진법? 이 진법은 어디로 가?”

금소채가 놀란 눈으로 진법을 바라보았다.

“천하 성역. 천하 성역에서 전쟁을 치를 때 그냥 있지는 않았지. 이미 전송진법을 만들어두었어.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서문설이 말했다.

“천하 성역! 거긴 너무 멀어. 성역을 넘나들려면 공간의 힘이 엄청나게 필요할 거야!”

금소채가 놀라며 말했다.

“걱정 마, 이미 다 준비해 두었으니.”

서문설이 미소를 지으며 사람 머리만한 수정인 성석을 꺼내 들었다.

금소채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가자.”

서문설이 진법 안으로 들어가며 법결을 날렸다.

윙, 윙!

막대한 영력 파동이 진법에서 흘러나오더니 찬란한 빛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다행히 비밀 석실은 지하의 깊은 곳에 있는데다가 한려궁에 금제를 펼쳤기 때문에 간신히 영력 파동이 새어나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법이 흘려보낸 힘은 너무나 커서 한려궁에 드리운 금제가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큰일이야! 파동이 너무 세. 밖에서 분명 알게 될 거야.”

금소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서문설은 마치 듣지 못하는 듯이 주문을 외우며 법결을 날렸다.

전송진법에서 눈이 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허공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밀 석실은 벽이 쩍쩍 갈라져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서문설이 낮게 소리를 치며 손끝으로 성석에 빛을 날렸다.

쩍!

성석은 수많은 균열이 그어지더니 철저히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방대한 공간의 힘으로 변하여 전송진법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윙!

전송진법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자 진법 속에 서 있던 서문설과 금소채는 한참 동안 흔들리다가 이내 사라져버렸다.

금소채의 눈앞에서 수많은 빛이 번쩍이더니 방대한 힘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한참 후에 금소채는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고, 눈앞이 환해졌다.

“후……”

금소채는 전송이 되며 받은 힘 때문에 고통스러움이 몰려와 몸을 당겨 깊은숨을 내뱉었다.

두 사람은 지하에 자리한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한 골짜기에 떨어졌다.

어디로 전송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곳은 천지의 영기는 매우 희박했다. 물론 선역에는 이런 곳이 있을 리 없으므로 당장 선역은 아닌 것 같았다.

“괜찮아?”

서문설는 얼굴이 살짝 하얗게 변하였다.

“괜찮아, 조금만 쉬면 될 것 같아!”

금소채는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어찌 됐든 두 사람은 천정에서 도망쳐 나왔고, 천정에서 겪은 모든 일들이 마치 오래전에 겪은 일들 같았다.

금소채는 공법을 시전하여 한참 후에야 회복이 되었다.

“가자!”

서문설이 앞으로 날아갔다.

서문설의 얼굴에선 희열을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매우 어두웠다.

금소채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이 빠르게 골짜기로 다가가자 서문설은 망설이지 않고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설아,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금소채가 물었다.

서문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격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 나보다 더!”

금소채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둘은 황량한 행성 위에서 한참 동안 날았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전부 막막한 사막뿐이었으며 초원이 간간이 보이긴 했으나 요수만 조금 살고 있을 뿐이었다.

둘은 한 시진이 넘게 날아서야 기이한 검은 산봉우리 근처에 도착했다.

산봉우리에서 기이한 기운이 흘렀다. 그리고 신식을 밀어내는 힘이 매우 강하여 산봉우리에 신식이 닿는 순간, 신식은 스스로 봉우리를 에돌아갔다.

“흑묵석(黑墨石)이군! 이렇게 큰 흑묵석 광맥이라니!”

금소채가 놀라며 감탄했다.

흑묵석은 매우 기이한 돌이라 신식을 피할 수 있어 아주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며 주로 비밀 석실을 만들 때 쓰였다.

서문설은 검은 산봉우리 앞에 멈춰 서서는 복잡한 표정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문설은 다시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산봉우리 밑으로 날아갔다.

금소채는 서문설이 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선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문설과 금소채는 앞뒤로 나란히 산봉우리의 매끈한 암벽 근처로 다가왔다.

서문설은 암벽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다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흔들어 암벽에 하얀빛을 날렸다.

암벽에서 ‘쩍, 쩍’ 소리가 들리더니 동굴이 하나 나타났다.

서문설은 곧장 동굴 속으로 날아갔다.

금소채는 멈칫하다가 신식으로 동굴을 훑어보았다.

흑묵석이라 그런지 신식은 동굴로 들어간 순간 바로 튕겨져 나왔다. 그러자 금소채는 고개를 흔들며 신식을 날리길 포기하고는 서문설을 따라 들어갔다.

동굴은 길고 긴 통로라 둘은 한참 동안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동굴의 끝에 도착했다.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난 건 높이가 일고여덟 장 되는 검은 문이었고, 문 위로 촘촘하고 현묘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무늬에서는 옅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서문설이 중얼거리며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검은 문에서 빛이 번쩍거리더니 활짝 열렸다.

문 안에는 또 다른 석실이 있었다. 그런데 석실은 텅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중간에 검은 창살이 놓여있는 감옥이었다.

검은 창살에는 금제 같은 부문들이 줄줄이 그어져 있었다.

감옥에는 금색 옷을 입은 소녀가 갇혀있었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고 초췌했다. 그러나 여전히 어여쁜 미모는 감출 수 없었다.

만약 석목이 이곳에 있었더라면 놀라서 소스라쳤을 텐데 미모가 돋보이는 소녀는 바로 종수였다.

종수는 서문설과 금소채를 보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검은 창살 앞으로 다가가 큰소리로 무엇인가 말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검은 창살에서 물결이 일렁이는 게 어떠한 금제가 드리워 종수가 내는 목소리를 막았다.

“음! 종수잖아? 왜 이곳에 있지? 설아, 네가 이 여자를 여기에 가둔 거야?”

금소채는 금색 옷을 입은 소녀를 알아보고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서문설은 금소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앞으로 걸어가 법결을 날렸다.

“종수는 석목의 여자잖아? 설아, 왜 이 여자를 이곳에 가둔 거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 알았다. 네가 다시 석목의 옆으로 가려는 거지? 그래서 네게 위협이 될 이 여자를 죽이려는 거야? 하하, 지독한 술수야. 그런데 내 입맛에 아주 잘 맞아.”

금소채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서문설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곤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감옥 주변에 일던 물결이 사라지면서 금제도 사라져버렸다.

“서문설! 독한 년! 왜 여기에 날 가둔 거야!”

금제가 사라지자 분노에 찬 종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독한 년이라. 설아, 넌 대체 종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여자가 왜 이렇게 널 미워해?”

금소채는 눈에 빛을 반짝이며 흥미진진하게 말했다.

“별 거 없어. 천봉 일족의 여자 하나를 죽였을 뿐이야.”

서문설이 담담하게 말했다.

“현기 언니를 죽였으니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내가 네 상대는 되지 못하겠지만 석 오라버니라면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종수는 두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러자 서문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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