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45화 (845/916)

845화. 연체동생(連體同生)

“강도성에 가까워졌습니다. 전송 입구가 어디에 있을까요?”

안화가 강도성에 드리운 둥그런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날, 선장이 확실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강도성에는 천정이 주둔하고 있을 겁니다. 때가 되면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겠지요.”

석목이 말했다.

“천정은 어떤 곳일까? 석두, 제준 그놈이 잔칫상을 차려 놓고 우리를 접대하려는 건 아닐까?”

채아가 갑자기 흥미로운 듯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천정의 맛난 먹거리들을 상상했다.

“먹보야, 아직도 먹을 생각만 하다니. 천정이 잔칫상을 차렸다고 해도 그건 홍문연(*鴻門宴:초청객을 모해할 목적으로 차린 잔치)일 거야. 그래도 먹기만 할 거야?”

석목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 됐든 결국은 전쟁이잖아? 보물과 영물들로 배를 채운 후에 싸우면 되지.”

채아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석목은 어이가 없어서 웃기만 했다. 그러자 전함 위를 뒤덮은 분위기가 조금 가벼워졌다.

석목과 채아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석목 일행이 탄 전함은 운석을 뚫고 강도성에 도착했다.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천정이 이곳에 대군을 주둔시켰다면 아마 이미 알아차렸겠지요? 왜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까?”

서유금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거짓말인가? 우리가 먼저 전함 한 척을 끌고 앞으로 가볼까요?”

안화가 말했다.

“급할 건 없지. 속승 선배님의 상황을 확인한 후에 다시 생각해보자.”

석목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하얀 반지에 빛을 반짝이자 손바닥에서 작은 진법이 하나 나타났다.

석목은 진법 속에 신식을 흘려보냈다.

잠시 후에 석목이 손바닥을 거두어들이고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육규종이 다급하게 물었다.

“세 곳에 모인 대군은 이미 전송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낼 신호를 기다리고 있죠.”

석목이 말했다.

그리고 석목은 강도성의 두터운 회색 성운을 바라보며 두 눈에 빛을 반짝였다.

“석 맹주님, 무슨 일입니까? 뭐가 잘못되었나요?”

육규종은 석목이 짓는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석목은 말없이 어깨에 앉아있는 채아를 두드리며 물었다.

“네 영목신통으로 한 번 봐봐. 이 강도성에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그래.”

채아가 대답을 하고는 두 눈에 금빛을 번쩍였다.

채아의 시선이 강도성의 구름 속으로 떨어지자 채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금빛을 거두어들였다.

“어때?”

석목이 물었다.

“회색 성운 아래에서 어두운 빛이 흐르고 있어. 그리고 광막이 한 층 있는데 결계인 것 같아. 아마 무암성에 둘러진 결계랑 비슷할 거야. 그런데……”

채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망설였다.

“그런데?”

육규종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런데 소용돌이 한 곳이 다른 곳과 달라. 거기에 통로가 하나 있는 것 같아. 거기엔 짙은 하얀 영력이 보이는데 무엇인지는 모르겠어.”

채아가 답했다.

“남천문으로 향하는 전송 입구인 것 같군.”

석목이 아래턱을 매만지며 추측했다.

“전송진법이라면 행성 속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적안은 이해가 되지 않는지 되물었다.

“꼭 그런 건 아니죠. 이 통로들은 아주 깊숙이 숨어있어요. 그러니 채아의 특별한 영목신통이 아니라면 제 영목신통으로도 아무런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했을 겁니다. 게다가 전송 입구가 이곳에 있다면 좋은 게 하나 더 있지요. 아마 천정의 전함이 아주 용이하게 출입할 수 있었을 겁니다.”

석목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육규종이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 강도성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회색 성운이 흔들리면서 소용돌이 한 곳에 커다란 나선 모양 입구가 나타났다. 이어서 커다란 은색 전함 수십 척이 수많은 병사들을 싣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왔다.”

석목이 두 눈을 반짝이며 전함을 이끌고 맞이했다.

두 전함 부대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삼십 리를 사이에 두고는 멈췄다.

천정의 전함 수십 척이 찬란한 빛을 뿜으며 한 줄로 벌어지자 마치 줄줄이 이어진 산맥 같았다. 그리고 전함 위에는 다양한 갑옷을 입은 천정의 장수들이 줄을 지어있었는데 그 숫자가 미천 연합의 장로들과 비슷해 보였다.

천정의 장수들 뒤로 누런 피풍의를 두른 거인 수십 명이 허리춤에 북을 달고는 기세등등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육규종을 비롯한 이들은 안색이 심각해졌다.

미천 연합은 조금 의아하게 여겼으나 고작 전송 입구인데도 이렇게 많은 병사를 둔 걸 보니 천정의 실력은 매우 막강한 게 틀림없었다.

연합의 전함에 있던 종족들은 천정의 기세등등한 대군을 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내비쳤다.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상대는 허풍을 부리는 겁니다.”

석목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종족들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진열을 쭉 펼쳤다. 그 순간, 미천 연합의 기세가 하늘을 찔러 천정에 비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이때, 석목이 천정의 대군을 훑어보다가 한 전함에서 빛이 밝아지며 빠른 속도로 아군에게 향하는 걸 보았다.

“가볼게.”

석목은 어깨에 있는 채아를 방진의 어깨로 건네며 말했다.

“저희도 맹주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육규종을 비롯한 사람들이 석목을 따라가려고 했다.

“괜찮아요. 여기서 기다리며 제 명령을 따르시죠.”

석목이 말했다.

말을 마친 석목은 전함에서 날아 나와 앞으로 다가오는 빛을 맞이했다.

가까이 다가서야 석목은 빛 속에 든 사람을 확인한 후에 눈살을 찌푸렸다.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매우 괴상했는데 키는 훤칠했지만 눈썹은 가늘고 길었고, 온몸은 하얗다 못해 퍼런색을 띠었다. 심지어 그는 흩날리는 머리카락마저 하얀색이었다.

게다가 풍기는 기운도 매우 막강해 신경 중기 정상보다 강한 듯하니 천정의 십이 선장 중에 한 명인 것처럼 보였다.

“후후, 그 유명한 백원의 후예로군. 별 거 아닌 듯이 보이는데? 그렇지?”

그는 하얀 피부에 박힌 푸른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입을 열었다.

두 대군 사이에 벌어진 거리가 멀어 석목은 상대방의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영력 파동도 느껴지지 않아 석목은 순간은 의아했다. 혹시 나에게 말하는 건가?

이때, 상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등 뒤를 석목에게 비쳤다.

상대의 뒷모습을 본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동공이 줄어들었다.

등 뒤에는 또 한 명이 있었는데 그의 외모는 피부가 흰 앞선 사람과 매우 흡사했다. 다만 그는 온몸이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덮여있었고, 동공마저 매우 까매 흰자위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원(李元), 내 말이 맞아. 저놈은 별 볼 일 없는 놈이야.”

피부가 검은 사내가 말했다. 또한 검은 사내는 목소리가 매우 거친 게 피부가 흰 사내의 목소리와 전혀 달랐다.

석목은 앞에 있는 사람의 기운이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기운을 풍겨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어째서 피부가 두 가지 색으로 나뉠 수 있는지 석목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너희는 누구냐?”

석목이 싸늘하게 물었다.

“이원, 저놈이 우리에게 누구냐고 묻잖아?”

피부가 검은 사내가 말했다.

우리? 석목이 놀라고 있는 사이에 앞에 선 사람이 다시 하얀 얼굴을 내비쳤다.

이제야 석목은 눈앞에 선 사람이 쌍생인 걸 제대로 보았다.

쌍생은 동생지인(同生之人)이라고 부르는데 타고 나길 몸이 붙어 태어난 기이한 쌍둥이들을 일컬었다.

눈앞에 선 이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는 제준 어르신의 여섯 번째 선장 이원이다.”

이원이라는 피부가 흰 사내가 말했다.

“여섯 번째 선장? 대단하군. 천 년 전에 이미 죽었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가짜가 나타난 건가?”

석목이 비웃듯이 말했다.

“우리 천정의 선장들이 어떤 배분인지까지 네게 알려야 하나?”

이원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원 네 이놈, 너무 뻔뻔스러운데? 나, 이보(李寶)가 여섯 번째 선장이지. 너는 내 덕에 일곱 번째 자리를 차지한 거면서 이렇게 큰소리를 치다니.”

피부가 검은 사내가 거침없이 말했다.

“내가 형이니 당연히 여섯 번째지. 장유유서도 모르냐?”

피부가 흰 이원이 다시 나타나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흥, 태어날 때 네가 우연히 내 위에 있었을 뿐이지. 어디서 장유유서를 논해? 내 실력이 너보다 뛰어나니 내가 앞이지!”

이원이 고개를 돌리자 다시 이보가 나타났다.

석목은 어리둥절했다.

“됐고, 여섯 번째든 일곱 번째든 상관없어. ‘말을 잘 듣는 개는 길을 막지 않는다.’라고 했지. 너희들 주인이 화합을 하자고 나를 초대했으니 빨리 길을 비키고 남천문으로 안내하거라.”

“저놈이 우리를 개라고 말하다니, 죽여!”

피부가 검은 이보가 말했다.

피부가 흰 이원도 동시에 소리쳤다.

“초대를 받고 왔는데, 주인을 만나기도 전에 너희 두 놈이 앞길을 막아섰으니 개가 아니면 뭐냐?”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피부가 흰 이원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존상이 화합을 하고자 너 한 명만 오라고 했건만 이렇게 대군을 이끌고 오다니. 무슨 꿍꿍이가 있느냐? 아니면 담이 작은 건가?”

피부가 검은 이보가 비웃듯이 말했다.

“제준이 스스로 말했다. 아무나 동행해도 좋다고. 그런데 오늘 후회하는 걸 보니 식언을 하는 건가? 소인배답게 행동거지가 아주 염치없군.”

석목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우리 존상을 능멸하다니. 이원, 순위를 따지는 건 이제 됐어. 힘을 합쳐 저놈을 죽여 버리자.”

이보가 흉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이원이 큰소리로 응답했다.

이원이 흰 부채를 꺼내 들자 부채에서 빛이 반짝이는 걸 보니 비범한 보물 같았다.

이원이 부채를 힘껏 휘두르자 하얀 화염이 뿜어져 나와 길이가 백 장이나 되는 흰 교룡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교룡이 허공에서 몸을 꿈틀거리며 석목을 향해 공격했다.

흰 교룡은 몸에서 투명한 빛을 뿜어댔는데 그 빛은 화염이 아니었으나 뜨거운 기운이 풍겨져 나왔고, 기세가 막강한데다가 속도도 아주 빨라서 눈 깜빡할 사이에 석목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러자 석목이 손바닥을 앞으로 힘껏 밀었다. 이윽고 파란빛이 석목의 거대한 손바닥 앞에 나타나 하얀 교룡의 목을 덥석 움켜잡았다.

칙, 칙, 칙

수증기가 증발하는 소리가 지천에 울리며 흰 안개가 피어올라 별하늘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미천 연합의 전함 위에 서 있던 조주명이 하얀 안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상대의 대군이 전혀 움직이지 않으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지켜봅시다.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대규모 전투로 이어져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될 수 있어요.”

서유금이 대답했다.

“서 족장님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석 맹주님도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니 가만히 기다리는 편이 좋을 듯하군요.”

육규종이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날 믿어. 저 괴상한 놈들은 절대 석두에게 상대가 될 수 없어.”

채아가 아무런 걱정이 없는 표정으로 방진의 어깨에 앉았다.

채아가 한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흰 안개로 드리운 범위 안에서 격렬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쾅!’

흰색 안개가 사방으로 꿈틀거리자 그 속에서 석목이 튕겨져 날아왔다.

이어서 하얀 빛화살 수백 갈래가 안개를 뚫고는 석목에게로 향했다.

석목이 노란 돌방패를 꺼내 들더니 얇은 빛화살을 전부 막아냈다.

‘펑, 펑, 펑.’

돌방패에 흰색 화살이 닿자 폭발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막강한 원기 파동이 일어나자 석목은 계속 뒤로 밀려났다.

순간 하얀 화살 뒤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검은 화살이 나타났다.

검은 화살은 하얀 화살과 부딪치는 순간, 하나로 합쳐져 흑백 화살로 바뀌더니 석목의 방패를 뚫어버리려고 했다.

‘쿵!’

돌방패가 순식간에 터져버려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렇게 석목은 막강한 일격을 맞아 수십 장이나 날아갔다.

쌍둥이가 각각 신경 중기 실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둘이 힘을 합치니 신경 후기의 위력을 내서 멈춰선 석목은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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