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6화. 쌍살(雙殺)
“하하하! 봤지 이원, 여섯 번째 선장인 내가 없으면 네 공격은 저놈의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어.”
이보가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꺼져! 내 지양의 힘이 없었더라면 네 순음의 힘만으로는 절대 저놈을 다치게 만들 수 없었어.”
이원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석목은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놈의 실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냐?”
이보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조금 센 거 같기는 한데, 우리보다는 아니지.”
이원이 말을 이어받았다.
“그 말은 인정하지.”
이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 석목은 아직 천정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많은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 또한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너희들 말싸움이나 구경할 시간은 없으니 죽어라!”
석목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올리자 회색빛이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나와 번개처럼 번쩍였다.
이보의 검은 머리통이 붉은빛으로 변하더니 마치 수박처럼 터져버렸다.
“말도 안 돼! 이렇게 공격이 빠르다고?”
이보의 머리가 없는 몸이 방향을 틀더니 믿기지 않는 듯이 소리쳤다.
“어리석군, 내 영역에 들어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나?”
석목이 비웃듯이 말했다.
그제야 이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저 멀리 별하늘에 잘 보이지 않는 광막이 한 층 보였다. 놀랍게도 거기가 석목이 드리운 영역의 경계인 것 같았다.
영역의 범위가 이렇게 넓었다니.
이원은 깜짝 놀라고는 다시 석목을 훑어보았다.
“이제 내 차례야. 네 형제를 만나러 가야지?”
석목이 다시 싸늘하게 말했다.
석목이 손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손가락에서 빛이 반짝였다.
다섯 갈래 회색빛이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와 다섯 방향에서 이원을 공격했다.
이원의 하얀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그렇게 이원은 빠르게 물러나며 법결을 짚었다.
이원의 손바닥에서 하얀빛이 번쩍이더니 하얀 부문들이 촘촘하게 새겨진 빛이 나타나 다섯 갈래 회색빛을 막았다.
칙, 칙, 칙!
소리가 울려 퍼지며 회색빛이 창처럼 하얀 광막으로 내리쳤다.
광막이 순식간에 안쪽으로 파이자 회색빛이 이원의 몸 앞으로 바짝 다가와 곧장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 광경을 본 이원은 겁에 질린 표정을 드러냈다.
이때, 이원의 가슴뼈에서 파란 손이 튀어나오더니 하얀 광막을 막았다.
광막은 한참 동안 번쩍이다가 흑백 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광막의 파인 자리가 순식간에 복구가 되면서 다섯 갈래 회색빛을 막았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후후후, 날 죽이려면 아직 더 힘이 필요할 테지.”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져 이원이 돌아서는 순간,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는데 이원의 등 뒤에 이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때, 이보의 부서졌던 머리는 새롭게 자라났으나 얼굴에 붉은 자국이 얼기설기 그어져 있어 매우 흉한 모습이었다.
석목은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지자 눈살을 계속 찌푸렸다.
사람 모양 하얀빛은 이원의 모습과 매우 비슷했는데 이원이 빛을 번쩍이자 빛은 계속 이보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그 모습은 이원의 양 속성 영력을 이보의 몸속으로 계속 불어넣는 것만 같았다.
하얀빛이 흘러들어오자 빛 그림자가 점점 희미해지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에 이보의 머리에 난 상처도 점점 옅어지다가 사라졌다.
마치 죽은 적도 없고, 상처를 입은 적도 없는 모습이었다.
“흥, 내가 아니었더라면 넌 이미 죽었어.”
이원이 고개를 돌려 이보에게 말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했잖아. 내가 널 구한 적이 한두 번이야? 네 그 멍청이 같은 머리통이 몇 번이나 부서졌어? 다 내가 구해줘서 지금까지 살아남았지.”
이보가 내키지 않는 듯이 말했다.
음양상제(陰陽相濟)!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던 석목은 다시 조금 전에 본 광경을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이 쓰는 공법은 음과 양이라 서로 합칠 수도 있고, 서로 보완을 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석목의 오행과 음양이 합쳐진 회색빛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기이한 공법이라 절대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었다.
이때, 이보 등 뒤에 늘어선 전함 수십 척이 굉음을 내며 일제히 몰려왔다.
이보와 이원이 곤경에 빠진 모습을 본 천정의 대군이 도와주려고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놈들이 움직였군요. 우리도 전진합시다.”
안화가 다급하게 말했다.
“예, 작전을 준비하라고 명령을 내립시다.”
육규종이 묵직한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다들 뿔뿔이 흩어져 격전을 치를 준비를 했다.
“급하게 움직이지 마. 석목이 기다리라고 했어.”
이때, 방진의 어깨에 앉아있던 채아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대군들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석목이 내리는 명령을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후후, 둘이서 못당하니 군사들까지 움직이는 건가? 숫자로 승부를 보려는 셈인가?”
석목은 천정의 군함들을 훑어보며 비웃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보는 안색이 굳었다.
또한 이보의 뒤에 있던 이원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뭐하는 짓이야! 어서 돌아가!”
그제야 천정의 전함들은 멈춰 서서는 더는 앞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눈앞에 선 두 사람이 너무 단순해 석목은 조금 놀라웠다.
이때, 이보가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큰일이군.’
석목이 속으로 생각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하하, 늦었어!”
이원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원이 석목의 머리 위에 나타나 하얀 부채를 흔들었다. 그러자 찬란한 화염 칼날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하얀 화염 칼날은 소나기가 내리듯이 쏟아져 별하늘을 조각조각 찢어놓았다. 또한 칼날마다 날카로운 공간 난류를 감고 있었다.
석목이 소리를 치며 위로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커다란 금색 주먹 그림자가 뿜어져 나가 거대한 벽을 이루며 하얀 칼날과 공간 난류를 막았다.
쾅!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하얀 화염 칼날과 금색 주먹 그림자가 서로 부딪치면서 부서져버렸다. 이어서 공간 난류의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맹렬한 기운이 강풍으로 변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석목은 방대한 힘에 짓눌려 자신도 모르게 땅속으로 몇 뼘 들어갔다.
종아리가 차가워져 고개를 숙인 채 바라보니 두 발이 수십 장이나 되는 검은 ‘습지’에 빠져있었다.
석목이 밟고 있는 끈적이는 무언가는 정확히 습지는 아니었는데 단지 습지와 비슷한 무언가일 뿐이었다. 그래서 석목은 몸이 점점 습지 아래로 빠졌다.
잠깐 사이에 석목의 무릎은 완전히 땅에 묻혀버렸다.
더욱더 놀라운 점은 묻혀있는 종아리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아 마치 종아리가 없어진 것만 같았다.
“하하…… 두 다리를 잃은 느낌이 어떤가?”
이보의 거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석목은 그 목소리가 몹시 혐오스러웠다.
석목은 대답도 하지 않고는 법결을 짚었다. 그러더니 파란 수증기가 석목의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잠깐 사이에 검은 습지를 파랗게 덮어버렸다.
습지에는 마치 파란 수막이 내려앉은 것 같았는데 이어서 석목이 법결을 바꾸자 한기 한 줄기가 석목의 몸에서 흘러나와 검은 습지로 스며들었다.
쩍, 쩍, 쩍!
가벼운 소리와 함께 검은 습지가 얼음으로 변하였다.
석목이 주먹에 불을 감고는 힘껏 땅을 내리쳤다.
두 갈래 화염 주먹이 검은 습지로 떨어지자 습지는 부서져버렸다. 이어서 석목이 몸에 반동을 주자 튕겨져 날아가 습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석목이 이제 막 습지에서 벗어났을 때, 부서졌던 습지는 마치 살아 숨 쉬는 듯이 검은 밀물로 변하여 석목에게로 향했다.
석목이 습지를 막으려 할 때, 머리위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지더니 수백 갈래 빛이 별하늘을 찢으며 석목을 내리쳤다.
석목이 눈살을 찌푸리며 두 손을 들어 올리자 손에서 화려한 금빛이 뿜어져 나와 하늘을 내리쳤는데 빛은 다가오는 검은 조수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다.
금빛이 하얀 번개 속을 스쳐 지나가 곧장 가운데를 갈라놓았다.
이어 석목이 벌어진 틈 사이를 뚫고 날아가 이원을 덮쳤다.
동시에 몸에서 핏빛을 번쩍이자 분신이 날아 나와 검은 밀물로 들어갔다.
석목의 분신은 등 뒤에 박쥐 날개를 펄럭이더니 핏빛 번개처럼 번쩍이며 검은 밀물 속으로 향했다.
빛이 몇 번 번쩍이는 사이에 분신은 멀쩡하게 검은 밀물 속에서 날아 나왔고, 검은 조수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저건 뭐야? 핏빛이 막강한 살기를 풍기고 있어. 내 지음흑조(至陰黑潮)를 찢어버리다니?”
이보가 소리를 질렀다.
“네가 실력이 없으니 그러지. 날 봐.”
이원이 돌아서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하얀 부채를 펼치자 부채에서 바람 소리가 나더니 곧장 타오르는 화염으로 변하여 분신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석목의 분신은 단검에 빛을 드리우며 화염을 막아냈다.
쿵!
하얀 화염이 핏빛을 삼켜버리자 불길이 계속 타올라서 단검의 기운이 줄어들어 분신도 뒤로 밀려났다.
“봤지? 여섯 번째 선장인 내가 제일 뛰어나다니까……”
이원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순간, 석목이 이원의 앞으로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훅!
거대한 화염 주먹 그림자가 이원의 얼굴로 거세게 다가왔다.
이원이 깜짝 놀라 돌아서자 이보가 나타났다.
이보는 이원을 욕하며 다급하게 두 손을 들어 올려 동그라미를 그리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커다란 원에서 짙은 안개가 꿈틀거렸지만, 안개는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쿵!
화염 주먹 그림자가 단번에 검은 안개로 질러 들어갔다. 그 순간, 검은 안개는 주먹을 삼켜버렸다.
석목은 흠칫 놀랐다.
석목은 손에서 빛을 반짝이며 다시 공격했다. 하지만 어떤 속성이 담긴 공격을 날리든 전부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려 상대에겐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석목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분신이 핏빛을 드리우더니 이어서 핏빛 단검을 들고는 날개를 펄럭이며 석목의 옆으로 다가갔다.
“오행의 힘을 써먹지 못한다면 핏빛 살기를 보여주지.”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오행의 힘이 근본적으로 음양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모든 공격은 검은 안개로부터 통제를 받게 될 터라 분신의 살기를 사용한다면 의외인 효과를 볼 수 있을 터였다.
분신이 두 눈에 핏빛을 번쩍이자 몸에서 붉은 무늬가 줄줄이 그어졌다. 그리고 분신은 단검으로 이보를 가리키며 앞을 향해 덮쳤다.
분신이 희미해지면서 붉은빛으로 변하더니 잔영을 이끌고는 순식간에 단검으로 검은 안개를 뚫어버렸다.
동시에 석목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퍽!
핏빛 단검의 칼날은 이미 검은 안개 속으로 빠져버렸다.
“하하…… 멍청아, 이렇게 한다고……”
이원이 외치는 허세 가득한 말은 끝을 맺지도 못하고 멈춰버렸다.
펑!
“으아……”
이때, 이원의 등 뒤에서 짧고 경쾌한 비명 소리가 울렸다.
분신이 공격하고 있는 찰나, 석목이 귀신처럼 이보의 등 뒤에 나타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주먹을 휘둘러 이원을 내리쳤다.
퍽!
이보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핏빛 단검이 이원 앞에 드리운 검은 안개를 뚫어버리고는 곧장 왼쪽 가슴을 찔렀다.
이보와 몸이 붙어 있던 이원도 붉은 피를 뿜어내 하얀 얼굴이 붉게 부풀었다.
이보는 왼쪽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고, 살이 밖으로 뒤집혀 흉악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