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51화 (851/916)

851화. 피로 물들다 (2)

그렇게 나타난 자정마우 전사들은 키가 전부 천 장 가까이 되었다. 또한 그들은 사람 몸통에 소머리가 달려있었는데 몸통은 마치 보랏빛 수정으로 이루어진 전투 갑옷을 두르고 있는 것 같았고, 전사들이 들고 있는 무기마저 보랏빛 수정으로 바뀌었다.

전설에 의하면 상고 시기 때, 자정마우 일족에선 각각 다른 시기에 실력이 뛰어난 전사들이 여섯 명 탄생했다고 전해졌다. 그리고 전사들이 죽은 후에 영혼은 흩어지지 않았고, 그들의 영혼이 수정으로 변해 자정마우족들이 혈기를 충분히 모으면 상고 시기의 전사들을 소환하여 종족을 위해 싸우도록 불러낼 수 있다고 전해졌다.

이 거대한 자정마우 전사들은 형태를 이루자마자 무기를 휘두르며 키가 만 장에 이르는 거인들을 덮쳤다.

남사궁의 한편에서 포효가 울려 퍼졌고, 연합의 대군에서도 빛이 밝아졌다. 그러자 거대한 고리 모양 빛이 여러 갈래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이어서 크기가 천 장이나 되는 그림자가 빛 속에서 튀어나왔는데 그건 뿌리가 여러 개 자라난 코뿔소 같은 거대한 짐승이었다.

“저건…… 비천서 일족의 호종마수(護種魔獸)!”

연합의 대군 가운데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비천서 일족은 팔황고족 중에서도 싸움을 잘하는 종족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비천서 일족은 이런 실력이 막강하고도 거대한 마수를 길렀는데 이런 마수들은 보통 일족 밖으로 데리고 나오지 않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연합의 대군은 팔황고족들이 갖춘 대단한 실력을 보고는 전부 사기가 차올라 중소 종족들도 종족에서 내려오는 가장 강한 전법들을 일일이 꺼내 들었다.

그러자 굉음이 울려 퍼졌고, 서유금이 이끄는 가운데 비천서 일족의 여덟 마리 마수가 뿔뿔이 날아 나와 연합의 대군이 만든 통로를 지나서 곧장 천정의 대군을 향해 덮쳐갔다.

머리에 자라난 뾰족한 뿔 여러 개는 마치 날카로운 장극과도 같아 마수들은 통로를 지나는 동안 수많은 천정의 병사들을 찔러버렸다. 이어서 굵직한 네 다리로 천정의 대군을 짓밟더니 키가 만 장에 이르는 거인들과 격전을 펼쳤다.

전장에 선 이들은 전의가 하늘까지 치솟았고, 사상자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아무도 광장 곳곳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찢겨진 시신들 사이에서 여전히 의식이 남아있는 병사들은 희미한 빛에 감겨 땅속으로 스며들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 * *

남사궁.

석목이 번천곤을 들고 허공에서 곤두박질치며 은파를 향해 곤봉을 휘둘렀다.

은파는 살기가 가득 담긴 얼굴을 드러내며 낮은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하얀 비단을 힘껏 당기자 석목의 분신은 뒤로 튕겨져 날아갔고, 동시에 핏빛 장검의 칼날로 석목을 겨누었다.

순간, 핏빛 장검의 겉에서 빛이 터져 나오더니 허공이 피바다가 되었다. 그렇게 일어난 혈무는 액체처럼 끈적였고, 피비린내가 들끓으면서 석목에게로 몰려왔다.

석목이 살기가 몰려오는 걸 느끼자마자 피바다 속에서 피범벅이 된 해골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입을 크게 벌리고는 석목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석목은 심신을 가다듬고는 번천곤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가 다시 앞으로 질러갔다. 그러자 번천곤은 금빛을 반짝이며 순식간에 백 장정도 떨어져 있는 기괴한 핏빛 검을 내리쳤다.

굉음이 울린 뒤 검과 곤봉이 한참 동안 대치하자, 짙고 붉은 기운 파동이 맞닿은 자리에서 폭발하여 사방팔방으로 밀려가면서 흩날리던 피바다를 찢어버렸다.

가까운 곳에서 좌음과 교전 중이던 조주명은 막강한 충격을 받아 몸과 무기가 기울어지더니 좌음의 오른쪽 팔을 스쳐지나 허공을 질러 날아갔다.

좌음도 흑백 빛을 번쩍이면서 간신히 막강한 충격파에 맞서 몸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곧장 검을 휘둘러 조주명의 겨드랑이를 겨누고는 심장을 노려 가슴을 찌르려고 했다.

펑, 펑, 펑!

순간 화염 바퀴가 유유하게 조주명의 등 뒤에서 앞으로 날아와서는 ‘탱!’ 소리를 내며 좌음이 날린 검을 막았다.

조주명과 나란히 싸우던 연합의 장로가 날린 바퀴였다.

그러자 조주명이 곧바로 허공을 가르는 검을 쳐버리고는 붉은빛을 날려 좌음을 공격했다.

퍽!

좌음은 은빛 방패를 꺼내 들었지만 붉은빛이 방패를 뚫어버렸다.

타오르는 화염이 쏟아지려는 순간, 좌음의 흑백 검이 다시 몸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검은 빙글빙글 돌면서 사람만한 흑백 무늬 팔괘 허상을 이루며 좌음을 보호했다.

화염이 팔괘 허상에 부딪치는 순간, 팔괘 허상에서 흑백 빛이 번쩍이더니 화염은 다시 튕겨져 날아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조주명과 연합의 장로들은 다급하게 공격을 시전했다.

좌음은 두 사람이 날린 공격을 막아내긴 했으나 하얀 반쪽 얼굴이 화염 때문에 검게 타버려 모습이 더욱 흉해졌다.

좌음이 조주명과 연합의 장로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순간, 좌음의 얼굴에 광분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펑!

이때, 석목과 은파가 격전을 치르는 곳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석목이 손에 금빛을 두르고는 번천곤을 내리쳤다.

번천곤이 격하게 흔들리자 막강한 힘이 곤봉을 타고 끝에서 폭발했다.

빛은 마치 타오르는 태양이 터져버리듯 찬란하고 눈부셨다.

은파는 눈앞이 희미해지면서 방대한 힘을 받아 뒤로 밀려 날아갔다.

그러자 석목의 분신이 손에 붉은 단검을 들고는 등 뒤에서 은파를 찌르려했다.

그 순간, 은파가 왼쪽 팔에 두른 하얀 비단이 다시 날아 나와 하얀 장검처럼 앞으로 날아갔다.

퍽!

분신의 어깨에 핏빛 화살이 꽂히더니 탄탄한 근육을 뚫어버렸다. 하지만 분신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단검을 들고서 앞을 향해 찔렀다.

은파가 흠칫 놀라며 다급하게 몸을 비틀어 분신이 날린 공격을 피했다.

은파가 몸을 멈춰 세우기도 전에 무서운 기운이 몰려오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들어 검을 막았다.

펑!

은파는 막강한 힘에 밀려 멀리 날아가 대전 안에 솟은 기둥과 부딪치면서 기둥을 부숴버렸다. 그리고 은파는 결계 광막에 강하게 부딪히며 피를 뿜어내 가슴께를 흠뻑 적셨다.

이때, 석목은 번천곤을 들고 큰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갔고 은파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날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석목은 등 뒤가 오싹해지는 걸 느끼고는 재빠르게 돌아선 후에 주먹을 휘둘렀다.

금색 주먹 그림자가 앞으로 날아나가 금색 구슬 열 알과 부딪치면서 한참 동안 대치를 이루었다.

육규종과 싸우고 있던 백수는 안색이 굳어버렸다.

조금 전에 백수는 위기에 처한 은파를 구하려다 급한 마음에 염주 여섯 알로 육규종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후에 다시 나머지 염주 열 알을 날려 석목을 공격했으나 석목은 단 일격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쿵, 쿵, 쿵!

허공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자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그리고 금색 염주 열 알은 주먹 그림자와 맞부딪쳐 빙글빙글 돌아갔다.

“죽어!”

석목이 낮게 소리를 지르며 큰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오른쪽 손을 들어올리자 석목의 손에서 회색빛이 번졌다. 그렇게 석목은 다시 손가락을 굽혀 허공에 뜬 염주들을 튕겨버렸다.

퉁!

가벼운 소리와 함께 회색빛에 감긴 염주들이 놀라운 속도로 날아가 버렸다.

이에 백수는 깜짝 놀라 두 손을 합장하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빛이 찬란한 불타(佛陀) 허상이 백수의 주변에 나타나 염주를 내리쳤다.

퍽!

그러나 염주는 곧바로 금색 손을 뚫고 지나가 백수의 미간으로 향했다.

그 광경은 백수가 연합의 장로를 죽였던 장면과 똑같았고, 백수는 짧게 울부짖고는 염주에 머리가 뚫려버려 신혼마저 부서졌다.

석목이 또 선장을 한 명 죽여 버리자 은파와 좌음은 잔뜩 놀란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육규종과 조주명은 사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육규종의 주변에서 맴돌던 금색 염주는 법력으로 통제를 받지 못하자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서는 사방으로 굴러다녔다.

육규종은 위기에서 벗어나는 순간, 곧장 조주명에게로 향했다.

“아……”

은파가 포효하고는 핏빛을 드리우자 그의 살기는 더욱 짙어졌고, 두터운 혈무로 들어가 몸통이 희미하게 일그러졌다.

누에고치 같은 혈무는 은파의 몸을 칭칭 감더니 순식간에 은파를 안으로 묻어버렸다.

순간, 허공에 뜬 거대한 핏빛 검이 미세하게 흔들렸는데 검 주변에 드리운 안개는 마치 먹물처럼 짙었다.

“신검합일술(身劍合一術)”

석목은 동공이 줄어들었다.

순간 석목의 머리에서 생각이 스쳤다.

핏빛 검은 갑자기 떨림을 멈추고는 석목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검은 혈무를 칭칭 감아 흉악한 얼굴을 수천수만 개나 드러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석목에게 목숨을 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석목은 핏빛 검 앞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려 앞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자 번천곤에서 ‘휙!’ 소리가 울리더니 회색 화염을 한 층 감고는 곤봉 끝이 거대한 핏빛 검을 향해 맹렬하게 질러갔다.

쾅!

회색빛이 넓게 폭발하며 튀어나와 거대한 핏빛 검으로 날아갔다. 이어서 폭발음이 사방팔방에서 몰려오더니 곧장 혈무를 찢어버렸다.

귀신이 곡소리를 내는 것 같은 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은파의 몸통이 허공 속에서 떨어지면서 두 덩이로 갈라져 피가 흩날렸다.

은파가 다루던 핏빛 검의 겉면에 내비치던 빛이 사라지자 그는 눈에 믿기지 않은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아마도 은파는 석목이 이렇게 막강한 실력을 가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석목의 분신이 앞으로 다가가서는 단검을 들어 올려 은파의 머리를 찔렀다.

은파의 머리에서 핏빛이 폭발하더니 그의 정혈이 핏빛 단검을 통해 전부 석목의 분신에게로 흘러들어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분신의 몸에 난 상처가 아물었고, 심지어 기운까지 많이 올라갔다.

이어서 분신이 몸을 숙여 은파가 들고 있던 기괴한 검을 들고는 자신의 단검과 번갈아보며 비교하는 것이 마치 무엇인가를 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에 분신이 갑자기 두 검을 꽉 쥐고는 허공을 맹렬하게 내리쳤다.

‘탱, 탱.’

맑은 소리와 함께 기괴한 검이 파편이 되어 부서졌다.

분신이 단검으로 파편 무더기를 가리키자 형태가 없는 힘이 파편 속에서 혈액 같은 물체를 줄줄이 이끌어 단검으로 모았다.

‘혈액’이 끊임없이 몰려들자 단검은 점점 자라났고, 결국 네 뼘 정도 되는 붉은 대검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대검에서 핏빛이 반짝이자 살기가 더 왕성해지더니 바닥에 무더기로 놓여있던 빛은 어두워지면서 철로 변하였다.

석목은 그제야 분신이 다급하게 은파와 다투고 싶어 했던 건 은파의 몸에서 핏빛 단검과 같은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석목은 조금 놀랍긴 했지만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석목이 시선을 돌려 조주명을 바라보니 조주명을 비롯한 세 장로는 아직도 좌음과 싸우고 있었다.

좌음은 언제인지 모르게 검고 하얀 머리만한 구체를 꺼냈다. 그렇게 생긴 구체가 좌음의 주변에서 떠다니자 혼자서 조주명을 비롯한 세 명과 싸우고 있었지만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은파가 죽는 걸 본 좌음은 안색이 퍼렇게 질려있었고, 두려운 시선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좌음의 얼굴에서 흑백 빛이 번쩍이던 순간, 좌음이 혀끝을 깨물어 정혈을 내뿜었다. 그러자 정혈이 혈무로 변하여 흑백 검으로 스며들었다.

흑백 검에 담긴 기운이 폭발하며 좌음의 손에서 벗어나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자 흑백으로 이루어진 팔괘 허상이 촘촘하게 속에서 날아 나와 사방팔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그 광경을 본 조주명을 비롯한 세 사람은 반격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좌음이 몸을 날려 대전 밖으로 날아갔다.

“이제야 도망가려 하다니,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석목의 우렁찬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좌음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순간, 모든 걸 부숴버릴 듯한 공간 파동이 좌음의 등 뒤에서 전해졌다.

이에 좌음은 절망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