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2화. 위험한 국면을 벗어나다
남사궁 밖에 자리한 백옥 광장에서는 천정의 대군과 미천 연합이 치열한 전쟁을 펼치고 있었는데 양측은 실력이 엇비슷했다. 그리고 전투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아무도 미천 연합의 대군 뒤쪽 허공에서 일렁이는 물결을 보지 못했다.
허공에서 파동이 일더니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무야는 전장을 빠르게 훑어보고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면서 손을 흔들어 추선대를 꺼내들었다.
무야는 두 손을 비비다가 양옆으로 벌렸다. 그러자 검은 빛기둥이 무야의 손바닥 사이에서 뭉치더니 이내 번쩍이며 추선대로 스며들었다.
추선대가 바람을 따라 몇 배나 불어나서는 빙글빙글 돌자 찬란한 검은빛이 추선대에서 나왔다.
귀를 찌르는 굉음이 들끓는 검은빛에서 흘러나왔는데 그 소리는 마치 오랫동안 묵혀있던 천둥소리 같았다.
이어서 추선대 가운데에서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나 놀라운 기운 파동과 함께 허공을 격하게 흔들어 놓았다.
대진의 가장 뒤편에 있던 천정의 대군은 그제야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고는 놀란 얼굴로 소동을 일으켰다.
그 순간 커다란 소용돌이가 한참 동안 흔들리더니 검은 그림자가 우수수 쏟아져 나와 대군 속으로 내려왔는데 그 그림자들은 전부 사령 생물들이었다.
해골, 짐승의 시체, 인형 사령을 비롯하여 그 숫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단 몇 번 호흡을 할 동안 수만 마리나 되는 사령 생물들이 뿜어져 나왔고, 검은 소용돌이는 끊임없이 사령 생물들을 내보냈다.
사령 생물들은 눈구멍에서 혼화를 번쩍이며 사악한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살기가 하늘을 찔렀는데 무리 속에는 신경 사령도 더러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미천 연합의 대군 역시 여기저기에서 곡소리가 났다.
무야가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앞으로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사령 대군이 마치 터져버린 꼭지처럼 뿜어져 나와 우왕좌왕하고 있던 미천 연합의 대군을 공격했다.
순간, 허공에는 뼈와 땅이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대지가 흔들리더니 굉음이 울려 퍼져 전장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뒤덮었다.
미천 연합을 이끄는 우두머리 몇몇이 지휘를 하며 사령 대군을 막아냈지만 진형은 혼란스러워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령 대군은 번개처럼 몰려왔다.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신경 뼈 독수리는 검은빛을 감싸고는 굵직한 뼈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넓적한 깃털에서 쇠 같은 광택이 뿜어져 나왔다.
독수리가 나는 속도는 매우 빨랐고, 가장 먼저 허공에서 내려와 두 날개를 거두어들이더니 아래로 내려왔다.
뼈 독수리는 날카롭게 울부짖으면서 두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수많은 깃털이 독수리의 몸에서 뽑혀져 나와 공기를 찢는 소리를 울렸다. 그렇게 독수리가 뿜어낸 깃털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 같았고, 무시무시한 잔영을 길게 끌며 쏟아져 내렸다.
퍽, 퍽, 퍽!
스무 명이나 되는 미천 연합의 대군은 깃털 공격을 받자 눈 깜짝할 사이에 몸에 구멍이 뚫려버렸다. 그리고 뚫려버린 구멍에서부터 온몸으로 검은색이 퍼지더니 숨을 거두는 것으로 보아 깃털은 음독을 머금고 있는 듯했다.
이때, 커다란 시체 개가 덮쳐오며 작은 산만한 몸통을 곧장 미천 연합의 대군속으로 날렸다. 그러자 미천 연합의 대군은 무더기로 튕겨져 날아가 피를 뿜는 사람도 있었고, 사지가 부러진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 몸이 폭발하여 죽는 사람도 있었다.
이어서 또 다른 신경 사령들이 맹렬한 공격을 날렸고, 평범한 사령 대군은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미천 연합은 뒤편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처참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고, 순식간에 만 명이나 되는 병력이 사라져버렸다.
그 광경을 본 무야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사령 대군은 이미 전부 전장에 나타났고, 그 숫자가 족히 십만은 되는 것 같았다. 비록 그중에는 수련 경지가 후천이나 선천 밖에 되지 않는 사령도 있었지만 무더기로 모이자 막대한 기세를 뿜어냈다.
이렇게 많은 대군이 뒤편에서 공격해오자 미천 연합은 중추가 흔들리면서 불리한 상황으로 몰리게 되었다!
신경 사령을 선두로 사령 대군이 바람을 가르듯이 미천 연합의 대군을 공격했다.
단 몇 번만 부딪쳤음에도 수많은 사령 대군 전력이라 미천 연합은 철저하게 불리해졌다!
“고작 죽은 놈들이 이리 날뛰다니!”
이때,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눈부신 빛 열 몇 갈래가 미천 연합에서 날아오며 연합의 신경 존재들이 나타났다.
그중 한 명은 하얀 치마를 입고 있는 여인이었는데 여인은 긴 옷자락을 흔들며 투명한 검광을 날렸다. 이어서 검광은 삼엄한 기운을 풍기며 뼈 독수리에게 드리웠다.
뼈 독수리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러대자 독수리가 감고 있는 검은 기운이 들끓다가 먹처럼 검은 구름이 되어 번쩍이며 하늘을 뒤덮고 쏟아지는 검광을 막아냈다.
또 다른 한 명은 얼굴이 누르스름한 중년 사내였는데 그는 고동색 빛을 번쩍이다가 순식간에 백 장이나 되는 거인으로 변해 그 모습이 마치 동상과 같았다.
중년 사나이가 소리를 지르며 커다란 주먹을 힘껏 휘둘러 시체 개를 날려버리고는 다시 주먹을 휘둘러 또 다른 신경 사령을 막아냈다.
다른 신경 강자들도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연합의 신경 강자들은 신경 사령들보다 숫자가 조금 적었지만 공격 수단은 신경 사령들보다 훨씬 다양해 법보와 비술이 날아다니며 신경 사령들을 묶어두었다.
신경 사령들을 막아내고 나서야 미천 연합은 숨을 돌릴 시간을 벌었다.
이어서 수련자들 네 갈래가 연합의 대군에서 날아 나와 대진의 뒤편으로 다가갔다.
한 갈래에는 족히 이삼만 명이나 되는 수련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천봉 일족, 반귀 일족, 염호 일족, 지룡 일족으로 네 일족이 사령 대군의 앞을 가로막았다.
반귀 일족과 지룡 일족이 가장 앞장서서 달리며 방어 진영을 이루었다.
요기(妖氣)의 빛이 두 일족의 몸에서 폭발하더니 모두 본래 요족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그렇게 요족들은 단단하기 그지없는 거대한 몸통들로 벽을 이루면서 몰려드는 사령 대군을 막았다.
양쪽 대군이 격하게 부딪치면서 찬란한 빛이 현란하게 번쩍였고, 굉음 또한 하늘에서 끊이질 않았다.
반귀 일족과 지룡 일족은 숫자가 많지 않았기에 두 종족이 이룬 대진은 계속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령 대군의 공세 역시 주춤해졌다.
두 종족이 모두 요족 본체로 변한데다 두 종족 모두 화염 신통을 잘 다뤄 전부 타오르는 화염을 감았다.
천봉 일족 사람들은 붉은 깃발 법보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깃발에 새 모양 그림이 새겨져있었다. 그리고 깃발에선 붉은 화염이 타올랐다.
깃발들은 가짓수가 많은 법보 같았고, 곧 천봉 일족이 열 몇 명씩 모여 작은 진법을 이루자 붉은 깃발 법보에서 타오르는 화염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불타는 짐승 환영들을 만들었다.
수백, 수천 마리에 달하는 화염 짐승들이 촘촘하게 하늘을 뒤덮었다.
화염 짐승들은 동시에 입을 크게 벌리고는 막강한 영력 파동을 내뿜었다. 그러자 붉은 화염들이 짐승의 입에서 뿜어져 나와 불길을 타고서 사령 대군으로 향했다.
훅, 훅!
화염이 폭발하자 사령 생물들은 그 여파에 곧장 사라져버렸다.
염호 일족이 날린 공격도 천봉 일족만큼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날카로워 금색 화염을 날리며 은은하게 호랑이 모양 환영을 만들었다.
금색 화염은 염호 일족의 진염이라 평범한 화염보다 훨씬 강력하여 단번에 사령 생물들의 몸통을 태워버릴 수 있었다.
두 종족이 이룬 진영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 같아 사령 대군을 찔러 들어가면서 끊임없이 공격했다.
이미 흐트러졌던 연합의 대군들도 이 틈에 빠르게 재정비를 하며 곧장 전투에 뛰어들었다.
연합의 대군이 힘을 합치자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사령 대군들을 일일이 막아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무야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미 모든 사령 생물들을 소환해 추선대에서 더 나올 병력은 없었다.
그러나 무야는 다행히도 미천 연합이 사령 대군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매우 힘겨워 보였고, 앞뒤로 공격이 몰려와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천봉 일족과 염호 일족을 비롯한 네 종족의 전력이 사령 대군을 막아내고 있는 동안, 미천 연합의 본진은 앞에서 내달려오는 천정의 대군에게 밀렸다.
연합의 대군은 하는 수 없이 남사궁을 공격하는 것을 멈추고는 모든 전력을 다시 되돌려 진형을 줄여 천정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여전히 전황은 좋지 않아 간신히 막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쌍방이 소모전을 펼치기 시작하자 상대 쪽에서 예닐곱 명이 죽을 때, 아군들도 똑같이 예닐곱 명 정도가 죽어 나갔다. 하지만 양쪽의 병력은 매우 뚜렷하게 차이가 났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미천 연합에게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안화를 비롯한 신경 강자들은 이 긴박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마음만 조급해질 뿐,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쾅!
이때, 굉음이 남사궁에서 흘러나왔다.
남사궁 주변을 감싼 금색 그물이 터지자 다섯 그림자가 날아 나왔는데 그들은 석목과 육규종, 그리고 석목의 분신을 비롯한 다섯 명이었다.
“맹주님!”
“석 맹주님이 나오셨다!”
“다행이야!”
안화를 비롯한 신경 강자들은 석목이 날아 나오는 모습을 보며 입이 찢어질 듯이 웃었다.
어려운 전황에 침몰하는 듯이 보였던 연합의 대군은 석목을 보는 순간, 다시 사기가 치솟았다.
석목은 미천 연합 대군에게 그저 맹주가 아니라 정신적 기둥이었다.
천정의 대군과 무야는 석목이 나타나는 모습을 바라보자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무야가 다시 손을 흔들며 추선대를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자 무야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곧장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무야는 계속 사령 대군의 뒤편에 있었기에 아무도 그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석목이 시선을 광장으로 던진 후에 빼곡히 몰려있는 사령 대군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육규종을 비롯한 이들도 얼굴이 일그러졌다.
“육 족장님, 연합을 도와 천정의 대군을 물리치세요!”
석목이 묵직하게 명을 내린 후에 몸을 날려 사령 대군쪽으로 날아갔다.
“네!”
육규종은 대답을 하고는 조주명을 비롯한 장로들을 이끌고 천정의 대군을 향해 날아갔다.
몇 번 호흡을 한 후.
천봉 일족과 지룡 일족을 비롯한 네 종족과 사령 대군이 교전을 치르는 곳 위에 검은빛 한 갈래가 번쩍이더니 석목이 나타났다.
“다른 곳을 지원하세요.”
석목은 신경 사령들과 싸우고 있는 연합의 신경 강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연합의 신경 강자들은 곧바로 석목이 내린 지시대로 뒤로 물러나 다른 전장으로 날아갔다.
신경 강자들은 마음 속 깊이에서부터 석목을 존경했기에 그가 내린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랐다.
신경 사령들을 한참 동안 물리치면서 수많은 사령들이 죽었지만 여전히 숫자는 많았다. 그리고 미천 연합이 처한 전황이 위태롭기에 절실히 신경 강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경 사령들은 싸우던 상대가 사라지자 전부 소리를 지르며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령들은 눈에서 싸늘한 빛을 뿜어내더니 분분히 석목을 덮쳤다.
신경 사령은 열 몇 구씩이나 되었는데 전부 몸집이 거대해 떼를 지어 우르르 몰려오니 그 기세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러나 석목은 담담하게 웃어 보이고는 눈에 빛을 번쩍였다.
순간, 석목의 몸에서 회색 태양이 나타나더니 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그러자 바다처럼 막강한 기운이 석목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석목이 번천곤을 들고는 금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번천곤에서 찬란한 금빛이 나와 주변으로 퍼졌다.
이때, 석목의 몸통이 몇 배나 불어나더니 맹렬하게 곤봉을 휩쓸었다.
슥!
금색 곤봉 그림자가 뚜렷하게 뿜어져 나가자 곤봉의 겉면에 새겨진 무늬가 점점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