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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854화 (854/916)

854화. 다섯 개의 산봉우리

석목이 흩뜨려 놓은 천정의 대진은 빠르게 정복이 되었다.

하지만 석목은 다시 고만족들과 얽혀 버려 한참 동안 다른 곳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천정의 방어진을 뚫지 못하자 미천 연합의 공격은 주춤했다.

“고만족 놈들을 막아 맹주님께 길을 내주어라!”

육규종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소리를 질렀다.

순간, 연합의 대군 곳곳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모든 신경 강자가 전부 앞으로 날아갔다. 그리도 신경 강자들은 다양한 빛을 번쩍이며 고만족을 공격했다.

동시에 연합이 갖춘 다양한 공격 수단을 날렸는데 염호 일족은 염호 인형, 자정마우 일족은 마우 전사, 비천서 일족은 신경 마수를 불러내 고만족 거인들과 격전을 치렀다.

염호 인형에 새겨진 무늬에서 눈부신 화염이 뿜어져 나오자 염호는 몸통이 몇 배나 불어나 네 발을 짚고는 거대한 몸통을 날려 거인을 공격했다.

굉음이 울려 퍼지며 거인들이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자정마우 일족의 거대한 마우 전사도 낮게 소리를 지르며 몸에 보랏빛을 반짝였다. 그러자 수많은 보랏빛 번개가 번쩍이더니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보랏빛 번개는 굵직한 번개 기둥을 이루며 몇몇 거인을 덮쳤다.

그러자 거인들은 움직임이 굳어버렸다.

또 다른 신경 강자들과 신경 마수들도 거센 공격을 날려 순식간에 고만족들을 묶어두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석목은 희열을 느끼며 주변에 있던 거인들을 뿌리치고는 천정의 대군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은 모든 진기를 모아 번천곤에 불어넣었다.

번천곤에서 뜨거운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공기를 쓸어넘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번천곤이 미친 듯이 꿈틀거리면서 곤봉 그림자가 주변에 떨어졌다.

쩍, 쩍!

네모난 보호막이 하나둘씩 터져버리자 눈 깜짝할 사이에 절반이 넘는 보호막이 사라져 천정이 이룬 방어진은 점차 무너졌다.

순간, 미천 연합의 대군은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공격!”

육규종이 미친 듯한 얼굴로 소리를 쳤다.

미천 연합의 대군은 날카로운 칼 같이 길고 좁은 진형을 이루어 천정의 대군의 심장을 찔렀다.

천정의 대군에서 진두지휘를 하던 몇몇 신장들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고함을 지르면서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신장들은 진형을 안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석목이 변신한 거원은 실력이 너무 막강하여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고만족 거인들도 미천 연합의 대군 때문에 묶여버려 한참 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몰려오는 미천 연합의 대군을 마주한 천정의 대군은 점점 전의를 잃어 사방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 * *

천정의 대군이 드디어 궤멸하였다……

훅!

석목은 거대한 몸통을 날려 허공에 서 있었다. 그리고 석목은 도망가는 천정의 대군을 쫓아가지 않았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 광장을 둘러싼 커다란 다섯 산봉우리를 둘러보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다섯 산봉우리에서 옅은 빛이 반짝이더니 천지의 영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석두, 왜 그래?”

채아는 처음에 석목의 어깨에 앉아있다가 전쟁이 격해지자 몸을 가장 작게 줄여 수북하게 뒤덮인 석목의 하얀 털 사이에 묻혀있었다.

석목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 저 산봉우리들이 왜 그러지?”

채아는 곧바로 산봉우리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을 알아차렸다.

“산봉우리들이 이상한 것 같아. 제준도 이곳을 떠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어. 혹시 이 산봉우리에 어떤 수를 쓴 게 아닐까……”

석목이 묵직하게 말했다.

“이놈아, 저것들은 선봉우리가 아니야. 저 안에 극도로 순수한 영석들이 들어있어. 그리고 산봉우리들은 각각 다섯 대진을 이루고 있어! 아마 제준이 열려고 하는 현계지문과 관련이 있을 거야!”

수령자의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뭐!”

석목이 깜작 놀라 몸을 날려 한 산봉우리로 날아갔다.

“채아, 이 사실을 육 족장을 비롯한 장로들에게 알려. 빨리 남은 천정의 병사들을 해치우고 나서 이 산봉우리들을 무너트리라고 해!”

석목은 부드러운 힘을 날려 채아를 어깨 위에서 전장으로 내보내며 말했다.

채아가 심각하게 대답을 하고는 육규종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번개처럼 빠르게 산봉우리를 덮쳤다.

산봉우리와 가까워지자 석목은 산봉우리 속에서 흘러나오는 방대한 영력 파동을 느꼈다. 과연 산봉우리는 수령자가 한 말처럼 전부 영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산봉우리 속에서 방대한 영력이 흘러나오더니 은은하게 진법을 이루었다.

이 대진을 가동하게 두어서는 절대 안 되었다!

석목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산봉우리 옆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번천곤 속으로 진기를 미친 듯이 불어넣자 번천곤에서 ‘우르릉!’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새겨진 무늬가 전부 찬란하게 빛났다.

거대한 곤봉이 방대한 금빛으로 변하여 산봉우리를 휩쓸었다.

번천곤이 스친 곳은 허공이 전부 부서지면서 만 장이나 되는 공간 균열이 나타나 수많은 기류가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거대한 산봉우리는 마치 위협을 느끼기라도 한 듯이 산체를 뒤흔들며 빛을 뿜어 옅은 막을 이루었다.

쿵!

번천곤이 산봉우리를 내리치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산체는 격하게 흔들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는데 산체를 감싼 붉은 광막이 번천곤을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때, 다섯 산봉우리가 다시 흔들리더니 커다란 암석이 굴러 떨어졌다. 그러자 산을 뒤덮었던 풀들마저 암석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다섯 산봉우리는 마치 껍질을 한 층 벗은 듯이 원래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청, 적, 황, 금, 남색 다섯 갈래 커다란 빛기둥이 다섯 산봉우리 위에서 뿜어져 나와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 다섯 빛이 금색 광막에 쏟아지자 하늘이 오색찬란하게 빛났다.

하늘에서 떠다니던 하얀 구름도 빛기둥에 물들어버렸고, 하늘은 뚜렷한 채색 구역 다섯 곳으로 갈라졌다. 그러자 빛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몽롱하고 현란한 광경을 이루었다.

다섯 산봉우리는 투명하게 변해버려 극도로 맑은 다섯 개의 수정 같았다. 그리고 수정에서 막강한 영력 기운이 흘러나오자 산봉우리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전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광장에선 지능이 없는 인형과 사령들 말고는 전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광장 한쪽에서 육규종을 비롯한 장로들이 초조한 기색을 내비쳤다.

다섯 산봉우리에서 이변이 일어나는 동안, 채아는 이미 석목이 추측한 바를 장로들에게 전달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석목이 대진을 빠르게 발견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을 치러야했기에 장로들은 더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집중하여 연합의 대군을 이끌며 천정의 대군을 말살했다.

* * *

이 시각, 미지의 별하늘.

칠흑같이 검은 하늘에 별들이 촘촘하게 박힌 채 빛을 뿜어냈다.

별하늘의 더 깊은 곳에는 은하수가 길게 뻗어있었는데 마치 옅은 빛을 뿜어내는 듯한 하얀 띠를 이루며 촘촘히 별하늘을 드리웠다.

옥처럼 빛나는 은하수 아래로 희미한 빛이 어른거렸다.

빛 속에는 수 백리나 되는 팔각 제단이 하나 숨어있었는데 제단에는 하얀빛이 흘러 다녀 형석인지 백옥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팔각 제단은 총 여덟 층으로 이루어졌으며 가장 아래층의 면적이 제일 넓었는데 족히 칠 백 리는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위층에 놓인 제단은 칠 리 정도 되었다.

가장 높은 층 변두리에 금색 옷을 입은 훤칠한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남자는 이목구비가 매우 뚜렷했고,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그리고 남자에게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막강한 기세가 흘러나왔고, 몸에서 흐르는 위압감은 마치 망망대해와도 같았다.

막강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은 제준이었다.

제준의 옆에선 검은 옷을 입은 무야가 묵묵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서 이는 푸르스름한 빛을 바라보았다.

제준은 한 손으로 제단 변두리에 설치된 하얀 난간을 매만지며 아래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 제단으로 시선을 던진 제준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희열을 은근하게 내비쳤다.

제단 위에는 수많은 푸른빛이 곳곳에서 번쩍였는데 족히 수십만 개는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빛들은 또 다른 작은 별하늘처럼 하늘에 붙어있었다.

제단 위에 펼쳐진 빛은 그리 고르지 않아 촘촘한 곳도 있었고, 뜨문뜨문 빛이 박혀있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빛도 없이 까맣게 이어진 곳도 있었다.

제준은 가장 아래층에서부터 층층이 위까지 훑어보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반짝이는 푸른빛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은 마치 오랜 세월 동안 가꾼 밭에서 수확을 맞이한 농부가 짓는 웃음과도 같았다.

제준이 몸을 숙여 푸른빛 한 덩이를 눈앞으로 끌어왔는데 빛 덩이 밑을 검은 등잔이 받치고 있었다. 제준이 끌어온 푸른빛은 등잔을 밝히는 불씨였고, 등잔 위에는 전부 큰 글씨로 ‘명(冥)’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명등(冥燈)이 아직 부족해. 더 많은 망혼(亡魂)이 필요해.”

제준은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등잔을 원래 자리로 올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존상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대진을 열게 되면 망자들의 혼을 끊임없이 빨아들일 겁니다. 그리고 남사궁에서 격전이 멈추지만 않는다면 새로운 망혼들이 계속 생기겠죠. 이제 명등은 끊임없이 생길 겁니다.”

무야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서 말했다.

“그렇지만 속도가 너무 느려. 핏빛 달을 빠르게 사라지게 하려면 더욱 치열하게 싸워야 하겠지.”

제준이 혼잣말을 하며 뒷짐을 지고는 제단 가운데로 다가갔다. 그리고 시선을 검은 별하늘의 깊은 곳으로 던졌는데 그곳엔 행성 하나가 외롭게 떠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 그 녀석이 알아차린 것 같군. 잘됐네.”

제준은 입가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제준이 주먹만 한 영주(靈珠:구슬) 하나를 들어올렸다.

퍽!

영주가 부서져버렸다.

무야는 제준을 바라보지 않고 팔각 제단 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팔각 제단 아래에서 복잡한 비밀 부문이 줄기줄기 이어진 부문 고리로 변하더니 얽히고설키면서 천 리나 되는 금색 광막을 이루었다.

광막 아래에서는 스산한 바람이 기승을 부렸고, 음침한 기운이 삼엄하게 흘렀다. 그리고 광막 사이로 수천, 수만이나 되는 검은 그림자들이 흘러다녔다.

수많은 그림자 속에서 흉악한 귀신 얼굴들이 여기저기 부딪쳤고, 광막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휙!

허우적대던 그림자들이 전부 힘이 빠져버려 금색 광막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광막 속으로 녹아들자 거의 동시에 하얀 제단에는 푸르스름한 명등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망혼들이 광막 속으로 흘러들어오자 팔각 제단에 밝아진 명등은 점점 많아졌다. 그러자 온 대진에 음침한 기운이 짙게 흘렀다.

* * *

석목은 붉게 변한 산봉우리를 바라보자 화색이 돌았다.

석목이 추측한 대로 다섯 산봉우리는 현계지문을 여는 중요한 곳이라 다섯 산봉우리를 허물기만 하면 제준이 세운 계획은 물 건너 갈 터였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진기를 전부 써서 두 팔을 들어 올리고는 번천곤을 머리 꼭대기까지 치켜들었다.

번천곤에서 금빛 무늬가 맴돌며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이어서 산봉우리를 감싼 보호막은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

이때, 백 장 가까이 되는 검은 빛기둥이 아래에서 뽑혀 나와 빠르게 석목의 머리를 내리쳤다.

검은빛 속에서 놀라운 영력 파동이 흘러나왔고, 검은 번개가 그 위를 맴돌더니 파멸의 기운을 뿜어냈다.

석목은 심장이 쿵 내려앉아 그대로 허공에 멈춰 섰다.

검은빛은 극도로 강한 힘을 머금고 있는 것 같아 석목은 산봉우리를 공격하길 멈추고는 뒤로 날아가 간신히 빛기둥을 피했다.

쿵!

이때, 다섯 산봉우리 가운데 놓인 백옥 광장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바닥이 갈라지면서 부서진 돌들이 속에서 나와 주변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러자 곳곳에서 처참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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