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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857화 (857/916)

857화. 상처로 상처를 바꾸다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의 뒤에 솟은 산봉우리가 내는 빛이 이전보다 몇 배는 밝아졌고, 빛은 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다섯 산봉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는 미천 연합의 대군이 다시 서서히 대오를 이루었다.

육규종을 비롯한 장로들이 다급하게 명령을 내리며 빠르게 대군을 정비했다.

석목은 채아를 통해 육규종을 비롯한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떻게 해서든 만령현문대진이 열리게 해서는 안 되었다.

중년 남자는 이미 미천 연합의 대군이 재정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가 보기에 미천 연합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이라 그가 손을 흔들기만 하면 개미 같은 것들을 전부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남자의 골칫거리는 자신이 일군 영역에 갇혀있는 석목이었다.

중년 남자는 그가 일군 영역이 파동을 일으키며 빠르게 어두워지자 안색이 굳어졌다. 미루어보건대 무엇인가가 영역의 힘을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말도 안 돼!”

남자가 흠칫 놀라며 다른 수단을 부리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검은빛과 하얀빛이 영역에 나타나더니 점점 커졌다.

영역에서 휘몰아치는 파동은 점점 격해졌고, 끊임없이 일그러지면서 곧 뚫려버릴 것만 같았다.

검은 남자는 괴성을 지르며 법결을 줄줄이 날려 영역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영역은 점점 더 정신없이 흔들렸다.

퍽!

찬란한 금빛 한 갈래가 영역을 뚫고 날아 나오자 검은 영역이 드디어 터져버렸다.

빛 한 갈래가 근처로 떨어지더니 석목이 빛 속에서 나타났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몸이 밀려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일그러진 얼굴로 석목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석목은 빠르게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는데 하늘에서 찬란한 빛이 눈부시게 빛나며 끊임없이 달라졌지만 대진은 아직 열리지 않은 모양이라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천정의 첫 번째 선장이라더니 별것도 아니군.”

석목은 다시 시선을 중년 남자에게로 돌리며 냉소를 지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화가 치밀어 올라 번개 한 줄기로 변하여 길고 검은 창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긴 창에서 번개가 맴돌더니 커다란 창 그림자를 이루었다.

쓱!

창 그림자가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석목의 가슴으로 날아왔다.

석목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창을 맞이하는 동시에 번천곤으로 금빛 그림자를 날렸다.

금빛 곤봉 그림자 속에서 수많은 부문들이 번쩍이며 순식간에 금색 칼날로 변하였다.

하지만 금색 칼날은 검은 창 그림자와 맞서지 않고 순식간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게로 날아갔다.

상처로 상처를 바꾸는 전략이었다!

검은 남자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냉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허공에서 두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핏빛이 동시에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석목의 가슴에 긴 칼자국이 그어졌고,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검은 남자도 마찬가지로 가슴에 긴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남자는 검은빛을 반짝이며 재빠르게 상처를 치료해 눈 깜짝할 사이 상처가 절반이 넘게 회복되었다.

석목은 가슴에 난 상처를 신경 쓰지 않고 순간 멈춰 섰다가 다시 돌아서서 중년 남자에게로 날아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남자와 몇 장정도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 번천곤을 휘둘렀다.

금색 칼날이 막강한 법칙의 기운을 풍기며 앞을 베었다.

수련 경지가 이 정도 경지에 도달한 수련자들은 격전을 치를 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 중년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다양한 법보와 비술을 날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정도로 높은 경지에 이르면 공격을 할 수단이 워낙 다양하기 많아 방어 법보나 비술 한두 개로는 절대 안심할 수 없었고,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제아무리 잘 막아낸다고 하더라도 위험을 감수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 녀석은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조금 전부터 최대한 둘 사이에 떨어진 거리를 줄이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남자는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검고 긴 창을 휘둘러 촘촘한 창 그림자를 이뤄 날아오는 금색 칼날을 막았다.

석목은 번천곤을 휘두르며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고 계속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죽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으니 그 소원을 들어주지!”

검은 남자의 눈에서 싸늘한 빛이 스치던 순간, 검은 창에서 나는 빛이 더욱 밝아지면서 날카롭기 그지없는 영압이 뿜어져 나왔다.

쉭, 쉭!

검은 번개를 번쩍이는 용 네 마리가 날아 나왔는데 용들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놀라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네 마리 용이 각각 네 방향으로 석목을 덮쳐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석목은 여전히 피하지 않고 낮게 소리를 지르며 다시 번천곤으로 앞을 찔렀다.

퍽!

금색 부문들이 번천곤에서 날아 나와 네 자루 검영으로 변하여 법칙 파동을 흘려보냈다.

네 갈래 검영이 금색 그림자로 변하여 날아나갔다.

네 마리 용이 석목의 몸을 덮치는 순간, 금색 검영 네 개도 중년 남자를 찔렀다.

또 양쪽 모두 상처를 입는 전술이었다!

검은 남자는 멈칫하다가 이내 냉소를 지었다.

남자는 홍황의 후손이라 막강하게 태어나 육체는 이미 불멸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런 상처로 상처를 맞바꾸는 수단을 좋아했다.

쿵!

석목과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몸통이 동시에 튕겨져 날아갔다. 그러자 핏덩이가 튀더니 두 사람이 입은 상처 부위에서 허연 백골이 드러났다. 또한 두 사람은 입에서는 붉은 피를 뿜어냈다.

중년 남자는 순식간에 수 십 장 밖으로 날아갔다가 멈춰 서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검은빛을 드리우며 상처 부위를 감싸자 상처에서 또 다시 새살이 돋아나며 빠르게 회복되었다.

하지만 남자가 온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석목이 피범벅이 된 몸을 던져 덮쳐 들었다.

남자는 깜짝 놀랐다.

석목은 상처투성이가 되어있어 심지어 꿈틀거리는 내장도 보일 정도였고, 왼팔은 살이 갈기갈기 찢어져 하얀 뼈가 그대로 드러나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목이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암석처럼 단단했고,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석목은 번천곤에 금빛을 감고는 빠른 속도로 내리쳤다.

석목의 몸에서 네 가지 적, 황, 녹, 남색 빛이 동시에 밝아졌다.

붉은 화염 칼날, 파란 얼음, 푸른 나무 가시, 노란 번개 구체가 줄줄이 날아 나와 거대한 홍수를 이루며 검은 남자를 공격했다.

이 공격은 보기에 매우 평범해보였으나 전부 엄청난 힘을 머금고 막강한 영력 파동을 뿜어냈다.

“이…… 이런 미친놈!”

중년 남자는 다시 멈칫했다가 이내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검은 번개 구체로 석목이 날린 공격을 막았다.

쾅!

두 갈래 그림자가 다시 뒤엉켰고, 공격이 줄줄이 부딪치더니 빛을 뿜었다.

석목은 여전히 막아낼 생각이 없어 둘 다 다치는 쪽을 선택했다.

잠깐 사이에 둘은 다시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핏덩이가 날아다녔다.

중년 남자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기운이 빠르게 쇠퇴해 안색이 퍼렇게 질려있었다.

연이어 육신을 회복하느라 너무 많은 진기를 소모하여 이미 진기는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석목은 더욱 자주 공격을 날려 남자에겐 점점 더 본체로 변신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미간의 주름이 점점 깊어졌다.

석목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상식대로라면 이미 죽어버렸을 터였다. 하지만 석목은 여전히 멀쩡해 보였고, 심지어 기세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중년 남자는 분명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때,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머리 아래 몸통을 전부 녹여 핏빛으로 변하였다.

이어서 핏빛이 다시 육신으로 뭉치자 모든 상처는 이미 사라졌고, 조금 전까지 보이던 만신창이가 된 몸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게다가 석목이 풍기는 기운도 처음처럼 돌아온 걸보니 조금 전에 줄어든 기운은 전부 가짜였던 것이었다.

석목은 이미 불사신의 경지에 이르러 조금 전에 받은 연이은 공격으론 절대 그의 원기를 다치게 만들지 못했다.

“이건 말도 안 돼! 네놈이 불사신의 경지까지 수련을 했다는 거냐!”

중년 남자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아무런 말없이 다시 번천곤에 금빛을 감았다. 그러자 ‘윙!’ 소리와 함께 네 갈래 법칙의 선이 곤봉에서 날아가 네 방향으로 중년 남자를 내리쳤다.

중년 남자가 포효하며 검은빛을 뿜어내자 검은빛은 방패로 변하였고, 방패에 거북이 등껍질 모양 무늬가 어렸다. 또한 수많은 부문들이 방패에서 튀는 게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네 갈래 금색 법칙의 선이 검은 방패를 베었다.

쩌걱!

검은 방패는 빛을 번쩍이며 안정되려 했지만 결국 베어졌다.

하지만 금빛 선도 많은 힘을 소모하여 빠르게 어두워졌다.

중년 남자는 손에 짧고 검은 법보 하나를 쥐었는데 법보에 금색 글이 새겨져 있는 게 엄연히 상고 시대의 과두 신문이었다.

이어 막강한 영압이 법보에서 흘러나왔다.

남자가 법보를 휘두르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검은 손 네 개로 변하여 법칙의 선을 잡으려고 했다.

펑, 펑, 펑!

네 손에서 빛이 번지며 터져버리자 네 갈래 법칙의 선도 폭발하며 사라져버렸다.

법칙의 선을 터트려버린 후에 중년 남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는 육신을 회복하느라 너무 많은 기운을 써 이제 곧 쓰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쿵!

굉음이 울려 퍼졌다.

석목이 흑백 빛을 뿜으며 미친 듯이 번천곤을 휘둘렀다.

“멸선곤법!”

윙!

흑백 빛이 수 백 리나 되는 흑백 공간을 이루며 중년 남자를 안으로 가둬버렸다.

흑백빛이 뭉쳐져 흑백 쇠사슬을 이루며 남자의 몸을 감싸버렸다.

중년 남자는 안간힘을 다해 허우적댔지만 쇠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자는 신통마저 제압을 당하여 벗어날 수 없었다.

“죽어라!”

석목이 차갑게 말하며 법결을 시전하였다.

쾅!

공간 속에 가득 찬 흑백 빛이 분리되면서 두 맷돌로 갈라져서는 위아래로 중년 남자를 짓눌렀다.

중년 남자는 검은 태양 같은 빛을 뿜어내며 다시 검은 자라로 변신하였다.

남자를 묶고 있던 쇠사슬도 부서져버렸다.

하지만 흑백 맷돌은 마치 거대한 돌처럼 위아래로 자라의 몸을 짓눌렀다.

검은 맷돌은 곧장 자라의 등껍질을 짓눌렀고, 하얀 맷돌은 커다란 기둥 같은 네 발을 눌렀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미천 연합과 천정의 대군은 심신이 심하게 흔들렸다!

검은 자라의 거대한 몸통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눈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그리고 등껍질에 균열이 줄줄이 그어졌고, 네 발은 부서져버렸다.

흑백 맷돌이 다시 빛을 뿜어내며 계속해서 가운데를 짓눌렀다. 그리고 점점 더 빠르게 돌아가면서 섬뜩한 소리를 냈다.

자라는 눈에 광기가 어리더니 주문을 외우자 검은빛이 번쩍이며 검은 화염이 나타나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본원의 힘이 타버리며 기운이 흘러나왔다.

검은 자라가 몸을 꿈틀거리자 위아래에서 짓눌러가던 맷돌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자라는 곧 벗어날 것 같았다.

이때, 자라의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석목이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번천곤에서 금빛이 만 갈래 뿜어져 나왔는데 빛 사이에는 흑백 빛이 섞여있었다.

석목은 싸늘한 눈으로 자라를 바라보며 번천곤에 막강한 힘을 들이붓곤 자라의 머리를 내리쳤다.

탱!

번천곤이 스친 곳에서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울려 퍼지자 굵직하고 하얀 자국이 번쩍이며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한 힘을 흘려보냈다.

자라가 눈에 흰자위를 보이며 입을 크게 벌렸다.

펑!

자라의 입에서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났고, 그 속에서 빛기둥이 뿜어져 나와 곤봉 그림자를 맞이했다.

석목의 눈에서 이채가 스치더니 이어서 번천곤에서 곤봉 그림자가 층층이 뿜어져 나와 검은 빛기둥을 에돌아 자라의 머리를 내리쳤다.

펑, 펑, 펑!

촘촘한 곤봉 그림자가 마치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자라의 머리를 감싼 두꺼운 껍질에 떨어지니 껍질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껍질이 사라지자 자라는 머리가 터져버리면서 핏덩이가 튀었는데 거기엔 조각난 뇌도 섞여있었다.

검은 자라의 머리 없는 시체가 파르르 두어 번 떨리다가 굳어져버리는 동시에 검은 화염도 빠르게 꺼졌다.

흑백 맷돌이 맹렬하게 짓누르자 검은 자라는 시체가 물컹해지더니 순식간에 납작해졌다. 그리고 시체는 이내 부서져 버리며 흑백 빛 속으로 사라졌다.

석목이 법결을 날리자 흑백 공간이 ‘퍽!’ 사라져버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석목은 비틀거리다가 몸을 멈춰 세웠다.

상처로 상처를 맞바꾸는 전술을 쓰느라 원기는 전혀 쓰지 않았지만 진기를 너무 많이 썼다.

하지만 석목에게는 별다른 선택이 없어 정상적인 전투 방식을 사용했더라면 신경 후기인 첫 번째 선장을 절대로 이렇게 빨리 죽일 수 없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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