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59화 (859/916)

859화. 명하지수

쿵!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추선대에서 빛이 번지며 검은 안개가 들끓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백 장 범위 안쪽에 드리웠다. 그리고 무야는 몸통이 검은 안개 속에 묻혀버려 잘 보이지 않았다.

석목의 번천곤이 그대로 검은 안개를 뚫고 지나 빈곳을 내리쳤다.

“석목, 늦었어. 너희는 이제 끝났다.”

미친 듯한 무야의 웃음소리가 검은 안개에서 울려 퍼졌다.

석목은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하늘을 뒤덮을 것 같은 커다란 손바닥으로 앞을 내리쳤다.

손바닥에서 불길이 일더니 호천 성염이 나타나 족히 천 장이나 되는 금색 불바다를 이루며 들끓듯이 검은 안개를 삼켜버렸다.

전장에 있던 미천 연합의 대군과 청란성지의 대군은 이제 막 천정의 패잔병들을 물리치려다가 하늘에 나타난 이변 때문에 전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능이 없는 사령 생물들은 계속 싸움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된 일이지?”

서유금이 눈살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천제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걸까?”

안화가 서유금의 옆에서 이를 부드득 갈며 말했다.

육규종이 소리를 질렀다.

“위쪽 일은 맹주님이 알아서 하실 테니 우리는 우선 천정의 패잔병을 해치웁시다.”

“네!”

서유금을 비롯한 장로들이 곧바로 대답했다.

천정의 대군은 이미 완전히 패배한 상태라 하늘에서 일어난 이변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서른 명 정도 남은 신장들만이 도망가면서 하늘을 한번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반격을 하지는 않았는데 첫 번째 선장마저 전사해버렸으니 천정은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때, 검은 안개에서 금빛이 들끓으며 금색 빛기둥이 이리저리 뒤엉켰다. 그리고 금색 무늬를 그렸는데 무늬의 모양이 추선대와 똑같았다.

거대한 금색 무늬가 나타나자 검은 안개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안으로 뭉치다가 검은 소용돌이로 변하였다. 그리고 검은 안개와 금색 화염이 커다란 교룡 두 마리로 변하여 금색 무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검은 안개와 불바다가 전부 흩어지자 하늘에 찬란한 금빛이 나타났다.

“석두, 저기 봐. 저건 뭐야?”

채아가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금빛 사이에서 금색 기둥이 얽히고설키더니 합쳐져서는 천 장 가까이 되는 금색 건물을 이루었다.

건물 위에는 금빛 기와가 겹겹이 쌓아져 있었는데 가장 높은 건물의 문간 위에는 동방울 같은 눈에 뾰족한 이빨이 자라난 귀신 얼굴이 새겨져 있었고, 이 층 건물의 문간 위에는 기이한 부문들이 수도 없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 있는 문간에는 커다란 편액이 하나 걸려있었는데 그 위에 ‘유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건물 양쪽에는 거대한 기둥이 있었는데 기둥은 금빛 찬란하게 빛났지만 삼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채아는 기둥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두 기둥은 매끈하지 않았고, 흉악한 귀신의 얼굴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또한 얼굴들은 서로 겹쳐 있거나 뒤엉켜 있어 전부 입을 크게 벌리고는 거대한 기운을 뿜으려고 했다.

문 안에는 붉은 광막이 펼쳐져 있었는데 외부와 내부를 다른 두 세계로 갈라놓았다.

석목이 건물을 바라보니 무야가 광막 속에 자리한 거대한 제단 옆에 서서는 웃는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야의 옆에는 신경 해골 사령도 하나 서 있었다.

무야와 해골 뒤의 하늘에는 핏빛 달이 얇게 걸려 있었고, 곧 완전히 사라질 것만 같았다.

“큰일이군! 석목, 빨리 저 자를 막아야 해.”

속승 진인은 제단을 보자 큰소리를 질렀다.

속승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석목은 이미 앞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번천곤을 휘둘러 타오르는 화염을 감싸고는 거대한 금색 문을 내리쳤다.

허공에서 굉음이 일어나자 화염을 감은 번천곤이 공기를 휩쓸어 허공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어서 곤봉이 금색 문의 상공에 마름모꼴 구멍을 만들고는 맹렬하게 아래를 향해 내리쳤다.

쾅!

거대한 금색 문이 격하게 흔들리자 금색 빛 파동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백 리 안에 뜬 구름층이 전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하늘에 떠다니던 수많은 영석들도 막강한 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이어서 금색 건물의 가장 꼭대기에 있던 얼굴이 흉악한 귀신의 두 눈에서 핏빛이 크게 번지더니 입을 찢어질 듯이 크게 벌리며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흉악한 귀신이 괴성을 지르자 굵직한 소리 파동이 귀신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왔다.

엄청난 힘을 머금고 있던 번천곤마저 소리가 불러일으킨 파동에 기세가 줄어들었고, 타오르던 불길도 흔들리면서 어두워졌다.

석목이 깜짝 놀라 법결을 시전하자 번천곤에서 나는 빛이 더 짙어졌다. 그렇게 번천곤의 맹렬한 화염이 다시 들끓으며 앞을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소리 파동 때문에 번천곤의 힘은 순조롭게 시전되지 않았다.

이때, 금색 건물의 이 층 문간에 부문들이 층층이 나타났는데 부문들은 마치 살아 숨 쉬듯이 끊임없이 헤엄치면서 거대한 기둥 두 갈래를 향해 날아갔다.

우우…… 윙윙.

처량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대한 기둥에 빼곡히 붙어있는 귀신의 얼굴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이 꿈틀거렸고, 문기둥에서 벗어나려고 입을 크게 벌리고는 소리를 질러댔다.

하늘에선 귀신들이 날카롭게 울부짖는 곡소리가 끊이질 않아 마치 지옥문이 열려 저승사자가 이 세계에 나타난 것 같았다.

석목을 비롯한 사람들은 기둥과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귀신의 울음소리를 듣자 귀가 먹먹해졌다.

석목과 속승은 안색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채아는 몸을 파르르 떨면서 소리를 질렀다.

“소리가 너무 거슬려!”

이때, 만 갈래 소리 파동이 거대한 금색 문에서 사방팔방으로 퍼지며 수 천 리 안쪽을 드리웠다.

교전을 치르던 연합의 대군과 천정의 대군은 순식간에 귀신 울음소리를 듣고서 혼란에 빠져버렸다.

수련 경지가 낮은 병사들은 기이한 소리를 듣는 순간, 두 눈이 붉게 물들면서 처참하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병사들은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손에 든 무기를 마구 휘두르면서 옆에 서 있던 사람을 거침없이 찔러댔다. 때문에 아무런 방비를 하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어버렸다.

연합의 대군과 천정 대군 모두가 혼란에 빠져버렸다.

안화를 비롯한 신경 강자는 심신이 어지러워 한참 동안 비틀거렸다. 그리고 이유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올라 거침없이 사람을 죽여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다행히도 신경 강자들은 곧장 이성을 되찾았다.

대군 전체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버려 신경 강자들은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이때, 둥그렇고 푸른 광막이 하늘에서부터 펼쳐지면서 순식간에 수십 리 안쪽을 드리워 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을 감쌌다.

그제야 안화는 긴장을 풀었고, 살육을 벌이고픈 욕망이 조금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안화가 주변을 둘러보자 혼란에 빠졌던 대군이 다시 이성을 찾았고, 상황은 순식간에 통제되었다.

“이건…… 속승 진인의 영역.”

육규종이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전부 육규종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색 기둥에 갇힌 귀신들은 여전히 소리를 질러대고 있어 소리 파동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점점 강렬해져서는 속승 진인이 일군 영역의 광막을 내리쳤다.

쿵!

석목이 변신한 백원이 두 팔로 가슴을 두드리며 천지가 흔들릴 정도로 괴성을 질렀다.

금색 소리 파동이 부채 모양으로 펼쳐지면서 기둥으로 몰려가 곧장 쏟아져 나오는 소리 파동을 부숴버렸다.

석목이 내지른 소리는 만 리까지 전해졌고, 순식간에 귀신들이 울부짖는 곡소리를 눌러버렸다!

그러자 번천곤에서 화염이 더 활활 타오르더니 회색빛이 맴돌았다. 그리고 미칠 듯한 폭풍 소용돌이가 말리면서 거대한 금색 기둥으로 향했다.

쿵!

회색 소용돌이 주변의 공기가 끊임없이 부서지면서 검은 균열이 깜박거렸는데 균열은 마치 검은 번개같이 끊임없이 금색 기둥으로 향했다.

* * *

건물 속에서 무야가 어두운 눈빛으로 물었다.

“아직 안됐어?”

신경 사령은 아무 말 없이 눈에 혼화를 몇 번 튀겼다.

무야는 눈이 맑아지더니 몸을 날려 제단 위로 올라갔다.

쾅!

번천곤이 건물을 내리치자 찬란한 빛이 폭발하면서 기둥이 금빛 찬란하게 밝아지다가 사라져버렸다.

그러고 금빛이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붉은빛이 금빛 사이에서 번쩍였다.

쾅, 쾅!

천둥이 울려 퍼지면서 먹구름도 없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연합의 대군과 천정의 대군이 치르던 교전은 드디어 멈췄고,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사령 대군은 오히려 흥분하면서 더욱 미친 듯이 공격을 날렸다.

석목의 분신은 붉은 검을 휘두르며 단번에 코끼리 시체 두 마리의 머리를 잘라버리고는 화염을 날려 시체를 태워버렸다.

또한 분신이 무야의 사령 대군을 거침없이 죽이자 여전히 미쳐 날뛰던 사령들 중 일부도 연나의 사령 대군에게 포위되어 점점 기세가 줄어들었다.

석목의 분신이 다시 검을 거두어들이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늦었어……”

속승 진인이 깊게 숨을 내뱉었다.

속승이 말을 떨어뜨리는 순간, 붉은빛이 점점 커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족히 만 장이나 되는 거대한 틈이 갈라졌다.

쏴아!

붉은 강물이 기세등등하게 쏟아져 나오더니 기온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명하지수였다!

핏빛을 풍기고 있는 명하지수는 마치 피로 물든 강물처럼 하늘에서 쏟아졌고, 붉은 폭포를 이루면서 하늘 멀리 퍼져나갔다.

솨아아!

명하지수가 끊임없이 천정 곳곳으로 흘러갔다.

석목이 변신한 백원은 허공에 서 있었다.

천정의 궁전들이 이동한 이유는 명하지수 때문이라 궁전들이 자리한 위치가 뒤바뀌자 명하지수는 궁전 사이사이를 흘러 다니며 온 천정을 피바다로 물들였다. 그렇게 출렁이는 피바다는 마치 대형 진법 같았다.

명하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핏물이 곳곳으로 흘러가자 천정은 잠깐 사이에 수몰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궁전이 물에 잠겨 지붕만 아슬아슬하게 떠있었고, 물풀처럼 떠다녔다.

연합의 대군은 이미 안화를 비롯한 신경 강자들이 이끄는 가운데 허공에 서 있었다.

쿵!

핏빛 폭포가 여전히 끊임없이 명하지수를 흘려보내자 명하 바다에서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그렇게 파도는 점점 커져서는 간신히 수면 위로 튀어나온 천정의 건물들을 내리쳤다.

핏빛 파도가 줄줄이 밀려가자 마지막으로 남은 백옥 기둥 하나마저 무너져 명하지수 속으로 잠겨버렸다.

회색 하늘도 붉은빛이 감돌기 시작했고, 듬성듬성하게 떠다니던 구름마저 붉게 물들었다. 또한 붉은빛이 점점 짙어지자 구름은 마치 핏물에 적신 솜 같았다.

“대진이 열렸는데 제준은 왜 안 나타나는 걸까요?”

석목이 속승을 보며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속승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순간,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구름에서 붉은 눈꽃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어이구. 큰일이야! 핏빛 눈이 내려! 제준이 또 수작을 부리는 것 같아!”

끊임없는 변화와 마주해 잔뜩 겁을 먹은 채아는 붉은 눈을 보자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얀 구름이 명수가 내뿜는 명기에 침식되어 눈으로 변한 것 같아. 그 속에 담긴 음기엔 한계가 있으니 크게 위험하진 않을 거야.”

석목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채아처럼 걱정하고 있던 사람들은 꽤 많아 연합의 대군 중에 병사들 대부분은 이미 각자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병사들은 영력을 소모하여 붉은 눈을 막아내다가 석목이 하는 말을 듣고는 다시 무기를 거두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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