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60화 (860/916)

860화. 사형제

눈꽃이 채아의 날개에 떨어지자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어 채아는 불쾌한 듯이 몸에 붙은 눈꽃을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어깨를 움츠리며 속승과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속승은 복잡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늘에서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거센 기류가 밀려와 커다란 폭풍 소용돌이를 이루며 석목에게로 향했다.

소용돌이는 거대했고 좁은 부위의 지름이라도 족히 수 십 리는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위쪽에 벌어진 곳은 천 리나 되어 천정의 하늘을 모두 뒤덮을 것만 같았다.

이처럼 막강한 폭풍 소용돌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는데 먼 곳에서 몰려온 게 아니라 마치 공간 균열처럼 석목의 머리 위에 갑자기 나타났다.

이어서 다섯 갈래 청, 적, 황, 금, 남색 영력 흐름이 다섯 방향에서 몰려오며 커다란 소용돌이로 쏟아졌다.

쿵!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영력 파동이 폭포처럼 굉음과 함께 거침없이 쏟아졌다.

“석목, 빨리 도망 가!”

속승 진인이 뒤로 물러나며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이미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영력을 줄여 미천 거원인 몸을 되돌리려 했지만 막강한 영력이 몸으로 계속 쏟아져 빛만 번쩍일 뿐, 몸이 줄어들지 않았다.

속승의 어깨에 서 있던 채아의 두 눈에서 오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천 연합의 대군과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어마어마한 광경과 마주하자 전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이때, 폭풍 소용돌이의 윗부분에서 별하늘이 드러났다.

별하늘에는 수많이 별빛이 번쩍였는데 마치 두려워 떨고 있는 것만 같았다.

별들 사이에 거대한 행성 다섯 개가 나타나 찬란한 빛을 뿜었는데 거대한 영력 흐름은 각각 다섯 행성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 다섯 행성은…… 뭐지?”

안화가 허공에 멍하니 서서는 믿기지 않는 듯이 말했다.

육규종을 비롯한 장로들이 짓는 표정도 안화와 같았다.

“움직이지 않고 뭐하는 거야?”

속승 진인은 이미 채아를 데리고 뒤로 물러나고 있었고, 대군이 제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석두는 어떻게 해?”

채아는 속승의 어깨에 앉아 석목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대진은 이제 막 열렸어. 영력 파동이 온전하지 않으니 우리는 지금 다가갈 수 없어. 대진이 안정된 후에 생각해보자.”

속승 진인은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며 심각하게 말했다.

연합의 대군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질서 있게 움직이며 석목과 소용돌이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속승 진인, 저 행성은……”

조주명이 속승 진인의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저 다섯 행성은 제준이 그동안 모은 영석입니다.”

속승 진인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운석이 바다에 떨어지듯 큰소리가 들리자 막강한 채색 영력 파동이 소용돌이 밑에서 흩어지며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거센 바람이 불어 연합의 대군을 날려버렸다.

다행히 연합의 대군은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밀려나간 파동이 완전히 사라지자 소용돌이 속에 일던 영력은 점차 안정되었고, 기승부리던 소용돌이가 멈추었다.

다섯 갈래 영력 흐름은 하나로 합쳐져 마치 끈적이는 물감처럼 현란한 채색 수묵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수묵화 사이에 다섯 갈래 색이 모여들어 천천히 맴돌며 일그러지다가 커다란 채색 꽃이 되어 펼쳐졌다. 또한 석목이 변신한 거원은 때마침 꽃봉오리 가운데에 있었다.

거원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거원의 주변에 있던 채색 빛기둥 몇 갈래가 밝아졌다. 그리고 기둥은 마치 꽃 봉오리처럼 거원을 안으로 감싸 몸이 꽁꽁 묶여버린 석목은 번천곤마저 시전할 수 없었다.

탱, 탱, 탱!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은 번천곤을 거두어들이고는 주먹을 쥐고 맹렬하게 채색 빛기둥을 내리쳤다. 그러자 빛기둥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희미한 그림자를 흘려보냈다.

쾅!

채색 빛기둥 하나가 밖으로 구부러지면서 곧 부러질 것만 같았다.

석목은 희망을 본 것 같아 눈에 희색을 띄었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 주먹에 회색빛을 감고는 채색 빛기둥을 내리쳤다.

이때, 석목의 몸이 다시 굳어져 주먹마저 그대로 몸 앞에서 멈춰버린 채 움직이지 못했다.

석목의 가슴과 복부에서 다섯 갈래 채색 빛이 밝아졌다. 이어서 천 장이나 되는 다섯 가마가 날아 나왔는데 가마들은 오행 상생을 이루는 위치에서 떠다니며 맴돌았다.

구전현공이 스스로 움직였다!

석목은 멈칫하다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재빠르게 영력을 시전하여 구전현공이 스스로 시전되는 걸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구전현공은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힘을 내뿜었다.

윙, 윙, 윙!

다섯 갈래 빛 가마는 점점 더 빠르게 돌아갔고, 허공에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커다란 소용돌이는 윗부분이 격하게 흔들려 다섯 갈래 거대한 영력 흐름이 몇 배나 더 커져서는 거침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영력 흐름이 곧장 석목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으아!”

영력이 흘러들어가는 순간, 석목이 변신한 거원은 고개를 치켜들고는 고통스럽게 포효했다. 그렇게 외치는 소리 떄문에 하늘마저 심하게 흔들렸고, 명수도 들끓기 시작해 하늘에서 쏟아지던 엄청난 영력도 충격을 받아 멈춰버렸다.

속승은 미천 연합의 대군을 이끌고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동그라미를 이루며 석목을 둘러싼 후에 모든 사람들이 중간에 둘러싸인 석목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빨리 말해 봐. 석두를 어떻게 구할 거야?”

채아는 석목이 내지르는 포효를 듣고는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석목이 걱정되었다.

예전에 채아는 석목이 어떤 궁지에 몰렸든지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리고 석목도 채아가 믿는 대로 늘 무사히 귀환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때문에 채아는 믿음을 잃어 더는 침착할 자신이 없었다.

“대진은 한 번 열리면 멈추게 할 방법이 없어.”

속승은 채아가 하는 말을 듣고서 한숨만 내뱉었다.

그러자 채아는 얼굴이 굳어버렸다.

“맹주님……”

안화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으나 그에게도 어쩔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진과 서유금은 서로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소용돌이 위의 별하늘에서 끊임없이 영력을 쏟아내는 다섯 행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천정과 점점 가까워졌다.

“다섯 영력 행성이 머금고 있는 오행의 힘은 위력이 엄청나지. 게다가 석목의 구전현공은 대성에 이르렀으니 그의 육신은 오행의 영력과 음양의 영력을 담기에 가장 좋은 그릇이 된 셈이야. 아마도 만령현문대진으로 다섯 행성에 담긴 영력이 계속해서 석목의 몸으로 쏟아질 테니 석목은 영력에 갇혀 죽게 될 게야.”

속승이 하늘에 뜬 석목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나요? 이렇게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육규종이 다급하게 물었다.

속승이 복잡한 기색을 드러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쏴아!

수 백 장 높이까지 치솟았던 커다란 파도가 다시 바닥을 힘껏 내리치자 물방울이 사방으로 튕겼다.

이어서 수많은 파도가 마치 서로 키를 재듯이 점점 높게 하늘로 뻗어 나갔고, 끊임없이 명해(冥海)를 내리치자 명해가 기승을 부렸다.

무질서하게 첨벙이던 파도가 다시 천천히 합쳐지며 수 십 리까지 뻗은 물회오리를 이루더니 오행의 영력으로 세워진 기둥과 이어졌다.

양은 위로, 음은 아래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이 드디어 석목이 변신한 거원의 육신으로 몰려들었다.

수많은 빛이 거원의 육신으로 쏟아지자 금색 털이 꼿꼿이 선 채 투명한 빛을 뿜었다.

석목은 온몸에 뚫린 모공이 전부 열리는 것 같았고, 각양각색의 영력이 끊임없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석목이 마주한 오행의 영력은 수많은 채색 영맥으로 변하여 끊임없이 몸 속에서 흘러 다녔다. 그리고 모이고 누적되어 만 장이나 되는 육신을 채색 빛으로 물들였다. 또한 영력이 끊임없이 모이자 석목이 내뿜는 기운도 점점 강해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 광경을 보며 기뻐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로 거칠게 영력을 주입한다면 석목은 막대한 고통과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될 터였다.

“으아!”

석목이 다시 고통스러워 울부짖었다. 그러자 육신을 덮은 근육이 점점 선명해졌고, 심지어 부풀기까지 했다.

얼굴이 고통 때문에 일그러져 꽉 다문 이에서 뿌드득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두 팔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을 보니 석목은 안간힘을 써가며 영력 흐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석목은 이미 대진을 이루는 핵심이 되어 대진 속에 갇혀 절대 벗어날 수 없었다.

그 광경을 본 속승은 소리를 지르며 푸른빛을 뿜어 천 장 가까이 되는 커다란 검을 뭉쳤다.

푸르고 거대한 검이 나타난 순간, 청년의 모습이던 속승은 머리가 은발로 변하더니 중년으로 변신했다.

검신에는 엄지만한 푸른 부문들이 어렴풋이 박혀 있었는데 그건 마치 작고 푸른 사람들 같았고, 검에서는 막강한 법칙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칙!

푸르고 커다란 검이 속승을 감싸고는 빛으로 변하여 석목의 주변을 감싼 진법을 내리쳤다.

이때, 석목의 옆에서 파동이 일더니 틈이 하나 벌어져 그 속에서 금빛을 감고 있는 희미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순간, 찬란한 금빛이 균열에서 쏟아졌는데 마치 눈부신 태양 같아 맨 눈으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셨다.

먼 곳에서도 막강한 위압감이 흘러나오는 걸 느낄 수 있어 대군은 모두 안색이 굳어버렸다.

육규종을 비롯한 신경 강자들은 직감했다.

제준이었다!

제준은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촘촘한 금빛 그림자가 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빛 그림자는 전부 금색의 부적이라 허공에서 맴돌며 얽히고설키다가 잠깐 사이에 거북이 등껍질 모양인 금색 대진을 이루어 석목의 앞을 막았다.

쾅!

푸른 검과 금빛 대진이 부딪치자 굉음이 울려 퍼져 눈에 보이는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가면서 허공에 수많은 균열을 찢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백 리 안쪽은 모두 바닥이 뒤집히면서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기세등등하던 푸른 검에서 푸른빛이 튕겨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속승 진인은 푸르고 거대한 검에서 튀어나와 빛을 감고는 백 장 멀리까지 밀려나서야 간신히 몸을 멈춰 세웠다.

빛이 사라지자 속승은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는 뒤로 몇 걸음 더 밀려나며 피를 뿜어냈다. 또한 속승의 눈가에 파인 주름이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제준은 살짝 흔들리는 듯하다가 이내 멈춰섰다. 그리고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금색 대진을 두어 번 번쩍이고는 사라져버렸다.

두 사람이 갖춘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장현 사형, 아니, 이제는 속승이라 불러야하나? 후후, 천 년 만이군요. 풍채가 그대로이니 축하할 일입니다.”

제준이 속승을 바라보며 배를 끌어안고는 웃었다.

“천 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제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

속승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고개를 흔들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정신? 정신을 차렸지요. 아, 전부 사형 덕분입니다. 천 년 전에 명하지수를 내주지 않으셔서 저도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생각했지 뭡니까?”

제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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