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1화. 구하지 않는다
“천도윤회, 만물엔 전부 하늘의 뜻이 숨어있지. 네놈이 천하의 생령들이 죽고 사는 건 생각도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천지를 뒤흔들려고 하니, 그 대가가 두렵지도 않느냐?”
속승이 눈을 부릅뜨고는 제준을 향해 호통을 쳤다.
“사형, 천 년이나 지났는데 고집불통인 성격은 여전하군요! 천도윤회? 내가 바로 천하 생령들의 하늘이오! 현계지문을 열 수만 있다면 생령들이 희생되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오.”
제준이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사존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을 벌써 잊었는가 보군.”
속승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하, 다 소용없는 짓이오! 천 년만입니다. 나는 드디어 성공했고, 대진은 이제 열렸으니 아무것도 멈출 수 없죠. 사형, 이제 와서 뭘 어찌하겠습니까?”
제준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용납 못한다!”
속승이 소리를 지르며 다시 푸른빛을 뿜었다.
쉭, 쉭, 쉭!
푸른 비검들이 속승의 몸속에서 날아 나왔다. 그리고 족히 천 자루나 되는 비검들이 속승의 주변에서 맴돌며 커다란 검진을 이루었다.
비검들에는 현묘한 푸른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게 영석이 박힌 영보급 비검들이었다.
속승이 주문을 외우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다.
푸른 검진에서 ‘윙윙’ 소리가 울리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푸른 검기가 모여들면서 연꽃으로 변하여 제준에게로 날아갔다.
허공에서 날아가는 푸른빛은 마치 별똥별과도 같았다.
제준이 실눈을 떴다가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속승 사형, 사형의 청련검진(青蓮劍陣)은 위력이 예전보다 많이 강력해졌습니다. 허나 이 검진으로 나를 막겠다니, 사제를 너무 업신여기는 게 아닌지요!”
거칠게 웃고 있던 제준이 두 손을 흔들며 눈에 금빛을 뿜었다.
윙!
금색 도장 법보가 제준의 몸에서 날아 나왔는데 도장 법보는 매우 낡아 보였지만 놀라운 영압을 풍기고 있는 게 번천곤과 비슷한 등급인 법보였다.
금색 도장이 빙글빙글 돌면서 만 갈래 금빛을 뿜어 작은 산을 이루며 앞을 가로막았다.
푸른색연꽃은 금빛에 닿는 순간, ‘칙, 칙!’ 소리를 내며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속승이 계속해서 법결을 시전했으나 푸른 연꽃은 여전히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속승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입을 벌려 연꽃으로 푸른빛을 한 갈래 날렸고, 손을 둥글게 휘저으면서 법결을 날렸다.
푸른 연꽃에서 빛이 번지더니 연꽃잎이 활짝 펴졌다.
칙, 칙, 칙!
날카로운 검의 기운이 푸른색 연꽃에서 폭발하며 금색 도장을 내리쳤다.
제준이 냉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금색 도장에서 뿜어져 나오던 금빛이 다시 뒤로 말려 들어가 금색 광막을 이루었는데 빛이 번쩍이는 광막은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때문에 검의 기운이 광막을 힘껏 내리쳐도 기껏 불꽃만 튀길 뿐, 본체는 흔들리지도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도장에서 흘러나온 금빛 파동이 오히려 푸른 연꽃에서 나는 빛을 묻어버렸다.
속승은 얼굴이 더 초췌하게 늙어갔다.
안색은 점점 굳었고, 눈에 초조한 기색이 드러났다.
무야는 허공에 뜬 붉은빛에 서서 모든 상황을 내려다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면서 한 손을 들어 붉은빛을 향해 법결을 날렸다.
붉은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명수는 더욱 굵어졌고, 계속해서 천정 곳곳으로 흘러갔다.
만령현문대진이 끊임없이 돌아가며 찬란한 빛을 뿜어내 온 천하에 드리웠다.
석목이 변신한 거원은 대진 가운데에 서 있어 그는 밖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빤히 보고 있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석목은 온 힘을 다해 몸속에 흐르는 진기를 시전하여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자신을 통제하는 힘이 점점 강력해져 석목은 마치 힘없는 개미와도 같았다.
석목이 쓴웃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더는 쓸데없이 힘을 빼지 않고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이때, 먼 곳에서 빛이 반짝였다.
칠색 빛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연나……”
칠색 빛이 사라지고 연나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곧장 무야를 공격했다.
연나는 두 눈에서 빛을 반짝였고, 살의가 하늘을 찔렀다. 그렇게 연나가 손을 흔들자 칠보묘수의 허상 두 갈래가 날아나가 천 장이나 되는 칠색 검영으로 변하여 무야를 공격해 거대한 검으로 마치 하늘을 갈라놓을 것만 같았다.
칙, 칙!
날카로운 소리가 칠색 검영에서 흘러나왔으며 검이 스친 하늘에 수많은 균열이 그어졌다.
연나의 속도가 너무 빨라 무야는 깜짝 놀랐다.
무야는 명하를 조종하길 멈추고는 뒤로 물러나며 손을 흔들었다.
검은 석대 법보 하나가 날아 나왔다. 그리고 추선대는 수 십 배나 불어나 작은 산처럼 커져 무야의 앞을 가로막았다.
칠색 검영 두 갈래가 추선대를 내리쳤다!
쾅!
추선대가 격하게 흔들리더니 겉면에서 흐르던 검은빛이 전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쩍, 쩍!’ 소리와 함께 굵직한 균열이 두 갈래 갈라지면서 튕겨져 날아가 버렸다.
무야의 몸이 흔들리며 마찬가지로 뒤로 밀려나 버렸다. 그렇게 날아간 무야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린 게 원기가 크게 상한 것 같았다.
허공에서 빛이 반짝이며 연나가 다시 무야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칠보묘수에 빛을 드리우자 나뭇가지 사이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와 수많은 부문들을 감고는 맹렬하게 내리쳤다.
칠색 빛기둥이 하늘에서 쏟아지며 놀라운 영력과 법칙의 힘이 무야에게로 날아갔다.
빛기둥이 떨어지기도 전에 숨이 막히는 압박이 몰려왔다.
무야가 겁에 질린 표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무야가 갖춘 실력은 연나보다 한참 뒤떨어졌기에 다른 반격을 하지는 못하고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슥!
이때, 회색 그림자 하나가 무야의 옆에 나타났는데 그건 바로 신경 후기에 이른 사령 해골이었다.
사령 해골은 눈에서 혼화를 번쩍이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로 중얼대는 게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 같았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해골의 입에서 흘러나오더니 눈앞에 크기가 수 십 장에 이르는 검은 뼈방패가 나타났다.
뼈방패에는 귀신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는데 매우 생생하여 곧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또한 삼엄한 기운이 뼈 방패에서 맴돌며 섬뜩한 기운을 자아냈다.
칠색 빛기둥은 가볍게 검은 기운을 뚫어버렸다.
그러자 뼈방패에 새겨진 귀신의 얼굴이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였고, 명하지수에서 굵직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와 뼈방패로 흘러들어갔다.
귀신의 얼굴은 입을 크게 벌리고는 핏빛을 뿜어냈다. 그런데 핏빛은 칠색 빛기둥 보다 두 배나 더 커져 끝없는 음의 기운을 내뿜으며 공기를 얼음덩어리로 얼려버렸다.
두 갈래 기둥이 부딪치면서 굉음과 함께 파동이 사방으로 퍼졌다.
핏빛 기둥이 더 굵었지만 위력은 칠보묘수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 곧바로 부서져 버렸다.
쩌걱!
칠색 빛기둥이 핏빛을 날려버렸고, 곧장 뼈방패를 내리쳤다. 그러자 뼈방패에도 균열이 그어지더니 이내 부서져 버렸다.
하지만 뼈방패는 이미 무야와 해골 사령에게 충분한 시간을 벌어다 줘 그들은 뒤로 물러나 칠색 빛기둥을 피해 멀리 날아갔다.
“흥!”
연나가 콧방귀를 뀌며 몸에 빛을 크게 드리웠다. 그러자 칠색 영역 하나가 펼쳐지면서 주변 수 백 장 안쪽을 드리워 무야와 해골 사령을 가둬버렸다.
* * *
무야와 해골 사령은 순식간에 몸이 묵직해지면서 마치 산에 짓눌린 듯이 움직일 수 없었다.
연나가 낮게 소리를 질렀다.
칠보묘수에서 빛이 번지며 튕겨져 날아가 허공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해골 사령 앞쪽 허공이 번쩍이며 칠보묘수가 날아 나와 곧장 해골의 가슴을 찔러버렸다.
하지만 해골 사령은 신경 후기 경지라 연나의 영력이라고 해도 곧바로 제압당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칠보묘수가 해골의 몸통을 뚫어버리려는 순간, 해골 사령은 칠보묘수를 덥석 잡았다.
그리고 해골은 몸에 검은빛을 번지며 검은 영역을 펼쳤다. 그러자 수많은 해골 환영이 검은 영역에서 귀신이 우는 곡소리를 내며 칠색 영역으로부터 침식되는 걸 막았다.
둘은 한참 동안 대치했다.
연나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스치더니 그녀가 냉소를 지으며 주문을 외웠다.
칠색 부문이 영역 곳곳에서 날아 나와 머리통만한 빛나는 칠색 구체로 변하여 찬란하게 튕겼다.
강렬한 법칙 파동이 칠색 구체에서 흘러나왔다.
연나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자 빛나는 칠색 구체가 날아나가 칠보묘수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칠보묘수에서 빛이 번지면서 찬란한 빛을 뿜는 것이 거의 모든 것들을 묻어버릴 것만 같았다.
사령 해골과 무야는 그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찬란한 빛 속에서 칠보묘수는 드디어 사령 해골을 짓눌러버리고는 해골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사령 해골은 혼화가 급속도로 흔들리면서 안간힘을 다해 막아내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쩍, 쩍!
해골 사령의 몸통에 수많은 균열이 생기더니 거침없이 갈라졌다. 그렇게 부서진 뼈가 떨어지자 해골이 내던 빛도 점점 어두워졌다.
옆에 있던 무야는 그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하지만 무야가 갖춘 실력으로는 절대로 끼어들 수 없었다.
“제준 어르신, 도와주십시오!”
무야가 고개를 돌려 속승과 격전을 치르고 있는 제준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제준은 고개를 돌려 무야를 한 번 쳐다봤다가 다시 연나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제준은 마치 무야가 도와달라고 외치는 소릴 듣지 못한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야는 끝없는 배신감이 몰려와 얼굴이 굳어버렸다.
이때, 연나가 두 손을 휘두르자 칠색 영역에서 수많은 칠색 화염이 나타나 활활 타올랐다.
칠색 화염이 해골 사령의 몸에서 타오르자 검은 영역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무야는 칠색 화염에 드리워진 채 다급하게 추선대를 소환했다.
추선대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검은빛이 뿜어져 나와 보호막을 이루면서 칠색 화염이 다가오는 걸 막았다.
“제준, 뭐하는 거야? 명수의 힘을 빌려주면 현계지문을 열었을 때, 나를 명계의 왕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잖아! 배은망덕한 놈아!”
무야가 소리를 질렀다.
“명계의 왕이 되려면 실력이 있어야지. 살아남으면 내가 네 소원을 들어주마.”
제준이 담담하게 말하고는 무야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금색 도장을 조종하며 속승과 격전을 치렀다.
동시에 제준은 천천히 법결을 날리며 만령현문대진을 시전했다.
그 말을 들은 무야는 얼굴에 참담한 기색이 스쳤다.
연나는 주변 상황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묶여있는 석목도 쳐다보지 않고는 오로지 사령 해골과 무야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칠보묘수가 천천히 사령 해골의 몸속으로 찔러 들어가자 사령 해골은 곧 터져버릴 것 같았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연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내키지 않는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리고 한 손을 흔들자 영역이 가볍게 흔들려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칠색 부문이 나타나 칠보묘수로 흘러 들어갔다.
칠보묘수가 빠르게 불어나더니 단 몇 번 호흡을 할 동안 거대한 칠색 나무로 변하였다. 그리고 나뭇가지에서 꽃봉오리가 튀어나오더니 분홍색 꽃이 활짝 피기 시작했다.
연나가 손가락을 굽히자 분홍색 꽃잎이 비처럼 쏟아져 사령 해골을 감싸고는 빠르게 뭉갰다.
사령 해골은 이미 마지막 숨만 남기고 있었기에 더는 저항을 할 힘이 없어 검은 영역과 함께 터져버렸다.
꽃잎은 마치 단단한 무기처럼 가볍게 사령 해골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사령 해골은 혼화도 빠져나오지 못한 채 함께 사라졌다.
연나는 일전에 사령 해골과 싸운 적이 있었는데 사령 생물들의 힘이 더 약해진 것 같아 눈에 기이한 빛이 스쳤다. 과연 해골은 단 두어 번 공격을 받고는 죽어버렸다.
하지만 어찌됐든 연나에게는 좋은 일이니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다시 무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연나의 눈에서 살의가 더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