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64화 (864/916)

864화. 열 번째 단계

하늘에 걸린 영석으로 이루어진 다섯 행성에서는 여전히 끊임없이 영력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행성 겉면에 갈라진 균열은 점점 커졌고, 부피 또한 눈에 띄는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오행의 영력은 두 배나 빨라진 속도로 들끓었고, 다섯 갈래 빛기둥으로 변하여 석목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석목이 낮게 소리를 지르자 수축된 얼굴 근육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이번 오행의 영력이 주는 충격은 이전보다 훨씬 맹렬했는데 석목의 구전현공이 다시 한 번 미친 듯이 시전되자 육신은 점점 부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은 다시 붉은 공으로 변하였다.

석목은 더는 저항하려고 하지 않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몸속에 일어나는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펑!

석목의 육신이 끝까지 다다르자 또다시 터져버려 혈무가 되어 흩날렸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시 깜짝 놀랐다.

석목은 육신이 터져버리는 순간, 또 현묘한 무엇인가를 한 줄기 깨우쳤다.

석목은 미리 준비하여 스쳐 지나는 깨우침을 붙잡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석목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불사신의 현묘한 이치를 깨우치면서 육신을 뭉쳤다.

오행의 영력이 계속해서 몰려오자 석목의 육신은 또다시 부풀기 시작했고, 석목이 눈을 감고는 차분하게 심신을 가라앉히자 마음이 전례 없이 편안해졌다.

석목은 제준에게 잡혀 진안으로 된 게 더는 원망스럽지 않았으며 심지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상황은 석목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여러 번 파멸되고 회생하길 겪으면서 석목은 더 넓은 세상 속의 온전한 경계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만령현문대진은 점점 강대해져 뿜어내는 빛이 이미 온 천정에 드리웠다.

천정이 격하게 흔들렸고, 바닥 또한 녹으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수많은 궁전들만 하늘에서 떠다녔다.

하늘에 걸린 다섯 영석 행성이 내뿜는 화염이 점점 더 왕성해지지자 석목의 몸속으로 쏟아지는 영력 또한 속도가 열 배나 더 빨라졌다.

펑, 펑, 펑!

석목은 더 빠른 속도로 폭발하고 회생하기를 반복했다.

갈기갈기 찢기고 부서지면서 석목의 마음속은 오히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해져 마치 단번에 만 년을 살아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펑!

석목의 육신이 또 터져버렸다.

육신이 터지는 순간, 현묘한 의념이 석목의 머릿속에서 흘러 다녔다.

“그렇군! 그런 거였어! 하하하! 드디어 알아냈어!”

석목이 큰소리로 웃었다.

석목의 머리는 전례 없이 맑아졌는데 드디어 그는 더 높은 경계로 오를 열쇠를 거머쥐게 되었다.

석목은 두 눈에 금빛을 뿜으면서 진기를 끌어 모았다.

구전현공 오행의 힘, 음양의 힘은 이미 서로 합쳐져서는 오행 본원의 힘과 음양 혼돈의 힘으로 변하였다.

본원의 힘과 혼돈의 힘이 합쳐졌다.

석목의 가슴이 벅차오르던 때,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게 바뀌었다. 과연 여긴 천정이 아니라 알록달록한 공간 속이었다.

“여긴 어디지? 또 꿈인가……”

석목이 주변을 둘러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광경은 그간 꿈속으로 들어갔을 때 받았던 느낌과 매우 흡사했지만, 또 많은 부분이 달랐다.

“좋아, 아주 좋아.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어.”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희미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눈앞에 선 사람은 희미하니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고, 두 눈만 어렴풋이 보였는데 눈빛에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

“누구세요?”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지. 중요한 건 네가 드디어 구전현공에 담긴 깊은 뜻을 깨우쳤다는 거란다.”

희미한 그림자가 말했다.

“깊은 뜻이요? 그게 무엇인가요? 아홉 번째 단계보다 더 높은 단계가 있습니까?”

석목이 멈칫하며 물었다.

“그래,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 위에는 전설로만 내려오는 열 번째 단계가 있단다. 네가 열 번째 단계를 수련할 수만 있다면 제준과 싸울 수 있게 될 테지.”

희미한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열 번째 단계는 뭡니까?”

석목이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아홉 번째 단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희미한 그림자는 석목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는 오히려 되물었다.

“첫 번째 단계는 지양, 두 번째 단계는 지음, 세 번째 단계는 음양합일, 즉 오행을 넓혀 천지를 알게 되는 단계지요. 그리고 네 번째 단계부터 여덟 번째 단계는 오행의 도를 깨우치고 수련하여 근본을 찾는 것이며, 아홉 번째 단계는 오행합일입니다. 순수한 진리를 되찾아 구전현공이 대성에 이르면 천지가 조화를 이루어 일월이 공존하는 겁니다.”

석목이 답했다.

“옳구나. 구전현공이 대성에 이르면 천지의 도법을 깨우치게 되고 지존에 이르게 되지. 하지만 제준이 이미 이 세계를 통치하고 있으니 지존이 된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희미한 그림자가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심장이 쿵 내려앉더니 순간 무엇인가를 깨우친 것 같았지만 또 잘 알지 못했다.

“낡은 걸 물리치지 않으면 새로운 걸 세울 수 없는 법이야. 새로운 세상을 이루려면 낡은 것들을 반드시 물리쳐야 해. 다시 배치를 하면 이미 이뤄진 것들을 무너트릴 수 있지.”

희미한 그림자는 그리 말을 하며 손가락으로 가볍게 석목의 미간을 짚었다.

석목은 멈칫했다.

상대의 손가락은 매우 느리게 다가오는 것 같았지만 석목은 그 손을 피할 수 없었다.

쾅!

석목은 머릿속이 한참 동안 들끓었는데 그림자의 손가락이 마치 현묘한 깨우침처럼 석목의 머릿속으로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희미했던 깨우침이 다시 뚜렷해지자 석목의 눈앞에서 하얀빛이 펼쳐지면서 문이 하나 나타났다. 그렇게 석목이 문을 밀자 온전하고 새로운 경계가 나타났다.

이때, 희미한 그림자가 살짝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빛을 번쩍이며 천천히 사라져버렸다.

* * *

천정의 허공에 걸려 있던 다섯 행성은 원래 크기에 비하면 삼 할 정도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오행 영력을 쏟아내며 계속해서 석목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석목의 육신은 계속해서 폭발하고 회생되길 반복했다.

이때, 온 천정은 이미 만령현문대진에서 나는 빛으로 드리워졌으며 뭉근하고 막강한 위압이 하늘에서 뿜어져 나와 연합의 대군을 짓눌러 수련 경지가 약한 자들은 제대로 서기도 어려웠다.

천정의 대군과 미천 연합은 여전히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러나 만령현문대진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천정의 대군은 오히려 공격을 날리지 못해 연합의 대군은 천정의 대군에게 둘러싸였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한편, 속승과 연나, 그리고 제준이 치르는 격전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제준은 몸에 오색 전투 갑옷을 두르고 있었으며 갑옷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화려한 빛과 방대한 영압을 흘려보냈다.

전투 갑옷에 담긴 힘은 번천곤과 금색 도장이 지닌 위력과 엇비슷했다.

금색 도장은 작은 산만큼 커져서는 금색 부문들을 날리며 두터운 위압을 풍겼다.

도장에서 금빛이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번쩍일 때마다 실존하는 듯한 도장 허상이 날아 나와 속승과 연나를 공격했다.

제준은 손에 은빛 찬란한 창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창신에서 빛이 번쩍이는 게 마치 밤하늘에 뜬 별과 같았다.

희귀한 영보인 창을 휘두르자 은색 창 그림자 수백 갈래가 금색 도장 허상과 함께 하늘을 뒤덮으며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제준의 막강한 공세 앞에서도 속승과 연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속승은 푸른 화염을 활활 태우며 육신을 몇 배나 불린 채 화염 거인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였다.

속승은 조금 전보다 더 늙었으나 산과 바다와 같은 막강한 위압이 속승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물론 속승의 기운은 제준이 내뿜는 기운만큼은 아니었지만 매우 단단한 기운이었다.

속승은 두 손을 흔들며 푸른 화염 손을 날렸다.

평범해 보이는 푸른 화염은 방대한 위력을 풍기고 있어 금색 도장 허상과 은색 창 그림자는 푸른 화염에 닿는 순간, 전부 한 줌의 재로 변하였다.

속승과 비교했을 때, 연나는 매우 단순해 그녀가 시전하는 공법이나 법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칠보묘수는 이미 천 장이나 되는 커다란 칠색 나무로 변하여 연나의 앞에 우뚝 선 채 굵직한 나무뿌리를 땅 속에 박아놓았다.

연나는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주문을 외우면서 끊임없이 법결을 날렸다.

칠보묘수 위에 수많은 나뭇잎이 자라났으며 나뭇가지 일곱 갈래는 마치 살아 있는 촉수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속승이 미처 막지 못한 은빛 창 그림자를 전부 막았다.

속승은 눈에 사나운 빛이 스치더니 고개를 돌려 연나를 바라보았다.

연나는 알아차릴 수 없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을 흔들며 법결을 짚었다.

칠보묘수가 격하게 흔들리면서 칠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칠색 나무에서 자라난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더니 다시 튕겨져 날아가면서 하늘을 찢으며 뒤덮듯이 제준에게로 날아갔다.

떨어지는 낙엽마다 눈부신 칠색 빛을 뿜고 있었다.

“흥, 개수작을 부리는군.”

제준이 코웃음을 치며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한 손가락으로 금색 도장을 짚었다.

금색 도장에서 바람 소리가 울려 퍼지자 무늬가 뚜렷해지면서 금빛이 흔들렸다.

금색 파동이 도장에서 흘러나와 화염을 감는 걸 보니 조금 전에 시전한 비술이었다.

칙, 칙, 칙!

흩날리는 칠색 낙엽은 제준의 옆으로 다가가기도 전에 전부 금색 파동에 밀려나 타버렸다.

제준이 웃는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그의 등 뒤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속승이 변신한 푸른 화염 거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화염 거인은 거침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속승의 몸에서 타오르던 푸른 화염이 전부 팔로 모여들며 푸른 화룡으로 변하여 포효하면서 제준을 덮쳤다.

푸른 화룡에게서 티 없이 순수한 푸른빛이 맴돌았는데 빛 속에서는 수많은 부문들이 튀었고, 강렬한 법칙의 파동도 흘러나왔다.

이전과 달리 이 법칙 파동은 원만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푸른 부문들은 아주 현묘한 규칙을 따라 움직였다.

제준이 번개처럼 돌아서더니 푸른 화룡이 덮쳐오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좋아했다.

그리고 제준은 입을 크게 벌리고는 금색 화염을 뿜었다.

금색 화염은 바람을 타고 불어났고, 순식간에 금색 불바다로 변하여 화룡의 앞을 가로막았다.

금색 화염이 놀랍도록 뜨거운 기운을 풍기자 허공이 타버리더니 칠흑 같은 공간 균열이 나타났다.

속승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차분하게 법결을 날렸다.

푸른 화룡은 부들부들 떨면서 불바다로 금색 법칙 부문을 날렸다.

금색 불바다는 마치 천적을 만나기라도 한 듯 미친 듯이 일렁였다. 그리고 모든 금색 화염은 푸른 화룡으로 스며들었다.

푸른 화룡이 푸른빛과 금빛을 띠는 화룡으로 변하더니 몸이 몇 배나 불어나 강렬한 법칙의 파동을 풍겼다.

하지만 이번에 풍기는 법칙의 힘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푸른 법칙의 힘이었고, 다른 하나는 금빛 화염에 담긴 법칙의 힘이었다.

그 광경을 보자 제준은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두 가지 색을 띤 화룡이 급속도로 날아와 제준의 몸통을 내리쳤다.

윙!

제준이 두르고 있던 오색 전투 갑옷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순식간에 보호막 다섯 겹으로 변하였다.

갑옷에 드리운 보호막은 매우 얇아 보였지만 그 위에 법칙의 무늬가 줄줄이 그어져 있어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기운이 갑옷에서 흘러나왔다.

두 가지 색을 띤 화룡이 광막에 부딪치자 ‘칙, 칙!’ 소리와 함께 가장 밖에 있던 푸른 보호막과 금색 보호막을 부숴버렸다. 하지만 화룡은 세 번째 보호막에 부딪치는 순간 멈춰버렸다.

제준은 그제야 긴장을 풀더니 냉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윙!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고, 금색 도장이 두 가지 색을 띤 화룡을 내리쳤다.

그러자 화룡이 울부짖으며 터져버리더니 수많은 푸른빛과 금빛 화염으로 변하여 흩어졌다.

속승의 몸에서 푸른빛이 번쩍였지만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리고 꼿꼿하게 서 있던 몸마저 비틀거렸다.

이어 제준의 눈에 싸늘한 빛이 스치더니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금색 도장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마치 커다란 금색 산처럼 속승에게로 날아갔다.

이때, 빛을 번쩍이며 칠색 영역이 다가와 단번에 제준에게 드리웠다.

제준이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더니 영역의 힘에 제압을 당하여 마치 진흙탕 속에 빠진 것마냥 굼뜨게 움직였다. 그리고 금색 도장 또한 속도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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