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5화. 진정한 신의 육신
칠색 영역 속에서 연나가 나타나 어두운 얼굴로 주문을 외웠다.
속승은 그제야 한숨 돌리며 단약을 삼키더니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광경을 본 제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고작 영역 하나로 나를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단순하긴!”
제준이 콧방귀를 뀌며 오색 방패를 거두어들였다.
이어서 법결을 바꿔 오색 갑옷에 찬란한 빛을 되감았다.
제준이 빠르게 법결을 날리자 오색 빛이 커다란 손 다섯 개로 변하여 칠색 영역을 내리쳤다.
금색 도장 법보는 몇 배나 밝아진 빛을 뿜어내면서 칠색 영역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연나는 칠색 영역이 격하게 흔들리며 곧 터져버릴 것 같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때. 갑자기 칠색 빛을 내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나타나 칠색 영역 속에 꽂혔다.
칠보묘수는 땅 속 깊이까지 뿌리를 내려 이미 수 백 장이나 자라나 있는데다가 굵직한 나뭇가지 또한 끊임없이 하늘로 뻗었다.
칠보묘수는 만령현문대진을 이루는 영력 줄기를 강제로 빨아들여 풍성한 영력을 머금고 있었고, 순간 칠보묘수에 새겨진 무늬에서 뚜렷하고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칠색 빛이 영역 속으로 스며들자 영역이 순식간에 안정되었고, 제준의 안색이 바뀌었다.
연나가 긴장을 풀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칠보묘수의 나뭇가지 일곱 갈래가 번개처럼 자라나 살아있는 촉수처럼 영리하게 뻗어 나갔다.
칙, 칙, 칙!
나뭇가지 다섯 갈래가 정확하게 제준의 커다란 손을 뚫어버리자 빛으로 이루어진 제준의 손바닥은 곧장 터져버렸다.
또 다른 나뭇가지 두 줄기는 제준의 몸을 묶어버렸고, 이어 나무줄기는 금색 도장을 감았다.
“가소롭군!”
제준은 몸이 묶인 채 큰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오색 빛을 뿜어내자 막강한 힘이 제준의 몸에서 쏟아져 나왔다.
칠보묘수가 격하게 흔들리면서 제준을 묶은 나뭇가지에 줄줄이 균열이 생기며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에 연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빠르게 주문을 외우면서 칠보묘수를 연이어 흔들었다.
땅에서부터 방대한 영력이 피어올라 영역과 칠보묘수의 위력을 키웠지만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해 나뭇가지에 갈라진 균열이 점점 커지면서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때, 제준의 등 뒤쪽 허공에서 속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속승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 기운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속승은 완벽하게 회복한 것 같아도 머리카락은 전부 하얗게 변했고, 얼굴도 많이 늙어있었다.
속승은 눈에 차가운 빛을 반짝이며 한 손을 들어 제준의 등 뒤를 짚었다.
퍽!
속승의 팔에서 눈부신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자 푸른빛은 금빛으로 변했다가 다시 칠흑 같은 검은빛으로 변하였다.
세 갈래 빛에서 막강한 법칙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속승은 주문을 외우며 한 손으로 법결을 짚었다.
퍽!
세 가지 빛이 밀려나가며 다시 세 가지 색깔을 띠는 문신 같은 무늬로 변하더니 제준의 등 뒤를 짚었던 손을 통해 나타났다.
세 가지 법칙의 힘이 기이하게 합쳐지자 유유한 회색빛이 속승의 온 팔을 뒤덮었다.
퍽!
속승의 손이 제준의 몸통을 뚫고는 가슴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속승의 손에는 피범벅이 된 심장이 놓여 쿵쿵 뛰고 있었다.
오색 갑옷에도 구멍이 뚫렸다가 속승으로부터 공격을 받자 종잇장처럼 찢어져 버렸다.
펑!
세 갈래 청, 금, 흑색 화염이 속승의 팔에서 피어오르면서 제준을 안으로 묻어버렸다.
속승이 뒤로 물러났지만 팔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얗게 질린 속승의 얼굴에는 짙은 주름이 몇 줄 더 생겼고, 등마저 더 구부러져 마치 순식간에 스무 살은 더 늙은 것 같아 마치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된 것 같았다.
속승은 힘이 빠져 기진맥진했지만 세 가지 화염 사이에 갇힌 제준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속승은 이 일격을 날리느라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전부 태워버리며 세 가지 법칙의 힘을 합치자 가히 최강의 일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준이 갖춘 실력은 속승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방심을 한 탓에 공격을 당했다. 게다가 속승이 날린 일격은 신경 정상이라 해도 죽어 버렸을 터였다.
세 가지 화염이 활활 타오르자 제준의 몸통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사라져버렸다.
은색 창 법보도 한 줌의 재로 변하였다.
속승이 태운 세 가지 화염은 빠르게 사라졌다.
연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뱉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칠색 영역을 거두어 들인 후에 다시 손을 흔들자 칠보묘수가 바닥에서 날아 나와 연나의 손으로 날아갔다.
금색 도장이 허공에서 어두운 빛을 내뿜고 있었지만 연나는 그 법보를 신경 쓰지 않았다.
“사형 덕분에 살았네요.”
연나는 속승의 옆으로 날아가 공손하게 말했다. 그리고 속승의 몸으로 투명한 빛을 날렸다.
그러자 속승은 기운이 안정되었고, 그가 단약을 몇 알 더 삼키자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
“네가 제준을 묶어두었기에 이 일격을 날릴 수 있었지.”
속승이 웃으며 대답했다.
연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준이 죽었으니 이제 만령현문대진을 막아서 석목을 구해야……”
속승이 멀리 있는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후후, 이렇게 쉽게 끝나리라 생각하느냐? 사형, 천 년이 지났는데도 변함이 없군. 여전히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아나?”
잔뜩 경멸을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
속승과 연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리더니 곧바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허공에서 파동이 일며 영기가 들끓다가 순식간에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희미한 그림자가 뒷짐을 진 채로 서 있었는데 마치 귀신의 환영 같았다.
영력이 소용돌이 속으로 흘러들어 가자 희미한 그림자는 점차 뚜렷해졌다. 잠시 후 소용돌이에는 제준이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속승과 연나의 안색이 순간 얼어버리자 제준이 주문을 외우면서 한 손을 흔들었다.
후륵!
제준이 오색 화염을 뿜어내며 막강한 기운을 풍겼다.
제준은 이 세상사람 같지 않았는데 흘러나오던 기운이 그의 머리에서부터 발끝으로 흐르다가 흩어져 버렸다.
그러자 희미한 그림자가 순식간에 뚜렷해지더니 입고 있는 옷가지마저 깨끗하고 반듯한 게 어떤 상처를 입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갑옷을 육신처럼 쓸 수 있다니!”
속승은 어안이 벙벙해 싸늘하게 말했다.
“하하, 역시 내 사형과 사매는 똑똑해. 내 보물 갑옷은 오행의 힘을 막을 수 있고, 음양의 힘으로도 녹일 수 없지. 이 세계에서는 아무도 내 갑옷을 망가뜨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갑옷을 만드느라 내가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지 아나? 이제 갑옷은 당신들과 함께 묻었다고 생각하지.”
제준이 담담하게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오색 빛이 제준의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왔다.
쿵!
백 리 안에 흐르던 천지의 영기가 격렬한 파동을 일으키며 미친 듯이 모여와서는 순식간에 일 리 정도 되는 빛 덩어리 다섯 개로 변하였다.
빛 덩이에서 다양한 빛이 들끓었고, 굉음이 울려 퍼지는 것이 마치 그 속에 천둥번개를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제준이 손을 흔들자 빛 덩이 다섯 개가 속승과 연나를 짓눌렀다.
속승이 눈에 빛을 번쩍이며 다시 공법을 시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속승이 팔을 들어 올리는 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연나가 속승의 앞으로 다가와 두 손을 흔들었다.
칠색 구름이 나타나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떠다녔는데 그 구름은 크기가 몇 묘나 되었다. 또한 칠보묘수가 연나의 손에서 날아 나와 칠색 구름 덩이로 스며들어서는 커다란 칠색 나무로 변하였다.
연나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주문을 외우더니 두 손으로 법결을 줄줄이 날렸다.
칠색 나무가 빛을 번쩍이며 수십 그루로 갈라지면서 온 칠색 구름을 채웠다.
커다란 나뭇가지 열 몇 갈래가 얽히고설키면서 칠색 구름을 감싸더니 단단하고 투명한 빛을 내뿜었다.
칠색 구름은 살짝 줄어드는 듯하더니 훨씬 밀도 있게 뭉쳤다.
쿵!
연나가 이 모든 일을 마쳤을 때, 다섯 빛 덩이가 몰려오며 운석을 내리쳤다.
쿵!
칠색 구름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순식간에 겉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들이 생겨났다. 그러자 구름 속에 자리한 나무도 사시나무 떨 듯 흔들리며 나뭇가지도 꺾였다.
연나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붉은 피를 뿜어냈다.
연나가 눈에 사나운 빛을 뿜으며 칠색 빛을 드리우자 등 뒤에 키가 백 장 정도 되는 궁장을 입은 여인의 환영이 나타났다.
환영은 발로 연꽃을 짚고 다가왔고, 손에 옥병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환영의 등 뒤에는 커다란 손이 줄줄이 나타났는데 족히 천 개는 되는 것 같았고, 손들은 전부 다른 동작을 취하고 있어 매우 현란했다.
환영이 날아올라 번쩍이더니 칠색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칠색 구름이 미친 듯이 번쩍이다가 안정되었다.
제준이 눈썹을 치켜뜨며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드러냈으나 이내 ‘풋!’ 비웃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쾅!
다섯 빛 덩이에서 파동이 일다가 하나로 합쳐지더니 절반은 회색인데 절반은 흰색인 빛 덩어리로 변하였다.
막강한 법칙의 힘이 회색과 흰색이 섞인 빛 덩어리에서 흘러나왔는데 그 속에는 다섯 갈래 법칙의 힘이 있었고, 서로 어우러지면서 전혀 충돌하지 않았다.
“다섯 가지 법칙의 힘!”
조금 전에 속승이 혼신을 다해 날린 일격은 세 가지 법칙의 힘을 시전한 것이라 제준은 깜짝 놀랐었다.
회색과 흰색의 빛 덩어리가 들끓으며 커다란 주먹으로 변하자 주먹에서 회색과 흰색 번개가 튀더니 곧장 칠색 구름을 내리쳤다.
순간, 칠색 구름이 폭발하며 커다란 나무 열 몇 그루도 터져버렸다. 그러자 칠보묘수가 빙글빙글 맴돌면서 부서진 구름에서 날아 나왔는데 빛이 어두워진 걸 보니 크게 망가진 것 같았다.
연나는 피를 한 모금 토해내며 뒤로 물러났는데 그녀의 얼굴을 보니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있었다.
속승도 형태가 없는 막강한 힘에 밀려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하지만 속승은 직접 충격을 받은 게 아니라 그리 큰 상처를 입지 않았으나 십 장 정도 날아간 후에야 멈춰 섰다.
속승은 신통한 단약을 삼켰거나 신비스러운 비술을 사용한 것 같았다. 그래서 큰 부상을 빠르게 회복했고, 심지어 얼굴에 파인 주름도 좀 사라졌다.
하지만 속승은 온통 놀란 표정을 지었고, 제준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복잡한 기색이 드러났다.
연나는 부상을 당했으나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제준을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연나도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준이 보여준 실력은 그들이 예상했던 수준보다 훨씬 강력했다. 때문에 연나와 속승은 힘을 합쳤지만 막기에 급해 공격을 할 여력조차 없었다.
제준은 두 사람이 짓는 표정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제준의 옷이 바람에 휘날리자 은은하고 다양한 빛이 제준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제준이 풍기는 기운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끝없고도 막연한 기운 같았다.
“너…… 너 혹시 이미 신선이 된 거냐!”
속승이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돼.”
연나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얼굴에 믿기지 않는 기색이 스쳤다.
제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 이변이 일어났다!
허공에 걸린 다섯 행성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이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빛이 부서지며 흩날리다가 행성이 내뿜는 다양한 빛깔들이 은은하게 커다란 소용돌이 다섯 개를 이루었다.
다섯 마리 용 같은 빛기둥이 소용돌이에서 날아 나와 진안으로 스며들더니 다시 몇 배나 더 커졌다.
만령현문대진이 맹렬하게 돌아가면서 온 천정을 빛으로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