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6화. 현문이 열리다
쾅!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 만령현문대진에서 뿜어져 나와 천지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지의 영기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는데 한참 동안 들끓다가 오색 강풍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오색 강풍에는 막강한 영력이 들어있어 제준과 속승, 연나는 몸을 비틀거렸다.
먼 곳에서 격전을 치르던 천정의 대군과 연합의 대군 수십 만 명도 강풍에 휘말려 마치 휘날리는 낙엽처럼 멀리까지 날아가 버렸다. 게다가 수련 경지가 약한 병사들은 수 십 리 밖까지 밀려났다.
양쪽 대군은 한참 동안 들끓다가 혼란스러워져 더는 진형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육규종과 석무애 같은 강자들은 화색을 드러내며 명령을 내려 연합의 대군을 다시 끌어 모았다.
고명을 비롯한 천정의 선장들은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이제 곧 미천 연합의 대군을 철저히 짓밟으려 했는데 강풍이 불어왔다.
선장들은 다급하게 대군을 소집하여 재정비를 마친 후에 다시 공격을 하려고 했다.
혼란스럽게 들끓는 와중에 수많은 영력이 여전히 진안이 된 석목의 육신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석목의 육신은 더 이상 터지지 않았고, 그는 다양한 빛깔로 드리워진 채 빛을 번쩍였다.
누런빛이 나타나다가 점점 짙어졌다.
석목의 육신이 탈태를 마친 듯이 꿈틀거렸다.
천지의 영기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고, 점점 격렬하게 요동쳤다. 또한 귀신이 울부짖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마치 천지가 흐느끼는 것만 같았다.
순간, 싸늘한 기운이 허공에서 흘러들어왔다.
천지 사이를 비추는 모든 빛이 어두워지다가 빨려 들어갔다.
만령현문대진에서 풍기던 빛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 * *
동시에 천정뿐만 아니라 모든 성역의 천지에 격변이 일어났다.
천지의 영기가 들끓으면서 하늘에 수많은 먹구름이 나타났다. 그리고 먹구름에서 천둥번개가 내리치더니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이 마치 세계의 종말이 찾아온 것 같았고, 모든 게 파멸로 향하는 것만 같았다.
각 성역의 행성에 있던 사람들은 전례 없는 폭풍우를 맞이했다.
수련을 한 사람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전부 파멸의 기운이 어두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과 수련 경지가 낮은 사람들은 전부 안색이 굳은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적잖은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하늘이 노했다고 생각하여 무릎을 꿇고는 신에게 용서를 빌었다.
물론, 그런 기도가 상황을 되돌려 놓지는 못할 터였다.
하늘이 분노에 차 소리를 질러댔으며 대지가 포효했다.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방황하다가 절망했다. 또한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운명의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수련 경지가 높다고 생각한 수련자들은 이 기이한 현상이 왜 생겨났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수련자들이 온힘을 다해 진상을 밝히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마치 수련 경지가 낮을 때와 같은 무력감이 몰려왔다.
이 순간이 되어서야 수련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온 천정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령현문대진은 그리 오래 어두워지지 않았고, 곧장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찬란한 빛이 어두워졌던 세계를 환하게 비췄다.
펑, 펑, 펑!
오행 영석으로 이루어진 행성들이 다시 폭발하자 굉음이 울려 퍼졌고, 오색 빛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오색 빛은 반짝이며 쏟아졌는데 마치 허공에 걸려있는 폭포와도 같았다. 그렇게 폭포는 석목의 머리 꼭대기에서 모이며 커다란 오색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굉음 속에서 하얗게 드리운 무엇인가가 서서히 오색 소용돌이에서 올라왔다.
그 광경을 본 모든 사람들은 안색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 물체가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물체는 족히 넓이가 천 장이나 되었고, 솟아 올라온 부분만 해도 천정만큼 높았다. 그리고 오색 소용돌이가 맴돌면서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었다.
이때, 물체가 점점 뚜렷해졌는데 그 모습은 마치 커다란 문과 같았다!
커다란 문에는 신비스럽고 낡은 문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지만 아무도 그 문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또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기운이 커다란 문에서 흘러나왔다.
문 근처에서는 천지의 영기가 들끓으며 굉음이 울려 퍼지는 것이 마치 최상의 자리에 오른 군주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 이 커다란 문은 허상에 불구했지만 무궁무진한 영력들이 모여들자 점점 뚜렷해졌다.
“현계지문! 드디어 열렸구나!”
제준의 눈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미친 듯이 번쩍였다.
속승과 연나는 얼굴에 절망스런 기색이 잔뜩 비쳤다. 결국 현계지문이 정말로 열려버렸다.
결국 미천 연합은 처절한 패배를 맞이했다.
연나의 눈에 절망스런 기색이 스쳤고, 속승은 복잡한 기색을 드러내며 깊은 숨을 내뱉고는 몸을 꼿꼿이 세웠다.
“연나 사매, 아직 절망할 때가 아냐. 내겐 마지막 수단이 있어. 현계지문을 막을 수 있지. 허나…… 네가 제준을 잠깐 막고 있어야 해.”
속승이 연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연나가 멈칫하더니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이제 막 다시 전음으로 물어보려고 할 때, 속승이 소리를 지르며 몸을 날려 제준을 덮쳤다.
커다란 검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수많은 비검들이 속승의 몸에서 날아갔다.
끝없는 검의 기운이 얽히면서 하나로 합쳐졌다.
용트림이 울려 퍼지며 푸른 검룡 두 마리가 푸른빛 속에서 날아갔다.
용을 덮은 비늘에서 삼엄한 빛이 흘러나왔는데 비늘들은 마치 날카로운 검과 같았고, 싸늘한 검의 기운이 허공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면서 양쪽에서 제준을 공격했다.
“이런 미친놈!”
제준은 현계지문에서 시선을 돌려 속승을 바라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제준은 가볍게 한 손을 흔들었다.
흑백 빛이 넓게 펼쳐지자 그 속에 잔뜩 새겨진 부문들에서 강렬한 음양 법칙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제준이 다시 법결을 바꾸면서 손을 흔들었다.
흑백 빛이 방향을 틀어 검은빛과 하얀빛을 내는 두 손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두 손은 곧장 푸른 검룡 두 마리를 덥석 잡았다.
속승은 망설이지 않고 입을 벌려 정혈을 내뿜었다. 그러자 정혈이 긴 핏빛이 되어 늘어지며 두 개로 갈라져서는 푸른 검룡으로 스며들었는데 핏빛 속에는 금빛도 섞여 있었다.
두 마리 검룡에게서 빛이 번지더니 푸른빛과 금빛을 풍겼다. 그러자 용들은 비늘이 전부 벌어졌고, 그 속에서 막강한 검의 기운을 뿜어내더니 맹렬하게 번쩍였다.
흑백 큰 손들은 단번에 부서져 흩날렸다.
푸른 검룡 두 마리는 모든 힘을 소모했는지 ‘펑!’ 터져버렸고, 용들은 다시 푸른 검빛으로 변하였다.
속승이 두 손으로 법결을 짚어 앞으로 향했다.
윙!
푸른 검빛이 전부 모여들어서는 기운을 뒤섞어 커다랗고 푸른 영역을 만들어 제준을 안으로 가두었다.
푸른 영역에서 수많은 칼과 검이 나타났고, 산봉우리도 길게 뻗었다. 게다가 산봉우리는 곳곳이 온통 빛나는 검날이었는데 속승이 일군 영역은 흔하지 않은 검의 영역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변이 일어나자 제준은 방비를 못한 상태에서 그대로 검의 영역에 갇혀버렸다.
“그만 힘 빼는 편이 좋을 텐데!”
제준은 냉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검의 영역은 속승이 시전한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하지만 제준에게 검의 영역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제준이 손을 흔들자 오색 빛이 나타나 검의 영역을 내리쳤다.
푸른 검의 영역은 곧바로 격하게 흔들리더니 수많은 검날이 무너져버려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윙!
이때, 칠색 영역이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푸른 검의 영역과 합쳐져 제준을 안쪽으로 드리웠다.
연나는 영역 위에 서서 온몸에 칠색 화염을 두른 채 본원의 불로 몸을 태우면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칠색 영역 속에 수많은 칠색 나무 그림자가 나타났고, 영역은 뚜렷하기 그지없었다.
제준은 안색이 조금 변하더니 비틀거리면서 움직이길 멈춰졌다. 과연 두 영역이 합쳐지자 제준은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고작 이건가!”
제준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자 제준의 몸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며 수많은 법칙의 부문들이 몸에서 흘러나와 방대한 법칙 흐름을 이루며 자신을 가둔 두 영역을 내리쳤다.
두 영역에서 쩍쩍 소리가 나더니 수많은 균열이 갈라졌다.
연나의 연약한 몸통이 격하게 흔들리자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입을 벌려 타오르는 칠색 화염을 영역으로 내뿜었다.
칠색 화염은 연나가 지닌 본원의 힘을 절반이나 소모해 버렸다. 그렇게 화염을 뿜어내는 순간, 연나는 기운이 급속도로 떨어졌고, 얼굴도 회색빛으로 변하였다.
원기가 지탱하여 영역은 간신히 안정을 되찾았다.
“속승 사형,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빨리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제준을 오랫동안 묶어둘 수 없어요……”
연나는 눈이 풀어지더니 속승을 바라보며 빠르게 말했다.
그러나 연나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속승이 갑자기 사라졌다.
* * *
만령현문대진 가운데에 놓인 진안은 두터운 광막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빛나는 구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구체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이어서 또 파란빛이 금빛에서 뿜어져 나왔다. 또한 파란빛 속에서 붉은 빛점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순간, 진안 곳곳에서 다양한 광막이 교차하며 계속해서 변화되었다.
빛나는 구체 속에서 석목은 여전히 사람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고, 더는 터지지 않았다.
빛나는 구체에는 다양한 빛이 번쩍였지만 누런빛이 팔 할이 넘었고, 게다가 점점 짙어지는 것이 마치 나머지 진기가 내뿜는 빛을 전부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석목에게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대진이 막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퍼져나가지는 않았다.
광막을 두 층이나 두르고 있었기에 밖에서 바라본 석목의 모습은 매우 희미했다.
진안 근처에서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속승이 나타났다.
“혹시, 사존님은 이미 이런 날이 오리란 걸 예측하셨을까?”
속승은 진안 속에 선 석목을 바라보며 복잡한 기색을 드러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러길 잠시, 속승은 안색이 차갑게 변했는데 마치 만 년 동안 얼어붙은 얼음과도 같았다.
속승이 손에 빛을 반짝이며 낡은 서책을 하나 꺼내들었다.
서책은 하얗고 부드러웠는데 일곱 가지 빛깔 적, 금, 황, 녹, 남, 흑, 백색을 내뿜고 있었다.
이 서책은 <구전천경>이라 불리는 책으로 사존이 속승에게 물려준 것이었다. 구전천경은 서책 자체만으로도 기이한 보물이었지만 사존은 이 서책 속에 숨겨진 기회가 있다고 전했고, 책 속에는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현묘한 힘이 있어 꼭 필요할 때만 펼치라고 분부를 내렸었다.
“속승 사형, 뭐하는 거야?”
연나는 속승이 손에 든 칠색 서책을 보는 순간, 곧바로 속승이 무엇을 할지 알아차리고는 소리를 질렀다.
속승은 마치 연나가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한 듯이 손을 들어 올려 서책을 날렸다.
연나는 마음이 초조해졌지만 영역 금제로 제준을 막고 있었기에 도무지 벗어날 수 없었다.
서책이 날아오르자 속승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속승의 몸에서 꺼져가던 푸른 화염이 다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훅!’ 소리와 함께 금빛 화염과 검은빛 화염이 피어올라 강렬한 법칙 파동을 흘려보냈다.
“기!(起)”
속승이 큰소리로 외치자 몸에서 타오르던 푸른 화염이 속승의 몸에서 분리되어 하나로 뭉쳐졌다. 그리고 다시 희미한 화염 그림자로 변하더니 서책으로 스며들었다.
훅!
서책에서 칠색 화염이 타오르며 일곱 가지 법칙의 힘이 흘러나와 서로 합쳐졌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기운 파동이 서책에서 흘러나오자 여파 때문에 허공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속승이 손가락으로 앞을 짚자 서책이 날아나가 검영으로 변하여 석목의 몸을 베었다.
이 모든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