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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867화 (867/916)

867화. 목숨을 걸다

“멈춰!”

제준이 소리를 지르며 몇 배나 커졌다. 이어 제준의 몸에 금색 무늬가 줄줄이 그어지더니 피부도 금색으로 변해서는 순식간에 키가 몇 장에 이르는 금색 거인으로 변하였다.

방대한 위압감이 폭발하면서 제준은 속승과 연나보다 몇 배나 더 큰 기운을 풍겼다.

제준이 손을 휘두르자 금색 도장이 다시 타오르는 태양으로 변하여 사방으로 빛을 뿜었다.

쾅!

합쳐진 두 영역이 마치 얇은 거울처럼 깨져버려 연나가 튕겨져 날아가면서 피를 뿜어냈다.

제준은 빛 그림자로 변하여 속승에게로 날아갔다.

허공에 선 속승이 손을 휘두르자 커다란 금색 손바닥 그림자가 날아 나와 허공에 스며들었다. 이어서 진안 근처의 허공에서 손바닥이 날아 나와 칠색 검영을 붙잡았다.

연나는 백 리 정도 날아가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그리고 곧바로 빛을 번쩍이며 속승에게로 날아갔다.

제준이 재빠르게 공격을 날렸지만 한 발 늦었다.

칠색 서책이 변신한 검영이 반짝이더니 석목 주변을 감싼 광막을 부숴버리고는 석목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놀랍게도 석목의 몸에는 아무런 혈흔이나 상처가 생기지 않았고, 검영은 마치 부드러운 물처럼 속목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석목은 몸을 파르르 떨더니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석목의 두 눈에서 실존하는 듯한 노란빛이 뿜어져 나왔다.

쾅!

칠색 화염이 나타나며 수십 장 범위를 드리웠다. 그리고 석목의 몸을 안으로 감싸자 석목은 커다란 화인(火人)으로 변신했다.

천둥소리가 만령현문대진 곳곳에서 울려 퍼졌고, 빛들이 격하게 흔들리자 허공에 나타난 현계지문의 허상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허공에서 빛을 번쩍이며 제준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진안 근처에 나타났다.

속승은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깊게 파여 있었다.

속승이 뒤로 튕겨져 날아가더니 멀리 도망가 버렸다.

제준이 소리를 지르며 공격을 날렸다.

커다란 손바닥 그림자가 속승의 머리 꼭대기에 나타났다가 아래로 쏟아지며 막강한 위압감이 퍼져나갔다.

손바닥 그림자가 스친 곳 수백 장 범위 안에 흐르던 공기가 순식간에 굳어버려 마치 딱딱한 강철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속승은 깜짝 놀라 간신히 세 가지 청, 금, 흑색 화염을 두르고는 주먹을 날려 손바닥과 부딪쳤다.

굉음이 울려 퍼지자 속승이 가볍게 튕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여러 번 울렸다.

제준은 단번에 속승을 날려버린 후에 더는 쫓아가지 않고 심각한 얼굴로 법결을 짚었다. 그러나 빛이 속승의 손에서 날아 나와 다양하고 현묘한 법칙 부문들을 이루며 석목이 변신한 화인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의 몸에서 칠색 화염이 요동쳤지만 꺼지지는 않았다.

속승은 수백 장 정도 날아가서야 몸을 비틀거리며 멈춰 섰는데 몸은 온통 피투성이였고, 상처가 줄기줄기 그어져 마치 찢어진 천과도 같았다.

속승은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

속승은 극도로 심한 부상을 당했지만 눈은 여전히 맑아 죽지는 않을 터였다.

속승은 공법을 시전하여 푸른빛을 두르고는 천천히 상처를 회복했다.

하지만 이때, 속승의 눈앞에 칠색 빛이 반짝이더니 차가운 칠색 칼날이 속승의 목을 겨누었다.

연나가 손에 칠보묘수를 들고는 눈에 싸늘한 빛을 뿜었다.

“당신 왜 그랬어!”

연나가 소리를 질렀다.

속승은 연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목에 얹어진 칠보묘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사매, 우리의 목적이 뭐였지?”

속승은 연나가 한 말에 대답하지 않고는 다시금 되물었다.

연나는 눈에서 파동을 번쩍이더니 칠보묘수를 더욱 꽉 쥐었다. 그러는 연나의 손은 더없이 처량해 보였다.

“제준이 현계지문을 열게 된다면 성역은 무너질 거야. 그건 파멸을 불러올 재난이지. 만약 목숨 하나로 천하를 태평하게 만들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어. 만약 그 목숨이 내 것이라면 언제든지 가져가도 좋겠지.”

속승이 푸른빛을 번쩍이며 일어서자 몸이 비틀거렸다.

연나는 안색이 복잡해졌다.

“오늘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이 일은 나중에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연나는 칠보묘수를 거두어들이고는 고개를 돌리더니 더는 속승을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속승은 쓴웃음을 짓고는 진안 속에 칠색 화염을 감고 있는 석목을 보며 눈에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어서 제준에게로 시선을 던진 속승의 눈빛에서 이채가 스쳤다.

속승은 칠염현화대법(七焰玄火大法)을 시전할 자신이 있었는데 그 공법은 사존이 남겨준 비술이며 구전현공을 수련한 사람들의 인성이 사악해졌을 경우에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하지만 제준이 갖춘 실력이 워낙 막강하여 속승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속승은 다시 공격하고 싶었지만 너무 늦어 초조함이 몰려왔다.

연나는 석목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기에 속승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터였다.

속승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단약을 삼키고는 빠르게 연화하여 실력을 되찾으려고 했다.

연나는 제준을 바라보며 눈에 이채를 내비쳤는데 과연 연나는 속승이 예상한 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칠색 화염은 한참 동안 더욱 맹렬하게 타올랐지만 화염 속에 있던 석목은 죽지 않았고, 기운 또한 여전히 남아있었다.

연나는 눈에 빛을 반짝이며 화색을 띠었다.

속승은 안색이 굳어버렸는데 제준이 칠염현화대법을 녹일 신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속승은 빛으로 변하여 제준을 덮쳤다.

이때, 칠색 영역이 나타나 속승에게 드리웠다.

속승은 아직 실력이 회복되지 않아 단번에 영역 속에 갇혀버렸다.

“다시는 석목에게 손댈 생각은 하지 마.”

연나는 속승 앞에 나타나 단호하게 말했다.

영역에서 화려한 빛이 번쩍이더니 칠색 나무 허상이 나타나 속승을 짓눌렀다.

“연나 사매, 정신 차려! 제준이 현계지문을 열게 되면 이 세계의 생령들은 어떻게 할 건가!”

속승이 호통을 치며 짓누르던 영력을 막아냈다.

그 말을 들은 연나는 몸을 파르르 떨며 잠깐 멈칫했다가 계속해서 공법을 시전했다.

칠색 영역이 윙윙 돌아가며 속승을 가둬버렸다.

* * *

진안 근처에 서있던 제준은 멀리서 일어나는 상황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

그리고 제준은 두 손을 흔들면서 법칙의 빛을 줄줄이 날렸다. 그러자 수많은 빛이 부문에서 흘러나와 백 장이나 되는 대진을 이루어 석목을 가둬버렸다.

빛이 대진에서 흘러나오며 석목을 감쌌다. 그리고 법칙의 힘이 빛에서 흘러나와 석목에게로 스며들자 칠색 화염으로 변하였다.

제준은 의아해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준은 칠색 화염을 녹이려고 시도했지만 생각해보면 화염이 타오르는 위력이 너무 막강하여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다면 석목은 이미 견디지 못하고 죽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왜 석목은 아직 살아있을까?

제준은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찌됐든 석목은 진안이니 아직 죽으면 안 되었고, 만령현문대진이 완벽히 열린 후에는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제준이 정혈을 뿜어내자 대진의 위력이 더욱 강력해졌다.

그 순간, 제준은 안색이 굳어버렸다.

칠색 화염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와 들끓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제준이 깜짝 놀랐다.

칠색 화염이 내뿜는 위력은 너무 막강하여 신식으로도 안을 들여다볼 수 없어 제준은 화염 안에서 벌어지는 변고를 알 수 없었다.

“혹시 석목이……”

제준의 눈에서 싸늘한 빛이 스쳤다. 하지만 제준은 곧바로 머리를 흔들었다.

만령현문대진의 진안이 되어 석목은 이미 원기를 대부분 빼앗겼을 터라 아마 죽음이 그리 멀지 않았을 터였다.

쾅!

방대한 흡인력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칠색 화염 속에 갑자기 성역의 구멍이 나타났다. 그러자 칠색 화염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석목을 중심으로 모든 천지의 영기가 미친 듯이 몰려들었고, 만령현문대진의 영력도 뽑혀져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을 중심으로 커다란 영력 소용돌이가 나타나더니 곧장 하늘을 찔렀다. 그러자 현계지문의 허상도 영력 소용돌이 속에 갇혀버렸다.

천지의 영기가 한참 동안 들끓다가 영력 소용돌이 주변에 색이 누런 영력 강풍이 휘몰아치면서 기승을 부렸다.

영력 강풍이 휘몰아치자 제준이 펼친 진법은 갈기갈기 찢겨버렸다.

난폭한 바람의 힘이 허공에서 기승을 부렸고, 공기에서 물결 파동이 일렁이면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뭐……”

제준은 막강한 힘에 말려 백 장 멀리 날아가서야 금빛을 감으며 멈춰 섰다.

제준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한편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퍼렇게 질려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극도로 미묘하게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들었다.

한편 속승과 연나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자 어안이 벙벙해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연나는 영역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천지의 영력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속승도 머리가 하얗게 변한 채 얼굴이 굳었다.

이때, 방대한 위압감이 영력 소용돌이에서 뿜어져 나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막강한 영압은 제준이 풍기는 위압감에도 밀리지 않았다.

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연나와 속승은 곧장 이 영압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차렸다.

이 영압은 엄청나게 강력한 게 석목이 풍기는 것이 틀림없었다.

연나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두 눈에 기쁜 기색이 돌았다.

속승이 짓던 복잡하던 표정도 다시 희열로 바뀌었다.

윙!

노랗고 굵직한 빛기둥이 영력 소용돌이에서 나타나 구름을 뚫고 치솟았다. 이어서 영력 소용돌이는 천천히 사라졌다.

거대한 빛기둥이 곧장 사라지면서 석목이 나타났다.

석목은 온몸에 누르스름한 빛을 감고 있었다. 또한 외모는 크게 바뀌지는 않았는데 풍기는 기운은 이전과 달랐다.

제준과 마찬가지로 석목이 풍기는 기운은 이 세계의 기운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볍게 흩날리는 기운을 풍기는 제준과 달리 석목이 풍기는 기운은 두텁고 묵직해 그는 마치 하늘 높이 치솟은 산봉우리처럼 무겁게 서 있었다.

석목은 두 손을 들어 올리고는 몸속에 일어난 변화를 느꼈다. 그리고 막강한 기운을 느끼자 희열을 감출 수 없었다.

석목의 몸에서는 강력하기 그지없는 누르스름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건 분명 현황(玄黄)의 기운이었다. 그리고 일전에 수련했던 다양한 진기와 구전현공의 힘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은 현황의 기운 하나만 남았지만 이 특별한 원기는 정점에 이르렀다.

석목이 주먹을 꽉 쥐었다.

쾅!

주체할 수 없는 괴력이 뿜어져 나와 허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어서 벼락이 내리치는 것만 같은 굉음이 울렸다.

석목이 몸을 굽혔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순식간에 허공에 나타났다. 이제 만령현문대진은 더 이상 석목을 묶어둘 수 없게 되었다.

제준은 석목의 위압감에 밀려 쉽게 공격을 하지 못해 얼굴이 굳어버렸다.

이어서 제준이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석목이라는 진안이 사라졌지만 만령현문대진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다섯 행성에서 쏟아져 내리는 영력은 계속해서 남은 진안 속으로 흘러들어가 대진 전체로 퍼졌다.

속승이 석목을 공격하면서 일으켰던 파동도 곧장 이겨냈으며 허공에서 흔들리던 현계지문의 허상도 천천히 안정되었다.

제준은 눈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어찌된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워낙 현묘한 진법이었기에 기이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 대진만 멈추지 않는다면 제준이 세운 계획은 실패한 게 아니었다.

제준이 몸을 날려 진안을 가로막았다.

석목은 여전히 돌아가는 대진을 보고서 의아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석목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네가 진선지체(眞仙之體)를 응결시켰다니 믿기지 않는군.”

제준이 석목을 훑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선지체? 너무 과한 평가 같군. 상계에서 영력 수련을 겪지 않은 녀석은 기껏 반쪽짜리 선체일 뿐이지. 너나 나나 진정한 신선이 되려면 아직 멀었어.”

석목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제준은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

연나가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석목의 뒤에 나타났다.

연나의 뒤로 속승도 날아오고 있었으나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이제 제게 맡기세요.”

석목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동시에 석목이 손을 흔들자 현화의 빛이 손에서 날아 나와 연나와 속승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두 사람의 몸에서 방대하고도 따뜻한 기운이 흘러 다니더니 손상된 원기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러자 속승과 연나는 기쁨과 위안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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