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8화. 열반
내상을 입어 난장판이 되었던 속승은 빠르게 회복되어 순식간에 몸이 육 할 정도가 치유된 것 같았다. 또한 얼굴에 깊게 파였던 주름들도 줄어들었다.
석목이 고개를 돌렸을 때, 제준은 눈동자가 줄어들더니 이내 사라졌고, 순식간에 석목의 앞에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윙, 윙, 윙!
금빛이 제준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와 마치 황금으로 만든 것 같은 주먹은 강렬한 법칙 파동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석목, 조심해!”
연나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석목은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고, 심지어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석목이 한쪽 팔을 희미하게 바꾸며 곧장 주먹으로 막자 손바닥에 현황의 빛이 맴돌았다.
땅이 뒤흔들릴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금빛과 노란빛이 부딪쳤다가 터져나가자 허공이 일렁이며 부서져 버렸다.
석목은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지만 제준은 뒤로 몇 걸음 밀려나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속승과 연나도 포악한 힘 때문에 뒤로 밀려나 수십 장 밖으로 날아가서야 몸을 멈춰 세울 수 있었는데 그들은 귀마저 먹먹해졌다.
“천제라는 놈이 기습을 하다니. 이렇게 비열해서야!”
석목이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말했다.
“이기면 왕이 되고 지면 도적이 되는 판이야!”
제준은 얼굴이 퍼렇게 질린 채 소리를 치며 다시 법결을 날렸다.
석목의 머리 위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수많은 금빛이 쏟아졌다. 이어서 산봉우리만 한 거대한 금색 도장이 하늘에서 쏟아지면서 태산이 정수리를 짓누르듯 석목을 내리쳤다.
동시에 제준은 몸에 금빛을 내비쳤다가 붉은빛과 노란빛을 차례로 뿜었다.
잠깐 사이 빛 일고여덟 층이 제준의 몸을 감쌌다.
제준이 낮게 소리를 치며 팔을 휘둘렀다.
휘리릭!
찬란한 빛들이 말리면서 다양한 색깔을 띠는 칼바람으로 변하였고, 칼바람은 강력한 법칙 파동을 풍기며 석목의 몸을 베었다.
석목이 코웃음을 치며 한 손으로 법결을 짚자 그의 몸에서 실존하는 듯한 노란빛이 뿜어져 나왔다.
석목이 허공으로 주먹을 휘두르자 현황의 빛이 뿜어져 나와 굉음과 함께 커다란 노란빛 손바닥으로 뭉쳐 그대로 금색 도장을 붙잡았다.
쾅!
노란 손바닥은 잠깐 밑으로 짓눌리는 듯하더니 곧장 금색 도장을 막았다.
이어서 석목의 몸에서 투명한 빛이 한 층 나타났는데 그 모습은 마치 단단한 동상 같았다.
석목은 칼바람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냈다.
이어 소나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칼바람은 전부 빛으로 부서져 다시 석목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다양한 빛깔이 서서히 흩어지자 석목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석목은 상처를 전혀 입지 않았고, 심지어 입고 있던 옷도 찢어지지 않았다.
막강한 법칙 공격은 마치 간지럼을 태우는 것 같았다.
제준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석목이 두 손으로 법결을 짚으며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윙!
거대한 노란빛 손바닥이 일그러지면서 현황 구름으로 변하더니 이윽고 금색 도장을 감아버렸다.
“봉(封)!”
석목이 한 글자를 내뱉었다.
그러자 노란 구름이 한참 동안 들끓다가 수많은 부문을 날려 보냈다. 그러자 부문들이 커다란 원판 봉인으로 변하였는데 그건 구전현공 혼돈의 봉인법과 매우 흡사했다.
금색 도장 안에서 윙윙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봉인을 벗어날 수 없었다.
노란 원판 봉인이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줄어들자 순식간에 사람만 한 머리로 변하여 석목에게로 날아갔다.
그러자 제준은 얼어붙었다.
제준은 다시 뒤로 물러나며 석목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는 푸른 향로 법보를 꺼내 들어 가슴 앞에 띄웠다.
향로 법보가 나타나는 순간, 제준은 기세가 크게 강해지더니 옷이 부풀어 올랐고, 긴 머리카락도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제준은 두 손으로 허공에 떠 있는 향로를 받쳐 들고는 눈에 금빛을 뿜었다. 그러자 막강한 영압이 향로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 향로는 금색 도장처럼 등급이 매우 높은 영보인 것 같았다.
향로는 겉에 낡고 예사롭지 않은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무늬는 기이하게 사람 얼굴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 안개가 향로에서 피어올랐다.
제준이 허공을 짚자 푸른빛 한 줄기가 향로 속으로 스며들었다.
묵직한 소리가 향로에서 흘러나오며 유유한 푸른빛을 흩뿌리는 순간, 향로에 새겨진 사람 얼굴이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칙, 칙!
사람 얼굴은 눈과 입을 동시에 벌리더니 세 갈래 푸른 빛기둥을 날려서 석목을 공격했다.
그러자 석목이 손에 금빛을 번쩍이며 번천곤을 가로로 휩쓸었다.
곤봉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오며 가볍게 세 갈래 푸른 빛기둥을 부숴버렸다.
푸른 빛기둥은 폭발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푸른 안개로 변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석목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자 허공이 일렁이더니 그가 사라져버렸고, 이어 갑자기 제준의 뒤에 나타났다.
“순간이동!”
연나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연나는 공간 신통을 수련한 적이 있었기에 순간 이동과 같은 신통을 매우 잘 알았다.
연나도 공간 신통을 시전할 수 있어 사실상 순간이동이나 다름없었지만 석목이 시전한 공법보다는 조금 느렸다.
석목이 시전한 건 진정으로 공간을 넘나드는 순간이동이었다!
제준이 흠칫 놀라는 것으로 보아 석목이 시전한 순간이동을 보고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그러나 제준이 뒤돌아보기도 전에 석목의 번천곤이 금빛 번개로 변하여 아래를 향해 내리쳤다.
제준은 몸에 금빛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백 장 밖에서 나타났는데 이 공법은 순간이동과 비슷한 신통이었다.
번천곤이 제준이 서 있던 자리를 내리치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겼다. 그러자 구멍 주변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부서지기 시작했고, 백 장 멀리까지 뻗어나갔다.
석목의 힘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아 제준은 눈에서 놀란 기색이 스쳤다. 때문에 제준은 이미 절반은 신선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절대 석목의 공격을 장면으로 맞설 수 없었다.
제준은 빠르게 피한 후에 다시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다. 그러자 향로에 새겨진 사람 얼굴에서 다시 세 갈래 푸른 빛기둥이 날아 나와 석목을 공격했다. 게다가 날아온 빛기둥은 조금 전보다 훨씬 굵었다.
석목이 손을 휘두르며 공격을 날리자 번천곤이 허공에서 돌아가며 세 갈래 푸른 빛기둥을 부숴버렸다. 그리고 석목은 싸늘한 눈빛으로 제준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제준도 몸을 희미하게 바꾸더니 다시 순간이동으로 도망갔다.
제준의 몸이 사라지는 순간, 금색 곤봉 그림자가 하늘에서부터 제준이 서 있던 자리를 내리쳐 허공이 다시 부서졌다.
석목이 냉소를 지으며 다시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두 사람은 쫓고 쫓기며 하늘에서 번개처럼 번쩍였는데 먼 곳에서 보면 노란빛이 금빛을 쫓고 있는 것 같았고, 이리저리 번쩍여 눈앞이 현란했다.
* * *
속승과 연나는 석목과 제준을 바라보며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더 먼 곳에서는 천정 대군과 미천 연합이 다시 격전을 치르기 시작했다.
미천 연합은 실력으로 천정에 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어 계속 우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당분간은 무너지지는 않을 터였다.
“석목이 갖춘 실력이 이 정도로 강력해졌다니. 강제로 진안이 된 동안 화가 복이 되서 조화신통을 이룬 것 같군요.”
연나가 말했다.
“은연중에 하늘의 뜻이 있었겠지.”
속승은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 도와주죠.”
연나가 은빛을 감고는 날아가려고 했다.
석목이 날린 따뜻한 기류 덕분에 연나는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
“잠깐만, 저 둘이 갖춘 실력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강력해. 석목의 주변으로 다가가면 오히려 우리가 짐이 될 거야.”
속승이 다급하게 연나를 말렸다.
연나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다시 석목과 제준이 흘려보낸 여파를 살펴보고는 멈춰 섰다.
“석목이 제준을 막고 있으니 그 틈에 만령현문대진을 부숴야 해.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속승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사형이 하신 말씀이 옳네요.”
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만령현문대진은 이미 완벽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대진에서 빛이 눈부시게 뿜어져 나오고 있어 매우 먼 곳에서도 대진에서 흘러나오는 막강한 힘이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대진 자체가 막강한 힘을 내는 것인지 아니면 제준이 대진을 보호하기 위해 금제를 설치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속승과 연나는 서로 한 번 마주 보고는 각각 대진으로 날아갔다.
연나는 몸을 날려 진법의 중추가 자리한 대전 위에 멈춰 섰는데 온 대전이 눈부신 푸른빛으로 둘러싸여 있어 매우 단단해 보였다.
연나가 손을 흔들자 칠보묘수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날카로운 칠색 빛이 마치 거대한 검날처럼 궁전을 베었다.
쿵!
칠색 검날은 부서져 버렸다. 그러나 궁전에 감도는 푸른빛은 잠깐 흔들리기만 할 뿐, 부서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나 단단하다니.”
연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진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호 광막의 빛들을 보며 절대 만만치 않을 것이라 예측은 했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과연 신경 후기의 공격도 가볍게 막아내다니.
연나가 가볍게 입을 악물고는 두 손으로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짚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는 게 어떤 비술을 시전하려는 것 같았다.
이때, 칠보묘수가 연나의 손에서 빠져나와 몇 십 배나 불어나 커다란 칠색 나무로 변하였다. 그리고 나뭇가지에서 불길이 타올랐는데 일곱 나뭇가지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색깔이 전부 달랐다.
연나가 주문을 외우자 일곱 가지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하나로 합쳐져서는 한 묘 정도 되는 화염을 이루었다. 그러자 칠색 화염에서 막강한 법칙 파동이 흘러나왔다.
연나가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칠색 화염이 사방팔방을 휩쓸다가 단번에 대전에 드리웠다.
칠색 불길은 활활 타오르다가 화룡과 불뱀 같은 모양을 이루며 대전을 보호하고 있던 푸른빛을 내리쳤다.
주변 허공이 일그러지며 부서지자 푸른빛도 심하게 흔들리면서 점점 흩어지며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때, 곳곳에서 푸른빛이 끊임없이 몰려와 푸른 광막이 다시 밝게 빛났다.
연나가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속승을 바라보았다.
속승은 심각한 얼굴로 푸른 검진을 다루고 있었는데 수많은 푸른 검기가 속승을 중심으로 허공에 널리 퍼져나갔다. 그리고 속승이 법결을 짚자 검기는 다시 진법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속승이 아무리 공격을 해도 진법은 부서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속승은 연나가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연나를 바라보았는데 두 사람이 마주친 눈에는 놀라움만 가득했다.
하지만 둘은 포기하지 않고서 잠깐 눈빛을 마주친 후에 다시 다른 법보를 꺼내 공격을 날렸다.
* * *
저 멀리 전장에서 제준이 석목을 피해 다니면서 향로 법보를 시전하여 공격을 날렸다.
한참 동안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석목은 공격 시점을 점점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준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자 일정한 규칙을 발견한 석목은 제준이 날리는 공격을 쉽게 피할 수 있었고, 더 빠르게 번천곤으로 반격을 할 수 있었다.
제준은 여전히 번천곤을 피해 다니고 있었지만 점점 힘겨워지는 것 같았다.
허공 한 곳에서 제준이 나타났는데 향로 법보가 그의 옆에 떠 있었다.
하지만 이때, ‘쿵!’ 소리가 났다.
금색 곤봉 그림자가 하늘에서부터 빠르게 다가오며 공간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더니 금색 파동을 사방으로 흩뿌려 제준에게 드리웠고, 수십 장 밖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제준이 나타났다. 그러나 제준은 한쪽 옷자락이 찢어져있었고, 팔도 괴상한 각도로 꺾여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