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70화 (870/916)

870화. 불꽃이 튀다

제준은 눈에서 사나운 빛이 스쳤고, 또다시 여섯 팔을 휘둘렀다.

여섯 갈래 거대한 곤봉 그림자가 강풍을 휘감더니 검은 그림자를 공격했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는 검망이 부서지는 순간 이미 검은빛으로 변하여 멀리 도망가 버렸다.

제준은 내키지 않는 듯이 멀어져가는 검은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림자를 쫓지 않고는 석목을 덮쳤다.

이때, 석목이 변신한 거원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원이 들고 있던 무기 여섯 개중 번천곤을 뺀 나머지 무기들이 전부 부서져 버렸다.

하지만 석목은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데 피부에 몇 갈래 긁힌 자국은 났지만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제준이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제준이 날린 일격은 온 힘을 다한 공격이었으나 석목은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석목이 낮게 소리를 지르며 손에 현황의 빛을 반짝여 다시 묵직한 무기 다섯 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짙은 현황의 빛을 번쩍이자 등 뒤에 현황 날개 한 쌍이 나타났는데 날개 하나는 밝고 하나는 어두운 것이 마치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다.

석목은 노란빛 한 줄기로 변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먼 곳으로 몇 리나 날아갔다.

석목은 지금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어서 순간이동 신통을 더는 시전할 수 없었다.

“어딜 도망가!”

제준의 목소리가 만 리까지 퍼졌다.

제준은 곧장 커다란 날개를 펼쳤는데 날개에 달린 깃털은 전부 금빛을 뿜고 있었고, 굵직한 금빛 번개를 감고 있었다.

천둥소리와 함께 제준이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몇 리 밖에 나타나 석목을 쫓아갔다.

* * *

두 사람은 처지가 단번에 뒤바뀌어 이제 석목이 쫓기게 되었고, 제준이 뒤를 쫓았다.

거원으로 변신한 석목은 얼굴을 찌푸리며 가장 빠른 속도로 날아가면서 한편으로는 온 힘을 다해 독소를 배출했다.

석목의 영해 속엔 석목과 똑같이 생긴 작고 노란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작은 손으로 빠르게 법결을 짚었다.

그 순간, 투명하고 차가운 힘이 노란 사람의 손에서 날아 나와 몸 곳곳을 도는 경맥을 타고 흐르면서 푸른 독소 줄기를 내쫓았다.

석목은 중독되었기에 속도가 많이 줄어들어 제준과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하여 석목은 계속해서 방향을 바꿔가며 도망을 다녔다.

사람 한 명과 원숭이 한 마리는 전부 천 장 가까이 되는 크기였지만 두 사람이 치르는 전투는 마치 번개 같아 불꽃이 한 번 튀는 사이에 이미 여러 차례 공격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둘이 공격을 날릴 때마다 주변의 허공이 찢어져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한 차례 공격을 주고받은 뒤에 둘은 다시 쫓고 쫓기며 곧장 천정에서 벗어났다.

그 광경을 본 천정과 연합의 대군은 전부 어안이 벙벙했다.

“따라가 봅시다!”

연나가 심각한 눈빛으로 말을 하고는 몸을 날려 칠색 빛으로 석목과 제준을 쫓아갔다.

속승도 고개를 끄덕이며 연나와 함께 날아갔다.

연나와 속승은 만령현문대진을 무너트리겠다는 생각을 접었는데 두 사람이 온갖 법보를 시전했지만 그들이 날린 공격은 마치 진흙탕 속에 던져버린 돌처럼 전부 사라져버렸고, 대진이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쓸데없이 힘만 빼고 있는 것보다 석목을 쫓아가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편이 훨씬 현명했다.

네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리에서 사라졌고, 격전을 치르던 천정과 연합의 대군은 전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이끄는 우두머리들이 전부 이곳을 떠났으니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다.

* * *

천정에 자리한 한 산맥에서 거대한 노란빛이 빠르게 날아다니며 끊임없이 방향을 틀었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 이끄는 잔영만 바라봐도 눈앞이 어지러웠다.

날아가던 도중에 석목이 뒤를 바라보다가 멈칫했다.

제준이 모습을 감췄다! 이대로 떨어져 나간 걸까?

그러나 석목은 곧장 그 생각을 접더니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때, 석목의 머리 위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굵직한 번개가 하얗고 뜨거운 빛을 감고는 강하게 내리쳐 피할 수조차 없었다.

하얀 번개는 평범해보였지만 막강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어 석목은 깜짝 놀랐다.

일촉즉발의 순간,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세 머리를 동시에 쳐들었다.

붉은색, 금색, 노란색 세 갈래 빛이 동시에 뿜어져 나가 하나로 뭉치며 두꺼운 삼색 광막을 이루었다.

퍽!

삼색 광막은 얇은 종잇장처럼 단번에 뚫려버렸다.

그제야 석목은 깜짝 놀라며 한쪽으로 몸을 틀었다.

하얀빛이 쏟아져 내리며 석목을 묻어버렸다. 그리고 하얀 번개가 석목의 몸에서 줄줄이 퍼져나가 몸을 보호하고 있던 노란빛을 가볍게 찢어버렸다.

쾅!

석목의 거대한 몸통이 다시 허공에서부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때 허공에서 빛을 반짝이며 제준이 나타났다.

제준은 이마에 세로로 자라난 눈이 있었는데 제준의 몸에서 열두 가지 법칙이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세로로 자라난 눈으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뜨거운 빛이 세로로 자라난 눈에서 번쩍였다.

하얀빛은 극도로 강렬한 법칙 파동을 풍기고 있었는데 모든 걸 파멸시킬 것만 같은 이 기운은 고명이 쓰던 민멸과 비슷했지만 민멸보다 위력이 훨씬 막강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내리친 번개로 제준은 기운을 꽤나 많이 소모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세로로 자라난 눈도 빛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느냐!”

제준의 눈에는 뼈를 찌를 듯한 살의가 가득 풍겼다. 그리고 제준이 석목을 덮치자 주변에서 맴돌던 열두 곤봉이 동시에 날아 나왔는데 곤봉마다 새겨진 무늬에서 줄줄이 빛이 났다.

열두 곤봉은 마치 열두 무지개처럼 일제히 아래를 향해 내리쳤다.

이때, 제준의 옆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검은 그림자가 다시 검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림자가 든 붉은 검은 눈부신 핏빛 태양과도 같아 그대로 제준을 공격했다.

핏빛 검날이 스친 곳은 허공이 매우 가지런하게 갈라졌다.

“기다렸다!”

제준은 빠르게 돌아서서 열두 곤봉을 내리치는 방향을 틀어 검은 그림자를 내리쳤다.

검은 그림자의 희미한 얼굴에서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림자는 입을 벌려 검에 검은빛을 날렸다.

검날에서 다시 빛이 번지더니 그림자가 검신을 비틀자 검은 길이가 수백 장에 이르는 혈룡으로 변신했다. 또한 혈룡은 끈적이는 핏빛을 풍기고 있었는데 그 빛은 마치 액체 같았다.

혈룡의 거대한 몸통이 검은 그림자의 앞을 가로막았고, 혈룡은 꼬리를 맹렬하게 흔들며 단번에 제준의 열두 팔과 열두 곤봉을 묶어버렸다. 그러자 제준은 잠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검은 그림자는 몸통이 줄어들더니 아주 작은 그림자로 변하여 혈룡의 등 뒤에 붙었다. 그리고 제준의 겨드랑이 밑을 스쳐지나가 빠른 속도로 먼 곳으로 사라졌다.

제준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열두 곤봉에 빛을 드리우며 맹렬하게 휘둘렀다.

혈룡의 거대한 몸통이 찢어지더니 여러 토막으로 잘렸다. 그리고 수많은 피가 혈룡의 잘린 몸통에서 뿜어져 나왔다.

핏빛은 순식간에 색깔이 변했는데 혈액 가운데 자리한 검은색 한 층에서 수많은 검은 부문들이 번쩍이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자 마치 핏빛 비가 내리는 것처럼 주변을 넓게 드리웠다. 때문에 제준은 쏟아지는 핏빛 비에 몸이 흠뻑 젖어버렸다.

칙, 칙, 칙!

제준이 두른 갑옷은 녹아내려 수많은 구멍이 뚫려버렸고, 볼을 덮은 살은 대부분이 사라져 하얀 뼈가 그대로 드러났다. 심지어 제준의 한 쪽 눈도 독소 때문에 타버렸다.

땅 위에 누워있는 석목은 몸에 여전히 희미한 번개가 튀고 있어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석목의 왼쪽 팔에는 커다란 상처가 하나 생겼는데 조금 전에 하얀 번개를 맞으면서 생긴 상처라 온 팔이 뚫린 듯이 피가 끊임없이 흘렀다.

석목은 자기 몸 상태는 신경도 쓰지 않고는 제준이 처한 상황을 확인하더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검은 그림자는 석목의 분신이었다.

조금 전에 치른 격전에서 석목은 분신을 거두어들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진안에 몸이 여러 번 터지고 바뀌면서 분신도 같이 고난을 겪었으나 견뎌냈다.

그리고 석목은 구전현공의 열 번째 단계인 만법귀종(萬法歸宗)의 현묘한 이치를 깨우치면서 실력이 크게 늘어났다. 물론 그 덕분에 분신도 실력이 눈에 띄게 강해져 이미 신경 후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분신이 쓰던 단검은 석목의 피가 스며들자 위력이 훨씬 강력해져 수련의 극치에 이르렀는데 그건 전설 속에서나 내려오던 혈원의 힘이었다.

때문에 제준과 같은 진선지체라 할지라도 부상을 당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아직 긴장을 놓을 때가 아니니 절대 방심해서는 안됐고, 석목은 곧바로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어서 석목은 현황의 빛을 넓게 펼치면서 나머지 하얀 번개를 전부 날려버렸다.

한편 제준은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손과 발은 극심한 통증 때문에 경련이 일어났다.

제준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통증을 억누르고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푸른빛이 투명한 빛을 뿜어내며 제준의 몸에 드리웠다.

제준이 쥔 열두 곤봉 법보 중 하나가 온통 푸른색으로 변하더니 푸른빛을 풍기면서 제준의 몸에서 빠르게 흘러 다녔다.

푸른빛은 녹아내린 제준의 몸통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이어서 제준은 새살이 빠르게 돋아나면서 완전히 회복했다.

제준은 휙 돌아서서는 포악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열두 곤봉에서도 빛이 밝아졌다.

하지만 이때, 석목도 바닥에서부터 날아올라 제준을 마주 보았다.

석목은 왼쪽 팔에 현황의 빛을 감고 있어 빠르게 회복되었다.

석목은 차분한 표정을 지었고, 심지어 희열마저 드러냈다.

하얀 번개는 위력이 극도로 막강하여 석목의 팔을 뚫어버렸지만 오히려 석목에게 도움을 준 셈이 되었다.

하얀 번개엔 막강하게 정화를 시키는 힘이 담겨있어 번개가 석목의 몸속으로 퍼지는 순간, 푸른 독소가 전부 밖으로 배출되었다.

제준은 석목의 왼손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극도락뢰(極道落雷)의 위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 이 세계에 있는 그 어떤 물건도 그 번개를 한 번 맞고 나면 마치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고 말 터였다. 심지어 먼지 한 톨 남지 않을 터였는데 고작 석목에겐 팔에 구멍을 뚫어버린 정도로 끝났다.

석목의 육신은 대체 얼마나 막강한 걸까!

제준은 처음으로 극도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둘이 눈을 서로 마주치는 순간, 다시금 다투기 시작했다.

석목은 등 뒤에 날개를 펼치고는 순간이동을 하여 제준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여섯 무기를 동시에 휘두르며 무궁무진한 힘으로 제준을 내리쳤다.

제준은 소리를 지르며 열두 곤봉으로 석목을 내리쳤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수십 리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전부 부서져 버렸다.

산봉우리가 통째로 사라져 매우 작은 알갱이로 변해 광풍에 휘말렸다.

제준은 몸통이 수백 장 멀리까지 날아가서야 간신히 몸을 멈춰 세웠다.

두 사람은 실력이 엇비슷했다.

제준은 놀라운 감정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또한 제준이 쥔 열두 곤봉 법보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무기라 석목이 진기로 펼친 무기들보다 몇 배나 더 강력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준은 이렇게 월등한 조건으로도 석목을 이길 수 없었다.

‘석목의 진선지체엔 힘이 실렸고 나는 법칙이 실렸어. 그러니 근거리 전투는 내게 불리할 거야!’

제준은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몇 리 밖으로 날아가면서 둘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넓히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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