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2화. 천정의 제왕을 멸하다
다양한 법보의 부문들이 새장에서 나타났다가 다양한 색깔을 띠는 쇠사슬로 뭉쳐서는 강렬한 법칙 파동을 뿜으며 연나를 꽁꽁 묶어버렸다.
쇠사슬에서 다양한 빛이 흐르며 ‘칙칙’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연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연나!”
석목은 연나가 짓는 표정을 보고는 깜짝 놀랐는데 그녀는 지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겪고 있을 터였다. 때문에 석목은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빠른 속도로 제준에게 날아갔다.
제준도 때마침 석목에게로 날아오고 있었기에 둘은 순식간에 부딪쳤다.
석목이 노란 검영으로 앞을 힘껏 내리치자 막강한 검의 기운이 하늘을 뒤덮으며 제준에게로 쏟아졌다.
제준은 안색이 굳더니 열두 팔을 흔들어 앞을 막았다.
제준은 열두 곤봉을 소환하고 싶었지만 새장이 연나를 가두고 있어 신통을 해제하긴 이미 늦었다.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제준이 미친 듯이 피를 뿜어내자 열두 팔은 가볍게 부서졌고, 거대한 노란 검이 제준의 몸으로 들어갔다.
펑!
제준은 몸이 터져버려 혈무가 되어 흩날렸다.
석목이 몸을 비틀거리자 노란 검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다시 여섯 무기로 변하였다.
혈무가 들끓다가 긴 빛으로 변하여 먼 곳으로 도망갔다.
“제준! 어딜 가!”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날개를 펼치고는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가 다시 혈무 앞에 나타났다.
석목은 온몸에 노란빛을 감고는 현황 영역을 뭉쳤는데 영역은 족히 수천 장이나 되었고, 단번에 핏빛을 안으로 가둬버렸다.
영역 속에 감도는 공기가 묵직해 핏빛이 무겁게 떨어졌다. 또한 중력이 바깥보다 몇 배나 더 강력해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핏빛이 번쩍이며 제준이 나타났는데 그는 여전히 열두 팔을 뻗고 있어도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불사신을 연이어 두 번 시전한 후로 제준은 원기가 크게 상해 진선지체마저 이전보다 훨씬 작아졌다.
사람 모양으로 돌아왔지만 영역 속에서 움직이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제준은 얼굴이 굳은 채 열두 가지 법칙의 빛을 드리워 주변으로 펼치면서 열두 가지 빛의 영역을 만들었다.
법칙의 빛이 한 곳으로 모여서는 열두 마리 용으로 변하여 영역 속에서 흘러 다녔다.
영역이 펼쳐지자 제준을 다스리던 묵직한 중력도 사라졌다. 하지만 영역에선 여전히 막강한 압력이 짓눌러왔다.
석목이 일군 영역에는 법칙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묵직한 힘이 가득해 제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앞으로 석목이 일군 영역을 깨트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고개를 들어 올린 제준은 얼굴이 다시 굳어버렸다.
석목이 끊임없이 돌아가면서 여섯 팔을 미친 듯이 휘두르자 사나운 기운이 흘러나오며 석목은 모습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번천곤을 제외하고도 나머지 다섯 무기는 전부 현황 곤봉으로 변했다.
여섯 곤봉 법보가 미친 듯이 날아다니며 흑백 빛을 뿜자 만 리 안에 덮인 천지의 영기가 들끓으면서 천둥이 울려 퍼졌다.
흑백 빛은 옅은 노란색을 머금고 있어 그리 순수하지 않았다.
순간, 흑백 빛이 분리되면서 하얀빛은 위로, 검은빛은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거대한 흑백 공간이 천천히 모양을 갖추었다.
천지의 원기가 들끓으면서 동시에 방대한 법칙의 힘이 흑백 공간으로 다가왔다.
멸선곤법이었다!
흑백 빛이 빠르게 뭉치면서 검은빛과 흰빛을 띠는 커다란 맷돌로 변하여 제준을 가운데로 가둬버리더니 유유하게 돌아갔다.
제준은 기이한 힘이 위아래에서 동시에 밀려오는 걸 느꼈으나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크고 묵직한 소리가 거대한 맷돌에서 흘러나왔는데 그 소리는 마치 갇혀있는 천둥소리와도 같았고, 공간은 맷돌이 돌아가면서 점점 일그러졌다.
흑백 맷돌은 순수한 흑백이 아닌 노란빛이 가득 섞여있었다. 하지만 풍기는 기운은 이전보다 수십 배는 강렬해졌고, 끝없는 파멸의 기운을 흘려보냈다.
제준의 눈에 처음으로 두려운 기색이 스치더니 표정이 얼어붙었다.
석목은 허공에 서서 엄숙한 얼굴로 주문을 외웠다.
“이건 백공 사존님이 널 죽이기 위해서 기나긴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어낸 멸선곤법이야. 이 비술에 죽을 수 있다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라!”
석목은 주문을 멈추고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쾅!
흑백 맷돌은 천천히 합쳐지면서 제준을 짓눌렀다.
석목은 이미 영역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막강한 두 갈래 위압이 제준이 일군 열두 가지 빛깔 영역을 짓눌러 제준이 일군 영역은 격렬한 파동을 일으켰다.
제준이 입을 벌려 금색 환약 하나를 내뱉자 환약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터져버렸다. 그리고 환약은 달걀 모양 금색 보호막으로 변하여 제준을 안으로 드리웠다.
보호막은 겉면에 촘촘하고 현묘한 부문이 흘러 다녔는데 그제야 제준은 얼굴을 풀며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제준은 곧장 검푸른 부적을 날려 몸에 붙였다.
부적은 순식간에 푸른 안개로 변하여 제준의 몸에 스며들었고, 제준의 안색이 곧바로 회복되며 진선지체도 커졌다.
이어서 제준은 열두 손을 일제히 움직이며 굵직한 법칙을 날려 영역으로 흘려보냈다.
열두 가지 빛깔 영역이 곧장 안정을 찾았다.
제준은 소리를 치면서 팔을 바퀴 모양으로 움직이며 법결을 줄줄이 날려 영역을 움직였다. 그러자 영역 속에 있던 열두 갈래 커다란 용이 꼿꼿이 서서는 열두 갈래 빛기둥으로 변하였다.
쾅!
열두 갈래 빛기둥이 흑백 맷돌을 밀어내며 가운데로 합쳐지는 것을 막았다.
흑백 맷돌이 격하게 움직이면서 열두 갈래 빛기둥과 부딪치자 사방으로 빛이 튀었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흑백 맷돌이 합쳐지는 걸 간신히 막아내긴 했지만 열두 갈래 빛기둥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구부러진 기둥도 나타났다.
석목이 코웃음을 지으며 다시 법결을 바꿨다. 그리고 붉은 화염을 날려 두 갈래 빛으로 나누더니 이내 흑백 맷돌에 흘려보냈다.
그러자 흑백 맷돌에서 빛이 밝아지면서 수많은 흑백 번개 구체가 맷돌에서 튀어나와 열두 개의 빛기둥을 내리쳤다.
순간, 사방의 빛기둥이 번개를 튀기며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제준은 그 광경을 보고 또 다른 수단을 부리려 했지만 흑백 번개 구체가 곧장 제준이 일군 영역 속으로 날아 들어가 그중 수백 개가 제준의 몸을 내리쳤다.
쾅!
제준이 두르고 있던 금색 달걀 광막에서 빛이 번쩍이자 흑백 번개 구체는 터져버렸는데 번개가 튀기면서 보호 광막이 드디어 터져버린 것이었다.
제준은 흑백 번개에 묻혀버렸다.
열두 개의 빛기둥은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웠는데 흑백 번개 구체가 날아오자 결국 부서져 버렸다.
흑백 맷돌은 그 틈에 제준을 가운데 두고는 더욱 강력하고 맹렬하게 짓눌렀다.
“안 돼!”
제준의 눈에는 온통 절망스럽고 내키지 않는 듯한 기색이 가득했다.
펑!
제준의 몸은 곧장 터져 혈무가 되어 흩날렸다.
들끓는 혈무에서 제준의 얼굴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제준은 다양한 빛깔을 뿜으며 밖으로 도망가려고 시도했다.
“아니야! 나는 천제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생을 꿈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어찌 너처럼 보잘것없는 놈에게 죽을 수 있겠느냐!”
처참한 제준의 목소리가 혈무에서 울려 퍼졌는데 원망스럽고 불쾌한 기색이 가득했다.
흑백 맷돌은 만 갈래나 되는 빛을 뿜으면서 혈무로 드리웠다. 그러자 제준은 더는 벗어날 수 없었다.
석목은 냉소를 지으며 끊임없이 법결을 바꿨다.
흑백 맷돌이 무정하게 맴돌자 혈무가 다시 한번 찢어져서는 더 작은 알갱이로 부서졌다.
처량한 소리가 혈무에서 흘러나오다가 맷돌이 짓누르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흑백 맷돌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움직였고, 끝없는 흑백 빛 속에서 붉은빛이 미친 듯이 몇 번 번쩍이다가 곧 어두워져서는 철저히 묻혀버렸다.
석목은 깊은숨을 내뱉고는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흑백 맷돌이 서서히 사라지며 그 뒤로 흑백 공간이 빠르게 자취를 감춰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곤륜을 침략하고 창월을 멸했던 제준, 그 안하무인이던 천정의 제왕이 드디어 철저히 사라져 흔적조차 하나도 남기지 않게 되었다.
석목은 눈에 빛을 내뿜으며 제준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복잡한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이 다시 몸을 줄여 미천 거원에서 인족으로 돌아오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제준을 죽여 버렸지만 석목은 심한 상해를 입었다. 심지어 석목은 분신마저 희생시켰다.
석목은 비틀거리며 곧장 곤천건지롱 옆으로 다가왔다.
제준이 죽어버리자 새장도 멈춰버렸다. 하지만 남아있는 영력은 여전히 연나를 속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보물을 조종하고 있지 않았기에 연나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연나, 네 덕분이야.”
석목이 법결을 날려 새장을 조종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새장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멈칫하다가 새장으로 금빛을 날렸다.
날린 금빛은 번천곤에 담긴 본원의 힘이었다.
새장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줄줄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역시 번천곤을 연결하니 간신히 새장을 다스릴 수 있어 석목은 화색을 드러냈다.
쩍!
새장이 천천히 분리되면서 다시 열두 곤봉으로 변했다.
열두 곤봉 법보는 번천곤의 기운을 느끼고는 전부 석목의 옆으로 날아왔다.
석목은 빛을 날려 열두 곤봉을 거두어들였다.
새장이 풀리며 연나도 자유를 되찾았다.
“괜찮아?”
석목은 다급하게 부드러운 노란빛을 연나의 몸으로 날렸다. 그러자 연나가 입은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연나는 고개를 흔들고는 복잡한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때, 푸른빛이 날아와 석목과 연나의 옆에 멈추었는데 그 빛은 속승이었다.
백발이 된 속승은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니 청년 같은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속승은 석목을 공격했던 일이 미안해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 그게……”
속승이 고개를 살짝 들고는 말을 하려고 하자 석목이 손을 흔들며 속승이 하던 말을 끊어버렸다.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제준은 죽었지만 천정이 벌인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죠, 갑시다.”
석목이 말을 하며 금빛으로 변하여 천정으로 날아갔다.
속승과 연나도 지체하지 않고는 석목을 따라갔다.
* * *
격전을 치른 천정은 온통 폐허였다.
천정의 신장들은 천정의 대군을 이끌고 폐허 곳곳으로 갈라져서는 아직도 연합의 대군과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고만족 대군은 더는 북을 치지 않고 다른 병사들처럼 연합의 대군과 근거리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렇게 천정의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랜 전투로 지쳐버린 연합의 대군은 계속 밀려나고 있었다. 물론 위급할 때 충오와 대장로가 대군을 이끌고 다가와 병력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천정의 대군에겐 상대가 되지 못했다.
선장 고명은 전장 곳곳에서 날아다니며 손으로 끊임없이 빛을 내뿜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연합의 대군에 속한 신경 강자들을 공격했다.
안화와 방진은 고명의 뒤에서, 육규종과 서유금은 앞에서 고명을 공격하며 함께 공법을 시전했다.
하지만 고명은 번쩍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육규종과 서유금의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고명은 속도가 너무 빨라 네 사람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고명이 두 사람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동시에 손에 빛을 번쩍이며 육규종을 공격했다. 그러자 육규종은 두르고 있던 갑옷이 부서지면서 뒤로 튕겨져 날아가 기운이 줄어들었다.
이때, 세 갈래 빛이 빠르게 날아오더니 석목과 속승, 그리고 연나가 나타났다.
아래에서 전투를 치르며 번쩍이는 빛들은 세 사람의 시선을 끌지 못해 셋은 허공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나타난 현문대진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는데 다섯 행성에서는 여전히 영력이 쏟아지고 있었고, 허공에 떠 있는 현계지문의 허상은 점점 뚜렷해졌다.
윙!
이때, 현계지문의 허상에서 파동이 일더니 문 속에서 희미하게 비추던 빛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리고 오색 빛이 문에서 날아 나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석목은 실눈을 뜨고는 오색 빛을 바라보았는데 오색 빛에 촘촘한 무늬가 가득 새겨진 게 얼핏 보니 그건 이 성역 세계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부문들이었다.
석목이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는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얼핏 보았던 무늬는 어떤 규칙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속에 천지의 진리가 담긴 것 같이 속에서 강렬한 공간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건……”
석목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