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73화 (873/916)

873화. 현계지문

교전을 치르던 대군들도 현문대진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을 알아차리고는 전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허공에 서 있는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을 본 대군은 흠칫 놀랐다.

고명은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석목 일행 나타나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마음을 가라앉히며 안화를 비롯한 신경 강자들과 싸웠다.

이때, 고명의 앞에 빛이 번쩍이더니 사람 그림자가 번개 같은 속도로 날아왔다.

그림자로부터 기운을 느낀 고명은 깜짝 놀라 곧장 멀리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커다란 손이 고명의 목을 힘껏 눌러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고명의 목을 잡아버린 사람은 석목이었는데 그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는 고명을 한 번 쳐다보고서 손목을 꺾었다. 그러자 ‘쩍!’ 소리와 함께 고명은 목이 부러져버렸다.

이어서 회색 화염이 석목의 손에서 날아 나와 고명에게 드리웠다.

석목이 손에 힘을 풀자 회색 화염에 삼켜진 고명의 시체가 힘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시체는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한 줌의 재가 되어 불타버렸고, 신혼마저 빠져나오지 못했다.

“제준은 도를 어긴 패악한 녀석이다. 그리고 이미 석목 맹주에게 격살을 당했다! 그러니 너희는 저항하지 말고 어서 투항하거라!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녀석이 있다면 죽음뿐일 것이다!”

이때, 속승 진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속승이 내는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온 전장에 드리웠으며 모든 사람의 귓전에서 뚜렷하게 맴돌았다.

석목이 고명을 가볍게 죽여 버린 데다 속승이 하는 말을 들은 천정의 대군은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서로 두리번거리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훅!

천정의 폐허에서 빛이 수십 갈래 동시에 날아올랐는데 그들은 투항을 거절하고 도망가려는 천정의 병사들이었다.

석목은 그곳을 쳐다보지도 않고는 천정의 대군이 도망가는 방향으로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다시 허공에 나타나서는 연나와 속승 옆에 섰다.

사람들은 허공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수백 장 멀리에서 처참하게 울부짖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들었는데, 도망가던 사람들이 전부 핏빛을 흩날리며 터져버리면서 내는 소리였다.

도망가려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도망가려는 생각을 깨끗이 접었다.

“저는 투항하겠습니다……”

잠시 후에 드디어 누군가가 무기를 내려놓으며 두 손을 들었다.

그러자 두 번째, 세 번째…… 순식간에 절반이 넘는 천정의 대군이 투항했다.

천정에 속한 나머지 신장들도 저항을 멈추고는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속승은 한 손을 흔들어 몇 갈래 빛을 날려 천정의 신장들에게로 보냈다.

빛이 신장들에게로 다가오는 순간 어두워지면서 현묘한 부문이 나타나더니 머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이어서 빛들은 전부 신장들의 미간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 광경을 본 미천 연합은 환호하며 소리가 하늘까지 울려 퍼졌다.

방진을 비롯한 이들은 매우 기뻐했지만 석목과 속승, 연나를 보고는 다시 침묵에 빠졌다.

하늘에서 울려 퍼지던 환호 소리도 전부 멈춰버렸다.

천정의 폐허는 순식간에 물을 뿌린 듯이 조용해졌다.

속승은 남은 천정의 신장들에게 금제를 드리운 후에 다시 심각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유금을 비롯한 이들은 곧바로 제준이 죽었지만 만령현문대진이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천제는 죽었지만,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 * *

대장로가 이끄는 가운데 미천 연합과 흑마족같은 각 세력들은 자신들이 이끌고 온 이들을 재정비했다. 그리고 한 곳에 모여 투항한 천정의 병사들을 통제하며 다시 사방으로 흩어져서는 진영을 가다듬었다.

모든 일을 마친 신경 강자들은 다시 석목에게로 날아왔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가왔을 때, 때마침 석목이 내는 목소리를 들었다.

“석두……”

채아가 사람들 사이에서 날아 나와 곧장 석목의 품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그제야 웃음기를 띠며 단번에 채아를 잡아다가 어깨에 올려놓았다.

사람들은 석목과 짧게 인사를 나눈 후에 아무 말 없이 속승과 연나를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에 석목이 물은 말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었다.

“제준과 싸우기 위해 우리는 이 세계의 여러 금제에 관해 연구했네. 그러나 얼마 전에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여러 가지 봉인 금제를 전부 시전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 보화 사매도 이미 칠보묘수가 지닌 위력을 모두 날렸고, 심지어 진기마저 크게 썼지만 이 문을 닫지 못했네.”

속승이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전부 실망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다들 참지 못하고 연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는데 그건 연나에게 별다른 방도가 있지는 않을까 기대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나는 침묵을 지키며 고개를 흔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그렇다고 해도 시도는 해볼 필요가 있겠죠.”

석목은 하늘에서 점점 뚜렷해지는 현계지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채아는 석목이 이제 무언가를 하리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다시 안화의 어깨 위로 날아갔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며 큰 걸음으로 걸었다. 그리고 마치 화살처럼 하늘로 빠르게 날아올랐다.

포효가 울려 퍼지더니 석목이 노란빛을 감아 다시 거원으로 변하였다.

석목은 곧장 현문대진에 놓인 진안으로 날아갔다.

현계지문의 허상에서 끊임없이 눈부신 빛무늬가 날아 나왔다. 그렇게 뿜어져 나오는 빛은 의도하고 석목을 공격하는 건 아니었지만 흩어져 나온 빛이 석목의 몸에 떨어지기도 했다.

채색 빛무늬가 석목의 몸에 떨어지는 순간, 마치 앞에 두꺼운 벽이 나타난 것처럼 석목은 움직임이 매우 느려졌다.

석목의 팔에서 힘줄이 튀어나오더니 방대한 영력이 여섯 팔에서 뿜어져 나왔고, 빛나는 노란 구체가 되어 몸 앞에 뭉쳤다.

석목의 여섯 팔은 한곳으로 모여 연꽃 모양을 이룬 후에 힘껏 앞을 향해 밀어냈다.

훅!

빛나는 노란 구체가 빠르게 날아가서는 허공에 그림자를 그렸다.

순간, 채색 빛무늬가 전부 빛나는 노란 구체로 떨어졌다. 그러나 채색 빛은 구체에 닿는 순간, 곧장 흩어져버려 구체를 막아내지 못했다.

채색 빛이 끊임없이 터지면서 거대한 구체는 드디어 허공을 뚫고 진안을 향해 내리쳤다.

쾅!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빛나는 노란 구체가 진안에서 터져나가 수많은 현황의 번개가 마치 채찍처럼 금빛을 뚫고 뿜어져 나왔다.

퍽!

허공에 소름이 돋는 검은 균열이 쫙 그어졌다.

연합의 대군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 안화와 같은 신경 강자들은 손에 땀을 쥐고 석목을 바라보았다.

현문대진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진안으로 흘러들어간 영력이 멈추자 현계지문이 뚜렷해지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석 맹주님이 해내시겠어!”

아래에 있던 대군은 환호했다.

속승과 연나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허공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석목의 공격으로 일어난 소리가 아니라 하늘에 걸렸던 다섯 영력 행성이 갑자기 터져버리며 낸 소리였다.

다섯 행성은 수많은 오행 영석으로 이루어진 영력 행성이라 그간 너무 많은 영력을 소모를 하여 이미 메말라가고 있었는데 대진이 내뿜는 힘에 밀려 완전히 터져버렸다. 그러자 막강한 다섯 갈래 영력이 다시 오색 흐름을 이루며 단번에 현문대진으로 흘러 들어갔다.

쾅!

하늘에 드리운 커다란 현계지문의 허상이 드디어 완성되자 뚜렷한 현계지문이 그대로 천정의 하늘에 걸렸다.

이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이 문에서 말려나오자 거원이 두르고 있던 노란빛 또한 더 크게 번졌다. 하지만 거원은 막강한 힘에 밀려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석목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지만 현계지문과 멀어지자 압박받던 거대한 힘도 줄어들었다. 이어서 석목은 비틀거리며 인족으로 돌아와 연나와 속승 옆으로 다가왔다.

모두가 허공에 나타난 광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크기가 만 장에 이르는 네모꼴 문은 닫히는 문이 아니었고, 양쪽에 선 문기둥에는 울퉁불퉁하니 기괴한 부문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문틀 위에는 기이한 별 그림이 새겨져 있었는데 하얀빛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문틀 안에는 빛이 흐르고 있었고, 채색 소용돌이가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이와 동시에 커다란 채색 소용돌이에서 막대한 채색 무늬가 날아 나와 하늘을 뒤덮으며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채색 무늬는 전과 같았지만 이전보다 훨씬 화려해 마치 무궁무진한 빛을 머금고 있는 것 같았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기운을 풍겼다.

“현계지문이 결국 열렸구나……”

속승이 중얼거리며 복잡한 기색을 드러냈다.

연나는 표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눈살을 찌푸렸다.

수많은 채색 빛이 끊임없이 화려하게 퍼져갔다. 그리고는 온 천정을 뚫고 나가 허공에서 합쳐져 천정을 이루는 대륙을 전부 감쌌다.

채색 빛이 굵직한 기둥으로 모여 곧장 별 하늘로 찔러들더니 다시 사방으로 흩어지며 성역 대세계에서 사라져버렸다.

천정 밖 먼 곳에서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하자 석목은 두 눈에 빛을 반짝였다.

천정 밖으로 날아간 채색 빛은 곧장 허공에서 사라져버렸다.

허공에서 빛이 흩어질수록 천정 외곽에는 기이한 공간의 힘이 흘러 다니는 것 같았는데 매우 유유하게 흐르는 것 같았지만 온 천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석목이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전에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몸이 격하게 흔들렸다.

연합의 대군은 깜짝 놀라더니 비틀거리며 몸을 바로 세우지 못했다.

주변을 바라보니 온 천정이 마치 파도로 변한 듯 위아래로 용솟음치고 있었다. 또한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들은 전부 우르르 무너졌다.

무너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천정 곳곳에서 먼지가 흩날렸다. 그리고 강이 내려앉으며 깊고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골짜기가 나타나 투항한 천정의 병사들과 연합의 병사들이 곧장 밑으로 추락했다.

땅 여기저기가 터지며 여러 갈래로 나뉘어 서로 얽히고설켰다. 그러자 깜짝 놀란 연합의 병사들은 뿔뿔이 도망갔다.

“어찌된 일입니까?”

안화가 채아를 꽉 붙잡고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조주명은 또 누군가가 공격을 하는 줄 알고 한참 동안 주변을 살폈다.

“땅이 흔들리는 것 같군요.”

“땅뿐만이 아니라 허공도 흔들리고 있어요.”

서유금은 흔들리는 땅을 피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허공에서도 몸을 멈춰 세울 수가 없었다.

“현계지문에서 쏟아지는 건 더 높은 세계에서 들이치는 공간 법칙입니다. 공간 금제의 힘을 머금고 있어서 안정된 천정의 균형을 흔들어 놓은 것 같군요.”

석목이 형태가 없는 파동을 느끼며 말했다.

석목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굉음이 다시 울렸다.

천정과 수백 리 떨어진 산봉우리 꼭대기가 갑자기 폭발하더니 이어서 엄청난 불길이 타오르며 짙은 안개를 감고는 만 장 높이 하늘로 치솟았다.

맷돌만 한 붉은 화염구가 순식간에 허공에서 날아다니며 사방팔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쿵, 쿵, 쿵!

별똥별처럼 쏟아지는 불덩이가 전부 떨어지기도 전에 조금 전에 터진 산봉우리와 같은 맥을 잇고 있던 몇몇 산봉우리도 동시에 터져버렸다.

순식간에 천정의 하늘에는 아주 빽빽하게 불덩이가 날아다녔고, 붉은 불덩이가 뿜어내는 빛은 안개를 감싸고는 하늘을 뒤덮으며 쏟아졌다.

그리고 산맥 위에서 붉은 용암이 분화구를 뚫고 뿜어져 나와 불바다를 이루며 이곳으로 몰려왔다.

연합의 대군과 투항한 천정의 대군은 전부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했지만 이런 엄청난 상황 앞에서 그들은 아무도 도망가지 못했다. 또한 자칫 잘못하면 성계에 이르지 못한 수련자들이 죽어버릴 수도 있었다.

모두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 노란 광막이 나타나 순식간에 펼쳐지면서 수백 장 안쪽을 드리워 연합 사람들을 전부 보호했다.

이어서 연합의 대군이 자리한 또 다른 양쪽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영역 열 몇 군데가 나타나 사람들이 모인 대부분 자리에 전부 드리웠다.

“영역, 영역이야……”

누군가 큰소리를 질렀다.

투항한 천정의 병사들은 자신들도 영역 속에 드리운 걸 보고는 환호했다.

영역이 펼쳐지자 사람들은 곧장 주변의 공기가 안정된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흔들리는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약해졌다.

쾅, 쾅!

연이은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흩날리는 불덩이들이 영역 광막에 떨어졌다가 다시 튕겨져 날아갔다.

석목이 일군 영역은 다른 영역과 달라 떨어진 불덩이들은 순식간에 부서져 버렸다.

영역 바깥도 석목을 비롯한 신경 강자들이 다양한 법보로 막아냈다.

그렇게 신경 강자들이 지켜주는 가운데 천정은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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