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75화 (875/916)

875화. 상계의 기운

옆에 있던 운양빙련(雲陽冰蓮)도 활짝 피었고, 색깔이 곧장 투명에 가까운 흰색으로 변하여 기이한 향기를 풍겼다.

다른 영초도 마찬가지로 빠르게 폐허 곳곳에서 자라나며 전투를 치르면서 빚어진 흔적들을 전부 가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현계지문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구역은 다시 생기가 가득한 모습으로 복구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왕성해졌다.

현계지문과 조금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놀라움과 부러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미천 연합과 흑마 성역에서 온 흑마족들, 그리고 청란성지의 제자들에 심지어 투항한 천정의 패잔병들마저 공법을 시전하여 하얀 원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현계지문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서 기운을 흡수했다.

하얀 원기를 조금만 흡수해도 수련자들이 몇 년, 심지어 수십 년 동안 수련을 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원기는…… 완전히 이 세계의 기운이 아닙니다. 상계의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요!”

석목은 현계지문과 가장 가까이에 서서 하얀빛을 한 덩이 잡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얀빛에는 극도로 얇고 투명한 줄기가 섞여있었는데 그 어떤 영기와도 닮아있지 않아 신비스러운 기운을 풍겼다.

하얀빛을 내는 선기는 석목에게도 매우 좋아 그는 공법을 시전하여 몰려오는 원기를 몸속으로 빨아들였다. 그러자 제준과 대전을 치르며 입었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하지만 석목은 곧장 눈살을 찌푸렸다.

“수련 경지가 약한 자들이 이 선기를 너무 많이 흡수하게 된다면 아마……”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무엇인가 떠올렸다. 그리고 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때, 허공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지더니 호통을 치는 소리와 격전을 치르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석목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현계지문 앞에는 십만 명에 가까운 수련자들이 촘촘하게 서 있었다.

대장로와 방진, 서유금과 같은 대군을 이끄는 우두머리들은 뒤편에 서서 현계지문에서 몰려오는 선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또한 나머지 십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문으로 몰려들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신경 초기 강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탐욕스럽고도 미칠 듯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고, 심지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조금 전만 해도 어깨를 나란히 맞추곤 힘을 합쳐 적과 치열한 전투를 펼치던 사람들이 현계지문과 조금 더 가까워지려고 싸웠고, 그들은 선기를 흡수하기 편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퉈 심지어 격한 충돌을 빚다가 서로를 죽이기까지 했다.

잠깐 사이에 백 명,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었다.

이어서 모두가 놀랄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펑, 펑!

가장 앞에 있던 몇몇 성계 수련자들이 하얀 원기를 지나치게 흡수하여 온몸이 부풀면서 육신이 터져 혈무가 되어 흩날렸다.

성계 수련자들이 빨아들였던 몸속의 하얀 원기는 육신이 폭발하는 순간, 다시 흘러나왔다.

그 광경을 마주한 사람들은 겁에 질려 더는 앞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적잖은 수련자들이 터지는 몸을 보고도 앞으로 밀려갔다.

펑, 펑, 펑, 펑!

연이은 폭발음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고, 순식간에 천 명 가까이 되는 수련자들이 원기를 지나치게 흡수하여 몸이 터져버렸다.

현계지문 앞쪽 허공에는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격전을 펼치는 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다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앞으로 미친 듯이 몰려가던 수련자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서로 눈치만 살폈다.

“다들 들어라. 상계에서 흘러나온 원기는 한계를 돌파할 때 도움이 되지만 너무 많이 흡수하면 자살을 하는 셈이나 다름이 없다.”

석목의 우렁찬 목소리가 대군의 귓전에서 맴돌았다.

이 모든 건 단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수십만 명이 일제히 현계지문으로 몰려가는 바람에 석목도 질서를 다잡지 못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대군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대군은 다시 명령을 받고 물러나 재정비를 했고, 현문과 일정한 거리를 둔 곳에서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선기로 야기된 소동이 드디어 진정되었다.

석목은 가볍게 한숨을 내뱉고는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다시 선기를 연구했다.

석목이 이룬 수련 경지와 육신의 힘이라면 영력을 너무 많이 흡수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오히려 원기를 많이 흡수할수록 유리했다.

석목은 두 팔을 벌리고는 구전현공을 시전했다. 그러자 하얀 원기가 석목에게로 몰려와 몸을 감쌌다.

선기를 흡수한 후에 석목이 절반정도 이루었던 진선지체는 자연스레 상계의 선기를 흡수하면서 빠르게 수련되었다.

석목은 희열을 느끼며 다급하게 온 힘을 다해 상계의 선기를 흡수했다.

들끓는 선기가 끊임없이 몸속의 피와 살로 퍼졌다.

이미 극에 달한 육신이 더욱 단단해졌다.

골격과 근육, 경맥, 심지어 석목의 신혼마저 상계의 선기로 둘러싸여 점점 강해졌다.

석목이 눈을 감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몸속을 이루는 혈육 곳곳은 마치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빠르게 상계의 선기를 흡수하기 시작했고, 석목의 진선지체는 곧장 원만에 가까워졌다.

진선지체가 원만에 가까워지자 육신의 힘이 크게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오감도 강화되었다.

석목은 시력이 엄청나게 좋아져 눈앞의 허공이 점점 투명해지더니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만 리 밖과 수십만 리 밖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전부 석목의 눈에 들어왔으며 천정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도 전부 뚜렷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심지어 스스로 원한다면 천정 밖에 자리한 다른 공간들도 내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선지체가 이렇게 신묘하다니!”

석목은 놀라기도 했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눈을 감고 상계의 선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석목의 얼굴에 투명하고 원만에 가까운 기운이 어려 먼 곳에서 보면 마치 하늘의 신과도 같았다.

연나와 속승도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상계의 선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둘이 입은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었고, 수련 경지도 비약적으로 강해졌는데 그들이 갖춘 실력이 강해지는 속도는 석목보다 빨랐다.

연나가 온몸에 칠색 빛을 드리우자 빛은 마치 영성이라도 지닌 듯이 연나의 몸에서 흘러 다녔다.

칠보묘수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연나의 머리 위에서 떠다녔다. 그리고 칠보묘수에서 막대한 영압이 흘러나와 수련 경지가 조금 약한 사람들은 여파에 밀려 비틀거리면서 먼 곳으로 밀려났다.

칠색 빛 속에 자리한 연나의 몸통은 점점 투명하게 변해 그녀의 모습은 마치 칠색 옥으로 빚어진 것 같았고, 찬란한 빛을 뿜고 있었다.

석목과 제준이 이룬 진선지체와 비슷한 기운이 연나에게서 흘러나왔다.

속승도 마찬가지로 온몸이 짙은 푸른빛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하얗게 변했던 속승의 머리카락은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왔고, 피부도 팽팽한 게 주름 하나 없었다.

속승이 눈을 번쩍 뜨자 찬란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건 날카로운 검의 기운이었다. 이윽고 하늘을 뒤덮는 검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속승은 스스로 마치 하늘을 가르는 신검으로 변한 것 같았다.

쩍, 쩍!

묵직한 소리와 함께 속승의 몸에 마치 청옥을 빚은 듯한 신비로운 무늬가 나타났다.

속승도 진선지체를 수련했다!

석목은 연나와 속승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바라보며 의아했다가 이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연나와 속승은 천 년 전부터 이미 신경 후기 정상에 이르렀기에 천도 법칙의 깨우침을 여전히 알고 있었다.

이 순간, 속승과 연나는 상계의 선기를 흡수한 뒤에 드디어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뎠다.

시간이 반주향 흐르자 현계지문에서 뿜어져 나오던 선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상계의 선기는 빠르게 사라졌고, 마치 얼음이 녹아내리듯 천정에 흐르던 천지의 영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천정에 흐르던 천지의 영기는 수십 배나 더 짙어졌지만 이전처럼 그렇게 신비스러운 효과는 없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아쉬운 듯이 공법을 시전하길 멈추고는 일어서서 화색을 드러냈다.

짧은 시간 안에 모두 실력이 한 단계 넘어섰다.

미천 연합에는 이제 신경 존재가 족히 백 명이나 되어 전쟁이 일어나기 전보다 더 많아졌다.

신경 강자 백여 명 중에 대부분은 황고칠족 사람들이었고, 그중에 반귀 일족과 미천거원 일족이 가장 많았으며 다른 종족들도 각각 스무 명 정도 신경에 진입해 실력이 크게 늘어났다.

미천거원 일족은 지금 황고칠족 중에 으뜸가는 종족이라 불리지만 그건 온전히 석목 덕분이라 각 종족이 갖춘 진정한 실력으로 논하자면 미천거원 일족은 중간보다 조금 못했다.

하지만 미천거원 일족은 이번 대전을 치르며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 전부 출전해 비록 많은 종족 사람들이 전장에서 희생을 당했지만 이런 큰 기회를 얻어 실력이 크게 늘어났다.

신경 강자 백여 명 중에서 신경 중기는 스무 명이 넘었고 대부분은 신경 초기를 돌파했다.

대장로를 비롯한 이들도 신경 중기에 올랐으며 대체로 젊어져 뜨거운 기운을 풍겼다.

충오도 신경 중기가 되었고, 뒤에 서 있던 은련성에서 온 요장들도 실력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연합의 대군들중에 신경 중기에서 신경 후기로 도달한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신경 후기로 오르는 걸 막는 장애물이 너무 단단하여 쉽게 돌파할 수 없을 터였다.

석목은 얼굴에 투명한 빛을 반짝이더니 다시 천천히 눈을 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상계의 선기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석목의 진선지체가 완전히 원만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제준과 싸울 때와 비교한다면 석목이 갖춘 실력은 훨씬 강력해졌고, 이제 다시 제준과 다툰다고 해도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가볍게 이길 수 있을 터였다.

연나와 속승이 기운을 거두어들이더니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두 분, 축하합니다. 진선지체를 수련하셨군요.”

석목이 말했다.

“이제 막 진선지체의 문턱에 이르렀을 뿐이지. 대성하려면 멀었구나. 상계의 선기가 아니었더라면 절대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을 거야.”

속승이 웃으며 말했다.

연나는 한쪽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 미천 연합과 미천거원 일족을 살피더니 더 짙은 웃음을 보였다.

“석두!”

채아가 날아와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채아는 상계의 선기를 흡수하여 실력이 이미 신경 중기 정상에 도달했다.

세상은 다시 고요해졌다.

현계지문은 유유하게 허공에 떠 있었고, 하얀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현계지문 너머에 밝고 드넓은 세상이 어렴풋이 보였다.

“저기가 선계다! 현계지문으로 들어가면 정말로 선계에 들어설 수 있었어!”

군중 속에서 누군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말을 들은 대군들은 눈에 뜨거운 열망이 맴돌았다.

상계의 선기를 맛본 수련자들은 수련 경지가 대폭 강해졌는데 만약 현계지문에 들어가 상계에 진입할 수만 있다면 실력이 어느 정도에 이를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모두 마음이 벅차올랐다.

몇몇 사람들은 결국 참지 못하고는 빛으로 변하여 현계지문으로 날아갔는데 그들은 지룡 일족의 족장 적안과 몇몇 신경 지룡족들이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순식간에 현계지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적안이 고개를 돌려 석목을 한 번 쳐다보았는데 눈빛에는 원망스런 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 눈빛은 이내 쾌감으로 바뀌었다.

적안은 예전에 석목과 충돌을 빚어 일단 지룡 일족이 미천 연합에 가입은 했지만 계속 핵심 자리에선 밀려났다. 특히 적안은 연합에서 늘 머리를 들지 못하고 다녔다.

적안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석목을 원망했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해 그 원망스러운 마음을 조금도 드러내지 못했다.

이제 모든 게 끝이 나 현계지문으로 들어가서 상계로 가기만 한다면 적안에게는 석목을 뛰어넘을 기회가 생길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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