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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876화 (876/916)

876화. 보화의 후계자

적안이 몸을 날려 현계지문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때, 이변이 발생했다.

현계지문에서 하얀빛이 크게 번지면서 수많은 하얀 구체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파멸의 기운을 풍기며 적안을 비롯해 다가오는 사람들을 내리쳤다.

적안은 한순간도 예상한 적 없는 매우 급한 상황을 마주해 안색이 굳어버렸다.

그러나 적안은 신경 중기 경지인데다 조금 전에 상계의 선기를 흡수했기에 실력이 오른 상태라 구체를 뚫고 지나갈 시도는 할 수 있었다.

적안이 소리를 지르자 몸에서 실존하는 듯한 노란빛이 나타나 계속해서 번쩍였다.

적안에게서 암석 같은 노란 용비늘이 나타났고, 등 뒤에는 창 같은 뼈가시가 한 줄 자라났다. 이윽고 적안의 두 손은 이미 용의 발로 변해 날카롭고 뾰족한 발에서 차가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적안은 순식간에 절반은 사람에 절반은 용인 상태로 변하였다. 또한 온몸이 매우 단단해 보였는데 두 발에도 방어 법보가 나타났다.

법보 중에 하나는 노란 배였고, 다른 하나는 검은 세모꼴 방패였다.

두 법보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두 갈래 빛고리로 변하여 적안을 안으로 드리웠다.

적안은 그나마 막아냈지만 나머지 몇몇 신경강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는 그대로 수많은 빛나는 하얀 구체를 몸으로 맞았다.

처참한 소리가 빛 속에서 울려 퍼지자 아래에서 차오르는 탐욕을 억누르지 못하고 적안 일행을 쫓아가려던 사람들은 심장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몸에 힘이 풀리면서 소름이 돋더니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은 걸 다행스럽게 여겼다.

하얀 구체가 흩어지자 그림자 하나가 허공에서 떨어졌는데 그 그림자는 바로 적안이었다. 또한 나머지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적안은 매우 처량한 꼴이 되었는데 머리카락은 흩날렸고, 온몸을 덮은 비늘이 찢어져 몸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특히 적안은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몸통이 두 덩이로 갈라질 것만 같았다.

조금 전만해도 들고 있던 두 법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는데 아마 하얀 번개에 불타버렸을 터였다.

적안은 입으로 붉은 피를 뿜어내며 온통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적안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보호 광막을 한 층 감고는 먼 곳으로 도망을 쳐 현계지문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싶었다.

쾅!

현계지문에서 하얀빛이 다시 번쩍이자 길쭉한 용처럼 생긴 하얀 번개가 꿈틀거리며 적안을 쫓아가 놀라운 속도로 그를 내리쳤다.

적안이 두른 보호 광막은 마치 얇은 종잇장처럼 터져버렸고, 육신 또한 터져버리면서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모든 일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는데 몇몇 신경강자들이 죽어버린 후로 현계지문 앞쪽 허공이 흔들리자 적안의 얼굴에서 두렵고도 씁쓸한 기색이 어리더니 이내 적안의 몸이 터져버렸다.

사람들은 찬바람을 들이마시며 아무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현계지문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아니네. 하얀 번개는 상계의 태범신뢰(蛻凡神雷)지. 신뢰로부터 세례를 받아야만 범인의 육신을 벗어던지고 상계에 들어갈 수 있네. 헌데 신뢰의 위력을 보니 신경 후기라 해도 돌파할 가능성이 삼 할 정도밖에 없어 보이네.”

속승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전부 안색이 얼어붙었다.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이성을 되찾으며 현계지문으로 들어가려던 생각을 포기했다.

상계가 그 아무리 좋아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건 아니었다.

속승이 고개를 돌려 석목과 연나를 바라보더니 눈에 이채를 흘리면서 물었다.

“현계지문이 이제 열렸으니 우리가 갖춘 실력으로는 이 문을 통과할 수 있을 걸세. 상계로 올라가겠는가?”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나는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침묵을 지켰다.

“이 문을 여느라 온 천하의 생령들이 희생되었지만 문이 열렸는데에도 들어가지 않는다면 낭비나 다름없지. 나는 이 세계에서 할 모든 일을 마쳤기에 더는 미련이 없네. 이제 현계지문으로 들어가야지.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면 상계의 풍경도 한 번 구경할 수 있겠지. 둘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속승은 열망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저는 됐습니다. 이곳에서 할 일이 더 남았으니까요.”

석목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속승은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잘 생각해야 하네.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되면 아마 영원히 상계로 들어갈 기회가 없을 테니.”

속승이 말했다.

석목은 이미 결단을 내린 것처럼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석목이 단호하게 말하자 속승은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연나를 바라보았다.

“사매, 어떻게 하겠는가?”

“너, 종수를 찾으러 갈 거야?”

연나는 속승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석목을 바라보았다.

“음, 종수가 사라졌어.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야 해.”

석목의 눈망울이 미세하게 떨렸다가 다시 단호해졌다.

연나는 차분하게 석목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름다운 눈에서 씁쓸한 기색이 스쳤다.

“나도 이 세계에 더는 미련이 없으니 속승 사형과 함께 상계로 올라갈게.”

연나가 차분하게 말했다.

석목은 연나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바라보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곧장 종수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다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곤 깊은숨을 내뱉었다.

셋이 대화를 끝내기도 전에 한쪽에 있던 청란성지의 제자들과 흑마족 사람들이 대화를 엿듣고는 전부 날아왔다.

연나의 앞에는 석무애, 명라와 같은 마존들과 하얀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석무애와 명라 같은 마존들은 실력이 크게 늘어났으며 전부 신경 중기에 이르렀다.

하얀 옷은 입은 소녀는 수련 경지가 이미 성계 중기에 이르렀다.

“보화 언니!”

명라가 아쉬워하며 연나를 불렀다.

석무애를 비롯한 다른 마존들도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제준은 이미 죽었구나. 천정도 흩어졌으니 더는 흑마 성역을 위협하지 못하겠지. 앞으로 흑마 성역은 네게 맡길게.”

연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얀 옷을 입은 소녀는 연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자 차갑던 소녀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커다란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이 사존은 하계에서에서 할 일을 전부 마쳤구나. 앞으로 흑마 일족은 네게 맡길게.”

연나는 하얀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매우 자상한 표정을 지었다.

연나가 손을 흔들자 칠보묘수가 소녀의 손에 떨어졌다.

연나가 하얀 소녀의 머리를 짚자 손에서 일곱 갈래 빛이 날아가 소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얀 소녀의 미간 사이에서 화려한 빛이 반짝이더니 칠색 자국이 생겼다.

“오늘부터 보화라는 이름은 네게 물려줄게. 앞으로 너는 보화 성조니 나와 같은 대우를 받을 거란다! 너희는 제대로 보화를 보좌를 해야 한다!”

연나는 소녀를 향해 말을 하다가 다시 시선을 명라와 석무애를 비롯한 마존들에게 돌렸다.

석무애와 같은 마존들은 이미 소녀가 연나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리 놀라지 않았다.

“네, 오늘부터 성조님께서 내리시는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석무애를 비롯한 마존들이 공손하게 소녀에게 인사를 올렸다.

하얀 옷을 입은 소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이어서 약하게 드러낸 감정이 사라지더니 원래 짓던 차가운 표정을 다시금 드리웠다. 그런 소녀는 나이가 비록 어렸지만 위엄이 넘쳤다.

연나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는 흡족해하며 웃었다.

“사존님!”

한편 풍리와 같은 청란성지의 제자들도 속승의 옆으로 날아왔다.

“풍리, 그동안 너는 내 곁에 없었지만 이 결전을 위해 큰 공을 세웠구나. 나는 이제 상계로 올라가니 청란성지는 네게 맡기마.”

속승은 푸른 영패를 꺼내 풍리에게 건네주었다.

“사존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자, 사존님의 기대에 부응하여 청란성지를 널리 알리겠습니다.”

풍리가 말했다.

속승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석목에게 끄덕이고는 몸을 날려 현계지문으로 날아갔다.

연나도 칠색 빛을 번쩍이며 속승을 뒤따라갔다.

쾅!

현계지문은 마치 두 사람의 실력이 적안과 같은 이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두 사람이 다가오기도 전에 하얀빛을 드리우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위압감을 흘려보냈다. 이어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수많은 번개 구체가 쏟아져 나와 속승과 연나를 내리쳤다.

번개 구체는 조금 전보다 몇 배나 더 커져 마치 맷돌 같았는데 빛나는 하얀 번개가 흐르면서 번쩍이는 게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속승과 연나는 푸른빛과 칠색 빛을 넓게 펼쳤다.

하얀 번개 구체가 맹렬하게 공격을 날렸지만 두 사람을 감싸는 보호 광막은 미세하게 떨리기만 했고, 위력이 막강한 번개 구체가 전부 튕겨져 날아갔다.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 현계지문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내뿜는 기운 또한 한 층 더 짙어졌다. 그 순간, 수백 마리의 뇌룡 같은 번개가 뿜어져 나와 하늘을 뒤덮으며 속승과 연나에게로 쏟아졌다.

뇌룡이 스친 공간에서 파동이 퍼져나갔다.

뇌룡은 위력이 번개 구체보다 몇 배나 더 강력했다.

찬란한 빛이 하늘을 가득 채워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었다.

방대한 위압감이 몰려와 모든 사람들이 수백 장 멀리까지 물러났지만 석목만이 제자리에서 고개를 들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백 마리 뇌룡과 마주한 속승은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 푸른빛을 더욱 크게 펼쳤다. 그러자 푸르스름한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어서 속승을 중심으로 푸른 연꽃이 활짝 피어나더니 순식간에 몇 묘까지 불어나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푸른 검기가 미친 듯이 퍼져가면서 모든 하얀 뇌룡을 감싸고는 이내 부숴버렸다.

한편, 연나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앞쪽으로 팔을 휘두르자 앞에 굵직한 은색 빛기둥이 나타났다.

연나가 주문을 외우니 빛기둥이 다시 불어나 머리 위쪽 허공에 파동이 일었고, 이어서 빛기둥은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은빛 태양으로 뭉쳤다.

연나가 손가락으로 은빛 태양을 가리켰다.

쾅!

거대한 은빛 태양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자 수많은 은빛 빛줄기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연나의 주변에 감돌던 공기가 일그러지면서 은빛 태양을 중심으로 커다란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우르르 몰려오던 뇌룡은 연나와 가까이 붙던 순간, 전부 공간 소용돌이로 흘러들어갔고, 곧장 터져버려 빛나는 번개가 되어 흩날렸다. 그러자 연나 주변 십 장 안쪽엔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수백 갈래 하얀 번개 또한 철저히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현계지문에서 나던 빛이 다시 밝아지더니 이어서 수많은 하얀 부문들이 쏟아져 나와 두 사람에게로 떨어졌다.

하얀 부문들은 사람 머리만 했고, 그 위에서 번개가 튀었다.

하얀 부문들은 번개 구체나 뇌룡보다 훨씬 작았지만 풍기는 번개 법칙의 파동은 끝까지 이르러 번개 구체와 뇌룡보다 훨씬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다.

속승과 연나는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속승이 피어낸 푸른 연꽃이 줄어들면서 푸른 검기가 훨씬 촘촘해졌다.

쾅!

하얀 부문들이 푸른 연꽃에 떨어지자 연꽃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어렵게 버텨내며 하얀 부문들을 찢어버렸다.

연나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자 칠색 빛이 몸에서 흩어져 칠색 영역을 이루었고, 연나의 머리 위에는 은색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연나 주변에 일던 공간 소용돌이가 계속해서 돌아가며 몇 배나 더 빨라졌다. 그리고 하얀 부문들을 절반 정도 날려버리더니 나머지 절반을 곧장 칠색 영역 속으로 불러들였다.

둘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쉬지 못한 채 상계로부터 내리치는 번개 공격을 막아내면서 계속해서 현계지문으로 향했다.

드디어 모든 하얀 번개 세례를 막아내자 속승과 연나는 현계지문 앞으로 다가갔다.

현계지문에서 빛나던 무늬가 다시 밝아지는 게 더욱 굉장한 시험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빨리 들어가!”

속승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더니 푸른 연꽃을 거두어들였다.

속승은 뚜렷한 그림자로 변하여 곧장 현계지문으로 스며들어 사라져버렸다.

연나도 눈에 빛을 반짝였고, 다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은빛 태양이 연나의 몸속으로 들어가 영역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연나는 현계지문으로 들어가서 문 속에 비치는 밝은 세상에 몸을 녹였다.

하얀 빛 속에서 연나가 고개를 돌려 아래를 한 번 바라보았다. 과연 아름다운 두 눈망울에 누구의 모습이 비쳤을까?

이어서 연나의 모습은 완전히 하얀빛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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