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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878화 (878/916)

878화. 뒤돌아 보다

“왜? 그리고 너, 아까부터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

한참 후에 석목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은 일? 좋은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이유가 있어. 우린 상계로 갈 거야. 가서 진정한 영생의 길을 찾을 거야.”

수령자가 후후 웃으며 말했다.

“상계로 간다고? 현계지문은 이미 닫혔어. 다시 열려는 건가? 그건 절대 안될 일이지.”

석목은 깜짝 놀랐다가 다시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걱정 마. 네게 그런 일을 하라고 하지는 않을 거야. 현계지문이 없어도 너는 상계에 갈 수 있어.”

수령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석목은 놀란 듯이 물었다.

채아는 수령자를 노려보다가 이내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드러냈다.

“석목, 현계지문이 열린 후로 이 세계가 무언가 달라진 것 같지 않나?”

수령자는 웃음을 거두어들이고는 물었다.

석목은 침묵을 지키다가 눈을 감고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한참 후에야 석목은 다시 두 눈을 떴다.

“은연중에 무엇인가가 더 생긴 것 같아.”

석목이 입을 열었다.

“그래? 나는 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

채아가 눈을 감고는 석목이 말하는 무엇인가를 느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이 현계 공간을 이루는 대도 법칙이야. 현계지문에서 날아 나온 거지. 그러니까 이런 법칙은 상계에서 내려왔어.”

수령자가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랐다.

석목은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났지만 대도 법칙 같은 현묘하기 그지없는 이치들을 잘 알지 못했다.

“우리가 머무는 이 현계 공간은 상고 시대부터 천도 법칙이 온전하지 않았지. 그러니 이 세계에서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고생스럽게 수련을 해도 스스로 비승해서 상계에 올라갈 수 없었어.”

수령자가 말했다.

“그래?”

석목은 깜짝 놀랐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이유는 상계에 올라가야만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현계지문이 열린 후로 대도 법칙이 온전해졌지. 게다가 현계 공간과 상계 사이에 연결 또한 더욱 더 단단해졌어. 그러니 나중에 수련 경지가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대도 법칙이 뇌겁의 시험을 불러와 시험을 통과하면 상계로 비승할 수 있게 될 거야.”

수령자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화색을 드러냈다.

상계로 들어가지 못해 많은 아쉬움이 있었던 터였는데 다르게 비승을 할 방법이 있었다니.

“네 수련 경지라면 곧장 시험에 들 수 있으니 나는 네 영수가 되어 함께 상계로 비승할 수 있겠지.”

수령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채아는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석목은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석목은 종수를 찾아야만 해서 아직 비승할 때가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 시험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으니 네 수련 경지를 잠시 봉인할 수도 있지. 힘의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다면 뇌겁은 쏟아지지 않을 거야.”

수령자는 석목이 하는 걱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그럼 부탁해.”

석목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리고 앞을 짚어 정혈을 날리자 미간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신혼의 힘이 한 갈래 날아 나와 정혈과 함께 투명한 부문 속으로 스며들었다.

윙!

부문이 터져버리면서 수많은 작은 부문들로 변하여 파동을 일으키며 계약 진법을 이루었다.

진법이 이루어지는 순간, 곧장 세 번 번쩍이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진법은 두 갈래 빛으로 변하여 석목과 수령자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채아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채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건 수령자를 받아들였다는 뜻이었다.

석목은 여기서 더 머물지 않고 빛으로 변하여 날아갔다.

* * *

하지만 석목은 하늘이 아닌 천문 전송진으로 날아갔다.

“이놈아, 뭐하는 거야?”

수령자가 멈칫하며 물었다.

“현문이 열린 후부터 행성들엔 전부 공간의 힘이 드리워져 있어.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고 풀어낼 방법을 찾아야 해.”

석목이 말했다.

“그 일이라면 아마 해결할 수 없을 거야.”

수령자가 눈에서 이채를 흘렸다.

“그래? 어찌된 일인지 알고 있나?”

석목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추측하는 바가 있긴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아. 한 번 가보지.”

수령자가 말했다.

“뭐야! 결국, 모른다는 거잖아.”

채아가 옆에서 혀를 찼다.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공간의 힘이 요동치기 시작하며 석목이 날아가는 길을 막았다.

하지만 이 정도 공간의 힘은 석목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해 그는 빛을 번쩍이며 공간의 힘을 부숴버리고는 순식간에 수만 리까지 날아갔다.

이곳에 감도는 공간의 힘이 끝에 다다라 마치 파도가 몰아치는 듯이 기류가 들끓어 석목이 날아가는 속도에 영향을 미쳤다.

거세게 몰려오는 공간의 힘과 기류가 합쳐져 단단하기 그지없는 벽을 이루면서 앞을 가로막았다.

석목이 주먹을 휘두르자 막대한 힘이 석목의 몸에서 뿜어져 나가 공간의 힘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석목이 몸을 비틀거리더니 구멍에서 날아 나와 천정을 떠나 별하늘로 올라왔다.

* * *

석목은 별하늘에 격변이 일어나고 있어 안색이 어두워졌다.

혼란스러운 힘의 파동이 곳곳에서 번쩍이더니 오색영롱한 빛이 무질서하게 들끓으며 공간 난류를 이루었다.

별하늘에 흐르는 공간의 힘은 극도로 혼란스러워 심지어 공간 균열까지 줄줄이 나타났다.

공간 난류도 매우 위험해 신경 강자라 할지라도 조심스럽게 다녀야만 했다.

하지만 난류는 석목에게 별다른 상해를 입히지 못했다.

“어찌된 일이지.”

석목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채아는 그런 광경과 마주하자 입을 크게 벌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천도 법칙이 온전해지면서 현계 공간에 있는 모든 게 다시금 정돈되겠지. 아래에 놓인 행성을 봐.”

수령자가 말했다.

석목과 채아는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더욱 깜짝 놀랐다.

천정이 있던 행성이 매우 커졌는데 지금까지 석목이 보았던 가장 큰 행성보다 열 배는 더 큰 것 같았다.

별하늘은 수많은 공간의 힘과 다른 다양한 힘들로 둘러싸여 커다란 광막을 이루었다.

석목이 주먹으로 내리친 건 그 광막이었다.

광막에 난 구멍 주변에서 힘이 들끓더니 이내 다시 구멍이 메워졌다.

다양한 공간 난류가 행성을 감싼 광막에 부딪쳤지만 광막은 공간 난류로부터 힘을 흡수하면서 점점 더 두터워지더니 점점 더 커졌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눈을 깜빡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행성을 둘러싼 광막이 점점 커지고 있어.”

채아가 물었다.

“광막은 난류의 힘을 흡수해 공간 장벽을 이루고 있지. 그러니 행성들은 아마 폐쇄되어 독립된 공간으로 변할 거야.”

수령자가 말했다.

“독립된 공간?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채아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이제 각 성역에 있는 행성들은 전부 눈앞에 보이는 행성처럼 공간 장벽으로 둘러싸이게 될 거야. 만약 모든 행성이 독립된 공간이 된다면 행성 자체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단단해진 공간 장벽은 신경 강자라고 할지라도 뚫을 수 없을 거야.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하늘에 드리운 공간 장벽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지겠지. 그렇게 되면 성역 전송진법은 단단한 공간 장벽을 뚫지 못할 테니까 행성 사이는 완전히 막힐 거야.”

석목은 성역이 처한 상황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부터 현계 공간은 아마 완전히 새로운 기원을 맞이할 터라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였다.

그 말을 들은 채아는 깜짝 놀라서 입을 크게 벌렸다.

“이놈아, 네 말은 틀렸어. 독립된 공간이 만들어지면 공간의 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행성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억만년이 지난 후라면 지금 있는 행성들이 또 다른 형태로 변하겠지.”

수령자가 입을 열었다.

수령자가 한 말도 가능성이 있어 석목은 눈썹을 치켜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어떤 일도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억만년 후에 벌어질 일이라면 석목과 상관없는 일이 될 터라 그는 곧장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석목이 해야 할 일은 종수를 찾는 일이었다.

행성 곳곳에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행성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니 석목은 이제 미천 연합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석목은 눈에서 어둠이 스쳤는데 모든 행성이 독립된 공간으로 변하여 봉인된다면 종수도 한 행성에 갇히게 될 터였다.

종수는 실력이 매우 뛰어나지만 공간 장벽을 뚫지는 못할 터였다.

석목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꼭 종수를 찾아내야만 했다!

“수령자, 조금 전에 말한 봉인 비술을 알려줘.”

석목이 말했다.

수령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 사이에서 파란빛을 날려 석목의 머릿속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파란빛은 현묘한 비술로 변했다.

석목은 잠깐 깨우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수령자가 말한 대로 이 봉인 비술은 매우 현묘했다.

석목은 한 줄기의 빛으로 변하여 먼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무궁무진한 공간 난류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수아, 기다려……”

* * *

세월은 쏜살같이 흘렀다.

천정과의 대전을 끝낸 후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백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천하 성역의 무암성.

미천 연합의 연합 대전은 여전히 무암성에 우뚝 솟아 있었고, 그대로 쇠락하지 않았다. 또한 연합 대전 주변에는 적잖은 건물들이 서 있어 웅장한 건물들로 부락을 이루었다.

이미 천정을 물리쳤지만 미천 연합은 해체되지 않아 계속 유지되었다. 그리고 천하 성역의 여러 종족들을 다스리는 한 중요한 조직이 되었다.

대전 주변에는 각 종족에서 온 호위병들이 서 있었는데 칠황고족과 심지어 사라진 줄 알았던 여덟 번째 종족인 요와 일족도 있었다. 그리고 몇몇 중소 종족들도 모여 있었다.

미천 연합은 세력이 날로 강대해졌다.

그리고 오늘은 미천 연합이 십 년에 한 번 개최하는 수장들의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연합의 의사대전에는 백박 대장로와 육규종, 방진과 안화, 그리고 서유금을 비롯한 장로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백 년이 흘렀지만 장로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계지문에서 흘러나온 선기와 백 년간 수련을 거치면서 모두 수련 경지가 전부 강해졌다.

장로들은 순서대로 대전에서 착석했고, 연합이 처리할 다양한 일을 논의했다.

하지만 주좌는 여전히 비어있었다.

“백 년 전에 현계지문이 열리면서 일어난 재난은 거의 다 극복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한숨을 돌릴 수 있겠군요.”

대장로가 입을 열었다.

그해에 현계지문이 열리면서 각 성역에는 재난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팔황고족은 실력이 워낙 막강한데다가 머무는 곳을 진법으로 지켜 천재지변을 유리하게 막아냈다. 게다가 팔황고족은 이제 막 태어난 종족 사람들도 실력이 막강하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들이나 힘이 없는 종족들은 상황이 좋지 않아 연이은 재난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때문에 산이 무너지고 하천이 흘러넘치면서 몇몇 행성에 살던 생령들이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런 재난은 미천 연합에는 큰 기회였는데 곳곳에서 수련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미천 연합에 가입을 했고, 보호받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미천 연합은 가입하겠다는 작은 종족들을 전부 받아들였고, 일정한 보호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작은 종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고, 곳곳에 단단한 보루를 지어 간신히 재난을 이겨냈다.

미천 연합은 세력이 갈수록 막강해졌고, 이제 천하 성역의 종족들 중에 팔 할이나 가입을 했다.

지금 천하 성역은 온전히 미천 연합이 이끌었다.

게다가 천정에 남은 연합 사람들의 실력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천정이 있던 행성을 완전히 차지했다.

또한 풍부한 자원으로 백 년 동안 엄청난 고수들을 육성시켰다.

지금 미천 연합은 과거 천정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역 곳곳에서 이름을 떨쳤다.

“각 성역이 처한 상황은 비슷합니다. 현계지문이 열리면서 받은 영향이 점점 사라지고 있죠. 천정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하지 않으니 성역마다 실력을 되찾는 속도도 크게 늘었습니다. 그러나 곧 다른 성역이 따라올지도 모르니 우리는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되겠어요.”

육규종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성역들 중에 특히 미양 성역과 흑마 성역은 실력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 미천 연합에게 그리 뒤처지지 않았다.

“아쉽게도 각 성역을 막는 공간의 힘이 점점 단단해져 공간 장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행성 사이를 오가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자원으로 연합은 실력이 더욱 크게 늘었을 테죠.”

방진이 말했다.

자정마우 일족의 실력도 크게 늘어 미천 연합에서는 미천거원 일족과 반귀 일족의 뒤를 이었다.

“자연 현상이라 우리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최대한 극복할 수밖에 없겠지요. 현계지문이 열리면서 이런 변고가 일어나다니.”

서유금이 말했다.

“천지의 자연 현상은 우리가 예측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맹주님이 계신다면 아마 어느 정도 알아볼 수는 있었을 텐데.”

육규종이 말했다.

석목을 언급하자 사람들은 전부 주좌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천정이 투항을 한 후에 이미 백 년이나 지났습니다. 맹주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안화가 한숨을 내뱉었다.

대장로는 비어있는 주좌를 바라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천정에서 미천 연합을 떠난 석목은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미천 연합은 심지어 다른 성역에까지 사람을 보내면서 석목을 찾아다녔지만 여전히 아무 소식도 알아내지 못했다.

“맹주님, 안 돌아오실 겁니까……”

대장로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 * *

미양 성역의 변두리, 남해성.

이 행성은 외진 곳에 있었지만 백 년 전에 일어난 변화가 이곳에도 파장을 미쳐 남해성에 공간 장벽이 한 층 드리워졌다. 그리고 장벽은 점점 커져 점차 독립된 공간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남해성에 있는 사람들이 아마 알아 챌 수 없을 터였다.

남해성도 여러 번 천재지변을 겪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회복되어 예전처럼 생기를 되찾았다.

그런 남해성의 동주 반도에 자리한 작은 어촌 마을.

어민들 수십 가구가 이곳에서 살며 해가 뜰 때 나가 해질 때 들어왔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긴 마치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동주 대륙은 지금 추운 겨울이라 어촌에선 고기잡이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 집에서 따뜻한 기운을 만끽하며 한 해 동안 고생한 몸을 녹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촌과 그리 멀지 않은 한 산에는 풀들이 가득 자라나 있었고, 무덤이 곳곳에 있었다. 그리고 무덤 앞에 청년 한 명이 서 있었다.

바닥에는 하얀 눈이 두껍게 깔려있었고, 하늘에는 눈꽃이 흩날렸다.

푸른 옷을 입고 있는 키가 훤칠한 청년은 외모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속세를 벗어난 듯한 기운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청년은 옷을 두껍게 입고 있지 않았지만 추워 보이지는 않았다.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은 석목이었다.

석목은 멀리 있는 어촌 마을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수백 년이 흘렀지만 이 마을은 예전과 달라진 점이 없었다.

“어머니, 제가 돌아왔어요.”

석목은 무덤 앞에 꿇고 앉았다.

무덤 주변에는 석목이 남긴 금제가 있어 수백 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윽고 석목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머니, 아들이 왔어요……”

고향 땅을 밟자 석목은 다양한 감정이 함께 휘몰아쳤다.

석목은 무덤 주변으로 노란빛을 날렸다.

노란 광막이 무덤 주변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머니, 밖을 떠돌아다니며 많은 일을 겪었네요……”

석목은 다시 침묵을 지키더니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일일이 말했다.

“…… 그런데 아쉽게도 수아는 찾지 못했어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더군요. 수아와 함께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석목이 씁쓸한 기색이 잔뜩 배인 얼굴로 깊은숨을 내뱉었다.

백 년 동안 석목은 수많은 행성을 떠돌아다니며 종수를 찾아다녔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종수는 마치 완벽히 이 성역 대세계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께서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지요. 시간을 더 들여서 온 성역을 뒤져서라도 계속 찾을 거예요.”

석목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고민을 전부 털어놓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져 석목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눈은 점점 더 심하게 흩날리더니 산 전체를 하얗게 뒤덮었다.

석목은 어촌 마을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한숨을 내뱉더니 곧바로 떠나려고 했다.

“석 오라버니……”

부드러운 목소리가 갑자기 석목의 뒤에서 울려 퍼졌다.

석목은 몸이 그대로 굳어버려 멈칫하다가 돌아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흩날리는 눈꽃에서 세 여인이 나타났다.

가장 앞에 있는 여인은 푸른 치마를 입고 있었고, 수려한 머리카락을 폭포처럼 드리웠다. 그리고 여인의 주옥같은 눈망울에서 빛이 반짝였는데 그녀는 석목이 그토록 오매불망 찾고 있던 종수였다.

종수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에 선 남자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종수의 뒤에 서 있는 두 여인 중 한 명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고, 맨발로 하얀 눈을 밟고 있었다. 그리고 별 같은 두 눈으로 바라보는 이 여인은 서문설이었는데 그녀는 복잡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또 다른 여인은 붉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요염한 얼굴로 웃는 듯 아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금소채였다.

세 여인이 서 있는 모습은 마치 그림 속 한 장면과 같았다.

시간이 조금씩 흘렀고, 함박눈이 동주 대륙에서 흩날렸다…….

『현계지문』 본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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