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82화 (882/916)

외전 4화. 기괴한 머리뼈

사내는 조심스럽게 석목을 훑어보더니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이렇게 가볍게 향주를 구했으니 절대 평범한 실력은 아니리라는 건 짐작했다.

하지만 석목이 하는 말을 듣고서 사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죽고 싶나?”

교룡 머리 사내가 분노하며 외치더니 머리 위에 뜬 해골 법보를 짚고는 동시에 입을 벌려 피를 뿜어냈다.

핏빛 해골에서 끈적이는 빛이 뿜어져 나와 해골에서 굵직한 골격이 자라나더니 살과 살갗도 돋았다.

순간,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흉악한 짐승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 짐승은 온몸이 붉은색이었고, 원숭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박쥐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또한 유난히 크게 찢어진 입 안에는 뾰족한 이가 이리저리 누워있어 매우 포악해보였다.

핏빛 안개가 짐승의 몸에서 피어오르더니 점점 넓게 퍼졌다.

방대한 기운이 짐승에게서 흘러나와 이미 천위 후기는 되는 것 같았다.

향주와 그녀의 뒤에 서 있던 해족들은 교룡 머리 사내에게 더 숨겨진 공법이 있으리라 짐작하지 못한 것처럼 안색이 굳어버렸다.

“죽어!”

교룡 사내가 다시 법결을 날리며 석목을 공격했다.

짐승이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붉은빛을 뿜어내더니 거대한 몸통이 그대로 허공으로 떠올라 살기를 풍기면서 석목을 덮쳤다.

향주는 안색이 얼어붙더니 곧장 파란 가마를 시전하여 석목을 도와주려고 했다.

그러자 석목이 향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 구경이나 해.”

이어서 석목은 핏빛 짐승을 한 번 보고는 냉소를 짓더니 손가락을 앞쪽으로 튕겼다.

노란빛이 몇 갈래 번개를 감고는 튀어 나갔다.

노란빛은 속도가 매우 빨라 번쩍이는 사이에 핏빛 짐승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그러자 거대한 짐승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쾅!

짐승은 덮치던 몸짓 그래도 허공에 멈춰버렸다가 이내 폭발하더니 허공에서 흩날렸다.

짐승의 뒤에서 덮쳐오던 사내는 곧장 몸을 굴려 이삼십 장 되는 거대한 교룡으로 변신했다.

교룡이 두른 비늘 갑옷에는 검은색과 붉은색이 물들어 있었고, 몸에는 온통 뼈가시가 돋아있었다. 그렇게 교룡은 꼬리를 휘저으며 다른 방향에서 석목을 덮치려고 했다.

사내는 요족 본체로 변신한 순간, 앞쪽에서 덮치던 짐승이 터져버리는 모습을 보고는 그대로 멈춰 서서 입을 크게 벌렸다. 또한 기세등등하던 교룡의 표정은 겁에 질린 얼굴로 바뀌었다.

뒤에서 함께 덮치던 가시가 돋은 해족들도 전부 제자리에서 얼어버렸다.

향주를 비롯한 해족들도 전부 놀란 얼굴로 멍하니 석목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짐승이 폭발하면서 납작한 무언가를 하늘에서 굴러 떨어뜨렸는데 그건 핏빛 해골 법보였다.

해골 법보에선 핏빛이 번쩍이고 있었고, 구멍도 하나 뚫려있었는데 조금 전에 노란빛이 뚫어버린 구멍이었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해골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별것 아닌 듯이 손에 힘을 주었다.

쩍!

핏빛 해골이 터져버려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검붉은 교룡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두려운 기색을 드러냈다.

핏빛 해골 법보는 사내가 우연히 주운 짐승의 뼈였는데 해골 속에는 극도로 강한 힘이 들어있어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사내는 백 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간신히 해골을 법보로 제련시켰다.

해골이 지닌 위력은 막강했고, 법보로 제련한 후에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런데 눈앞에 선 녀석이 가볍게 법보를 부숴버렸으니 저놈은 실력이 아마 매우 뛰어날 터였다.

“석목 오라버니…… 실력이 이런 경지에 이르렀다니. 이미 천위를 뚫었나요? 아니면 전설 속의 성계에 올랐나요?”

향주는 그제야 무엇인가를 깨닫고는 좋아하며 말했다.

“그동안 성역 세계를 돌아다니며 실력이 빨리 늘었어.”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이룬 수련 경지를 전부 드러내지 않았다.

이때,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세 갈래 빛이 먼 곳에서 날아왔다.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였는데 그렇게 다가온 빛들은 세 여인이었다.

향주는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며 바람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해서 고개를 돌려 빛이 날아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내 벗들이야.”

석목이 향주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향주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이때, 석목은 갑자기 고개를 돌리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도망가려고?”

검붉은 교룡은 석목이 방심하는 틈을 타서 조용히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다가 석목이 내는 목소리를 듣고는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여 몸에 검은빛을 번쩍였다. 그리고 사내는 빛으로 변하더니 빠르게 먼 곳으로 날아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리 밖까지 날아갔다.

석목이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다.

쾅!

또 노란빛이 한 갈래 날아가 점점 굵어지더니 순식간에 교룡을 따라잡아 힘껏 내리쳤다.

검붉은 교룡은 몸이 부서져 버렸고, 소리도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먼지로 변해버렸다.

교룡이 이끌던 해족 부하들은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전부 깜짝 놀라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석목은 고개를 흔들며 손을 휘둘렀다.

투명한 빛이 수십 갈래 날아가 곧장 도망가는 자들을 따라잡았다.

퍽! 퍽!

묵직한 소리와 함께 도망가던 사람들은 몸이 터져버려 투명한 빛으로 변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종수를 비롯한 세 여인은 이미 가까이에 다가와 모습을 드러냈다.

세 여인은 동시에 시선을 석목의 옆에 선 향주에게로 던졌다. 그리고 전부 의미심장한 기색을 드러냈다.

금소채는 콧방귀를 뀌며 불만스럽게 석목을 바라보았다.

서문설도 눈살을 찌푸리면서 복잡한 표정을 드러냈다.

“서방님, 이분은 누구죠?”

종수는 눈알을 굴리다가 석목에게 가볍게 물었다.

석목은 멋쩍은 듯이 코를 한 번 만지고는 말했다.

“이분은 해족인 향주 도우야. 예전에 알던 벗이지. 향주, 이분은 내 반려인 종수. 그리고 이 두 분도 내 벗들이야.”

석목은 다시 표정을 다잡고는 종수를 비롯한 세 여인을 향주에게 소개해 주었다.

향주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세 여인을 한 명, 한 명 훑어보았는데 세 여인은 아리따운 게 마치 선녀가 세상에 내려온 것 같았다. 게다가 여인들이 이룬 수련 경지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걸로 보아 향주가 이룬 실력보다 뛰어날 터였다.

향주는 깊은 눈에서 실망스런 기색이 스쳤다가 이내 차분함을 되찾았다.

“석목 도우님의 반려시군요. 저는 동해 해족의 장로예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향주가 활짝 웃었다.

“향주 도우님, 반가워요.”

종수가 미소를 지었다.

서문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나 금소채는 가볍게 향주를 한 번 흘겨보고는 시선을 돌리며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향주는 눈만 깜빡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 해족들은 왜 저러는 거지? 예전에 남해성에 있을 땐 저런 해족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석목이 마른기침을 한 번하고는 말했다.

온몸에 검은 가시가 자라난 해족이 풍기는 기운은 아주 기이해 그들의 몸에 해골 법보 같은 기이한 기운이 옅게나마 흐르고 있었다.

“전부 서하 대륙에서 이주해온 해족이죠. 망골(芒骨) 해족이라고 하더군요. 실력이 아주 막강한데 자세한 내력은 저도 잘 몰라요. 녀석들은 서하 대륙의 해역을 휩쓸고 다녔는데 통천선교마저 저들에게 멸망당했어요. 게다가 놈들이 모든 해역을 다스리려 하니 우리 동해 해족도 이미 절반이나 영역을 빼앗겼죠. 오늘 석 오라버니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어요.”

향주는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통천선교가 이미 멸망했다고……”

통천선교는 천정에 속해 실력이 약하지 않았으나 이토록 기괴한 해족에게 멸망했다니.

그런데 교룡 해족이 갖춘 실력과 해골 법보를 봤을 때, 남해성처럼 작은 행성이라면 휩쓸고 다니기에 충분했다.

석목은 예전에 통천선교에게 추살을 당하여 남해성으로 돌아와 통천선교를 벌하려 했는데 이렇게 멸문을 당했다니 오히려 번거로운 일이 줄어든 셈이었다.

“나는 남해성에 오래 머물지 않을 거야. 망골 해족에는 또 다른 고수들이 있어? 있다면 한 번에 해치우는 게 좋겠군. 오래전에 해족에게 폐를 끼쳤던 보상이라고 생각해줘.”

석목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망골 해족에는 천위 강자가 한 명이 있어요. 하지만 실력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라 저 혼자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죠.”

석목이 남해성에서 오래 머물지 않으리라는 말을 들은 향주는 눈에 실망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향주를 훑어보았다.

“그렇다면 네 기운을 조금 조절해줄게. 수련 경지를 높일 때 도움이 될 거야.”

석목이 말했다.

향주가 멈칫했다.

석목이 손을 들어 올리자 용의 눈알만 한 단약이 향주의 앞에 나타났다.

“이 단약은 용혈고원단(龍血固元丹)이야. 얼음교룡의 피로 조제했으니 네 공법과도 잘 어울릴 테지. 나를 믿는다면 이 단약을 삼켜도 좋아.”

석목이 말했다.

향주는 단약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약효를 느끼고는 흠칫 놀랐는데 이 단약은 그녀가 보았던 그 어떤 단약보다 등급이 높은 약이었다.

향주는 망설이지 않고서 입을 벌려 단약을 삼켰다.

단약이 입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차가운 원기로 변하더니 몸속 곳곳으로 퍼졌다.

석목이 손가락을 앞으로 짚자 파란빛이 손가락 끝에서 뿜어져 나와 향주의 미간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방대한 영력 한 갈래가 향주의 몸에서 흐르다가 영해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향주의 몸에서 파란빛이 번지더니 몸속에 흐르던 진기가 부풀었다. 그리고 열 배나 빠른 속도로 돌아가면서 향주는 수련 경지가 놀라운 속도로 강해졌다.

“눈을 감고 집중해서 공법을 써봐. 그리고 진기의 흐름을 느껴봐.”

석목의 목소리는 위엄이 가득했다.

향주는 다급하게 눈을 감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공법을 시전했다.

향주의 몸이 점점 밝아지더니 굵직하고 파란 빛기둥으로 변하여 하늘로 치솟았다가 다시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고요하던 바다에서 다시 파도가 치더니 빛기둥을 중심으로 커다란 소용돌이가 생겨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수를 비롯한 세 여인은 한쪽에 서서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 * *

시간이 조금씩 흘러 족히 반시진이나 흐르자 향주의 몸에서 흐르던 파란빛은 이미 극도로 밝아져 파란빛 태양처럼 눈부셨다.

파란빛 속에서 향주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향주의 피부에 지렁이 모양 무늬가 자라나 몸 곳곳으로 퍼졌다.

혈맥의 힘이 흘러나오자 물의 영기가 환호하듯 파동을 일으켰다.

용혈고원단에는 교룡에게서 얻은 정혈의 힘이 들어있어 향주의 몸속에 흐르는 혈맥의 힘을 확실하게 불러냈다.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향주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으며 천천히 공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몸에서 파란빛 한 층이 바다처럼 흘렀다.

놀라운 영압이 몸에서 흘러나와 순식간에 천위 후기까지 오르더니 곧 정상과 가까워졌다. 그렇게 향주는 연달아 경지가 두 단계나 강해졌다.

잠시 후에 향주가 천천히 눈을 뜨고는 활짝 웃었다.

“석 오라버니,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저 혼자서는 절대 이 수준까지 수련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석 오라버니, 너무 대단해요.”

향주가 벌떡 일어서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석목에게 인사를 올리자 기쁨으로 가득한 얼굴에 경외하는 기색이 흘렀다.

석목이 교룡 머리 사내를 죽였을 때, 향주는 석목이 갖춘 실력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으나 지금 그는 단약 하나로 그녀의 수련 경지를 강제로 천위 후기까지 끌어올릴 정도였다. 게다가 몸속에 흐르던 진기가 전혀 막히지 않는 걸 보니 강제로 끌어올린 수련 경지라도 아무런 후환이 없을 터였다.

향주는 이렇게 신이나 들떠있었고, 이런 수단은 본 적도 없을 뿐더러 들은 적도 없었다.

눈앞에 선 이 남자가 속해 있는 세상은 이미 향주가 상상하는 수준을 초월했다.

“별 거 아냐.”

석목이 담담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향주의 머리 꼭대기에 뜬 파란 가마를 바라보던 석목은 다시 부서진 부분으로 시선을 옮겼다.

석목이 손을 흔들어 파란빛을 날리더니 파란 가마를 끌어 몸 앞으로 가져왔다.

석목이 입을 열어 노란 화염을 날려 가마를 감쌌다.

향주는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그리고 가볍게 입술을 깨물고는 눈에 빛을 반짝였다.

노란 화염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지만 전혀 뜨겁지 않았다.

석목은 화염을 다스리는 능력이 이미 최고조에 이르렀다.

파란 가마에서 수많은 빛이 번지더니 곧 녹으려는 기미를 보였다.

석목은 열 몇 가지 다양한 색깔을 띠는 영재와 광석을 꺼냈다.

그리고 입을 벌려 노란 화염을 뿜어내 모든 재료를 전부 감았다.

노란 화염 속에서 영재 몇 가지가 빠르게 녹으며 몇 덩이 액체로 변하였다.

석목이 열 손가락을 움직이자 손가락 끝에서 열 몇 갈래 얇은 줄기가 번쩍이더니 영재를 녹인 액체를 끌어 모아 가마 속으로 부어넣었다.

가마에서 수많은 파란 부문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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