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85화 (885/916)

외전 7화. 묘공이 오다

금소채는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점점 흥이 차올랐다.

쿵, 쿵, 쿵!

악기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점점 흥을 북돋웠다.

석목은 술잔을 내려놓고는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춤추는 동작에는 현묘한 무술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으나 워낙 동작이 산만하여 체계를 이루지는 못했다.

이때, 흑염 부족의 소녀들이 춤을 추다가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부족 사람들이 손뼉을 치면서 활짝 웃기 시작했다.

“저 자세는 흑염 부족에서 춤을 청하는 자세야. 귀한 손님과 함께 춤을 추고 싶다는 뜻이지. 만약 받아주지 않는다면 상대를 엄청나게 모욕하는 거야.”

금소채가 눈에 이채를 띠며 말했다.

이어서 금소채는 가볍게 일어서서는 나무 평대에서 내려와 붉은 구름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금소채는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몸을 살짝 비틀어 고개를 돌린 후에 다시 팔을 굽히면서 빙빙 돌았다.

붉은 치맛자락이 활짝 펼쳐져 마치 화염 꽃이 피어난 것만 같았다.

금소채가 하늘에 감사를 전하는 동작을 따라하자 같은 춤사위였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다른 소녀들과 확연히 달랐다.

요염한 자태에 굴곡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서 보는 이들은 모두 설렜다.

“선녀야, 선녀!”

열정적인 춤사위는 부족 사람들에게 환심을 샀으며 환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몇몇 청년 남자들이 금소채에게 다가왔다.

금소채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그렇게 붉은 옷자락과 화톳불이 어우러져 먼 곳에서 보면 마치 화염 덩이가 움직이는 것 같았고, 열정적인 춤사위에는 우아함과 부드러움도 섞여있어 볼수록 취하도록 만들었다.

“소채 언니는 춤에도 소질이 있군요.”

종수가 감탄했다.

석목도 춤을 추는 금소채가 정말 매력이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이 짓는 표정을 본 서문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몇몇 소녀들은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다.

“이렇게 열정을 다해 초대하는데 거절하면 실례겠죠. 춤이라면 저도 좀 추는 편이니, 같이 추죠.”

종수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는 서문설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문설은 워낙 차가운 성격이라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아 이렇게 끌고 나가지 않으면 아마 절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종수가 손을 내밀기도 전에 서문설이 벌떡 일어서서는 몸을 날려 하얀 구름처럼 사뿐히 내려갔다.

종수는 깜짝 놀라 잠깐 멈칫했다.

“서문 언니…… 갑자기 성격이 바뀌었나?”

종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석목이 알고 있는 서문설은 이렇게 먼저 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그도 흠칫 놀랐다.

둘은 어리둥절하며 아래로 내려왔다.

또 선녀가 둘 내려오자 부족 사람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서문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가볍게 허공에서 반 바퀴 돌고는 다시 금소채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설아, 네가 내려오다니. 놀랍네.”

금소채는 춤을 추면서 애교 섞인 투로 말했다.

서문설은 대답을 하지 않고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옷자락을 흔들었다. 그러자 긴 옷자락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서문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땅을 밟으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그 모습은 옥처럼 맑았고, 서문설의 옷자락은 눈처럼 하얗게 빛났다.

서문설은 다양한 동작들을 취하면서 흩날리는 눈처럼 움직였다.

서문설도 하늘에 감사하는 춤사위를 선보였는데 금소채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마치 달빛이 쏟아지는 밤중에 뜬 연꽃처럼 활짝 피었다.

사람들이 멍하니 서문설을 바라보다가 다시 환호했다.

석목은 멍하니 서서 서문설을 바라보았다.

금소채는 멈칫하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허리를 비틀면서 서문설이 내딛는 발걸음을 쫓아갔다.

두 사람은 마치 거울을 보며 춤을 추는 것처럼 똑같은 동작을 취했는데 다만 한 사람은 불처럼 뜨거웠으며 한 사람은 얼음처럼 차가워 보는 이들을 더욱 깊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춤을 추는 동안 서문설은 계속해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이 짓는 표정을 본 서문설은 큰 희열을 느꼈다.

석목과 종수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종수는 천봉 일족의 성녀였기에 다양한 재주를 익혀 치맛자락을 흔들면서 마치 푸른 공작새처럼 춤을 췄다.

그렇게 종수도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그녀들과 달리 석목이 추는 춤사위는 매우 조촐하여 돌아서서 손을 들어 올리거나 발을 들어 올리는 간단한 동작만 따라했다. 그러나 석목이 움직일 때마다 놀라운 기세가 흘러나왔다.

흑염 부족의 소녀들은 석목을 바라보며 눈에 빛을 반짝였다.

먼 곳에 서 있던 흑염 부족의 족장은 깊은숨을 내뱉으며 긴장했던 표정을 풀었다. 족장은 석목을 비롯한 네 사람의 신분이 매우 귀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나 손님에게 춤을 청하는 건 부족에서 내려오는 풍습이었다. 그러니 만약 석목 일행이 함께 춤을 춰주지 않았더라면 족장의 위신에 먹칠을 하는 셈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흑염 부족의 족장이 다시 손을 흔들자 악기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화톳불 근처에 서 있던 한 사내가 주문을 외우며 뼈 지팡이로 화톳불을 가리켰다.

붉은빛이 화톳불로 스며들었다.

쾅!

화톳불은 몇 배나 더 커졌고, 커다란 불기둥으로 변하여 하늘로 치솟았다.

“내 몸을 불태워 화신에게 전하세요!”

그 모습을 본 흑염 부족 사람들은 일제히 노래를 불렀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악기 소리가 점점 바뀌었다. 그리고 비장한 노래는 어느덧 부드러운 소리로 변하였다.

그러자 흑염 부족 사람들은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고, 젊은 남녀들만 자리에 남았다.

청년들은 종족 소녀들에게 다가가 춤을 청했다.

“이것도 흑염 부족에서 내려오는 풍습인데 남자는 마음에 드는 여인에게 춤을 청할 수 있어. 만약 여인이 받아들인다면 둘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지.”

석목 일행 넷이 다시 자리로 돌아간 후에 금소채가 설명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서문설도 표정이 달라지더니 부러운 눈빛으로 손을 잡고서 춤을 추는 젊은이들을 바라보았다.

금소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서문설을 살짝 밀었다.

다른 생각에 빠져있던 서문설은 깜짝 놀라더니 그대로 석목의 품속으로 넘어졌다.

석목이 다급하게 서문설을 붙잡았다.

싱그러운 냄새가 풍기자 석목은 호흡을 멈추었는데 머릿속에는 온통 포근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서문설이 낮게 소리를 내더니 볼부터 목까지 붉게 달아올라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석목은 눈이 살짝 풀렸다.

금소채는 서문설을 밀어버리고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종수는 금소채를 한 번 쳐다보고는 눈에 빛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금소채와 종수는 매우 조심스레 움직였지만 서문설과 석목이 모를 리는 없었다.

서문설은 부끄러워서 바로 석목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석목이 손에 힘을 주며 서문설을 꽉 끌어안았다.

“설아, 나는 이미 너를 한 번 잃었었어. 이번에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

석목이 가볍게 말하며 서문설을 꽉 끌어안고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문설은 더는 벗어나려 하지 않았고, 눈에 맑은 빛을 일렁였다.

석목은 다시 서문설을 품에 꽉 안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자 노란빛이 두 사람을 드리웠고, 빛이 반짝이는 사이에 석목과 서문설은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동안 흑염 부족은 아무도 석목 일행이 사라진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축제의 밤은 끝이 났다. 그리고 다시 날이 밝아졌을 때, 흑염 부족은 짐을 챙겨 다시 주거지로 돌아갔다.

흑염 부족이 머무는 주거지는 이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흑염 족장은 고개를 돌려 검은 산봉우리를 한 번 쳐다보고는 한숨 내뱉었다.

어젯밤에 온 네 손님은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조금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흑염 족장은 금소채가 이룬 수련 경지를 잘 알고 있었는데 그녀가 이룬 경지는 흑염 부족에선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만약 금소채가 살짝 수련 방법을 가르쳐주기만 한다면 흑염 부족에는 고수들이 몇 명이나 더 나올 수 있을 터였다.

얼마 전에 벌어진 재난을 겪은 후로 무엇 때문인지 부족 사람들은 수련을 하며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심지어 천지의 영기를 완전히 느낄 수 없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천지의 영기를 느낄 수 없다면 수련을 할 수 없었는데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흑염 부족의 실력은 그동안 계속 뒤처졌다.

흑염 부족뿐만 아니라 야만족 황원에 사는 부족 사람들 대부분이 전부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흑염 족장은 다시 고개를 흔들면서 깊은숨을 내뱉었다.

검은 산봉우리 위에서 석목 일행 네 사람이 점점 멀어져가는 부족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소채는 흥미진진하게 석목과 서문설을 바라보았다.

서문설은 얼굴이 살짝 달아올라 있었지만 부끄러운 기색은 사라져 지금 석목의 옆에 딱 붙어 있다.

“서방님, 뭘 보고 있어요?”

종수가 물었다.

석목은 눈살을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남해성에서 백 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으니 아마 눈치를 챘겠지? 남해성에선 수련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어. 흑염 부족만 해도 적어도 삼 할이 넘는 사람들에게서 영역 파동이 일지 않는 것 같아.”

석목이 침묵하다가 말했다.

석목은 그간 많은 행성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문제가 일어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때는 종수를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서문설과 종수는 그동안 폐관 수련에 전념하느라 모르고 있어 멈칫했다.

“맞아. 그동안 남해성 곳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나도 똑같이 느꼈어. 예전에 큰 재난을 겪은 후부터 이렇게 된 것 같은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 혹시 성역에서 일어난 이변과 관련이 있는 걸까?”

금소채가 말했다.

석목도 같은 추측을 하고 있었다.

현계지문이 열리면서 현계 공간을 이루는 법칙도 바뀌어 분명 그러한 이유로 수련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터였다.

현계지문이 열리며 일으킨 파급은 생각보다 커 석목은 깊은숨을 내뱉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 돌아가자.”

석목이 고개를 흔들면서 막 떠나려고 할 때였다.

“도우님들, 잠시만.”

이때,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공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살구색 승려복을 입은 스님이 한 명 나타났다. 그렇게 귀가 복스러운 중년 스님은 웃는 얼굴로 석목 일행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동공이 줄어들더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스님이 나타났는데 석목은 그가 누군지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묘공 대사님!”

종수를 비롯한 세 사람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스님은 묘공이었다.

“세 분,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지요?”

스님은 둥근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면서 합장하며 말했다.

“그럼요, 대사님. 모두 대사님 덕분이죠.”

종수가 감격스럽게 말했다.

서문설과 금소채도 묘공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다행이군요.”

묘공이 웃으며 말을 하고는 다시 시선을 석목에게로 던졌다.

석목은 조금 전부터 묘공 스님을 훑어보며 눈에 금빛을 반짝였다.

석목은 아무리 훑어보아도 묘공이 갖춘 실력을 알아낼 수 없어서 안색이 굳었다.

제준을 마주했을 때도 이 정도로 강력한 느낌은 아니었다.

“석목 도우, 처음 뵙네요.”

묘공 스님은 합장하며 인사를 했는데 웃음 가득한 얼굴에선 정중한 기색이 묻어났다.

“대사님이 묘공 스님이십니까? 저희에게 큰 도움을 주셨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석목이 손을 굽히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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