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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888화 (888/916)

외전 10화. 수라(修羅) 성역 (2)

깊이 들어갈수록 붉은 안개는 더 짙어졌고, 천지의 영기도 점점 풍성해졌다. 또한 어슬렁거리는 요수들도 실력이 바깥 구역보다 훨씬 강해 남해성에 사는 요수들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선천 요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요수들은 지능이 매우 낮아 상대를 무작정 죽이려 들어 영수라기보다는 흉수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렸다.

묘공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는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가더니 또 만 리 정도 날아가서야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은 점점 더 불안해져 곳곳에서 공간 균열이 번쩍였고, 공간의 진동이 균열 속에서 흘러나와 허공마저 흔들려 언제든지 공간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붉은 안개 줄기도 균열 속에서 흘러나왔다.

“이곳입니다.”

묘공과 석목은 수백 리 정도에 이르는 커다란 공간 균열 앞에 멈춰 섰다. 그러자 찢어진 틈 사이에서 드넓은 세계가 어렴풋이 보였다.

묘공 스님이 찬란한 금빛 한 줄기를 날려 보내는 순간, 금빛은 지팡이로 변하였다.

이어서 법결을 짚자 지팡이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몇 배나 더 커졌다.

지팡이에서 숨 막히는 영압이 흘러나와 공기가 일그러졌고, 모든 것을 부숴버릴 위력을 풍겼다.

워낙 막강한 위력이라 석목도 흠칫 놀라더니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묘공 스님이 손을 흔들자 지팡이는 다시 금빛으로 변하여 허공을 내리쳤다.

쿵!

허공은 마치 물컹한 흙덩이가 된 듯 가볍게 깊은 구멍이 뚫리더니 이어서 금색 지팡이가 구멍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공간 통로는 깊고 어두웠으며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묘공이 날린 일격 때문에 허공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균열들이 서로 부딪치자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곧 무너질 것 같군요. 갑시다.”

묘공이 금빛으로 변하여 공간 통로로 날아가자 석목이 뒤를 따랐다.

* * *

여긴 매우 기이한 성역이라 곳곳에서 붉은 안개가 흘러 다니며 온 별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성역 곳곳에서 난류가 일렁이는 게 미양 성역이나 천하 성역에서 일어나는 공간 난류보다 훨씬 심했다.

난류 속에서 일어나는 공간의 파동도 매우 날카로웠고, 심지어 난류 속에 수많은 공간 파편이 뭉친 날카로운 수정이 섞여있어 모든 걸 잘라놓을 것만 같았다.

뿐만 아니라 크기가 각각 다른 공간 소용돌이도 일어났다.

공간 소용돌이는 허공에 일어난 난류를 포함해 주변 모든 걸 삼켜버릴 듯했다. 또한 소용돌이 중엔 점점 커지는 것도 있었고, 줄어들어 사라지는 것도 있어 매우 신기했다.

이때, 허공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균열이 수도 없이 찢어졌다.

쿵!

허공이 찢어지면서 검은 공간 통로가 나타나자 묘공과 석목이 통로에서 날아 나왔다.

등 뒤에 있는 공간 통로는 두어 번 번쩍이다가 천천히 닫혔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커다란 소용돌이가 몰려와 석목과 묘공을 감아버렸다.

석목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몸에 노란빛을 드리워 가볍게 공간 소용돌이로부터 벗어나 바닥으로 내려왔다.

묘공도 바닥으로 날아 내려왔다.

“여기가 수라 성역이군요……”

석목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공간 소용돌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드넓은 세상에는 기이한 것들이 많이 있지요. 수라 성역에서 이는 공간 파동은 다른 성역보다 훨씬 강하니 이렇게 공간 소용돌이가 생기는 게지요.”

묘공 스님이 말했다.

석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구수도철은 이 성역에 있습니까? 도우님은 그놈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고 했는데 지금 다른 곳에 있는 건 아닐지요?”

석목이 물었다.

“아뇨. 도철 진령은 만물을 삼키면서 수련합니다. 삼키는 게 많을수록 실력이 더 빨리 늘어나지요. 도철의 몸속에 흐르는 혈맥에는 공간의 힘이 담겨있는데 수라 성역에서 이는 공간 파동 덕분에 여기 사는 짐승들은 전부 공간 신통을 어느 정도 익힌 데다 여기엔 공간 속성이 담긴 영재도 많을 테니 구수도철이 머물기에 가장 좋은 곳입니다. 그러니 절대 쉽게 떠나지 않겠죠.”

묘공이 자신 있게 말하자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묘공은 이전에도 구수도철과 싸운 적이 있으니 아마 석목보다 알고 있는 것이 많을 터였다.

“그 짐승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큰 성역은 아니지만 진령 요수를 찾기에는 그리 작은 성역도 아니군요.”

석목이 물었다.

“실은 제게도 아무런 단서가 없으니 천천히 찾을 수밖에 없겠지요. 도철 진령이 병탄(倂呑) 신통을 부릴 때마다 기이한 현상이 일어날 테니 찾기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묘공이 쓴웃음을 지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듯이 말했다.

성역 전체를 뒤져야 한다니, 석목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고작 기이한 현상 하나를 보며 찾겠다고 말하니 이게 말이나 되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석목은 급할 것도 없었다.

“단서가 없으니 제가 전에 그 짐승을 만났던 곳으로 가보지요. 어떤 흔적을 남겼을 수도 있으니.”

묘공도 자신이 내뱉은 말에 자신이 없는지 마른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금빛과 노란빛으로 변하여 속도를 내어 앞으로 날아갔다.

공간 난류가 다른 성역보다 거세긴 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석목 도우, 구수도철은 지능이 아주 높은 짐승입니다. 게다가 교활하기까지 하지요. 지금쯤이면 아마 육신 또한 이미 최고 수준에 이르렀을 텐데 고작 짐승에 불과하지만 육신을 자유자재로 늘였다가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크게는 작은 행성만 하게 변했다가 작게는 눈에 띄지 않는 알갱이처럼 변할 수 있어 절대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앞으로 날아가던 묘공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신식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석목은 그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곧장 영목 신통을 시전했다.

묘공은 원판 모양 법보 하나를 꺼냈는데 원판은 변두리에 금빛이 흘렀고, 가운데엔 시침 두 바늘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고리 모양 금색 파동이 원판 법보에서 흘러나와 주변으로 퍼졌다.

* * *

둘은 가장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날아가면서 조심스럽게 주변을 훑었다. 이렇게 이틀이나 흘렀지만 결국 석목 일행은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묘공이 한 말대로라면 지금쯤 이미 수라 성역을 절반 정도 훑었을 터였다.

“일전에 구수도철과 부딪쳤던 곳이 바로 앞에 보이는 행성입니다.”

묘공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잠시 후에 석목 일행은 작은 행성에 도착했는데 이 행성은 남해성보다 컸고, 공간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석목은 이 행성이 마치 몇 입 베어 먹은 사과처럼 울퉁불퉁해 매우 처량해 보여 안색이 살짝 굳었다.

묘공도 안색이 차가워지더니 이어서 금빛을 날려 장벽을 깨버린 후에 행성으로 내려왔다.

행성으로 내려온 석목은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는데 이미 행성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마치 모든 수분이 빠져나간 듯이 땅마저 쩍쩍 갈라져 있는데다가 식물들도 전부 시들어 있었다.

행성에선 영기를 거의 느낄 수 없어 천정이 모든 영석을 빼먹은 후로 너덜너덜해진 행성들과 매우 흡사했고, 그보다도 더욱 처량했다.

천정은 영석을 빼냈을 뿐, 행성 자체를 망치지는 않았기에 영력을 먹고 사는 생물이 아니라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도철 진령은 이렇게 무도한 짓을 저지르고 다닙니다. 그놈이 지나간 곳이라면 풀 한 포기도 찾아볼 수 없지요. 빨리 쫓아내거나 죽여 버려야 해요.”

묘공이 말하자 석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살펴봅시다. 어떤 실마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묘공이 깊게 한숨을 내뱉고는 눈을 감고서 신식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원판 모양 법보에서 부드러운 빛이 흘러나와 주변으로 퍼졌다.

석목은 구 할이나 되는 신식을 주변으로 넓게 드리웠다.

신식에서 투명한 빛이 반짝이더니 곧장 수 만 리 밖으로 퍼졌다.

석목의 신식에는 투명한 거미줄 모양이 수도 없이 어른거리더니 마치 매우 날렵한 촉수처럼 구석구석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석목이 갖춘 실력이 막강해진 후로 신식에도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와 신식의 힘을 절반 넘게 사용하면 촉수 모양으로 변했다.

투명한 촉수는 보통 신식보다 몇 배는 더 예민했고, 매우 영리하게 움직였다.

묘공은 석목이 드리운 신식을 보자 얼굴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차분하게 원판 법보를 시전하니 부드러운 빛이 흘러나와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잠시 후에 석목이 갑자기 눈썹을 치켜떴다.

묘공이 시전한 원판 법보도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둘은 서로 한 번 마주 보고는 곧장 몸을 날려 만 리 밖에 자리한 산골짜기로 향했다.

산골짜기는 자연스럽게 생긴 게 아니라 막강한 일격을 받아 커다란 구멍이 생기면서 파인 자리였다.

산골짜기 아래쪽 한구석에는 신식 줄기가 수백 갈래 엉켜 있어 마치 그물로 이어놓은 새장과도 같았다. 그렇게 새장 안에서 검은 기운이 매우 옅게 흘러 다녔는데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검은 기운은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는데 마치 새장에서 벗어나려는 것 같았고, 영성 또한 있었다.

석목과 묘공은 신식 줄기 옆으로 다가가더니 석목이 다시 신식을 날리자 새장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검은 기운이 압축되어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검은 기운에서 사악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구수도철의 기운이 확실하네요. 석목 도우님이 쓰시는 신식의 힘은 매우 신묘하군요.”

묘공 스님은 검은 기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과찬이십니다.”

석목은 겸손한 웃음을 내비쳤다.

“이 기운만 있으면 됩니다. 제가 쓰는 옥황라판(玉皇羅盤)은 탐측하는 힘 말고도 추격하는 힘까지 있으니 구수도철이 어디 있는지 대충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묘공이 살짝 흥에 겨운 듯이 말했다.

그리고 원판 법보를 몸 앞으로 끌어와 법보 속으로 법결을 날렸다.

원판 법보에서 나는 빛이 더 밝아지더니 크기가 순식간에 커졌다.

묘공은 다른 한 손을 흔들어 검은 기운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다시 원판 법보 가운데로 검은 기운을 불어넣었다.

묘공은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으면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원판에 콩알만 한 금색 부문들이 수도 없이 나타나 소용돌이를 이루며 검은 기운을 천천히 삼키기 시작했다.

석목은 묘공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기다렸다.

석목도 추격 비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성역이라는 큰 범위를 두고 추격을 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원판에 달린 시침이 빙글빙글 돌면서 흔들렸다.

묘공이 다시 법결을 날리자 시침이 점차 안정되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아마 이 방향일 겁니다. 구수도철이 은닉 신통을 시전해 시침이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방향은 틀림없을 겁니다.”

묘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원판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별다른 수가 없으니 우선 이 방향을 따라서 가보죠.”

석목이 말했다.

묘공이 표정을 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행성을 떠나 원판 시침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한 행성에 도착했다.

이 행성도 전에 머물렀던 행성처럼 물어뜯긴 모양이라 석목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또한 행성에선 아무런 생기도 찾아볼 수 없어 마치 버려진 것 같았다.

석목이 짓는 표정은 어두워졌지만 묘공 스님은 아주 담담한 게 이미 이런 파멸된 행성을 수도 없이 본 사람 같았다.

원판에 달린 시침은 눈앞에 보이는 폐성이 아닌 더 앞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석목과 묘공은 버려진 행성을 지나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갔다.

원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동안 수많은 행성을 지나쳤는데 전부 도철 진령이 머물렀던 곳인지 온통 물어뜯긴 모양새였다.

석목은 가는 내내 마치 죽음의 길을 가는 것처럼 기분이 침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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