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1화. 두꺼비 괴물과 붉은 원숭이
눈 깜짝할 사이에 둘은 이미 사흘 동안 날았다. 게다가 원판에 달린 시침은 처음에는 매우 안정된 것 같았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불안해졌고, 심지어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둘은 수라 성역 곳곳을 헤매고 다녔다. 때문에 석목과 묘공은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별다른 뾰족한 수도 없었다.
지금 쓰는 원판 말고는 탐색을 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때, 묘공 스님이 손에 원판 법보를 들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원판에 달린 시침이 미세하게 떨리면서 시시각각 방향을 바꾸었다. 그렇게 시침이 방향을 틀 때마다 석목과 묘공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도철 진령은 우리가 놈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군요. 지금 비술로 위치를 숨기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옥황라판이 이럴 리가 없지요.”
묘공 스님이 이를 갈며 말했다.
석목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으나 묘공 스님의 체면을 생각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원판 법보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빛이 점점 짙어졌다. 그리고 시침이 갑자기 반바퀴 돌면서 다시 새로운 방향을 가리켰다.
“제기랄!”
묘공 스님은 얼굴이 굳은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석목과 묘공은 다시 멈춰 서곤 어두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석목 일행은 이미 수라 성역에서 사흘이나 떠돌아다녔고, 계속 이렇게 맹목적으로 돌아다닐 수만은 없었기에 앞길이 더욱 막막해졌다.
혹시 구수도철이 어떤 꼼수를 부려 일부러 둘을 헤매게 만드는 건 아닐까?
석목과 묘공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석목은 원판을 한 번 바라보고는 눈에 기이한 빛을 내비쳤다.
원판에 달린 시침이 오른쪽 한 방향을 가리키더니 더는 움직이지 않았고, 흔들림마저 사라졌다.
“음? 조금 달라진 것 같군요.”
석목은 원판을 바라보다가 의아하게 여겼다.
묘공도 원판에 달린 시침을 한 번 바라보고는 표정을 바꾸었다.
“드디어 제대로 찾은 건가?”
둘은 얼굴에 화색을 드러내며 전혀 망설이지 않고선 시침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이번에는 꽤 오랫동안 날아 족히 한두 시진이나 걸렸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허공에 불던 난류에 점점 더 많은 회색 성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공에서 들끓는 난류는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둘은 짙은 회색 안개 속에 묻혀버려 시야가 매우 좁아졌다.
회색 성운에서 기이한 자기 파동이 흘러나와 석목과 묘공이 드리운 신식을 방해했다.
석목과 묘공은 신식을 고작 천 리 정도밖에 펼치지 못했다.
둘은 날아가는 속도를 늦춰 전속력의 삼 할 정도로만 날았다.
“조심하세요. 여긴 너무 이상하군요. 특히 구수도철이 일부러 우리를 이곳으로 끌고 온 것 같습니다.”
석목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하며 모든 신식을 흘려보내 주변에 방어막을 층층이 펼쳤다.
묘공 스님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빛을 날려 법보 몇 개를 꺼내 들었다.
시간이 조금씩 흘렀지만 둘이 걱정하는 기습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에 감도는 성운과 난류가 점점 더 격하게 들끓기 시작하는데다가 성운마다 넓은 공간 소용돌이들이 줄줄이 나타났는데 큰 건 족히 수천 리에서 수만 리나 되었다.
강력한 공간의 힘이 소용돌이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자 공간 난류와 성운은 움직임이 더욱 격해졌다.
석목과 묘공은 마치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에 놓인 기분이었다.
성운이 들끓자 하늘을 뒤덮는 회색 밀물이 앞쪽에서 몰려왔다. 밀물은 눈부시게 반짝였는데 그 속에는 수많은 공간 파편이 섞여 수정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공간 수정이 내뿜는 파괴력은 너무 막강하여 신경이라 할지라도 쉽게 다가가지 못할 터였다.
밀물이 다가오기 전에 막강한 힘이 먼저 흘러와 석목과 묘공은 한참 동안 비틀거렸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법결을 날렸다.
석목은 짙은 노란빛을 풍겼다가 다시 크기가 수십 장만한 구체로 부풀렸다.
노란 구체는 마치 실존하는 듯한 돌 같았는데 겉면에는 수많은 부문들이 흘러 다녀 마치 태산이 짓누르는 것만 같은 느낌을 풍겼다.
묘공 스님도 발밑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연꽃대 법보가 하나 나타나 그 위에 서 있었다.
연꽃대 법보에서 빛이 쏟아져 나가자 등그런 금색 법보를 이루었다.
회색 밀물이 몰려와 석목과 묘공을 덮쳤지만 둘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서 있었고, 다시 몸을 가다듬고 앞으로 날아갔다.
밀물에 담긴 수많은 공간 수정이 두 사람이 이룬 보호막을 내리쳤지만 보호막은 가볍게 흔들리기만 할 뿐, 다가오는 공간 수정들을 전부 부숴 버렸고, 모든 공격 또한 막아냈다.
“수라 성역은 아주 신비스러운 곳인 것 같군요.”
석목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신식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묘공은 석목처럼 그리 여유롭지 못해 계속해서 원판만 노려보았다.
원판에 달린 시침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앞쪽을 가리켰다.
“이번엔 틀림없네요. 구수도철은 바로 앞에 있습니다.”
묘공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석목도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가 다시 심각한 표정을 내비쳤다.
구수도철을 찾았으니 이제 곧 치열한 싸움이 시작될 터였다.
그동안 석목은 당분간 비승을 피하고자 일부러 수련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칙을 더욱 잘 깨우쳤고, 번천곤을 비롯한 법보를 더욱 능숙히 다루게 되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석목과 묘공이 용솟음치는 은빛 속을 반시진이나 날던 순간, 눈앞이 환해졌는데 드디어 성운을 뚫고 나온 것이었다.
드넓고 고요한 곳에 석목과 묘공이 나타났다.
눈앞에 행성 하나가 유유하게 돌고 있었는데 남해성보다 훨씬 큰 게 천정이 있던 행성처럼 아름다웠다.
이 행성 주변에도 공간 장벽이 드리워져 있었다.
장벽으로 가려진 행성은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어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는데 또 도철 진령이 벌인 짓일 터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행성의 절반 정도는 여전히 원래 모습이었다.
윙윙……
이때, 묘공이 든 원판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수많은 빛이 번쩍였다. 그러다가 결국 시침이 완전히 고장이 나버렸다.
“어떻게 된 거지……”
묘공은 다급하게 법결을 날려 보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원판 법보는 더는 구수도철이 있는 곳을 가리키지 못했다.
묘공은 다양한 수단을 부려서 여러 가지 법결을 시도해봤지만 여전히 아무 소용이 없어서 그만 포기하고는 말했다.
“어찌된 일인인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구수도철이 벌인 짓일 테죠. 그렇지 않았다면 옥황라판이 갑자기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겁니다.”
묘공은 표정이 굳어선 원판 법보를 거두어들이더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 행성은 기습을 당한지 얼마 안 된 것 같군요.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우선 여기서 뭐라도 찾아봅시다. 그리고 도철에게 습격을 받았어도 폐성으로 전락하지 않은 걸 보니 분명 무엇인가가 있겠죠.”
석목이 침묵을 깨며 말하자 묘공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석목은 행성으로 날아갔고, 묘공도 석목을 뒤따랐다.
행성 가까이로 다가온 석목이 손을 흔들어 길이가 십 장에 이르는 노란빛을 날렸다.
쿵!
공간 장벽이 가볍게 부서져 버리더니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석목은 자신의 손바닥을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석목은 일부러 수련을 하지 않았으나 실력은 날로 늘었고, 특히 육신의 힘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묘공이 의아한 눈빛으로 석목을 한 번 쳐다보았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가시죠.”
석목이 미소를 지었다.
* * *
둘은 행성 공간으로 들어가자마자 곧장 한 숲으로 들어갔다.
숲은 하늘을 찌르는 커다란 나무들이 가득 자랐으나 푸른색이 아니라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여있어 매우 기이한 느낌을 풍겼다.
땅에는 여러 가지 풀들이 가득 자랐지만 주로 회색이었다.
그리고 분홍색 안개가 흘러 다녔는데 안개는 꿀처럼 달콤한 향기를 풍겼다.
이 숲은 미양 성역이나 천하 성역에 자란 숲과는 확연히 달랐다.
석목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철 괴물이 습격했기 때문인지 행성에 감도는 영기는 매우 불안했고, 강렬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러나 불안하긴 해도 영기는 여전히 매우 짙었다.
도철 진령에게 습격을 받기 전엔 아마 수많은 생령들이 싱싱하게 살던 행성이었을 터였다.
석목이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린 순간, 오색찬란한 안개가 숲에서 흘러나와 번개처럼 두 사람을 드리웠다.
안개가 스치자 식물들이 순식간에 시들었고, 누르스름하게 변하는 게 강한 독을 품은 안개 같았다.
짙은 안개 속에는 소처럼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괴물이 바닥에 엎드려있었다.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려오면서 얇고 붉은 무엇인가가 땅 위에서 날아왔는데 자세히 보니 혓바닥이었다. 그리고 혀끝에서 끈적이는 붉은빛이 번쩍였는데 빛은 순식간에 석목의 발밑까지 뻗어 나와 종아리를 공격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걸 보니 짐승의 혀에 강한 독성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석목은 낮게 신음을 내며 옷자락을 휘둘렀다.
그러자 노란빛이 튕겨져 나가 가볍게 붉은 혀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짙은 안개를 뚫고는 괴물을 공격했다.
노란빛의 속도는 뻗어오는 혀보다 몇 배는 더 빨랐다.
처참하게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땅이 격하게 흔들리자 오색 안개도 천천히 흩어졌다.
맹독은 석목과 묘공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석목이 몸을 날려 앞으로 다가가니 묘공도 그 뒤를 따라갔다.
무너진 나무 사이에 오색찬란한 두꺼비 괴물이 피로 흥건하게 젖은 채 쓰러져있었다.
이 괴물은 크기가 일고여덟 장에 이르는 두꺼비였는데 몸에 영롱한 비늘 갑옷을 입고 있었고, 심지어 머리끝에는 검은 뼈갑옷을 두르고 있어 매우 단단해 보였다.
석목에게 공격을 받은 두꺼비 괴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하게 두 덩이로 잘려버려 붉은 피와 내장이 범벅이 되어 죽어 버렸다.
검붉은 피는 강한 독성을 띠고 있어 주변에 드리운 안개보다 훨씬 독해보였다. 그리고 두꺼비의 피가 묻은 바닥은 검게 타버렸다.
“이렇게 강한 독성을 지녔다니. 고작 천위 실력 같아 보이는데 이 정도 독성이라면 성계도 견디지 못할 겁니다.”
석목이 놀라며 말했다.
수라 성역에 온 뒤로 구수도철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이 성역에 사는 생물들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석목은 수라 성역의 모든 게 신비스러웠다.
“이런 맹독을 지닌 짐승은 흔하지 않죠. 그리고 이 행성은 영기가 이렇게 짙은데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지혜로운 종족이 머물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이라면 구수도철에 대해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묘공 스님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석목도 때마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이 행성에 오자고 한 것이었다.
둘이 다시 앞으로 가려고 할 때, 분노에 찬 포효가 아주 먼 곳에서부터 전해졌는데 하나가 아닌 여럿이 동시에 내는 소리 같았다.
석목과 묘공은 멈칫하며 하늘로 날아올라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천 리 밖에 자리한 한 산골짜기에서 짙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고, 연기 속에선 커다란 몸집 하나가 빛을 번쩍였다.
“하늘이 돕는군요.”
석목이 후후 웃으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날아갔다.
묘공도 미소를 지었다.
산골짜기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자욱하게 흩날리는 먼지 속에서 거대한 몸집이 하나 나타났다. 그런데 몸집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포악한 붉은 원숭이였는데 몸집은 족히 수십 장이나 되었고, 등 뒤에 붉은 박쥐 날개가 자라나 있는데다가 손은 문짝만 했으며 뾰족한 이가 대충 박혀있는 모습을 보니 매우 흉악해 보였다.
그런 원숭이 주변에 몇몇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그림자들은 전부 사람 모양처럼 보였지만 얼굴이나 팔뚝에 검은 비늘이 붙어있었고, 머리에 산호 같은 뿌리가 자라나 있는 꼴을 보니 어떤 이족 같았는데 이 괴상한 종족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이족들은 전부 성계 경지였고, 다양한 법보를 시전하여 빛을 뿜어내면서 커다란 그물을 만들었다. 그러자 그물 속에 원숭이가 갇힌 게 이족들이 생포 하려는 것만 같았다.
붉은 원숭이도 성계 정상이었는데 힘이 막강해 이족들 보다 훨씬 강한 것 같았다.
그리고 포효와 함께 짙은 빛이 뿜어져 나와 이족들이 친 그물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원숭이를 묶어버린 이족들은 안색이 매우 어두웠다. 그렇게 이족들은 다급히 여러 법결을 시전하여 법보를 안정시키려고 했지만 매우 힘겨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