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4화. 수라의 심장
가장 앞에 있는 중년 남자는 튼실한 육신과 물통 굵기 만한 팔뚝을 자랑하고 있었고, 노란 곱슬 수염이 가득 자라나 있었다.
남자는 눈알이 툭 튀어나왔고 코는 납작했으며 입은 매우 커서 얼핏 보면 마치 두꺼비와도 같았다.
남자의 눈에서는 푸른빛이 번쩍였는데 어떤 영목신통 같았다.
방대한 위압감이 노란 수염을 드리운 중년 남자에게서 흘러나오는 게 엄연히 신경 후기 강자였다.
노란 수염을 드리운 중년의 뒤로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은 뾰족한 입에 붉은 볼이 돋보이는 청년으로 그는 두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또 다른 한 명은 검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검은 면사포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두 눈에서 싸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둘은 신경 중기 정상 경지였고, 막대한 기운을 흘려보내는 게 명룡 일족의 대장로가 내뿜는 기운과 비슷했다.
석목은 흠칫 놀랐다. 수라성에 신경 후기가 세 명이나 있다니.
“후후, 두 분이 석목 도우님과 묘공 도우님이시군요. 저는 명룡 일족의 족장인 곤상(昆桑)이라 합니다. 두 분, 환영합니다.”
위엄이 가득한 중년 족장이 일어서서는 석목과 묘공을 친절하게 맞이했다.
대전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석목과 묘공을 바라보며 두 사람이 이룬 수련 경지를 몰래 파악하려했다.
그러나 석목과 묘공이 기운을 숨기고 있어 아무도 경지를 읽어내지 못하자 다들 의심의 눈초리를 내비쳤다.
곤상 족장을 비롯한 세 신경 후기 강자들은 안색이 동시에 굳었는데 신경 후기인 그들이 석목과 묘공의 실력을 빙산의 일각 밖에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세 강자가 읽어낸 실력마저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이었다.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과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는 서로 눈치를 살폈다.
조금 전에 둘은 명룡 일족의 입에서 누군가가 도철 진령을 찾아다니고 있다는 얘길 들어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석목과 묘공이 갖춘 실력을 보자 정말로 그 괴물을 죽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원하는 일도 정말 실현될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두 사람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족장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석목이 대충 말을 이어갔다.
“두 분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분은 수라주(修羅蛛) 일족의 족장인 나소(羅素) 도우, 그리고 이 분은 백만족(白蠻族)의 족장이신 구원(仇元) 도우입니다.”
곤상 족장은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과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를 석목에게 소개해주었다.
“두 도우님, 인사드립니다.”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과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가 공경하게 인사를 올렸다.
대전에 모인 다른 세 종족 사람들도 석목과 묘공에게 품은 의심을 지우고는 곧바로 인사를 올렸다
“백만족……”
석목은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를 한 번 쳐다보자 눈에서 의심스러운 기색이 스쳤지만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곤상 족장은 부하에게 지시를 내려 석목과 묘공을 높은 자리로 안내했다.
석목과 묘공은 사양하지 않고 빠르게 착석했다.
곤상 족장은 석목과 묘공을 안내하면서도 다른 종족들을 냉대하지는 않았다.
“곤도 장로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니 두 도우님은 마침 도철 진령을 쫓고 계셨더군요?”
곤상 족장이 조급했는지 물었다.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과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가 다시 석목을 바라보았다.
“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묘공 스님은 다시 자리에 앉아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자 석목은 조금 의아했다.
묘공 스님은 명룡 일족에 들어온 뒤로 일부러 말을 아끼고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듣자 다들 화색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기분이 찜찜해졌다.
“도철 괴수는 수라성에 사는 수많은 생령을 죽였죠. 만약 두 분이 그 괴물을 해치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수라성에 사는 모든 종족들을 대표해서 두 분께 감사를 전하겠습니다.”
곤상 족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서서는 정중하게 말했다.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과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도 공손하게 손을 굽혔다.
“괴물이 수많은 생령을 죽이고 있으니 능력이 있는 자라면 당연히 나서야하겠지요. 다들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도철 진령이 있는 곳을 알려주셔야 해요.”
석목이 말했다.
“물론입니다.”
곤상 족장은 다급하게 검은 뼛조각을 하나 꺼내서는 석목에게 건네었다.
석목은 뼛조각을 받아 신식으로 훑었다.
뼛조각은 옥간 같은 것이었는데 그 안에는 성역의 지도가 들어있었고, 수라성도 그 안에 있었다.
다만 수라성 주변에는 다른 행성이 없었고, 하얀 구름 모양의 무언가가 수라성을 둘러싸고 있었다.
석목이 다시 수라성에 왔던 과정을 되짚어보자 하얀 구름이 아마 회색 성운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얀 성운 깊은 곳에는 검은 점이 한 개 있었는데 모아놓으니 족히 수십 개는 되는 것 같았다.
검은 점들은 붉은빛으로 표시가 되어있었다.
석목은 신식을 거두어들이고는 뼛조각을 묘공에게 건네었다. 그리고 의아한 얼굴로 곤상 족장을 바라보았다.
“곤상 족장님, 이 지도는 조금 알아보기 어려운 것 같군요. 검은 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지도에 표시를 해놓은 것 같은데 혹시 도철 진령이 그 점에 있다는 말입니까?”
“네, 두 도우님은 이제 막 수라성에 오셨으니 이 일대를 잘 모르시겠지요. 검은 점은 행성이 아니라 공간에 난 벌레 구멍입니다. 도철 진령은 수라성을 기습한 후에 공간에 난 벌레 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곤상 족장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벌레 구멍이요?”
석목은 서책에서 관련 내용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별하늘에서도 공간 파동이 극도로 격렬한 곳에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벌레 구멍은 두 공간을 연결해주는 공간 통로였다.
“그 벌레 구멍은 어느 공간으로 향하나요?”
석목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명룡 일족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버리고 있는데다가 도철 진령은 공간의 힘을 조종하는 신통을 익혔다. 그러니 만약 도철 진령이 벌레 구멍을 통해 이어진 공간을 따라 돌아 다닌다면 일이 더 번거로워질 터였다.
묘공은 뼛조각을 훑어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우님들 걱정 마세요. 벌레 구멍이 향하하는 곳은 평범한 곳이 아닙니다. 도철 진령이 들어가는 순간, 짧은 시간 안에는 나오지 못할 겁니다. 게다가 그 속에서 도망갈 리도 없지요.”
곤상 족장이 다급하게 말해주었다.
“네? 거기는 어떤 곳입니까?”
석목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얼굴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공간은 아주 특별해서 우리 수라 성역 사람들은 거길 수라의 심장이라 부르지요. 상고 시기 때부터 존재하던 비경인데 위험천만한 곳이지만 또 많은 기회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백 년마다 벌레 구멍이 단 한 번만 나타나서 그곳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수라의 심장 비경에 묶여버리게 됩니다. 또한 수라의 심장에선 속박시키는 힘이 워낙 강력하니 아무도 그곳에서 도망칠 수 없죠. 그러니 보통 비경이 닫힐 때에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동으로 전송이 되어 나옵니다.”
곤상 족장이 빠르게 설명해주었다.
“수라의 심장?”
석목은 그제야 긴장을 풀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말하는 건 아마 진실일 겁니다. 처음에 수라성에 왔을 때, 이미 성역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마 저 자들이 말하는 수라의 심장 비경이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겠지요.”
묘공의 목소리가 석목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석목은 묘공을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러나 늦으면 이변이 생길 수도 있으니 저희는 도철 진령이 있는 수라의 심장 비경으로 가겠습니다.”
석목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우님, 도철 진령은 우리 세 종족 사람들을 수도 없이 죽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함께 갈 수 있도록 두 분께선 잠시만 기다리시죠. 인원을 모아 함께 가겠습니다.”
곤상 족장이 일어서며 말했다.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과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나서겠다고 말했다.
“족장님들, 잘 생각하셔야합니다. 도철 진령이 갖춘 실력은 아주 막강하니. 싸움이 시작되면 저와 묘공 도우님은 당신들을 지켜줄 틈이 없을 거예요.”
석목은 세 사람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석 도우님,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희생당한 동족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라면 그런 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요. 설사 정말 그 괴물의 손에서 죽는다고 해도 절대 두 분을 탓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그 안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으니 두 분께 도움이 될 거예요.”
곤상 족장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수라주 일족에서 온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함께 갑시다.”
곤상 족장을 비롯한 세 사람은 얼굴에 화색을 띠며 지시를 내렸다.
부하들은 명을 받들고는 잰걸음으로 밖을 향해 나갔다.
“두 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반시진이면 충분합니다.”
곤상 족장은 석목과 묘공에게 미안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미 오랫동안 기다렸으니 반시진 정도는 더 늦어도 상관이 없어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기다렸다.
“석 도우님, 이놈들 말은 거창하게 해도 아마 우리를 이용해서 수라의 심장 비경에서 큰 수확을 얻을 속셈인가 보군요. 이렇게 열정을 다해 동행하겠다는 것을 보니.”
묘공 스님의 차가운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가 석목의 가슴에서 울려 퍼졌다.
“이미 짐작하고 있는 부분이죠. 그러나 녀석들이 숨기는 꿍꿍이가 뭐든지 우리는 구수도철을 죽이기만 하면 되지요.”
석목도 웃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묘공 스님은 한 번 웃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곤상 족장은 보기에는 거칠어 보였으나 사교에 능한 사람이라 곧장 석목 일행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 중요한 말은 아니었지만 냉랭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석목 도우님, 당신의 기운을 보니 수라 성역 출신은 아니신 것 같은데 혹시 천하 성역에서 오셨습니까?”
곤상 족장이 말을 마치자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가 눈에 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구 족장님, 정말 식견이 넓으시군요. 저는 천하 성역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석목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미천거원 혈맥을 지니고 있었지만 진선지체를 수련하면서 혈맥의 힘이 스스로 감춰졌다. 그런데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가 이렇게 알아보는 걸 보니 사내는 아마 영목 신통이 매우 뛰어난 것 같았다.
“석목 도우님, 과찬이시네요. 제 영목이 좀 뛰어난 편일뿐이죠. 그러나 신통은 절대 곤 족장님이나 나 족장님을 따라갈 수 없어요.”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는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
“구 형, 너무 겸손하십니다. 구 형의 진령 토템인 벽정금섬수(碧睛金蟾獸)는 위력이 아주 막강하다고 알고 있어요. 따로 대결을 펼친다면 저는 절대 구 형에게 상대가 되지 못할 겁니다.”
곤상 족장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은 침묵을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곤상 족장이 진령 토템을 말하자 조금 놀라 눈에 빛을 반짝였다.
“석목 도우님, 지금 천하 성역이 처한 상황은 어떻습니까?”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는 석목을 바라보며 눈에서 이채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