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94화 (894/916)

외전 16화. 성운 구역

성역에는 공간 난류가 기승을 부렸다. 물론 석목과 묘공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평범한 신경 강자들은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다.

세 족장은 각자 법보를 펼쳐 자기 종족들을 보호했다.

곤상 족장은 검은 용주(龍舟)를 꺼내 크기를 열 장까지 부풀렸는데 용주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공간 난류로부터 충격을 막아냈다.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에게서 회색빛이 반짝이더니 회색 돌판 법보가 날아 나왔는데 그건 조금 낡은 법보였다. 그러나 법보에서 흘러나오는 회색빛은 놀라운 위력을 풍기는 것이 절대 평범한 법보가 아니었다.

회색 돌판은 순식간에 수십 장까지 커져서는 수라주족을 전부 받쳐 들었다.

이어서 회색빛이 돌판 법보에서 흘러나와 다시 수라주족들을 감쌌다.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는 낮게 소리를 질러 푸른 비선(飛船) 법보를 꺼내더니 고만족들을 받쳐 들었다.

비선에는 푸른 묘목 그림들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푸른빛이 비선에서 넓게 퍼지자 비선 법보 주변으로 푸른 나무 수십 그루가 나타나 빙글빙글 돌면서 난류를 밖으로 밀어냈다.

“가죠.”

석목과 묘공은 세 종족이 모든 준비를 마친 걸 확인하고는 빛으로 변하여 공간에 구멍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세 족장은 빠르게 법보를 시전하여 석목과 묘공을 쫓아갔다.

그렇게 앞으로 어느 정도 날아가자 회색 성운이 다시 앞길을 막았는데 회색 파도가 기승을 부렸고, 성운 속에서 수많은 빛이 튕겨 굉음이 울려 퍼졌다.

수라성 주변은 온통 회색 성운으로 드리워있었고, 수라성이 있는 곳에만 성운이 흘러 다니지 않았다.

석목과 묘공은 이미 성운이 갖춘 위력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곧장 보호막을 펼치면서 날아 들어갔다. 그렇게 들끓는 성운을 밀어내며 앞으로 날아가도 두 사람은 속도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석목과 묘공은 가볍게 날아가고 있었지만 뒤따르는 세 종족은 그리 수월하게 날지 못했다.

“예전 방식을 시도해보죠!”

곤상 족장과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 그리고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어서 곤상 족장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곤상 족장이 곧장 용주의 앞쪽으로 다가가던 순간, 그의 몸에서 액체 같은 검은빛이 들끓더니 발밑에 놓인 비주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검은 용주는 눈부시게 빛났고, 선체도 몇 배나 커졌다. 그렇게 빛이 전부 뿜어져 나오자 검은 부문들이 비주에 흘러 다녔다.

곤상 족장은 주문을 외우면서 환한 빛 두 갈래를 비주에 달린 용머리 속으로 날려 보냈다.

용머리에 박힌 두 눈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자 용주는 마치 살아있는 듯이 움직였다. 그리고 용주의 밑단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커다란 발이 네 개 튀어나와 마치 정말로 살아 숨 쉬는 용과 같았다.

네 발에서 날카로운 검은빛이 뿜어져 나와 성운을 찢어버렸다.

칙, 칙!

굵직한 빛이 들끓는 성운을 뚫어 통로를 하나 열었다.

검은 용주가 몸을 꿈틀거리더니 성운 속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용주는 발에서 빛을 날려 먼 곳에서부터 날아오는 성운을 찢어버렸다.

명룡 일족의 검은 비주도 성운을 찢으려 했지만 성운 속에선 다양한 공격이 계속해서 날아왔다. 특히 공간 파편으로 이루어진 결정체가 검은 용주를 강하게 내리치고 있었다.

퍽, 퍽!

검은 용주를 겉에서 보호하는 광채가 격하게 흔들렸으나 곧바로 찢어지지는 않았다.

곤상 족장은 안색이 살짝 굳어버렸으나 공간 파편을 막아내지 않고 뒤를 한 번 쳐다봤다.

찬란한 회색빛이 검은 용주의 뒤에서 부터 성운 통로로 날아갔는데 그건 수라주 일족의 회색 돌판이었다.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은 돌판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가 하얀빛이 번쩍이더니 그녀의 앞에 칠현금이 하나 나타났다.

여인은 공간 수정들을 훑어보면서 빠르게 칠현금을 켜기 시작했다.

악기 소리는 마치 쇠로 긁어대는 듯이 듣기 거북했다.

주먹만 한 하얀 부문이 칠현금에서 날아 나와 강렬한 공간 파동을 일으켰다.

잠시 후에 하얀 부문들은 다시 빛화살로 변하여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더니 공간 수정들을 부숴버렸다.

빛화살과 파편이 부딪치자 동시에 폭발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자 여인은 날아오는 수많은 파편들을 날려버렸다.

곤상 족장은 그제야 한숨 돌리며 계속해서 검은 용주를 몰아 성운을 뚫고서 지나갔다.

회색 돌판 뒤로 푸른빛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건 고만족이 탄 푸른 비선이었다.

수염을 드리운 사내가 주문을 외우며 비선을 몰았다.

그러자 선체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살아있는 듯한 나무 사람 수십 명이 나타나 입을 크게 벌리고는 성운을 향해 빛기둥을 뿜어냈다.

쾅!

매우 평범해 보이는 푸른 빛기둥은 성운으로 들어가는 순간, 막강한 위력을 터뜨리며 주변에 드리운 더 넓은 성운까지 찢어버렸다.

수염을 드리운 사내는 눈에 희열이 스치더니 이어서 손을 흔들어 푸르스름한 빛으로 공격을 했다. 그렇게 사내가 날린 건 발 모양 법보였는데 과연 놀라운 영력 파동을 풍기고 있었다.

사내가 다시 법결을 날리자 푸른 발 모양 법보가 열 장이나 넘게 불어난 푸른빛 두 갈래로 변하여 튕겨져 날아갔다.

칙, 칙, 칙!

푸른 발톱이 번쩍이더니 칼날 같은 빛이 뿜어져 나가 여인이 치는 악기 선율을 따라 공간 파편을 부숴버렸다.

앞에서 날아가던 석목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한두 번 협력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일행들은 그렇게 계속해서 앞으로 향했는데 비록 석목만큼은 아니었지만 곤상 족장을 비롯한 세 종족도 비행 속도가 그리 느린 편은 아니었다.

* * *

반나절이 지나서야 성운은 점점 줄어들었다.

성운 구역을 지났으니 이제 곧 벌레 구멍에 도착할 터라 석목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성운이 옅어지자 세 종족이 나는 비행 속도는 더 빨라졌다.

앞으로 한참을 더 날자 눈앞이 환해지면서 드디어 완전히 성운 구역을 벗어났다.

그런데 이때, 공간 파동이 갑자기 격해지기 시작하여 앞쪽을 내다보니 아주 먼 곳에서 검은 빛점 열 몇 개가 어렴풋이 보였다. 빛점들은 유유한 빛을 풍기고 있었고, 수많은 공간 난류를 뚫고서 이곳까지 전해진 것 같았다.

석목과 묘공은 서로 눈빛을 나누더니 서로의 눈에서 흥분한 기색을 읽었다.

둘은 앞으로 조금 더 날아가 검은 빛점의 근처에 이르렀다.

석목과 묘공은 허공에 커다란 공간 소용돌이가 열 몇 개 뜬 채로 방대한 흡인력을 풍기고 있어 안색이 살짝 굳었다.

소용돌이 속에서 검은 빛점은 끊임없이 번쩍였는데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고, 어디로 통하는 것인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

“공간에 뚫린 벌레 구멍…… 대자연은 정말 신비스럽군.”

석목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곤상 족장 일행도 소용돌이를 보며 흥분한 기색을 내비쳤다.

“공간에 뚫린 벌레 구멍은 열 개가 넘습니다. 어떤 곳이 수라의 심장 비경으로 통하는 쪽인가요?”

석목이 고개를 돌려 곤상 족장 일행에게 물었다.

석목은 이미 신식과 영목신통으로 벌레 먹은 동굴들을 일일이 훑어보았는데 열 개가 넘는 소용돌이들은 각각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석목도 구멍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석목 도우님,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공간에 뚫린 벌레 구멍은 계속 바뀌고 있으니 어느것이 수라 비경으로 통하는 구멍인지 한 번 탐색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곤상 족장이 말을 하며 법보를 하나 꺼냈다. 그러자 법보에서 빛이 반짝이며 진법이 펼쳐지더니 이어서 곤상이 막 법결을 날리려 할 때였다.

“시간 낭비할 필요 없습니다. 이쪽이에요. 이제 갑시다. 더 늦으면 구수도철이 도망갈 테니.”

이때, 계속 침묵만 지키던 묘공 스님이 갑자기 말을 하면서 한 소용돌이로 스며들어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이더니 망설이지 않고는 곧장 몸을 날려 공간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세 종족 사람들은 흠칫 놀란 채 족장들의 눈치를 살피며 망설이면서 아무도 따라서 들어가지 않았다.

“이쪽이 아닌가요? 저 두 사람이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미모가 돋보이는 족장 뒤에 서 있던 피부가 검은 소녀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아(鸞兒), 두 도우님은 신통이 뛰어나신 분들이야. 무례하게 굴면 안 돼.”

족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 그리고 석목과 묘공이 듣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피부가 검은 소녀는 내키지 않았지만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곤 족장님, 그래도 확인해보는 편이 좋으니 비술로 한 번 훑어봐주시죠.”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이 말했다.

곤상 족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들고 있던 법보로 법결을 날렸다.

법보 끝단에 걸린 진법에서 화려한 빛이 반짝이더니 고양이처럼 생긴 작은 짐승 환영이 나타났다. 그리고 고양이 환영은 투명한 동공으로 벌레 구멍 열 몇 개를 일일이 훑어보고선 석목과 묘공이 들어간 동굴을 바라보며 울어댔다.

“정말 여기네요? 저 두 사람은 정말 실력이 보통이 아니네요.”

피부가 검은 소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빨리 따라가죠.”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가 손을 흔들며 푸른 비주를 몰아 벌레 먹은 동굴로 들어갔다.

다른 두 족장도 뒤를 따랐다.

* * *

일행들은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검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공간에서 막강한 공간의 힘이 밀려와 사람들의 몸을 힘껏 끌어당겼다.

다행히 곤상 족장이 법보로 모든 사람을 보호하고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더라면 수련 경지가 약한 자들은 막강한 힘에 밀려 찢어져 버렸을 터였다.

한참 후에 눈앞이 환해지면서 공간이 밝아졌다.

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둥둥 떠다녔고, 눈앞에는 맑은 호수가 펼쳐졌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다.

호수에는 푸른색 물풀이 수두룩하게 떠 있었고, 바람이 불자 물풀들이 일렁거렸다.

공기 속에 흐르는 천지의 영기는 극도로 짙은 게 수라성보다 몇 배는 더 짙은 것 같았다.

대부분 처음으로 수라의 심장에 들어왔기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순간 전부 감탄을 자아냈다.

세 족장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먼저 들어왔던 석목과 묘공은 사라지고 없었다.

“석목 도우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이변이 생겨서 비경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건 아닐까요?”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가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아닙니다. 아마 공간 파동 때문에 다른 곳으로 전송되었겠죠.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곤상 족장이 말했다.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는 그제야 깊은숨을 내뱉었다.

고만족은 바깥 성역에서 이주해 온 종족이라 세 종족 중에 수라 성역에서 머문 기간이 가장 짧아 수라의 심장에 들어온 횟수가 가장 적었다.

“비경의 첫 번째 층은 아주 넓으니 걸어가면서 석목 도우님과 묘공 도우님을 찾아봅시다.”

곤상 족장이 말했다.

“아뇨. 우리 수라주 일족은 다른 볼 일이 있으니 함께 가지 않겠습니다.”

한쪽에 서 있던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이 갑자기 말했다.

수라주 일족이 타고 있던 회색 돌판이 멀리 밀려가 다른 두 종족과 거리를 두었는데 특히 명룡 일족과 아주 먼 곳에서 멈췄다.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우리 모두 갈라져서 움직이죠. 그리고 두 번째 층 입구에서 다시 만납시다.”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가 말했다.

곤상 족장은 얼굴에 싸늘한 빛이 스쳤다가 사라지더니 다시 온화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네, 두 분께서 따로 움직이신다고 하시니 그렇게 합시다. 석목 도우님과 묘공 도우님은 일 층에서 오래 머물지 않을 것 같군요. 그러니 하루 뒤에 이 층에서 모입시다.”

“네, 좋습니다.”

미모가 돋보이는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도 찬성하는 눈치였다.

셋은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고, 수라주 일족과 고만족도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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