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96화 (896/916)

외전 18화. 화령지기(化靈之氣)와 화령지수(化靈之水)

반각 후에 통로는 드디어 끝에 이르렀고, 석목 일행은 이미 백 리 가까이 들어왔다. 그러자 십여 장 정도에 이르는 지하 동굴이 석목의 눈앞에 나타났다.

동굴의 천장에는 대나무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겉에 하얀 얼음을 한 층 두른 채 빛을 내며 동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동굴 바닥에선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쏴아아!

개울의 물살은 매우 거칠었고, 파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개울에서 뼈를 찌르는 듯한 한기가 흘러나와 회색빛을 뿜자 하얀 안개가 간간이 하천에서 피어올랐는데 그게 바로 화령지기였다.

기이한 파동이 온 동굴에서 흘러 다녀 석목과 수령자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진기가 서서히 흩어지려는 기미를 느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석목 일행은 수련 경지가 매우 높아 공법을 시전하여 곧바로 들이치는 힘을 녹여버렸다.

지하 동굴에는 영기가 하나도 없었는데 아마 진즉에 화령지기 때문에 녹아버렸을 터였다.

“화령지수!”

석목은 개울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살얼음이 뼈를 찌르는 것 같았고, 손에 흐르던 경맥의 진기가 빠르게 흩어졌는데 그 속도가 화령지기보다 수십 배는 더 빨랐다.

석목은 흠칫 놀랐다. 화령지기도 보기 드문데 같은 곳에 화령지수까지 있다니, 석목은 단 한 번도 누가 화령지수를 봤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화령지수는 매우 귀한 보물이라 비록 화령지수로 직접 수련을 할 수는 없지만 아주 교묘하게 쓸 수 있었다.

화령지수로는 영력을 녹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식도 막아낼 수 있어 석목이 신식으로 이곳을 훑었을 때, 그는 이곳에 화령지수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없었다.

쏴아아!

개울에서 물꽃이 일더니 거무칙칙한 물고기가 물 위로 튀어 나와 석목을 덮쳤다.

석목은 손가락을 튕겨 괴상한 물고기를 날려버렸다.

물고기는 두 뼘 정도였고, 몸통 아랫부분은 평범한 물고기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윗부분엔 털이 가득 자라난 검은 머리가 달려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입을 끊임없이 벌렸다가 다물었고, 입안에는 날카로운 이빨도 달려있어 매우 흉악해 보였다.

석목은 화령지수에 생물이 산다는 게 조금 이상해 조금 의아했다.

채아는 괴상하게 생긴 물고기가 재미있어 보이는지 곧장 날아가 발로 장난을 쳤다.

검은 물고기는 물속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펄떡펄떡 뛰면서 입을 벌려 채아를 물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채아가 피하자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채아는 큰소리로 웃으며 계속해서 물고기와 장난을 쳤다.

석목은 동굴을 앞뒤로 훑어보았는데 통로는 매우 꼿꼿했으며 위치를 보니 때마침 바깥 골짜기 바로 아래에 있었다.

‘그렇군. 화령지수로 생긴 지하의 개울이 골짜기 옆에 흐르는 영맥을 전부 끊어버렸어. 그래서 얼음과 불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이상한 환경을 이뤘구나.’

석목은 속으로 생각했다.

옆에 있던 수령자가 갑자기 앞으로 달려가서는 화령지수로 풍덩 빠져버리더니 파란빛을 반짝이며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꾸르륵!

수령자 주변에 휘돌던 화령지수가 들끓기 시작하자 수령자는 몸통이 희미해졌다.

수령자는 가부좌를 틀고 하천의 바닥에 앉아 두 손을 짚으며 비술을 시전했다.

순간, 수령자에게서 나는 파란빛이 빠르게 응축되면서 화염 모양을 이루더니 화염이 수령자 주변을 흘러 다니며 점점 밝은 빛을 뿜어냈다. 그렇게 수령자는 곧 빛 속으로 묻혀버릴 것만 같았다.

화령지수는 점점 더 거세게 들끓었고, 수많은 화령지기가 하천에서 피어올랐다.

“아이고, 네 발 달린 구렁이 녀석, 머리가 어떻게 잘못된 게 아냐? 안으로 빠져버리다니. 영력이 전부 녹아버리면 어쩌려고!”

채아가 수령자의 모습을 보자 깜짝 놀라 석목의 어깨로 돌아오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석목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아니야. 수령자는 화령지수의 힘으로 몸속에 흐르는 진기를 정화하고 있어. 신경 후기로 진입하려고 준비를 하는 거지.”

석목이 칭찬하는 투로 말했다.

화령지수는 모든 수련자에게 절대적으로 독한 존재였으나 수령자는 때마침 독한 점을 역으로 이용하여 진기를 순화하는 것이 실로 대단했다.

석목도 이렇게 정확하게 화령지수를 다룰 능력이 없었다. 역시 오랜 세월 살아온 노인네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채아는 대답을 하고는 불안한 눈빛을 드러냈다.

채아도 수련 경지가 이미 신경 중기 정상에 이르러 신경 후기에 한 걸음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한 걸음을 내딛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수령자는 실력이 조금만 더 강해지면 아마 신경 후기에 도달할 터라 그리 된다면 채아는 실력이 수령자에 뒤처지게 될 판이었다.

그렇다고 채아는 수령자처럼 화령지수로 뛰어들 용기는 없었다.

비록 몸이 물에 닿지는 않았지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화령지수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는 느낄 수 있었다.

채아는 조급해져 계속해서 망설였다.

“석두, 여기는 곳곳이 화령지수야. 아무리 귀한 보물이라 해도 이 영력 때문에 돌로 변해버렸을 테니 수화선정이 있을 리가 없잖아.”

채아가 갑자기 석목에게 말했다.

“아니, 틀림없이 이곳에 있을 거야.”

석목이 단호하게 말했다.

“왜?”

채아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렇게 영력이 하나도 없는 곳은 아마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테니, 천도가 균형을 이루고 음과 양이 서로 보완하는 곳이라 근처 어딘가에 영기가 모여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 주변은 이미 황폐해졌겠지. 그런데 바깥 쪽엔 영력이 아주 풍성했잖아.”

석목이 말했다.

채아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영기가 모인 곳? 어디에 있는데?”

채아가 다시 물었다.

석목은 이미 신식으로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영기가 모인 곳을 찾지 못해 눈살을 찌푸렸다.

쾅!

이때, 화령지수가 들끓으면서 커다란 소용돌이를 이뤘는데 그 중심에는 수령자가 변신한 파란빛 덩어리가 떠 있었다.

개울 위에서 흩날리던 하얀 화령지기가 다시 빨려 들어가 수령자를 둘러싸고는 커다란 안개 구체를 이루었다. 때문에 수령자는 안개 속에 묻혀 잘 보이지 않았다.

화령지기가 다시 흩날리자 석목과 채아가 서 있던 곳에서도 파동이 일어 석목이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폭발음이 안개 구체에서 흘러나오더니 땅이 끊임없이 흔들리자 지하 동굴도 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안개 구체에서 거품이 부풀었다가 터졌지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또다시 굉음이 울려 퍼지며 안개 구체가 찢어져 버리자 파란 그림자 한 줄기가 날아 나왔다.

파란빛을 반짝이며 수령자가 석목과 채아 앞에 나타났다.

수령자는 조금 전보다 수척해 보였고, 풍기는 영압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두 눈에 파란빛을 뿜고 있었고, 온몸에서 가벼운 기운이 흘러나오는 게 마치 언제든 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수령자는 경지가 한 층 더 높아졌다.

“하하하. 이 화령지수로 드디어 한리의 몸에 깃든 혼탁한 기운을 정화했군. 이제 신혼과 육신이 완벽히 하나가 되었구나. 진기도 이 정도로 맑아진 걸 보니 십 년 안에 신경 후기에 오르겠군.”

수령자가 기뻐하며 말했다.

그러나 채아는 굳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아. 축하해.”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수령자는 채아가 짓는 표정을 읽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미안해. 가자. 수화선정은 바로 앞에 있으니.”

수령자가 그리 말하면서 파란빛으로 변하여 동굴 위로 날아갔다.

석목도 노란 그림자로 변하여 수령자를 뒤따랐다.

* * *

위로 갈수록 개울은 규모가 점점 커졌고, 물소리도 온 동굴에 울려 퍼졌다.

개울이 생각보다 길어 둘은 한참 동안 날았지만 끝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어서 반각 정도 더 날아가서야 둘은 개울 끝에 도착했다.

이곳엔 매우 매끄럽고 검은 산봉우리가 있었는데 길이가 천 장이 넘는 폭포가 하늘에서부터 곧장 개울로 쏟아져 폭포와 개울이 맞닿는 곳에선 물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여긴 화령지수의 원천이었다.

석목은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가자. 이곳에 있어.”

수령자는 몸을 날려 폭포를 뚫고서 들어갔다.

석목도 망설이지 않고는 수령자가 들어간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몸에 노란빛을 감고는 화령지수를 밀어냈다.

폭포는 매우 두꺼워 족히 몇 장이나 되었으나 폭포를 뚫고 들어가니 검은 통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석목은 화령지수 때문에 신식을 보내지 못해 표정이 다시 바뀌었다.

검은 통로는 높이가 사람 키만 했는데 통로를 이루는 돌은 이전에 지나온 동굴과 완전히 달랐다. 돌들은 온통 검은색이었고, 기이한 기운을 풍기고 있어 모든 빛을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이 검은 돌은 좀 이상한 것 같군.”

채아는 통로를 바라보며 불안한 듯이 움츠러들면서 말했다.

“이건 검은 자석이야. 영력을 차단할 뿐, 위험하지는 않아. 가자. 수화선정은 바로 안에 있으니.”

수령자가 말하며 통로로 걸어 들어갔다.

석목은 채아를 다독이고는 수령자를 뒤따라갔다.

검은 통로에 들어서자 석목의 머릿속에서 ‘윙’ 소리가 울려 퍼졌다.

통로 속에는 막강한 자기장이 감돌아 마치 습지에 빠진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그뿐만 아니라 몸속에 흐르는 진기도 자기장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고삐 풀린 말처럼 미친 듯이 튀기 시작했다. 심지어 진기가 육신을 뚫으려는 기미도 보였다.

석목은 깜짝 놀라 다급하게 공법을 시전하여 강제로 진기를 짓눌렀다.

수령자와 채아의 몸에서도 빛이 번져 둘은 다급하게 각자 공법을 시전하여 몸속에 흐르는 진기를 억눌렀다.

“야, 네 발 달린 구렁이. 위험하지 않다며?”

채아는 칠색 빛이 불안하게 튀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채아는 온 힘을 다해 진기를 다스리고 있었지만 매우 힘겨워 보였다.

수령자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듯이 깜짝 놀라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수령자의 몸에서도 파란빛이 번쩍였지만 채아보다는 안정되었다.

이때, 두 갈래 노란빛이 번쩍이며 채아와 수령자의 몸에 떨어지더니 노란 광막으로 변하여 몸을 보호했다.

노란빛이 자기장을 차단하자 수령자와 채아의 몸속에서 혼란스럽게 튀던 진기가 다시 침착해져 아주 적은 진기만 계속 튀었는데 둘이 갖춘 실력으로는 가볍게 눌러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수령자가 안색이 굳은 채 무엇인가를 말하려 할 때였다.

순간, 수령자 뒤쪽 벽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검은빛 한 줄기가 빠르게 날아 나와 수령자의 등을 내리쳤다.

“조심해!”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동시에 노란빛을 날려 간발의 차이로 검은빛을 막아버렸다.

쾅!

찬란한 빛이 번쩍이며 터져버렸다.

검은빛은 튕겨져 날아갔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빛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다가 다시 벽 속으로 스며들었다.

석목은 천천히 팔을 내려놓으며 빛이 스며들어 간 곳을 쳐다보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빛이 너무 빠른 속도로 사라져 석목도 그게 무엇인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검은 벽은 기이한 자기장을 흘려보냈고, 신식을 막아내는 효과도 있었기에 석목은 벽을 훑을 수도 없었다.

수령자는 그제야 반응을 하면서 다급하게 벽과 두어 걸음 떨어져서는 통로 가운데에 섰다.

“뭐야?”

채아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수령자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석목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검은빛을 피하지 못했을 터였다.

“몰라. 나도 못 봤어. 여긴 아주 위험한 것 같으니 조심해서 들어가자. 내가 앞장설게.”

석목이 말을 하며 수령자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수령자의 곁을 스쳐지나 앞쪽에서 걸어갔다.

석목의 어깨에 앉아있던 채아는 비웃는 표정으로 수령자를 한 번 쳐다보았다.

수령자는 오는 동안 아무런 위험도 없었기 때문에 너무 방심을 했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한 그는 안색이 굳었다.

그러나 수령자는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별별 일을 다 겪었기 때문에 곧바로 깊은숨을 내뱉으며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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