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97화 (897/916)

외전 19화. 인면구독갈(人面鳩毒蠍)

통로는 매우 길어 한참을 걸었지만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길이 어두컴컴하여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뭐 이런 빌어먹을 곳이 다 있어. 온통 이상한 것들만 가득하잖아.”

채아가 눈에 빛을 반짝이며 투덜거렸다.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밟고 있던 땅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통로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석목과 수령자도 함께 비틀거렸다.

이때, 석목의 옆에 있던 벽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며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날아 나와 석목의 등을 내리쳤다.

이와 동시에 수령자의 옆에 있던 벽에서도 똑같이 생긴 검은빛이 튕겨져 날아왔다.

석목은 당황하지 않고 검은빛이 막 나타난 순간, 곧장 옷자락을 흔들어 노란 벽을 만들었다.

벽에는 노란빛이 다섯 갈래 번쩍였고, 은은하게 산 모양 그림을 이루더니 매우 현묘한 벽이 되었다.

쾅!

검은빛이 반짝이며 노란 벽을 뚫고 지나가려다가 ‘퍽!’ 소리와 함께 벽으로 스며들다가 멈추었다.

수령자는 일전에 너무 방심하여 기습을 당할 뻔했지만 또다시 체면을 구길수는 없어 차갑게 웃었다.

수령자는 빙글빙글 돌면서 파란빛을 둘렀다. 그리자 파란빛은 다시 여러 가지 색으로 바뀌었다.

이어서 빛이 반짝이더니 얼음 방패가 나타나 검은빛을 막았지만 검은빛은 기이할 정도로 막강해 희미해지다가 다시 소리 없이 얼음 방패를 뚫어버렸다.

수령자는 흠칫 놀라며 빠르게 법결을 짚었다. 그러자 파란빛이 다시 날아 나와 크기가 한 뼘 정도 되는 파란 얼음꽃으로 뭉쳤다.

굵기가 엄지만 한 하얀빛이 얼음꽃의 꽃망울에서 튀어 나와 놀라운 한기를 풍기며 검은빛과 부딪쳤다.

쾅!

하얀빛은 부서져 버렸고, 검은빛은 다시 뒤로 날아갔다. 그렇게 어두워진 검은빛은 두어 번 흔들리다가 벽으로 스며들었다.

빛이 벽을 뚫고 들어가려는 순간, 또 얼음이 한 갈래 날아왔는데 이미 한발 늦어 벽에 떨어지고 말았다.

펑!

벽이 깨지며 나온 돌들이 사방으로 튕겼다.

벽이 한 장 정도 되는 하얀 얼음으로 뒤덮이면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순간, 통로 안쪽은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흥!”

수령자는 검은빛을 잡지 못해 매우 아쉬워 차갑게 웃었다.

검은 통로 안에 흐르던 자기장이 꿈틀거리자 하얀 얼음에서 빛이 반짝이다가 균열이 갈라지면서 이내 부서져 버렸다.

그 광경을 본 수령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때, 앞에서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통로가 다시 흔들렸다.

수령자는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다가 안색이 다시 굳어버렸다.

석목이 있는 곳에서 울려 퍼진 소리였는데 그가 두르고 있던 노란 벽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검은빛이 벽에 박혀 안간힘으로 꿈틀거리면서 뚫고 나오려고 했지만 벽에 박힌 채 움직이지 못했다.

이윽고 검은빛의 본체가 드러났는데 그건 팔뚝만 한 전갈 괴물의 꼬리였다. 그리고 뾰족한 꼬리 끝에서 파란빛이 유유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 매우 강한 독을 품고 있는 것만 같았다.

꼬리만 벽에 박혀 있는 걸 보니 본체가 벽 안에 숨어있는 게 틀림없었다.

“벽에 숨어 있었다니. 나와!”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손에 노란빛을 감고는 손을 몇 장 크기로 부풀렸다. 그리고 빠르게 벽 속으로 스며들어 괴물을 잡고는 힘껏 뽑아내자 검은색과 노란색을 띤 전갈이 뽑혀 나왔다.

전갈은 크기가 서너 장 정도 되었고, 껍질이 반짝이며 빛났다. 또한 몸통 중에 반쪽은 검은색이었고, 다른 반쪽은 노란색이었는데 머리는 평범한 전갈보다 훨씬 큰 게 어렴풋이 사람 얼굴 같아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전갈이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대자 심장이 다 서늘해졌다.

기이한 전갈은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며 몸에서 빛을 번쩍였다. 그렇게 작은 틈을 벌려 도망가려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마치 힘없는 개미처럼 노란 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인면구독갈! 이놈이 난장판을 만들고 있었군!”

수령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석목은 서책에서 인면구독갈이라는 이름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건 전갈 요수 중에서도 가장 독성이 강한 녀석으로, 독을 써서 수련 경지가 한 층 더 높은 강자도 죽일 수 있었다.

게다가 땅속으로 숨을 수 있는 신통을 익혀 이런 짐승을 잡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석목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자 커다란 노란 손에서 부문들이 날아나가 전갈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는데 이건 붉은 원숭이를 잡을 때 시전했던 비술이었다.

전갈의 몸속에 흐르던 요력이 금제되자 전갈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괴상하게 생긴 전갈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신경 중기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석목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금제 비술을 시전해 전갈은 요력이 봉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몸통마저 묶여버려 움직이지 못했다.

석목은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다시 손을 뻗어 다른 벽에서 인면구독갈 한 마리를 더 잡았다.

노란 부문들이 번쩍이자 두 번째 전갈도 요력이 금제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수령자는 복잡한 눈빛으로 석목을 한 번 쳐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수령자는 석목을 보잘것없는 청년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석목이 갖춘 실력은 수령자보다 훨씬 뛰어났다. 물론 상고 시대의 짐승인 한리의 몸속에 들어있어 우세한 점이 있었지만 앞으로 천 년을 더 수련하다고 해도 수령자는 석목이 이룬 수련 경지를 따라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수령자는 깊은숨을 내뱉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석두, 숨어있는 전갈은 더 없겠지?”

채아가 물었다.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어째서 인면구독갈이 있지? 이 짐승은 건조하고 뜨거운 곳을 좋아해서 사막에 사는 경우가 많은데 왜 여기서 나타난 걸까?”

수령자는 인면구독갈 옆으로 다가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석목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전갈들은 이미 금제되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눈에 살육을 원하는 욕망이 가득했고, 이성을 잃은 것만 같았다.

석목은 눈살을 찌푸렸다. 비록 인면구독갈은 살육을 즐기는 흉물이긴 하나 이 두 마리 전갈은 이미 신경 중기에 도달했는데 어째서 여전히 살육밖에 모를까?

“혹시……”

석목은 손가락으로 독전갈의 눈 사이를 짚으며 손가락에 투명한 빛을 반짝였다. 그러자 투명한 빛 여러 갈래가 전갈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후에 ‘퍽!’하며 가벼운 소리가 인면구독갈의 머리에서 울렸다.

인면구독갈은 몸을 파르르 떨다가 입과 코로 피를 흘리더니 동공마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검은빛 한 덩이가 인면구독갈의 두개골에서 날아 나왔는데 검은빛 속에서 투명한 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또 다른 인면구독갈의 머리에서도 빛 한 덩이가 날아 나왔다.

인면구독갈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이목구비에서 피를 뿜어냈다. 그런데 아직 숨통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런 기운이 없었다.

두 덩이 검은빛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빠르게 통로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는 속도가 매우 빨라 신경 후기에 가까웠다.

“어딜 도망가!”

석목이 콧방귀를 뀌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칼바람 같은 금빛이 석목의 입에서 날아 나와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빛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처참한 소리가 검은빛에서 낮게 흘러나오더니 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금빛 칼바람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다시 돌아왔다.

칼바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에 수많은 법칙 부문들이 응결된 걸 볼 수 있었는데 지금 풍기는 법칙의 힘은 온전하고 질서정연한 것이 예전의 석목이 시전했던 흩어진 법칙의 힘과는 확연히 달랐다.

금빛 칼바람이 반짝이더니 석목의 몸으로 사라져버렸다.

“어찌된 일이지? 누군가 저 인면구독갈 두 마리를 조종하고 있는 건가?”

수령자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여기에 도착했어. 그리고 인면구독갈 두 마리를 일부러 내보내서 훼방을 놓아 시간을 벌려고 했던 거야.”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통로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뭐! 누군가 수화선정을 노린다고! 석두, 빨리! 수화선정을 뺏기면 안 돼!”

채아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몸을 날려 노란빛으로 변하여 앞으로 날아갔다.

수령자도 앞으로 따라가면서 통로 양옆에 선 벽을 훑어보았다.

벽에서 기이한 자력이 흘러나왔는데 아마 이 기운도 훼방을 놓는 사람과 관련이 있을 터였으나 이게 대체 무슨 수단인지는 알 수 없었다.

비록 자력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둘은 속도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곧바로 통로의 끝에 도달했다.

* * *

통로를 벗어나자 석목은 순식간에 몸이 가벼워지더니 이어서 눈앞이 환해지며 밝은 동굴이 나타났다.

밝은 동굴과 바깥쪽 동굴은 조금 달랐는데 이곳은 커다란 지하 용암 동굴이며 크기가 족히 몇 리는 되는 것 같았다.

앞서 지나왔던 영력이 하나도 없는 동굴과 달리 이 동굴에 흐르는 천지의 영기는 극도로 짙어 동굴 밖보다 몇 배는 강했다.

동굴 왼쪽은 온통 하얀 얼음으로 뒤덮여있는 게 매우 두터워 보였다. 때문에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얼어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바닥에는 하얀 광석이 비스듬히 꽂혀있었는데 광석에 새겨진 눈꽃 무늬에서 놀라운 빛과 한기 파동이 흘러나왔다.

천하 성역이나 미양 성역 사람이 이곳에 왔더라면 아마 하얀 광석에 열광했을 터였다.

하얀 광석은 매우 희귀한 만년설옥으로 얼음 속성 영보를 제련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쓰이는 재료였다.

단 한 조각이라도 다른 성역에 나타났더라면 아마 피 터지게 싸우며 빼앗으려했을 텐데 이곳에서는 대충 땅에 박혀있었다.

동굴의 다른 한쪽 면은 상반된 기운이 감돌아 그곳에는 뜨거운 용암이 흘러내렸고, 가운데는 수십 장에 이르는 용암 호수가 자리해 호수 주변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땅 위에는 붉은 광석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돌마다 강렬한 불 속성 영력 파동이 흘러나오는 것이 만년설옥 만큼이나 귀한 광석이었다.

얼음과 불 사이에 놓인 공간엔 영수(靈樹)가 열 몇 그루 있었다. 그리고 영수에 달린 나뭇가지들이 구비 돌며 하늘로 치솟은 것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자랐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나무는 붉은색이었고, 매우 뜨거웠으나 나뭇잎은 파란색을 띠었으며 살얼음과 같은 기운을 풍겼다.

나무 한 그루에 완전히 상반된 속성을 지닌 물과 불이 감돌았다.

나무 밑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붉고 하얀 두 갈래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막강한 물과 불의 영력 파동이 우물에서 전해졌고, 우물은 나무보다 훨씬 많은 영력을 풍겼다.

나무와 우물로 인해 물과 불의 영력이 매우 조화롭게 흘러 다녔다.

물과 불의 영력이 산골짜기로 흘러들어오는 순간, 우물이 영력을 전부 흡수해버렸으며 나무에서도 끊임없이 두 가지 영력이 뿜어져 나와 기운을 양옆으로 밀어내면서 완벽히 순환을 이루었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의아한 표정을 드러내다가 다시 멈칫했다.

우물 옆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석목을 등지고 서 있었는데 그는 두 손에서 검은빛을 번쩍였고, 우물 속으로 두 갈래 빛기둥을 날렸다.

검은 남자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돌아섰다.

남자는 얼굴이 매우 수척했고, 두 볼이 움푹 패어있었다. 또한 온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왔고, 눈썹은 검처럼 짙었는데 두 눈에서는 혼탁한 노란빛이 번쩍였다. 또한 동공에 검은 무늬 한 갈래가 어려 있었는데 눈에서 유유한 빛이 번쩍이면서 살얼음 같은 기운을 풍겼다.

신식으로 남자를 훑어본 석목은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실력이 신경 후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남자는 명룡 일족을 비록한 세 종족에서 온 사람이 아닌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과연 세 종족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이 비경에 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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