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99화 (899/916)

외전 21화. 그림자

괴물이 다시 주문을 외우며 몸에 빛을 번쩍이자 붉은빛이 뿜어져 나와 검은빛과 합쳐졌고, 괴물이 포효하며 다시 검은 바람을 날렸다.

그러나 금색 곤봉 그림자를 휘감은 부문들이 바람기둥을 짓누르며 압박했다.

괴물은 힘이 풀리며 전의를 잃어 백 장 가까이 되던 거대한 몸통이 열 장정도로 줄어들었고, 머리에 달린 외뿔에서 투명한 빛을 뿜더니 고개를 힘껏 흔들었다.

퍽!

허공이 찢어지면서 괴물이 검은빛으로 변하여 찢어진 틈으로 스며들었다.

이때, 은빛이 빠르게 쫓아왔는데 그 빛은 새처럼 생긴 법보였다. 또한 법보는 끝단에 은빛을 드리우며 막강한 공간 파동을 흘려보냈다.

퍽!

은빛 법보가 공간 균열을 내리쳐 부숴버렸다.

그러자 괴물은 떨어지면서 눈에 절망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금색 곤봉 그림자는 드디어 바람기둥을 짓눌려버렸고, 다시 괴물의 몸을 내리쳐 몸통을 뭉개버렸다.

쾅!

하늘이 무너질 듯한 굉음과 함께 동굴 바닥이 움푹 꺼져버렸고, 어두컴컴해 땅이 꺼져버린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괴물은 사라지고 없었는데 일격을 맞고서 땅속 깊이까지 사라진 것 같았다.

석목은 눈에 싸늘한 빛을 번쩍이며 다시 번천곤에 빛을 감았고, 손을 흔들어 번천곤을 웅덩이로 던져버렸다. 그러자 번천곤은 금색 허상으로 변하여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백 장 깊은 땅속에서 검은 괴물은 살갗이 찢어지고 살덩이가 터져버렸다. 특히 등 뒤에는 허연 뼈가 그대로 드러났고,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으나 괴물은 여전히 끈질기게 살아있었다.

짐승이 허우적거리며 일어서려 할 때, 금빛이 날아와 정확하게 짐승의 머리에 구멍을 뚫어버렸는데 그 금빛은 번천곤이었다.

괴물이 처참하게 울부짖자 이제 막 일어섰던 몸이 다시 무너져버렸다.

쾅!

금색 화염이 번천곤에서 피어올라 순식간에 괴물의 몸통을 감아버렸다.

괴물은 여전히 처참하게 짖어댔으나 금색 화염이 내뿜는 힘이 워낙 막강하여 괴물의 몸통은 화염 속에서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단 몇 번 호흡을 할 동안 먼지가 되어 흩날렸고, 신혼마저 도망 나오지 못했다.

석목이 허공에 서서 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금빛과 은빛이 동시에 날아나가 석목의 손에 떨어졌는데 그것들은 번천곤과 은색 법보였다.

은빛 법보는 둔천사(遁天梭)로 석목이 그동안 얻은 공간 법보인데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그리고 구수도철을 해치우자는 묘공 스님의 부탁을 받아들인 이유도 둔천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흥! 뭐야! 우리 앞에서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죽어 마땅해!”

채아가 수령자와 날아와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석목 일행은 신식으로 검은 괴물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수령자는 막연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다시 번천곤을 거두어들였다.

“아, 저 검은 괴물은 무슨 요수야? 실력이 막강한데? 특히 그 흡입력 신통은 삼키지 못하는 물건이 없었어. 석두가 있어서 다행이야.”

채아가 석목의 어깨로 내려오며 말했다.

“진령 도철일 거야.”

석목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수령자를 바라보았다.

석목은 실력이 막강했지만 수령자만큼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수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철? 영수 주머니에 있을 때부터 너와 묘공이 대화하는 걸 들었어. 그런데 구수도철은 비경 위층에 있다며? 그런데 왜 여기에 나타난 거야?”

채아가 놀라고 말했다.

“이 도철은 아마 분신이겠지. 아니면 구수도철의 부하일 수도 있어. 본체는 아니야.”

석목이 매우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방금까지 싸운 검은 괴물은 실력이 막강해 석목과 묘공을 빼면 비경 속에 있는 그 누구도 괴물을 이길 수 없었다.

구수도철 옆에 이런 부하가 더 있다면 아마 예상보다 어려운 싸움이 될 터였다.

석목은 깊은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다시 고개를 흔들었는데 우선 수화선정부터 꺼내는 게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석목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 * *

동굴은 낭패를 봐 더는 얼음과 불이 공존하는 현묘한 느낌을 찾아볼 수 없었게 되었고, 벽에는 커다란 균열까지 그어져 있었다.

그러나 영석 우물은 훼손되지 않았다.

석목은 우물 옆으로 다가가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우물은 이삼십 장 깊이로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지만 파란빛과 붉은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빛들은 줄기 모양이었고, 우물 바닥은 빛줄기로 가득했다.

우물 깊은 곳에는 크기가 한 장에 이르는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화염 안에서 수정 몇 개가 어렴풋이 보였는데 바로 붉은빛과 파란빛을 띤 수화선정이었다.

“수화선정!”

채아가 좋아하며 칠색 빛을 날려 커다란 손으로 뭉쳤다. 그리고 우물 속에 일렁이는 화염 덩이를 잡으려고 했다.

퍽!

커다란 칠색 손이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빛줄기 때문에 구멍이 뚫려 흩어져버렸다.

채아가 깜짝 놀라 신음소리를 내다가 다시 손을 날리려 했다.

“힘 빼지 마. 저건 평범한 빛이 아냐. 음양극광이라 신경 후기 실력자가 아니라면 절대 수화선정을 꺼낼 수 없어.”

수령자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채아는 깜짝 놀랐지만 계속 시도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며 도와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석목은 웃으면서 노란빛을 날려 큰 손을 만들어 우물로 들여보냈다.

우물 속에 일렁이는 붉은빛과 파란빛이 노란 손을 드리우자 큰 손에서 한 뼘 정도 되는 투명한 빛이 나타나 붉은빛과 파란빛을 밀어 쇠가 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큰 손에서 나던 투명한 빛도 빠르게 얇아지면서 잠깐 사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빛을 막아내기가 수월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석목은 법결을 짚으며 노란 손에 빛을 크게 드리워 더욱 크게 부풀렸다.

노란 손이 급격하게 밑으로 뻗어가 순식간에 우물 바닥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을 펴서 수화선정을 붙잡았다.

쿵!

큰 손이 우물 바닥에 닿는 순간, 붉은빛과 파란빛 화염이 점점 커져서는 활활 타오르기 시작해 마치 우물에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극도로 뜨거운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부딪치며 터져 동굴 속에서 흩어졌다.

우물 속 붉은빛과 파란빛이 두 배 정도 짙어져 서로 응결되면서 두 가지 색 파동을 일으키며 노란 손을 칭칭 감았다.

커다란 손에서 빛이 미친 듯이 튕기다가 다시 얇아졌다.

석목이 다급하게 법결을 짚어 수많은 법칙을 날렸다.

그러자 노란 손에서 빛이 뭉쳤다가 다시 수정처럼 투명해지면서 멈춰버렸다.

석목은 큰 손으로 화염 속 수화선정 몇 개를 잡고는 다시 위로 끌어올렸다.

수화선정이 석목의 손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투명한 빛을 뿜자 막강한 영력 파동이 사방으로 퍼졌다.

“와! 석두, 나도 한 개만 줘!”

채아가 환호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석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미소를 짓더니 수화선정 하나를 채아에게 던져주었다.

채아는 입을 크게 벌려 한입에 수화선정을 물고는 삼켜버렸다. 그러자 채아의 몸에서 붉은빛과 파란빛이 번갈아 번쩍였고, 채아는 실눈을 뜨고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에 채아는 입맛을 다시며 다시 나머지 수화선정 몇 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석목은 채아를 신경 쓰지 않고는 나머지 수화선정 대여섯 개를 전부 수령자에게 주었다.

“어이, 석두.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나한텐 한 개만 주고 네 발 구렁이한테는 그렇게 많이 주다니!”

채아가 불만스러운 듯이 말했다.

“이 수화선정은 아주 중요해. 그리고 수화선정에 담긴 영력은 아주 풍성해서 네가 이룬 수련 경지라면 하나만 연화시켜도 이미 극한이야. 많이 먹으면 오히려 해가 될 거야.”

석목이 말했다.

채아는 내키지 않았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우선 갖고 있어. 그리고 수화선정에 깃든 힘으로 빠르게 구원선법을 수련해야 해. 구수도철을 이기려면 선법의 힘이 필요할 거야.”

석목은 수령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수화선정만 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구원선법 수련을 끝마칠 수 있어.”

수령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화선정 몇 개를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다시 파란빛으로 변하여 조롱박으로 들어갔다.

“너도 게으르게 굴지 말고 어서 수화선정의 힘을 연화시켜. 빨리 신경 후기에 올라야지.”

석목이 채아에게 말했다.

“그래.”

채아는 이대로 돌아가는 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몸속에 깃든 원기가 들끓고 있어 빨리 연화시켜야만 했다. 때문에 채아는 칠색 빛으로 변하여 영수 주머니로 돌아갔다.

* * *

석목은 다시 밖으로 날아가 검은 통로에서 멈춰 섰다.

통로 속에 감돌던 기이한 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매우 옅은 파동만 흘러 다니면서 동굴 속에 깃든 영력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걸 막고 있었다.

석목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시선을 고정했다.

동굴 벽 앞에 노란색 구슬 두 알이 둥둥 떠다녔는데 매우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흡입력을 날려 두 구슬을 끌어와서는 자세히 훑어보았고, 눈에 빛을 반짝이며 구슬 속으로 노란빛을 두 갈래 날렸다.

쾅!

구슬 두 알에서 빛이 펼쳐지며 물결 모양으로 퍼져갔다.

윙!

막강한 힘이 나타나 노란빛을 드리운 순간, 중력이 거세지더니 공기가 일그러지며 전보다 백 배는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

그러나 법보를 조종하고 있던 석목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때, 석목이 흠칫 놀라다가 활짝 웃었다.

두 구슬이 어떤 보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구슬 속에 들어있는 막강한 영력은 영보 수준을 초월했다.

게다가 두 구슬은 매우 현묘하여 중력을 조종할 수 있어 적을 상대할 때 매우 유용할게 쓰일 터였다.

석목은 잠깐 고민하다가 다시 법결을 날렸다.

두 구슬에서 노란빛이 빠르게 사라지자 기이하게 작용하던 중력도 사라져버렸다.

두 구슬 법보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이곳에 놓아둔 것이었으나 남자가 순식간에 석목에게 공격을 당하는 바람에 미처 보물을 소환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두 보물이 소환되었더라면 상대를 죽이는데 꽤 시간이 걸렸을 터였다.

두 구슬은 중력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도 지닌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세히 들여다볼 때가 아니라서 석목은 우선 두 구슬을 거두어들이고는 노란빛으로 변하여 밖으로 날아갔다.

노란빛이 산골짜기에서 날아 나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에서 사라져버렸다.

* * *

이때, 비경의 모처엔 하얀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어 맨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얀빛 속에는 세 그림자가 서 있었는데 윤곽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마주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뭐? 둘째가 죽었다고!”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휴, 확실해. 둘째의 본명패가 이미 부서져 버렸어.”

이번에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둘째는 우리들 중에서도 실력이 가장 강하잖아. 게다가 응산주(凝山珠)도 들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어느 놈이 벌인 짓이야?”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이번에는 거친 여인이 내는 목소리였다.

“아직 몰라. 아마 얼마 전에 비경으로 들어온 수라 성역 삼대 종족과 연관이 있을 거야.”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흥! 수라 성역 삼대 종족에 신경 후기가 몇몇 있긴 해도 놈들 실력으로 둘째를 죽일 수 있다고?”

거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수라 성역 삼대 종족은 실력이 강하지는 않지만 놈들에게는 뛰어난 신통이 있지. 만약 둘째가 놈들과 만났다면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거친 여인이 대답했다.

“아닌 것 같아. 내가 알아봤는데 이번에 수라 성역 삼대 종족과 함께 들어온 또 다른 두 놈이 있다고 했어. 한 놈은 지난번에 본 승려고, 다른 한 놈은 인족 청년이야. 둘째가 죽은 건 아마 그놈들과 관련이 있을 거야.”

목소리가 날카로운 사람이 말을 이어갔다.

“뭐! 그 승려가 여기까지 쫓아왔다고?”

굵은 목소리는 한껏 화가 치밀어 오른 것 같았으나 그가 내뱉는 말투에는 두려움도 섞여있었다.

여자는 침묵을 지켰다.

“걱정하지 마. 이 비경은 아주 복잡해. 승려는 그렇게 빨리 우리를 찾아내지 못할 거야. 이제 곧 아버지가 돌아오실 테니 그때면 승려를 해치울 수 있어.”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굵은 목소리도 긴장을 풀면서 대답했다.

“그런데 우리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내가 내려가 볼게. 최대한 아버지에게 시간을 벌어 드려야지.”

여자가 목소리를 냈다.

“그래. 꼭 조심해서 다녀야 해.”

날카로운 목소리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그중 한 그림자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 승려 말고도 인족 청년이 있다고? 그 녀석은 누구야? 수련 경지는 어때?”

굵은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나도 잘 몰라. 승려를 모시는 부하나 되겠지. 인족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날카로운 목소리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

굵은 목소리를 내는 남자가 경멸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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