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900화 (900/916)

외전 22화. 검은색 요금(*妖禽:요물 새)

석목은 전속력을 다해 앞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석목은 신식으로 주변을 훑으며 높은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입구를 찾았다.

석목은 한참 동안 길을 헤매면서 수많은 보물을 보았으나 공간 통로에 대해서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비경 곳곳에는 귀한 보물들이 있었지만 매우 위험한데다가 막강한 신경 요물들이 어슬렁거렸다. 이렇듯 요물들이 익힌 신통 또한 매우 막강하여 석목마저 흠칫 놀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석목은 애초에 보물들에 관심을 두지 않아 요물들도 덮쳐오지 않았다.

“음……”

석목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멈춰 서서는 고개를 돌려 한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석목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만 리 밖에 자리한 한 산골짜기에 고만족들이 빙 둘러 서 있었다. 그리고 흑백 빛 두 갈래가 그들 사이에 펼쳐져 수많은 흑백 부문들이 곳곳에서 뿜어져 나와 현묘한 대진을 이루었다.

고만족에는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 말고도 입이 뾰족한 청년도 있었고, 면사포를 쓰고 있는 여인도 있었는데 모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골짜기 상공에는 괴상한 푸른 새들이 빙글빙글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족히 사오십 마리는 되는 것 같았고, 고만족은 가운데에 몰려있었다.

새는 몸집이 열 장이나 되었고 큰 입은 마치 오리의 입 같았다. 또한 두 다리가 유난히 발달하여 커다란 낫과 같았고, 몸통은 앙상한 게 삐쩍 말라있었다.

이 못난 새들은 놀랍게도 전부 신경이었다.

가장 앞에 있는 검은 새는 몸집 또한 다른 새들보다 몇 배는 더 컸다. 그리고 검은 철침 같은 깃털이 몸에 잔뜩 박혀 있었고, 머리에는 금색 볏을 달고 있어 막강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검은 새는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와 실력이 비슷한 것 같았다.

이 괴상하게 생긴 새는 빙글빙글 돌면서 입으로 푸른빛을 날려 고만족을 공격했다.

푸른빛이 스친 허공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흑백 빛이 번쩍였다.

열 몇 갈래 푸른빛이 방어 대진을 내리치자 흑백 빛이 흔들리면서 점점 어두워지는 게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족장님, 이렇게 버틸 수만은 없어요. 가만히 있으면 양의현광진(兩儀玄光陣)이 버티지 못할 거예요.”

면사포를 쓴 여인이 초조한 듯이 말했다.

수염이 난 사내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고만족과 다른 두 종족이 갈라진 후로 그들은 각자 비경 속에 잠든 다양한 보물을 훑으며 많은 수확을 얻었다.

그동안 이런 요수들을 만나기는 했으나 고만족도 실력이 뛰어났기에 가볍게 해결할 수 있었고, 그들은 점점 경계심을 내려놓고 방심했다.

복에는 화가 숨어 있다는 말은 진리인 것 같았다.

고만족은 산맥 곳곳에서 보물을 찾아다니다 산속에 사는 요금을 건드려 여기까지 쫓겨났다.

다행히 고만족은 진법 법기를 지녀 빠르게 대진을 펼쳤다. 그러나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도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당장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물러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누군가 미끼가 되길 자처하여 온 힘으로 요금을 막아야만 다른 사람들이 도망칠 기회라도 생길 수 있었다.

고만족은 이미 숫자가 많이 줄어들어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상황이 이런데 또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되겠는가.

“족장님, 제가 저놈들을 막고 있을 테니 족장님은 사람들을 이끌고 빨리 피하세요.”

사내 옆에 서 있던 입이 뾰족한 청년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허공에 뜬 새를 덮쳤다.

“신력(辛力), 빨리 돌아와! 경거망동하면 안 돼!”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청년은 대진 밖으로 날아갔다.

청년의 몸에서 빛이 화염처럼 타올랐는데 화염 속에서 붉은 원숭이 환영이 나타나 두 손으로 가슴을 내리치면서 고개를 들고는 포효했다.

붉은 원숭이 환영이 몸을 날려 청년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청년은 몸이 빠르게 불어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백 장 가까이 되는 거대한 원숭이로 변하였다. 그리고 원숭이의 몸에는 붉은 털이 자라났고, 두 눈에서 찬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커다란 두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치자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광폭한 위압감이 퍼지면서 원숭이가 내뿜는 기운도 터져나와 이미 신경 후기에 올랐다.

붉은 원숭이가 입을 벌리자 찬란한 화염이 입에서 날아 나와 붉은 곤봉으로 변하여 빛을 뿜어냈다.

원숭이는 손을 들어 올리고는 붉은 곤봉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몸에서 나오는 불빛과 붉은 곤봉의 화염이 동시에 타오르며 기운이 훨씬 막강해져 마치 절세의 요물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커다란 원숭이가 푸른 새를 향해 ‘쓱!’ 소리와 함께 잔상을 그리며 빠르게 앞으로 덮쳤다.

그리고 곤봉으로 잔영을 끌면서 맹렬하게 내리쳤다.

쾅!

푸른 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곤봉에 몸이 터져버렸다.

이어서 원숭이는 바로 몸을 날려 또 다른 푸른색 새를 덮쳤다.

원숭이는 눈에 금빛을 뿜더니 단번에 푸른 새 두 마리를 내리쳤다.

쾅!

화염 곤봉도 새를 내리쳤다.

원숭이의 몸에서도 폭발음이 울리며 금색 화염이 타올랐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새 두 마리는 시체마저 찾아볼 수 없게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원숭이는 위력을 터뜨리며 새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그렇게 잠깐 사이에 푸른 새가 일고여덟 마리나 죽어버렸다. 그리고 원숭이는 평범한 신경 후기보다 훨씬 막강한 기운을 풍겼다.

푸른 새들이 이룬 진영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숭이도 적잖은 대가를 치러 몸 곳곳에 상처를 입었고,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와 몸 전체를 물들였다.

원숭이의 눈에서 나던 금빛도 어두워진 것이 진기를 너무 많이 소모한 듯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다.

진법 속에 있던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가 이를 악물고는 두 주먹을 꽉 쥐자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는 한 종족을 이끄는 족장이었기에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래서 사내는 하얀 법보를 꺼내 안개 같은 빛을 펼쳐 모든 사람들에게 드리웠다.

“족장님! 이대로 신력을 버리고 우리만 도망가는 겁니까?”

면사포를 쓴 여인이 다급하게 물었다.

“종족을 위해서야!”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는 잠깐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인은 무엇인가 말을 더하려다 뒤에 서 있는 젊은 고만족들을 보고는 침묵을 지켰다.

노란 수염을 드리운 사내는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흑백 진법에서 빛이 밝아지면서 다시 종족 사람들을 드리워 밖에서는 빛 속 상황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신경 후기인 검은 요금이 두 눈에서 번개를 뿜어내며 산골짜기를 노려보다가 싸늘하게 울었다.

검은 요금의 등 뒤에는 평범한 푸른 새들보다 훨씬 큰 요금들이 있었는데 그 새들은 깃털이 회색이었고, 풍기는 기운은 이미 신경 중기에 도달했다.

회색 요금 두 마리는 일제히 날개를 펄럭이며 회색 그림자로 변하여 원숭이를 덮쳤다.

요금은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원숭이의 몸 앞에 나타났다.

요금들에게서 회색빛이 뿜어져 나와 짙은 먹구름을 이루더니 요금들은 몸을 크게 부풀려 수십 장 크기로 변하였다.

쾅!

회색 요금들의 날카로운 두 발에서 굵은 번개가 터져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두 새는 좌우에서 원숭이의 머리를 공격했다.

몸속에 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원숭이가 고개를 번쩍 들면서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이때, 원숭이의 피부에서 붉은빛이 점점 짙어지면서 붉은 곤봉이 나타났다.

허공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며 여러 갈래 곤봉 그림자가 나타나 가로로 휩쓸어가면서 회색 머리 요금들의 발과 강하게 부딪쳤다.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두 마리 회색 요금이 몸을 파르르 떨면서 동시에 튕겨져 날아나갔다. 그리고 발에 감고 있던 날카로운 회색빛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원숭이는 몸통이 흔들리기만 할 뿐, 곧장 멈춰 섰다.

두 회색 요금은 다른 푸른 새들과 달리 이미 지능이 높아 서로 눈을 한 번 마주쳤는데 요금의 눈에 두려운 기색이 스쳤다.

원숭이는 곧 무너지기 직전인데도 매우 막강한 힘을 뿜어냈다.

신경 중기인 요금 두 마리는 날개를 활짝 펴고는 한 바퀴 빙 돌더니 다시 원숭이를 덮치며 매우 조심스럽게 공격했다.

붉은빛 하나와 회색빛 두 갈래가 얽히고설키면서 찬란한 빛을 뿜어내 회색 요금들과 원숭이의 몸통에 드리웠다.

원숭이가 풍기는 붉은빛은 여전히 눈부셨지만 곧 회색 구름들 때문에 잘려버릴 것 같았다.

순간, 원숭이가 회색 요금에 묶여버리자 정신없이 날아다니던 푸른 새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한 바퀴 빙 돌더니 다시 아래쪽에 자리한 산골짜기를 향해 덮쳐갔다.

이때, 흑백 빛이 밝아지면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빛이 다시 폭발하여 굵직한 빛기둥으로 변해 하늘로 치솟았다.

푸른 새들은 흑백 빛기둥에 밀려 마치 광풍 속에 나부끼는 나뭇잎처럼 전부 흩어졌다.

순간, 눈부신 하얀빛이 땅에서 날아 나와 눈 깜짝할 사이에 믿기지 않는 속도로 포위망을 뚫고는 먼 곳으로 날아갔다.

고만족이 도망가려는 찰나, 빛 근처 허공에서 산처럼 커다란 발 두 쪽이 난데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커다란 발에서 검은 기운이 맴돌고 있는 것이 마치 유명귀조(幽冥鬼爪)와 같았다. 그렇게 검은 발은 단번에 하얀빛을 잡아버렸다.

이어서 검은 발은 하얀빛을 찢어버리려고 했다.

퍽!

하얀빛이 단번에 두 덩이로 갈라지더니 찢어진 깃발 두 짝처럼 검은 발에 걸려있었다.

고만족들은 비틀거리며 나타났는데 안색은 전부 하얗게 질려있었다.

두 검은 발이 다시 허공으로 스며들자 이어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고만족이 갈 길을 막아버렸는데 그 그림자는 신경 후기에 오른 검은 요금이었다.

“도망가게 내버려 둘 줄 알았나! 우리 영토를 침범하다니. 다 죽어라!”

검은 요금은 사람이 하는 말을 내뱉고는 두 눈이 붉게 물든 채 싸늘한 기운을 풍겼다.

요금은 다시 철편 같은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검은 바람 두 갈래가 회오리를 이루며 고만족을 덮쳤다.

바람이 다가오기도 전에 고만족들이 두르고 있던 빛이 찢어져 버려 얼굴이 마치 칼로 베이는 듯 아팠다.

이때, 푸른 새들도 멈춰 서서는 소리를 질러대며 고만족을 덮쳤다.

“내가 저놈을 막고 있을 테니 사람들 데리고 도망가!”

이때, 수염을 드리운 사내가 하얀 법보를 꺼내 면사포를 쓴 여인에게 건네고는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며 푸른빛을 뿜어냈다.

커다랗고 푸른 환영이 사내의 등 뒤에 나타났는데 그건 크기가 족히 열 몇 장이나 되는 두꺼비였다. 또한 두꺼비는 몸통이 푸르스름했고, 눈 사이에 세로로 그어진 주름이 하나 있어 마치 감긴 눈과 같았다.

사내가 두 손으로 법결을 짚자 두꺼비 환영이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사내는 몸통이 불어나면서 손과 발이 달라져 순식간에 크기가 백 장에 이르는 푸른 두꺼비로 변하였다. 그렇게 두꺼비에게서 막강한 기운이 흘러나왔고, 신경 후기 경지를 뚫고 이미 새로운 수준에 도달한 것 같았다.

두꺼비가 입을 크게 벌려 삼엄한 안개를 뿜어냈는데 안개 속에는 푸른빛이 반짝이는 것이 마치 밤하늘의 별 같았다. 이어 안개는 회오리와 부딪쳤다.

검은 회오리는 푸른 안개에 닿는 순간 사라져버렸고, 녹아내리듯이 소멸했다.

푸른 안개도 절반이나 줄어들었으나 남은 안개 절반은 살짝 들끓다가 계속해서 검은 요금을 덮쳤다.

동시에 푸른 두꺼비가 입을 크게 벌려 안개 두 덩이를 뿜어내 푸른 벽을 이뤄 새들이 날리는 공격을 막았다.

안개를 세 번 뿜어낸 후에 두꺼비가 내는 푸른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는데, 안개 신통을 부리면서 많은 진기를 소모한 것 같았다.

검은 요금은 푸른 안개가 두려워 동공이 줄어들면서 두 날개를 활짝 펼쳐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푸른 새들은 지능이 없어 두려워하기는커녕 곧장 안개를 향해 덮쳤다.

앞에서 날아가던 새들이 안개에 닿는 순간, 곧장 녹아내리면서 끈적이는 피로 변하였다.

그러자 뒤쫓아 가던 푸른 새들은 빠르게 멈춰 서서는 안개로 다가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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