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3화. 땅으로 떨어지다
새들이 연이어 죽어버리자, 검은 요금은 화가 치밀어 올라 두 눈에서 불을 뿜어냈다.
요금의 몸에서 번지던 검은빛이 빠르게 줄어들더니 이어서 검은 옷을 입은 키가 훤칠한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었고, 가느다란 두 눈이 움푹 꺼진데다가 싸늘한 빛을 뿜고 있어서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남자가 뒤의 푸른 새 무리 속으로 날아갔다.
푸른 두꺼비는 눈에 빛을 반짝이는 게 불안한 것 같았다.
푸른 안개벽에 밀려 혼란에 빠졌던 새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공격을 날릴 준비를 했다.
그러자 두꺼비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면사포를 쓴 여인은 구원이 내뿜는 기세를 보자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여 하얀 비주를 꺼내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배에서 수많은 빛이 번쩍이며 불어나더니 이어서 투명한 빛으로 변하여 고만족을 전부 드리웠다.
다시 빛을 날리자 투명한 빛이 고만족을 이끌고 멀리 도망갔다.
이때,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그 소리가 마치 슬픔에 빠져 하염없이 통곡하는 여인의 울음소리 같았다.
피리 소리를 듣는 순간, 여인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졸음이 몰려왔다.
“큰일이군!”
여인은 애써 정신을 차리며 신식으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여인이 드리운 신식의 힘은 너무 약하여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고, 몸속에 흐르던 진기도 느려지자 그녀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고만족에게 드리운 하얀빛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다시 하얀 비주로 변하였다.
고만족들은 전부 동공이 풀려버려 환상 속으로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수백 장 밖에서 나는 새들 속에 있던 남자는 은색 피리를 들고는 유유자적하게 연주를 했다.
옅은 은색 파동이 퍼지면서 허공에서 ‘윙, 윙’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마리 요금과 싸우고 있던 원숭이도 안색이 굳었으나 원숭이는 남자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피리 소리를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다.
푸른 새들은 피리 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아 오히려 흥에 겨워 소리를 지르며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새들은 날개를 펼쳐 푸른 안개 벽을 에둘러 화살처럼 날아가 여인을 덮쳤다.
그러자 두꺼비는 안색이 굳어지더니 두 손으로 다급하게 법결을 짚었다.
두꺼비가 이룬 수련 경지는 이미 신경 후기에 도달해 신식의 힘이 막강하여 피리 소리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두꺼비는 푸른 안개벽을 높이 피워 새들이 날리는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조금 늦어지는 바람에 몇 마리밖에 밀쳐내지 못했다.
다급해진 두꺼비는 곧장 푸른 그림자로 변하여 면사포를 쓴 여인에게로 날아갔다.
고만족 무리는 이미 피리 소리에 정신을 잃어버려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푸른 두꺼비 앞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검고 커다란 새가 허공에 나타났다. 새의 발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건 마치 두 개의 태양 같았고, 그렇게 떠오른 태양이 두꺼비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동시에 검은 새가 철판 같은 날개를 펄럭이면서 칼바람을 날리자 칼바람이 양쪽을 휩쓸며 앞길을 막아버렸다.
두꺼비는 깜짝 놀라 몸이 굳어버렸다!
검은 새는 아까 사람으로 변신하여 먼 곳에 서 있었는데 어째서 또 한 마리가 나타났을까?
그러나 지금은 그 이유를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두꺼비는 자리에 서서 푸른빛을 드리웠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려 찬란한 구체를 날려 검은 새의 두 발을 공격했다.
쾅!
빛나는 구체가 부서지자 새도 뒤로 튕겨져 날아갔는데 몸이 극도로 단단하여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채 그저 깃털 몇 개만 흩날렸다.
푸른 두꺼비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빛을 더 넓게 펼쳤다. 그리고 펼쳤던 빛을 다시 모아 미간으로 흡수했다.
두꺼비의 미간에 세로로 붙어 있는 눈이 번쩍이며 찢어지더니 찬란한 푸른빛이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푸른빛이 날아가는 속도는 극도로 빨라 단번에 검은 새의 머리를 뚫어버렸고, 새는 한참 후에야 자기 머리가 뚫린 것을 알아차렸다.
펑!
검은 새의 머리가 터지자 몸통 또한 검은 기운이 되어 흩어져버렸다.
“분신!”
두꺼비는 눈에서 빛을 반짝이며 앞으로 날아갔다.
두꺼비의 등 뒤에서 갑자기 검은 손 두 개가 번개처럼 나타나 두꺼비의 머리를 붙잡았다.
이어서 두꺼비 주변으로 검은 새가 세 마리나 더 나타났다.
모두 네 마리나 되는 새가 두꺼비를 포위해 더는 도망갈 수 없었다.
이때, 푸른 새들은 면사포를 쓴 여인에게로 날아가 입을 벌리고는 푸른 빛기둥을 수십 갈래씩 날려서 공격했다.
면사포를 쓴 여인은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웠기에 빛기둥을 바라보며 절망한 눈빛을 내비쳤다.
“우리 영역을 침입한 녀석들은 다 죽어야 돼!”
검은 새가 사람처럼 말을 내뱉었는데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두꺼비는 공격을 날리고 싶었지만, 검은 새들에 포위되어 도망갈 수 없었다. 게다가 네 마리 요금은 실력이 아주 막강해 두꺼비는 여인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빛기둥이 고만족을 내리치려는 찰나, 찬란한 금빛 한 줄기가 먼 곳에서 날아왔다.
몇 리 밖에 있던 금빛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탱!
금빛이 찢어지면서 수십 갈래의 검 그림자로 변하여 푸른 빛기둥을 내리쳤다.
쾅!
부서진 빛기둥이 터져버리면서 푸른 태양으로 변했고, 태양이 막강한 기운 파동을 일으켜 공간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새들은 거센 기류 때문에 뒤로 밀렸고, 고만족은 기류에 휩쓸린 채 멀리 떠밀렸다.
그러자 석목이 노란빛을 날려 고만족 일행을 받쳐 들었다.
갑작스러운 이변이 일어나자 요금과 두꺼비가 격전을 멈췄다.
“석목 도우님!”
석목을 본 두꺼비는 눈에서 화색이 돌았고, 요금 네 마리는 멈칫하다가 다시 앞쪽을 덮쳤다.
그러자 두꺼비는 세로로 자라난 눈에 푸른빛을 번쩍였다. 그리고 입을 벌려 빛방패를 날리자 푸른빛을 두른 광막이 펼쳐지면서 네 요금이 날린 공격을 막아냈다.
석목이 나타나자 두꺼비는 오히려 차분하게 대처했다.
검은 요금이 변신한 남자는 석목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석목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대충 손을 흔들었다.
석목의 손가락에서 빛이 튀어 나와 고만족들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빛이 몸속으로 들어간 순간, 고만족들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 다녔다.
빛이 닿자 면사포를 쓴 여인은 정신이 번쩍 들어 약해졌던 신식도 곧바로 회복되었고, 진기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석목 도우님, 감사합니다.”
여인은 황급히 일어서서는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고만족들이 전부 석목에게 감사를 전했다.
멀찌감치 서 있던 남자는 안색이 살짝 바뀌더니 석목이 가볍게 피리 공격을 막아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남자가 더욱 크게 피리를 불자 소리 파동이 밀물처럼 밀려와 고만족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고만족들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멀쩡하게 자리에 서서 소리 파동을 막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피리 소리로는 더 이상 고만족들을 공격하지 못했다!
그러자 남자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피리 법보를 내려놓았다.
순간, 푸른 새들이 폭풍에 밀리다가 다시 우르르 덮쳐오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방향을 틀어서 석목을 공격했다.
새들은 날개를 활짝 펼쳐 소리 높이 울어대며 석목에게로 날아왔다.
“안 돼!”
조금 전에 석목이 갖춘 범상치 않은 실력을 본 남자는 깜짝 놀라 소리 질렀으나 이미 늦었다.
새 수십 마리가 떼를 지으며 날아가 석목의 머리 위에서 멈추더니 이어서 방향을 틀어 석목을 향해 덮쳤다.
푸른빛이 번지자 새들이 뾰족한 검진을 이루었다.
새들이 나는 속도는 매우 빨라 그중 가장 앞에서 날아가던 새가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날카롭게 소리 지르며 허공에 긴 잔영을 끌었다.
이 공간은 바깥보다 훨씬 안정되어 신경 후기라고 해도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날리지는 못했다. 그런데 새들이 스친 자리에서 잔영이 일어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검 그림자가 빠르게 돌아가며 아래를 향해 찔렀다.
“석목 도우, 조심하세요!”
면사포를 쓴 여인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고만족은 떼로 몰려오는 새들 때문에 궁지에 몰렸던 적이 있어 단 세 사람만을 빼곤 모두 큰 부상을 입었었다.
그러나 이런 공격을 날리는 건 새떼에게도 부담스러워 한 번 공격을 날린 후에는 반드시 한참 동안 쉬어야만 했다. 만약 이런 제약이 없었더라면 고만족이 이룬 진법은 진즉에 새들에게 무너졌을 것이다.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펼쳤다.
칙, 칙!
금색 기운 다섯 갈래가 석목의 손가락 끝에서 뿜어져 나와 커다란 그물을 이루었다. 그렇게 검망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적에 맞섰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석목이 다시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자 금빛 검망이 두 배 정도 더 커졌다.
검 그림자 수십 갈래가 검망에 부딪치자 굉음이 울려 퍼지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금색 검망이 마구 흔들리자 그물이 새떼로 이루어진 검진을 무너트리지는 못했지만 새들도 그물을 뚫고 나오지 못했다.
석목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자 낮게 소리를 냈다. 그리고 다시 열 손가락을 움직여 금빛을 날렸다.
금색 검망에서 수많은 법칙 부문들이 흘러 다니며 막강한 법칙의 힘을 풍겼다.
이어서 금색 법칙 부문들은 서로 이어지면서 선으로 변하여 그물 속으로 스며들었다.
검망은 금빛을 내뿜으며 ‘칙칙’ 소리를 냈다. 그러자 새떼로 이루어진 검진이 순식간에 부서지면서 핏빛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눈 깜짝할 사이 새 수십 마리가 금색 검망에 부딪쳐 피범벅이 된 채 땅으로 떨어졌다.
순간, 푸른 수혼 수십 개가 피와 살덩이가 흩날리는 허공에서 빠져나왔지만 다시 검기에 밀려 부서져 버렸다.
“말도 안 돼……”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리며 믿기지 않는 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면사포를 쓴 여인을 비롯한 고만족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만족들은 푸른 새떼가 얼마나 막강한 위력을 지녔는지 직접 겪어보았기에 석목이 상대를 가볍게 해치우는 현실이 놀랍기만 했다.
석목이 갖춘 실력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으아!”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렸다. 남자는 두 눈이 충혈된 듯 붉게 물들어있었고, 이목구비가 일그러진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막강한 살기가 남자의 몸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석목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남자는 석목이 바라보는 담백한 시선과 마주하자 타오르던 살기가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두 눈에서 일던 붉은빛도 빠르게 사라졌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남자는 허리를 굽히며 검은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다시 본체인 새로 변신하여 날개를 펄럭이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믿기지 않는 속도로 저 멀리 사라졌다.
“도망가는 속도는 빠르군……”
석목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눈썹을 추켜세운 후에 더 이상 남자를 쫓지 않았다.
비록 요금은 매우 기이한 요수였지만 석목에게는 큰 쓸모가 없었기에 쫓아갈 필요 따윈 없었다.
금색 새가 사라지자 두꺼비를 공격하던 네 마리 새들도 빛으로 변하여 본체가 날아간 곳을 따라 사라져버렸다.
원숭이를 공격하던 회색 요금도 우두머리가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는 곧장 번개처럼 도망을 가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곳에는 고만족과 석목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