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4화. 공간 통로 (1)
푸른 두꺼비는 몸에서 빛을 반짝이며 거대한 몸통을 빠르게 줄였다. 그리고 두꺼비는 다시 얼굴이 창백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두꺼비는 검은 요금이 날아간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원숭이도 거대한 몸통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이가 뾰족하고 볼이 붉은 청년으로 돌아왔다.
청년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 변신하는 순간, 비틀거리면서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면사포를 쓴 여인은 다급하게 청년을 부축하며 몸속으로 진기를 불어넣었다.
청년은 곧바로 약병을 꺼내 회복 단약을 두 알 삼켰다. 그러자 청년은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
“석목 도우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족을 구해주신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구원이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면사포를 쓴 여인과 청년도 인사를 올렸다.
“별일 아닙니다. 족장님.”
석목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석목은 고만족이 싫기는커녕 오히려 친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비경 입구를 찾으려면 고만족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석목은 고만족에게 어떻게 공격을 당하게 되었는지 물어보고는 공간 비경과 관련된 일을 입에 올렸다.
“아직 도우님께 자세히 말씀드리지는 못했는데 수라 심장은 두 층으로 나뉩니다. 우리는 지금 일 층인 만령경(萬靈境)에 있으며 위층은 혈원경(血源境)이죠. 두 층은 공간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요.”
구원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였다.
수라 성역의 삼대 종족은 역시 비경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그렇다면 공간 통로의 입구도 분명 알고 있을 터였다.
“네. 그렇다면 족장님은 공간 통로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겠군요.”
석목이 계속해서 말했다.
석목은 왠지 모르게 초조해 빨리 구수도철을 찾아야 할 것만 같았다.
“물론이죠. 석목 도우님,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따라오세요.”
구원은 멈칫하다가 후후 웃으며 푸른 비선을 꺼냈다.
비선이 펼쳐지면서 크기가 이십 장으로 변하였다. 그렇게 푸른빛이 반짝이던 비선에서 묘목이 빠르게 자라나 서로 묶이더니 삼 층짜리 선박으로 변했다.
선체에는 구름 모양 무늬가 새겨졌고, 하얀 안개가 피어올라 비선을 감싸 밖에서 보면 마치 하얀 구름 같아 보였다.
석목은 달라진 비선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안개는 아주 현묘한 금제라 신식을 잘 감춰 만약 이 비선을 타고 비경에서 날아다닌다면 뛰어난 탐색 능력을 갖춘 요수들 빼고는 아무도 쉽게 발견하지 못할 터였다.
“족장님, 감사합니다.”
석목은 곧바로 비선에 올라탔다.
“석목 도우님, 별말씀을요. 너희들도 어서 올라타서 상처를 치료해라.”
구원이 웃으며 석목에게 대답을 하고는 다시 고만족에게 명령을 내렸다.
고만족들도 전부 비선에 올라타자 구원이 손을 흔들어 법결을 날렸다.
하얀 구름이 가볍게 흔들리면서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소리 없이 앞으로 날아갔다.
* * *
비선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리나 날아갔는데 평범한 신경 후기가 나는 속도와 비슷했다.
석목은 선두에서 뒷짐을 지고는 앞을 내다보았다.
고만족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 천천히 상처를 치료했다.
입이 뾰족한 청년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폐관 수련을 시작했고, 면사포를 쓴 여인은 구원의 옆으로 다가왔다.
“족장님, 아직 약속한 시간까지 조금 남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찾고자 했던 물건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면사포를 쓴 여인은 망설이다가 전음을 보내며 말했다.
“괜찮구나. 다들 상처를 입어 보물을 찾기가 쉽지 않을 거야. 그리고 석목 도우님은 우리 종족을 구해주셨는데 지금 급하게 통로를 찾으시는 것 같으니 우선 입구로 모셔다드리자.”
구원이 전음을 보내 대답했다.
면사포를 쓴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뒷짐을 지고 서서는 눈에 빛을 반짝였다.
석목이 갖춘 신식의 힘이라면 구원과 면사포를 쓴 여인이 나누는 대화를 충분히 엿들을 수 있어 그는 몰래 미소를 지었다.
하얀 구름은 환영으로 변하여 한참 동안 앞으로 날아갔다.
비경은 생각보다 훨씬 넓어 한두 시진이나 날았으니 최소 수백만 리는 날아왔을 터인데도 구원이 말하는 공간 통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다행히도 비선에 걸린 현묘한 금제 덕분에 오는 동안 요수들로부터 습격을 받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후후, 석 도우님, 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공간 통로는 바로 앞에 있습니다.”
구원이 다가와서는 웃으며 말했다.
면사포를 쓴 여인은 뒤편에 서서 비선을 조종했다.
“구원 족장님, 일전에 격전을 치르며 원기를 크게 소모하셨을 텐데 쉬지 않으셔도 괜찮습니까?”
석목은 구원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진기를 조금 소모했을 뿐이죠. 괜찮습니다.”
구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 족장님은 특별한 체질이라 하셨지요? 이미 기운이 칠팔 할은 회복되신 것 같군요. 혹시 족장님의 진령 토템 덕분인가요?”
석목이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역시 시력이 뛰어나시군요.”
구원은 얼굴이 굳더니 멋쩍은 듯이 말했다.
구원이 지닌 진령 토템인 벽정금섬수는 막강한 자기 회복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구원은 일부러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지만 석목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저는 고만족이 다루는 토템 비술을 잘 알고 있죠. 그런데 진령 토템은 처음 듣는 것 같군요. 혹시 진령 괴수를 죽여 수혼으로 만든 토템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석목은 진령 토템에 아주 큰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자 구원은 망설이는 기색을 드러냈다.
“족장님, 말 못할 사정이 있으시다면 제가 물어보지 않은 셈 치죠.”
석목은 구원의 표정을 살피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사실 수라성에서는 비밀도 아니죠. 도우님께서 추측하신 게 맞습니다.”
구원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석목은 흠칫 놀랐다.
석목은 진정한 진령을 본 적이 없었지만 서책에 기록된 내용은 본 적이 있었다.
진령은 평범한 요수와 달리 막강한 실력을 갖춰 수혼도 강력하기 그지없다. 때문에 진령을 다스려 토템으로 만드는 건 절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제대로 연화시킬 수 있다면 진령 토템이 갖춘 힘은 엄청난 위력을 발산한다.
구원이 지닌 진령 토템은 벽정금섬수였는데 이건 명룡 일족 족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물론 석목은 그 짐승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나 조금 전에 치른 격전을 다시 떠올려 봤을 때, 구원은 자기가 갖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았음에도 보여준 실력만으로도 그가 실력자라는 사실은 쉬이 알 수 있었다.
만약 구원이 모든 실력을 드러낸다면 매우 강한 존재임이 틀림없을 테니 구수도철이 나타났을 때, 구원은 석목에게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석목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석목은 계속해서 구원과 대화를 나누었으나 진령 토템에 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 *
둘이 대화하는 사이에 또 반시진이 흘렀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도 바뀌면서 하늘에 먹구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먹구름이 점점 짙어져 온 하늘을 뒤덮자 날씨가 어두컴컴해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생기가 넘치던 땅도 황량한 벌판으로 변했고, 수많은 돌들이 까마득하게 널려있었다.
여긴 매우 썰렁했지만 영기는 비경에 자리한 그 어느 곳보다 짙었다.
멀리 하늘을 바라보니 검은 선 하나가 하늘과 땅을 이어놓고 있었다.
“공간 통로는 바로 앞에 있습니다.”
구원이 말했다.
석목은 공간의 힘이 불러일으킨 파동을 뚜렷이 느껴 고개를 끄덕였다.
비선은 빠른 속도로 검은 선을 향해 날아갔다.
검은 선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빛기둥이었는데 지름이 몇 리나 되어 하늘로 우뚝 솟은 기둥을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검은 빛기둥 때문인지 기류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광풍이 휘몰아치며 모래알이 흩날려 기이한 회오리바람을 이루는 것이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 직전인 것 같았다.
고만족들이 탄 비선이 빛기둥 근처에서 서서히 멈췄다.
회오리바람은 막강했지만 석목과 같은 신경 강자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석목은 검은 빛기둥을 바라보며 눈에 금빛을 번쩍이다가 다시 동공이 줄어들었다.
빛기둥 속에서 가볍게 반짝이는 검은 무늬는 마치 나무의 나이테와도 같았다.
빛기둥 꼭대기에서 커다란 소용돌이 하나가 천천히 돌아가면서 막강한 공간 파동을 풍겼다.
여긴 공간 통로였다.
석목은 곧장 검은 빛기둥으로 날아갔다.
공간 소용돌이로 다가가려면 우선 검은 빛기둥부터 뚫어야 했다.
석목은 한참 동안 빛기둥을 바라보다가 손을 빛기둥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노란빛이 퍼지더니 빛기둥 속으로 스며들었다.
“석목 도우님, 조심하세요!”
구원은 석목이 움직이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순간, 석목의 손이 닿은 구역에서 빛이 밝아지더니 이어서 굵은 번갯불이 빛기둥에서 뿜어져 나와 석목을 내리쳤다.
쾅!
번갯불이 폭발하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검은 번갯불이 터지면서 불빛이 수십 장까지 퍼져 허공에서 물결이 일렁이는 것이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비선 위에는 면사포를 쓴 여인만 서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비선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여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순간, 구원의 옆에서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석목이 나타났다.
“석 도우님, 이 공간 통로는 번개로 둘러싸여 있어 절대 쉽게 뚫리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번개 빛기둥은 비경의 밤과 낮이 바뀔 때, 매우 얇아집니다. 그때 들어가시면 됩니다.”
구원이 석목에게 말했다.
“아, 그렇군요.”
석목이 흠칫 놀랐다.
검은 번갯불은 위력이 막강해 한 갈래라면 해볼만 하겠지만 백 갈래가 넘는다면 많이 버거울 터였다.
“석 도우님, 급히 생각하지 마세요. 이제 몇 시진만 더 지나면 비경의 밤과 낮이 뒤바뀌니 그때 이 층으로 올라갑시다.”
구원이 말했다.
석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구수도철은 아직 비경 이 층에 있을 터라 다급하게 혼자 올라간다고 해도 좋을 건 없어 묘공과 함께 들어가는 편이 훨씬 좋을 터였다.
석목은 다시 푸른 비선으로 돌아와 팔각 원판 하나를 꺼내 법결을 줄줄이 날렸다.
팔각 원판에서 하얀빛이 번지며 수많은 부문들이 들끓더니 진법을 이루며 돌아갔다.
석목은 주문을 외우며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원판에서 하얀빛이 번쩍이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석목은 팔각 원판을 거두어들이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 원판은 석목이 묘공과 연락하는 법기라 석목이 원판을 통해 자신이 있는 위치를 묘공에게 알렸으니 묘공도 곧 이곳으로 올 터였다.
구원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는 공법을 시전했다.
이때, 검은 빛기둥과 수 백 리 떨어진 산 뒤에서 보일 듯 말 듯 검은 그림자가 잠복해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허공에 서 있는 비선을 바라보며 눈에 빛을 반짝였다.
그림자는 사람만 했고, 나방처럼 생겼는데 아무런 기운도 흘러나오지 않아 얼핏 보면 검은 돌과 같았다.
“그 그림자는 패안조(狴犴鳥)로 고만족을 해치우려고 했는데 저 인족 녀석이 내 계획을 망쳤군. 대체 뭐 하는 놈이야……”
검은 나방 그림자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방은 조금 더 지켜보다가 다시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이때, 나방의 뒤에서 노란 손이 갑자기 나타나 나방을 덥석 붙잡아버렸다.
“이렇게 숨어있는다고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노란 손에서 석목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니 큰 손은 나방을 잡은 채로 다시 석목에게 날아갔다.
검은 나방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몸에 빛을 번지면서 더욱 크게 부풀었다.
펑!
나방이 계속 부풀다가 터져버리자 굉음이 울리면서 검은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노란 손은 흔들리다가 의아한 듯이 “음?” 소리를 내고는 다시 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석 도우님, 무슨 일이십니까?”
구원은 석목의 기운이 달라지는 걸 바라보다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닙니다.”
석목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답을 하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구원은 몹시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