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903화 (903/916)

외전 25화. 공간 통로 (2)

시간이 조금씩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시진이나 지났다.

석목이 눈을 번쩍 뜨고는 일어서서 먼 곳을 내다보았다.

구원도 일어서서는 석목이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신식을 펼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 후에도 구원이 드리운 신식 안쪽에 아무런 변화도 없자 구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석목은 신식을 대체 어디까지 펼칠 수 있을까?

이때, 구원은 눈빛을 반짝였다.

금색 연꽃 모양 빛이 구원이 드리운 신식 안으로 들어와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까이 다가왔다.

금색 연꽃이 사라지면서 묘공 스님이 나타났다.

“석목 도우님, 저보다 먼저 공간 통로를 찾으셨군요.”

묘공은 눈앞에 솟은 검은 빛기둥을 한번 쳐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구원 족장님 덕분이예요. 혼자서 찾았더라면 한참을 헤맸을 겁니다.”

석목이 말했다.

“통로를 찾았으니 들어가죠.”

묘공 스님은 구원을 한 번 쳐다보고는 싸늘한 얼굴로 빛기둥에서 이는 소용돌이를 올려다보았다.

“지금은 안 됩니다. 빛기둥은……”

석목은 구원이 말해준 내용을 묘공에게 전달했다.

“묘공 도우님, 이제 한 시진만 지나면 비경의 밤과 낮이 바뀝니다. 그리고 이미 명룡 일족과 수라주 일족에게도 알렸으니 아마 곧 도착하겠죠. 그때 함께 들어갑시다. 두 분께 반드시 도움이 될 테니.”

구원이 말했다.

“네. 세 종족이 도움을 준다면 더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석목이 대답했다.

“한 시진 정도니 그럼 기다립시다.”

묘공은 잠깐 망설이다가 석목도 같은 생각을 한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대화를 몇 마디 더 주고받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석목과 구원이 대화를 나누었고, 묘공은 한쪽에서 냉랭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한참 후에 셋은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석목은 전음을 보내 도철 진령을 만난 사실과 검은 나방 그림자와 관련된 일들을 묘공에게 말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요! 그 도철은 아마 구수도철의 자수(子獸)겠군요. 도철 진령은 경지가 칠수에 이른다면 스스로 분열하는 능력이 생기죠. 자기 혈맥을 일부 나눠서 다른 생령의 몸속에 녹인 후에 자수로 만듭니다.”

묘공은 석목이 한 말을 듣자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석목도 안색이 살짝 변하였다.

구수도철이 이런 신기한 능력도 갖췄었다니.

“석 도우, 걱정하지 마시죠. 구수도철은 많은 자수를 만들 수 없으니 기껏해야 몇 마리만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지난번에 구수도철을 만났을 때는 자수가 없었죠.”

묘공 스님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듯이 말했다.

“아마 묘공 도우님이 갖춘 실력이 막강하여 구수도철은 신경 후기인 자수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소환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요.”

석목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적어도 자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다면 우리가 유리하겠네요. 석 도우님, 고만족과 함께 가기로 한 건 자수를 상대하기 위해선가요?”

묘공 스님이 눈을 껌뻑이며 전음을 보내 물었다.

“네, 그럴 계획입니다. 도움이 되면 좋고, 아니더라도 상관없으니까요.”

석목이 말했다.

“도우님의 말대로 합시다. 저 자들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러나 사전에 잘 논의해야 할 것 같아요. 잠시 후에 세 종족이 다 모이게 되면 번거롭겠지만 석 도우님이 전달해주시죠.”

묘공이 말했다.

“네. 그런데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묘공 도우님은 일부러 수라 성역의 종족들을 피하는 것 같군요. 수라성에 온 뒤로 단 한 번도 먼저 저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더군요. 그럴만한 사정이 있습니까?”

석목이 궁금한 듯이 물었다.

“선계의 규칙입니다. 하계로 내려온 사자들은 하계 사람들과 많은 교류를 하면 안됩니다. 그러니 도우님이 좀 도와주시죠.”

묘공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석목이 대답했다.

“그리고 검은 나방은 분신인 것 같군요. 제 추측이 맞다면 아마 환천아일 겁니다. 자수들이 한 짓이겠죠.”

묘공이 계속해서 말했다.

“환천아……”

석목이 멈칫했다.

“상고 시대의 기괴한 짐승이야. 지금은 이미 멸종되었지. 그 짐승은 환영을 쓸 수 있는데 환영이 수천, 수만 개로 분리될 수도 있어. 게다가 탐측을 하는 요수라면 아마 환천아를 따라갈 수 있는 요수는 거의 없을 거야. 그러니 너희가 움직이는 일거수일투족은 환천아의 눈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석목의 머릿속에서 수령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안색이 살짝 바뀌었다.

“그렇다면 구수도철이 자수를 보내 우리를 감시한다는 건데 혹시 위층에서 무슨 꿍꿍이라도 꾸미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도철이 세운 계획을 방해한 것 같군요.”

석목이 전음을 보내서 물었다.

묘공은 그 말을 듣자 눈을 번쩍 떴다.

“그럴 가능성도 있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이렇게 기다리면 안 됩니다. 바로 올라가야 해요.”

묘공 스님은 표정이 굳은 채 일어서며 전음을 보내지 않고선 입으로 말을 내뱉었다.

석목도 일어서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원은 묘공이 하는 말을 들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도 그럴 게 조금 전까지 석목과 묘공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에 구원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 족장님. 계획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릴 수 없어요. 우리는 지금 위로 올라갈 겁니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 구원에게 말했다.

“그런데 명룡 일족과 수라주 일족이 아직 오지 않았어요. 게다가 밤낮이 바뀌는 시간도 다가오지 않아서 빛기둥이 전혀 약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공간 통로로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구원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족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방법이 있으니, 지금은 오히려 고만족이 결정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우리와 함께 갈 건지 빛기둥이 약해졌을 때, 두 종족과 함께 이 층으로 올라갈 건지 결정하세요.”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구원은 그 말을 듣고는 망설이는 기색을 드러내며 좀처럼 결정을 내지리 못했다.

“석 도우,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어서 갑시다.”

묘공이 말을 하고는 검은 빛기둥으로 날아갔다.

“구 족장님, 빨리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석목은 구원에게 말을 하고는 묘공을 따라갔다.

구원은 두 사람이 날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침묵만 지켰다.

“족장님.”

면사포를 쓴 여인이 다가와서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두 종족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나? 일전에 이미 함께 혈원경으로 들어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구원은 여인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의견을 구했다.

“족장님, 혈원경은 만령경보다 훨씬 위험한 곳입니다. 지난번 세 종족이 함께 들어갔지만 크게 다쳐서 돌아왔지요. 그러니 두 종족을 기다린다고 해도 예전과 똑같은 결과일 거예요. 게다가 이번에 수라의 심장으로 들어온 이유도 석목 도우와 묘공 도우가 계시기 때문에 결정을 내린 게 아닙니까.”

여인은 석목과 묘공을 한 번 쳐다보고는 전음을 보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구원은 결심을 내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구나.”

구원이 대답했다.

석목과 묘공은 이미 검은 빛기둥 근처로 다가갔다.

묘공은 빛기둥을 자세히 훑어보고는 영목신통을 시전해 금빛을 번쩍였다.

“묘공 도우님, 이 번개 빛기둥을 뚫을 방법이 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석목도 빛기둥을 뚫을 방법이 있었지만 그 방법은 매우 번거로워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그리 좋은 방법도 아니었다.

“번개 빛기둥은 비경에 흐르는 천지의 영력과 번개의 힘이 모여 이뤄진 것이죠. 그러니 기둥을 뚫으려면 이 두 가지 힘을 동시에 공격해야만 합니다. 제게 방법이 있는데 음양어뢰환이 필요해요.”

묘공이 멈칫하다가 말했다.

“네. 좋습니다. 그럼 번개의 힘은 제게 맡기시죠.”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둥그런 보라색과 푸른색 고리가 날아 나왔는데 고리에 번개가 흐르는 게 이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음양어뢰환에서는 투명한 광택이 흘러 언제든지 번개를 녹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묘공은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석 도우님,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음양어뢰환을 이 정도까지 제련하셨다니 놀랍네요!”

묘공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도우님, 과찬입니다.”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석 도우님, 음양어뢰환이 갖춘 위력이 이 정도라면 통로가 훨씬 수월하게 뚫릴 거예요.”

묘공은 큰소리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찬란한 금빛이 묘공의 소매에서 날아 나와 빛기둥 근처에서 번쩍이며 금색 문 모양 법보로 변하였다.

문에는 부처 그림이 가득 새겨져있었는데 숫자가 족히 백팔 개나 되었고, 각각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문에서 화려한 빛이 흘러다니는 것이 얼핏 봐도 엄청난 법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석목은 금색 문을 바라보며 눈에 빛을 반짝였다.

이때, 묘공이 주문을 외우면서 법결을 짚었다.

쾅!

금색 문 법보에서 빛이 번지면서 수십 배나 커져서는 커다란 금색 문으로 변하였다.

커다란 문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와 빛고리로 변하여 기둥 꼭대기로 날아갔다.

그곳은 공간 소용돌이의 입구였다.

번개 빛기둥에서 검은빛이 들끓기 시작하더니 흩어지려는 기미가 보였다.

쾅!

번개 빛기둥이 흔들리면서 번개가 터져 나왔는데 번개는 족히 수십 갈래는 되었고, 전부 물통만 한 굵기였다.

굉음과 함께 수십 갈래 번개 기둥이 투명한 금색 고리를 내리쳤다.

석목은 눈빛을 반짝이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다.

푸른 번개 고리가 날아가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거대한 고리로 변하였다.

푸른 고리는 빠르게 돌아갔고, 찬란한 부문들을 뿜어냈다.

쾅!

검은 번개 기둥 수십 갈래가 커다란 고리를 내리쳐 부문에 닿는 순간, 터져버리더니 마치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푸른 고리를 전부 흡수했다.

푸른 고리에서 나는 빛이 더욱 짙어지자 석목의 눈에서 화색이 돌았다.

석목은 처음으로 음양어뢰환을 시전했는데 법보가 지닌 위력이 역시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법보가 모든 번개의 힘을 빨아들였다.

이제 석목은 음양어뢰환이 번개의 힘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검은 번개를 막을 때, 푸른 음뢰환 하나만 있어도 충분해서 보랏빛 양뢰환은 아직 필요조차 없었다.

번개 빛기둥에는 수많은 번개의 힘이 깃들어있어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쾅!

번개 빛기둥이 번쩍이며 촘촘한 번개가 다시 나타나더니 이어서 굵은 번개뱀 수백 갈래로 변하여 투명한 고리를 내리쳤다.

석목이 주문을 외우자 푸른 고리에서 나는 빛이 더 짙어지면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휩쓸어가듯이 날아가 검은 번개를 전부 흡수해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묘공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법결을 바꿨다.

문 법보에서 범음이 울려 퍼지며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번개 빛기둥에서 이는 파동이 점점 강렬해졌고, 드디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투명한 빛이 쏟아지는 곳에서 문틀 모양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투명한 빛이 끊임없이 날아 나와 희미하던 문이 점점 짙어지더니 문 뒤로 점차 통로가 하나 생겨났다.

묘공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법결을 바꾸었다.

금색 문에서 파동이 일면서 막강한 힘이 솟아났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며 빛나는 금색 구체가 문 속에서 날아 나와 커다란 만(卍)자 모양 부문을 이루며 통로 앞을 내리쳤다.

금색 만자 부문이 통로 앞 빛기둥에 붙자 찬란한 금빛이 폭발했다.

금빛이 사라지자 빛기둥의 일부가 날아가 버렸고, 커다란 구멍이 하나 뚫렸다.

석목은 여유롭게 검은 번개의 힘을 날려버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금색 만자 부문은 영력을 녹이는 힘도 있는 것 같아 역시 이 빛기둥을 녹이기에 알맞았다.

굉음과 함께 또 금빛 두 덩이가 문 법보에서 날아 나와 만자 부문 두 개로 변하여 통로 앞을 내리쳤다.

쾅, 쾅!

금빛 부문이 폭발하며 빛기둥에 또 다른 구멍 두 개가 뚫렸다.

묘공은 법결을 계속 바꾸면서 수많은 만자 부문을 날렸다.

처음에는 단 몇 개였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개가 한 번에 날아왔고, 마지막에는 비처럼 쏟아져 촘촘하게 통로를 향해 내리쳤다.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부문들이 통로를 뚫는 속도가 훨씬 빨라져 눈 깜짝할 사이에 기둥이 절반이나 날아가 버려 곧 소용돌이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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