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8화. 잡다
영독갈이 사방팔방에서 덮쳐오며 공격을 날렸다.
세 종족은 다급하게 공격을 막았다.
구원은 등 뒤로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푸른 두꺼비 허상을 떠올렸다.
두꺼비 허상은 입을 크게 벌리고는 푸른빛 덩이를 수도 없이 뿜어냈다. 그리고 다시 빛을 맷돌만 한 얼음 방패로 뭉쳐 고만족을 지켜냈다.
명룡 일족의 곤상도 소리를 지르며 구슬 네 개를 꺼내 명룡 일족 사람들이 모인 네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법결을 짚으며 검은빛을 뿜어내 구슬 속으로 날렸다.
퍽!
네 구슬에서 번개가 뿜어져 나와 들끓다가 커다란 번개 구체로 변하였다.
이어서 번개가 전부 흩어지면서 다시 네모난 번개 보호막으로 펼쳐져 종족 사람들을 보호했다.
나소도 마찬가지로 노란 조롱박 법보를 꺼내자 금색 비단이 조롱박에서 뿜어져 나와 찬란하게 반짝였다.
비단이 펼쳐지면서 앞을 가로막았다.
세 족장이 모든 준비를 마치는 순간, 영독갈이 날아와 꼬리를 흔들었다.
윙!
수많은 보랏빛이 우르르 쏟아졌다.
구원이 펼친 얼음 방패에서 한참 동안 소나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음 방패에 수많은 구멍이 뚫렸다.
방패에 보랏빛이 한 층 나타나면서 점점 넓게 뻗어갔다.
곤상이 펼친 검은 번개 보호막과 나소가 두른 비단도 격하게 흔들리자 둘 역시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전갈 수십만 마리가 집중 공격을 펼치자 신경 후기 강자인 세 족장이라도 버거웠다.
족장들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영독갈들은 두 번째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석목과 묘공에게도 수많은 독침이 날아왔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당황하지 않고는 보호막을 펼쳐 독침들을 막았다.
석목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영목을 반짝이며 앞을 바라보다가 안색이 다시 굳어버렸다.
석목은 눈앞에서 날아오는 전갈들을 보는 게 아니었다.
영독갈이 나타난 순간, 앞쪽에서 미약한 기운이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 묘공을 바라보았고, 묘공도 때마침 석목을 쳐다보았다.
둘이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석목이 법결을 날려 노란 화염을 펼쳤다.
그리고 허공을 짚자 화염이 한곳으로 모여 불타는 커다란 구체로 변하였다.
이 노란 화염은 바로 호천성염이었다.
번쩍이는 화염구엔 붉은 부문들이 가득 어렸지만 조금도 뜨겁지 않았다.
석목은 이제 호천성염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었다.
석목은 왼쪽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으면서 연이어 법결을 날렸다.
호천성염으로 이뤄진 화염구는 점점 불어났다.
석목이 소매에서 손을 뻗어 가볍게 흔들자 막강한 위압감이 폭발했다.
쾅!
백 리 안쪽 천지의 영기가 미친 듯이 흔들리면서 격렬한 파동을 일으켜 밀물처럼 석목에게로 몰려들었다.
오색찬란한 빛이 가득 나타나 석목에게로 향하니 백 리 안쪽에 흐르던 기류가 맹렬하게 들끓으면서 수많은 소용돌이로 변해 마찬가지로 석목에게로 모였다.
석목의 주변은 마치 들끓는 바다와도 같았다.
영독갈들은 석목이 내뿜는 기운에 휘말려 아무런 공격도 날리지 못한 채 전부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구원을 비롯한 족장들은 그 광경을 보자 어안에 벙벙했다.
백 리 안쪽에 모인 영독갈 수십만 마리가 낙엽처럼 거센 광풍에 휩쓸려 전부 날아가 버렸다.
석목의 오른손에 흐르던 기류가 산만 한 바람 구체로 변해 영독갈들은 전부 그 바람 구체 속에 갇혀 기류를 따라 들끓었다.
석목이 다시 두 손을 합치자 호천성염이 변한 화염구가 바람 구체와 같은 크기로 부풀었다가 이윽고 바람 구체와 합쳐졌다.
바람 구체 속에 갇힌 영독갈들은 화염에 타버려 푸른 연기가 되어 피어올랐다.
칙, 칙, 칙!
눈 깜짝할 사이에 영독갈 수십만 마리가 전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석목이 다시 손을 흔들자 호천성염이 석목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들끓던 기류는 점차 차분해지며 철저히 사라져버렸고,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고요해졌다.
구원을 비롯한 일행들은 멍하니 석목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가죠. 시간이 없으니.”
석목이 말했다.
“아! 네네!”
구원을 비롯한 동료들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이 얼버무리며 대답을 하고는 다급하게 각자 법보를 챙겼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노란 구름이 다시 모든 사람을 감싸더니 빠르게 먼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석목 일행이 떠난 지 한참 후에 숲속의 나뭇가지가 희미하게 흔들리며 회색 옷을 입은 여인이 다시 나타났다.
여인은 멀어져가는 석목을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 기색을 드러냈다.
“이렇게 예민한 탐색 수단을 지녔다니. 묘공보다 더 빨리 내 존재를 알아차렸군. 게다가 저 신통은 뭐야? 대체 뭐 하는 놈이지? 다행히 내 은닉 신통이 이미 막강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들킬 뻔했잖아?”
여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계속 쫓아가야 할지 말지 망설였다.
석목이 갖춘 실력은 자수들이 예상했던 수준보다 훨씬 막강했다. 그리고 묘공까지 있으니 구수도철이 상대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회색 옷을 입은 여인은 이대로 시간을 끄는 전략을 버리고 다시 구수도철에게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이 되었다.
석목이 갖춘 실력이라면 여인이 아무리 많은 영수를 끌어와도 소용이 없을 터라 차라리 구수도철에게로 돌아가는 편이 나았다.
자수들은 힘을 합치는 비술이 하나 있었는데 서로가 갖춘 수련 경지를 연결해서 잠시나마 진선지체의 절반 정도 되는 위력을 펼칠 수 있었다.
회색 옷을 입은 여인이 한참 동안 고민을 하다가 다시 검은빛이 되어 날아가려고 할 때였다.
이때, 여인의 머리 위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하늘을 뒤덮으며 노란 주먹이 나타나 아래쪽을 내리쳤다.
막강한 힘이 하늘에서 밀려오며 주변의 공기에서 ‘윙윙’ 소리가 났다. 그리고 수십 리 안쪽 하늘이 곧장 일그러졌으며 수많은 검은 선들이 나타나 미친 듯이 꿈틀거리는 것이 마치 하늘을 뒤집으려는 것만 같았다.
커다란 주먹은 매우 빠른 속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여인의 머리를 내리쳤다.
여인은 막대한 압력에 밀려 순식간에 몸이 움츠러들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빠르게 법결을 짚어 검은빛을 더 크게 부풀려 타오르는 태양 허상을 떠올렸다.
그러나 태양 허상이 완벽하게 모양을 갖추기도 전에 노란 주먹이 우르르 쏟아졌다.
태양은 종잇장처럼 부서져 버렸고, 검은빛이 되어 흩어졌다.
여인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는 게 철저히 부서진 것 같았다.
허공에서 빛을 반짝이며 석목이 나타났다. 그러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석목은 콧방귀를 뀌면서 붉은 법칙 부문들을 번쩍였다. 이어서 붉은빛이 반짝이더니 파란빛이 나타났는데 파란빛에선 부문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어서 파란빛 속에서 노란빛이 나타났다.
이렇게 빛줄기가 연이어 나타났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적, 황, 녹, 홍, 남, 흑, 백색 빛이 층층이 겹쳐지면서 빛을 번쩍였다.
각자 다른 법칙의 힘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고, 사이사이에는 조그마한 틈도 벌어지지 않았다.
퍽!
일곱 가지 빛이 맹렬하게 펼쳐지면서 크기가 수백 장에 이르는 칠색 영역으로 변하였다.
검은 태양 허상이 폭발하며 흩날리던 검은빛들도 전부 칠색 영역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은빛이 칠색 영역에 갇히자 마치 호박에 박힌 파리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려 움직이지 못했다.
그제야 석목은 가볍게 웃으며 법결을 날렸다.
칠색 영역은 점점 줄어들었고, 사방으로 튀던 검은빛도 더욱 짙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칠색 영역은 한 장 크기로 변했고, 그 속에 있던 검은빛도 불나방 한 마리가 되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불나방은 유리 모양이었고, 얇은 빛을 수도 없이 뿜어내는 것이 마치 수많은 거울로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나방이 뿜어내는 빛은 물결 모양이었는데 물결이 층층이 겹쳐 있어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눈앞이 현란했다.
“이게 환천아라니. 신기하군.”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나방은 몸을 파르르 떨면서 사지에 힘을 모으느라 검은빛을 번쩍였다. 이어서 나방은 환영처럼 다양한 색깔과 모양으로 변하면서 칠색 영역을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칠색 영역은 태산처럼 묵직해 미동조차 없었다.
나방의 눈에 드디어 절망스런 기색이 드러났다.
석목은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으로 나방을 짚었다.
영역 속에서 수많은 칠색 부문들이 나타나 전부 나방의 몸속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영역이 흩어져버렸다.
영역을 거두어들였지만 나방은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환천아도 수련 경지가 신경 후기였지만 탐색 신통에만 능했기에 실력이 강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이렇게 가볍게 석목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석목은 손가락으로 환천아의 미간을 짚으며 투명한 빛을 머릿속으로 날려 보냈다.
수혼!
환천아는 몸통을 파르르 떨면서 눈에 미친 기색을 드러내더니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이어서 환천아의 몸에 수많은 균열이 그어졌으나 쏟아져 나온 건 붉은 피가 아니라 검은 액체 같은 빛이었다.
이때, 환천아의 몸에서 다시 칠색 빛이 나타나 검은빛을 전부 빨아들였다.
“자폭도 아무나 하는 게 아냐.”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차갑게 웃었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손바닥에서 더욱 밝은 빛이 날아갔다.
그런데 이때, 환천아의 미간에서 핏빛이 나타나 일렁이더니 희미한 짐승 모양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아홉 머리가 어렴풋이 드러나면서 석목이 밝히던 빛을 전부 막아버렸다.
“뭐!”
석목은 깜짝 놀랐다.
핏빛 짐승 그림자가 포효하면서 몸집을 크게 부풀리더니 이내 터져버렸다.
환천아의 머릿속에서도 부서지는 소리가 흘러나와 유리알 같은 눈알에 균열이 그어졌다. 이윽고 검은 피가 눈에서 흘러나오며 환천아는 철저히 숨통이 끊어졌다.
석목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천천히 손을 내려 눈에 빛을 번쩍였다.
그리고 환천아의 시체에 화염을 한 덩어리 날려서 태워버렸다.
석목은 다시 노란빛으로 변하여 그 자리를 떠났다.
* * *
석목이 곧바로 만 리를 날아가자 눈앞에 노란 구름 한 덩이와 묘공이 서 있었다.
석목이 날아오자 구원을 비롯한 일행들은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묘공은 이미 일행들에게 석목이 무엇을 하러 갔는지 말해주었다.
“해결했습니까?”
석목이 내려오자 묘공이 물었다.
“네, 은신은 잘 하지만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수혼 비술을 통해 도철 진령을 찾아보려 했는데 도철이 환천아의 몸에 금제를 드리워서 결국은 실패했군요.”
석목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아쉬운 표정을 드러냈다.
“어쩔 수 없지요. 갑시다.”
묘공이 담담하게 말했다.
환천아는 앞길을 막는 거추장스러운 녀석이긴 했으나 노리던 목표가 아니었기에 석목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노란 구름이 다시 두 배 정도 커져서는 모든 사람을 감싸고 앞으로 날아갔다.
* * *
혈원경의 깊은 곳에는 하얀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 두 그림자가 서 있었다.
왼쪽은 키가 훤칠한 남자였는데 그는 금빛 머리에 볼 살이 하나도 없었고, 매부리코 위에 얇은 독수리눈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독수리눈에서 싸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다른 한쪽은 체구가 우람한 사내였는데 그는 키가 족히 석 장이나 되었고, 드러난 가슴에는 근육이 울퉁불퉁 붙어 있었다. 또한 수염은 철침 같았고, 커다란 두 눈은 방울 같아 사나워 보이는 외모에 너무 긴 코와 입술까지 뻗어있었다.
“뭐! 셋째의 본명패도 부서졌다고!”
코가 긴 사내가 깜짝 놀라며 소리 질렀다.
독수리눈 남자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조각이 나서 부서진 검은 옥패를 꺼냈다.
코가 긴 사내는 얼굴이 굳더니 이내 입을 꾹 다물었지만 짓는 표정은 매우 사나워졌다.
“보아하니 셋째는 막강한 적을 만난 것 같아. 셋째는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도망가는 건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지. 그런데 소식을 보낼 시간도 없이 죽어버렸다니.”
독수리눈 남자가 천천히 말했다.
“이렇게 막강한 실력을 갖춘 놈이라니. 묘공인가?”
코가 긴 사내가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 둘째도 같은 놈의 손에 죽었을 거야.”
독수리눈 남자가 두려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마 그놈들은 빠르게 여기로 오고 있을 거야. 둘째와 셋째를 죽인 걸 보니 우리가 힘을 합쳐도 절대 상대할 수 없겠어. 어떻게 막아야 아버지에게 시간을 벌어다 드릴 수 있을까?”
코가 긴 사내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자 독수리눈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독수리눈 남자도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남자는 비록 교활하고 간사한 꾀가 많았지만 이렇게 막강한 적을 상대할 방법까진 없었다.
이때, 그림자 두 갈래가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났는데 그것들은 검은색과 하얀색 깃발이었다. 그리고 깃발에서 눈부신 빛이 번쩍였고, 놀라운 영력 파동이 흘러나왔다.
깃발을 본 두 사람이 기쁜 기색을 드러내던 때, 그들의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두 사람은 안색이 다시 바뀌었다.
“아버지는 역시 빈틈이 없으시군요. 보물을 하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죽을힘을 다해서 임무를 성공시키겠습니다.”
독수리눈 남자는 앞쪽을 바라보며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코가 긴 사내도 인사를 하고는 하얀 깃발을 손에 들고는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