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907화 (907/916)

외전 29화. 세월의 강

석목 일행은 앞으로 날아가는 동안 요수들에게 기습을 몇 번이나 당했지만 요수들이 갖춘 실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서 가볍게 해치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 일행은 이 층의 끝에 도착했고, 곧이어 깊고 어두운 심연이 다시 나타났다.

석목은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어 망설이지 않고는 노란 구름을 끌고서 아래로 날아갔다.

석목은 조금도 힘을 남기지 않고는 속도를 끝까지 끌어올려 곧바로 혈원경의 삼 층에 도착했다.

혈원경의 삼 층은 한없이 펼쳐진 바다라 석목이 눈빛을 반짝였다.

해수면은 붉은색이었고, 파도가 무섭게 밀려와 백 장 높이까지 솟아올랐다.

방대한 기운이 하늘을 뒤덮으며 밀려오자 파도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삼 층에 흐르는 천지의 영기는 일 층이나 이 층보다 훨씬 짙은데다가 날뛰기까지 하여 파도가 높게 솟아올랐다.

“석목 도우, 묘공 도우, 여긴 혈원경의 가장 깊은 곳인 혈원성해(血源星海)입니다.”

구원이 다가오며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노란 구름이 더 커지면서 들끓는 소리와 함께 묘공의 원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날아갔다.

“석목 도우님, 여긴 앞선 두 층과 달라요. 혈원성해에는 수많은 흉수들이 살고 있어 가장 실력이 약한 흉수라도 실력이 신경에 올랐습니다. 게다가 깊이 들어갈수록 흉수들이 갖춘 실력이 더욱 막강하고요. 가장 깊은 곳에는 신경 중기나 후기에 오른 흉수들도 많죠. 게다가 혈아정이 거기에 있어서 수라 성역에 사는 막강한 요수들이나 심지어 진령까지 혈아정을 노리고 있을 겁니다. 매우 위험한 곳이니 숨어서 다니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구원은 석목이 막무가내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자 안색이 굳어선 다급하게 말했다.

“혈아정이 여기 있다고요? 흉수는 죽이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도철 진령을 찾는 일이죠.”

석목은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구원과 나소, 곤상 족장은 석목이 하는 말을 듣자 얼굴이 어두워졌다.

세 족장은 이미 혈원성해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겪어봤다.

예전에 수라의 심장에 들어왔을 때도 일 층과 이 층은 뚫고 들어올 수 있었지만 삼 층은 결국 뚫지 못했다.

삼 층에 사는 흉수는 이성이라고는 없었고, 살육을 저지르고픈 본능만이 강하게 남아 직접 겪어보진 않은 사람들이라면 잘 이해하기 어려울 터였다.

석목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고생할 게 뻔했다.

그러나 세 족장은 석목을 설득하기 힘들었으니 이제 직접 흉수를 맞닥뜨리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터였다.

석목이 말을 마치고는 다시 묘공을 바라보았다.

묘공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원판으로 법결을 줄줄이 날렸다.

원판은 삼 층에 도착한 후로 시침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석목은 긴장한 얼굴로 전음을 보내선 물었다.

이 공간은 신식이 워낙 강하게 짓눌려 석목은 신식을 오 백 리 정도밖에 내보내지 못했다. 또한 영목신통도 천 리까지밖에 펼치지 못했다.

구수도철을 찾으려면 이제 묘공이 지닌 원판 법보에만 의지해야 했다.

만약 법보가 고장 난다면 이 망망대해에서 헤맬 게 뻔했다.

“어떤 힘이 원판을 방해하고 있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상계 비술을 시전하면 구수도철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으니.”

묘공이 심각한 얼굴로 손가락을 움직이자 손가락 끝에서 수많은 금빛이 뿜어져 나와 크고 작은 법결 부문으로 뭉쳤다. 그리고 법결 부문들은 전부 원판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원판은 시침이 여전히 미세하게 흔들리긴 했지만 순식간에 안정을 찾아 정확하게 한 방향을 가리켰다.

석목은 그제야 긴장을 풀면서 발밑에 뜬 노란 구름으로 빛을 날렸다.

그러자 노란 구름이 찬란한 빛을 뿜어내면서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노란 구름에서 막강한 여파가 흘러나왔다.

앞으로 들어갈수록 구원을 비롯한 족장들은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이미 수 만 리나 날아갔는데 흉수가 단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예전에는 혈원성해로 들어가는 순간, 흉수들이 기습해왔는데 오늘은 조금 이상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구원과 다른 두 족장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은 천천히 공법을 시전하며 가장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면서 격전을 치를 준비를 했다.

“음, 어떻게 된 거죠? 여기에 흉수가 많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한참 동안 날아가던 석목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구원과 다른 족장들을 바라보았다.

석목 일행은 이미 수십만 리나 날았는데 흉수는 물론 흉수의 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한없이 고요했고, 휘몰아치는 파도 소리 말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구원과 두 족장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바다 속 흉수들이 마치 단체로 사라진 것만 같았다.

‘혹시, 구수도철이…… 모든 흉수를 삼켜버린 걸까!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냐!’

석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맞는 것 같아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영력이 매우 풍성하여 바다에서 서식하던 흉수들의 기혈이 엄청나게 짙어 구수도철에게는 가장 좋은 음식이었을 터였다.

구원은 이곳에 수많은 흉수가 있었다고 말했으니 만약 구수도철이 그 많은 흉수들을 전부 삼켰다면 아마 실력이 무시무시하게 늘었을 터였다.

석목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묘공의 앞에 놓인 원판이 찬란한 빛을 뿜으며 하늘로 치솟아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어서 하얀빛이 ‘퍽!’ 소리를 내며 부서져버렸다.

원판에 달린 시침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자 묘공이 마무리 법결을 날려도 안정시킬 수 없었다.

묘공이 굳은 얼굴로 천천히 일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석목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었다.

“구수도철의 기운이 완전히 막혔어요. 이제 옥황라판으로 도철의 기운을 찾을 수 없겠군요.”

묘공이 말했다.

석목은 안색이 굳어버렸다.

원판이 고장이 나 버렸으니 이제 어떻게 구수도철을 찾겠나.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위치를 대충은 파악해뒀습니다. 도철은 계속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 같으니 그곳으로 가면 될 것 같군요.”

묘공이 말했다.

석목은 다시 일그러진 얼굴을 풀었다.

* * *

노란 구름은 계속해서 파도를 뚫으며 앞으로 반시진 정도 날아갔다.

날아가는 동안 여전히 흉수는 단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석목은 자신이 한 추측에 더 확신이 들어 걱정이 되었다.

구원과 같은 족장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족장들은 이미 그들이 탐색했던 범위를 벗어나 혈원성해의 가장 깊은 곳에 이르렀다.

그러나 흉수는 물론 혈원성해의 깊은 곳에 있던 천재지보들도 사라졌다. 그러니 혈아정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음……”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신식을 펼칠 수 있는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지만 앞쪽에서 이상한 기운 파동이 전해졌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파동이었다.

“구수도철이 있는 곳에 도착한 건가……”

석목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묘공도 그 기운을 느낀 것 같았다. 그러나 묘공은 아주 크게 반응 하며 구름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석목이 구원과 다른 족장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러자 세 종족은 곧장 경계 태세를 취했다.

노란 구름이 들끓으면서 앞으로 날아가던 때, 미미한 빛이 마치 떠오르는 태양처럼 나타났다.

기이한 기운은 바로 하얀빛 속에서 흘러나왔다.

“이건……”

묘공은 뚫어져라 하얀빛을 바라보며 흥분한 기색을 드러냈다.

수라주 일족의 나소 족장은 몸을 파르르 떨면서 눈에서 빛을 뿜었다.

노란 구름은 전속력으로 하얀빛을 향해 날아갔다.

하얀빛을 매우 넓게 펼쳐져 족히 수만 리나 되는 것 같았다.

특별한 힘이 하얀빛에서 들끓었다. 비록 하얀빛은 가까이에 있었지만 여전히 희미했는데 곳곳에서 파동이 일어서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안색이 굳어버렸다.

이 정도로 막강한 힘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힘이었다. 또한 이 힘은 공간의 힘과 매우 흡사하면서도 또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구원과 다른 족장들은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까지 세 종족은 이곳에 단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혈원성해의 깊은 곳이 이런 모습이었다니.

그러나 수라주족들이 짓는 표정은 조금 달랐는데 놀란 표정 속에 환희도 섞여있는 것 같았다.

“이건 세월의 강! 하하! 하계에서 세월의 강을 만나다니!”

묘공은 기뻐하며 말했다.

“세월의 강이요? 그게 뭡니까?”

석목은 그런 이름을 처음 들어보아 놀라며 물었다.

“세월의 강은 상계에서도 아주 보기 드문 최고의 법칙을 머금고 있는 보물이죠. 상계에도 단 몇 갈래뿐입니다. 세월의 강에는 시간 법칙의 힘이 들어있어 아주 귀한데 이런 곳에 나타났다니.”

묘공은 흥분한 목소리로 빠르게 설명해주었다.

“상계의 보물이라니!”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이 세월의 강은 아주 작은 편입니다. 상계에 흐르는 세월의 강 가운데 일부가 여기로 떨어진 것 같군요. 시간의 법칙이 그리 많이 들어있지 않을 겁니다. 허나 광음지사(光陰之絲)나 광음지정(光陰之晶)과 같은 신물이 있을 수 있지요.”

묘공이 계속해서 말했다.

비록 광음지사와 광음지정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묘공이 이렇게 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걸 보니 둘 다 아마 매우 귀한 물건일 터였다.

석목은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구원은 막연한 표정을 짓는 게 묘공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곤상도 묵묵히 옆에 서 있기만 했다.

그러나 나소는 둘과 달리 하얀빛의 세계를 바라보며 눈에 빛을 반짝였다.

수라주 일족은 시공간의 힘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 만약 세월의 강을 조금이라도 흡수할 수 있다면 일족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을 터였다.

나소는 눈알을 굴리다가 석목과 묘공을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수도철이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세월의 강 때문인 것 같군요. 시간 법칙의 조각을 삼켜서 철저히 신선의 육신으로 탈태하려는 것이겠죠.”

묘공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 법칙의 힘이 구수도철에게도 쓸모가 있습니까?”

석목이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물론이죠. 이 짐승은 이미 탈태하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아직은 상급 진령이기에 철저히 탈태하여 신선의 육체를 이루려면 많은 시간과 원기가 필요하겠지요. 이때, 시간의 법칙을 삼키면 그 시간을 크게 줄여줄 수 있습니다. 적어도 신통은 엄청나게 막강해지겠지요.”

묘공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묘공이 말을 하면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마치 어떤 비술을 시전하는 것만 같았다.

“구수도철은 바로 저 안에 있습니다. 세월의 강을 삼키고 있으니 빨리 막아야 해요. 시간의 힘을 삼켜 그 법칙을 연화하면 우리가 아무리 힘이 뛰어나다고 해도 제압할 수 없을 겁니다.”

묘공은 금빛을 드리우며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갔다.

“우리도 가죠. 그러나 절대 흩어져서는 아니 됩니다.”

석목은 세 족장에게 말을 하고는 앞으로 날아갔다.

구원과 다른 이들은 묘공이 하는 말을 듣는 순간, 곧장 석목을 뒤따라갔다.

일행들은 전부 하얀빛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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