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908화 (908/916)

외전 30화. 급변

하얀빛에 들어가는 순간, 석목은 곧장 형태가 없는 법칙 파동에 드리워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자 주변을 비추던 빛들이 끊임없이 달라졌고, 법칙 파동이 석목의 오감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게 바로 시간의 법칙인가……”

석목은 오히려 좋아했다.

시간의 법칙을 직접 겪어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석목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시간의 법칙에 담긴 오묘한 진리를 깨우칠 수 있다면 상계로 비승할 때에 유리한 점이 많을 터였다.

그러나 석목은 속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수련할 때가 아니었다.

석목이 진기를 돌리자 이곳에 흐르는 법칙 파동이 매우 미약해 곧바로 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

세 종족은 처음에는 조금 막연해했지만 곧장 적응했다.

“갑시다. 가장 빠른 속도로 가야하니.”

묘공은 답답한 표정으로 기다리다가 모든 사람들이 적응을 마치자 말을 던지고는 앞으로 날아갔다.

“잠시만.”

석목이 갑자기 말을 내뱉었다.

“석목 도우, 무슨 일입니까?”

묘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식이 너무 강하게 억눌려있어요. 제 신식으로도 고작 수십 리까지 밖에 뻗지 못합니다. 볼 수 있는 시야에 비해 우리는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천천히 가는 편이 좋겠어요.”

석목이 말했다.

하얀빛으로 이뤄진 세계는 시간의 법칙이 들어있어 신식을 아주 크게 짓눌렀다. 물론 석목이 갖춘 영목신통은 신식보다 더 먼 거리를 내다볼 수도 있었지만 그래봤자 수백 리였다.

백 리 라는 거리는 석목과 묘공 같은 강자에겐 잠깐이면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짧은 거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을 다해 날아간다면 아주 위험해서 혹시라도 앞쪽에 어떤 덫이 있다면 피할 수 없게 될 터였다.

세 종족은 그제야 신식이 짓눌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이 말한 대로 전력을 다해 날아가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괜찮습니다. 기껏해야 구수도철의 자수 중에 한두 마리만 잠복해있을 뿐이겠지요. 놈들이 갖춘 실력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빨리 구수도철을 찾아야 합니다.”

묘공은 멈칫하며 말했다.

석목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가죠.”

묘공이 손을 흔들며 금빛 한 갈래로 변하여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석목은 깊은숨을 내뱉고는 다시 정신을 차린 후에 묘공을 쫓아가면서 영목신통으로 주변을 살폈다.

세 종족도 곧장 따라갔다.

* * *

하얀 세계의 깊은 곳에 독수리눈 남자와 코가 긴 사내가 허공에 서 있었다.

독수리눈 남자는 거울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거울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속에서 석목 일행이 빠르게 날아오고 있는 장면이 펼쳐졌다.

독수리눈 남자는 음흉한 웃음을 짓더니 교활한 눈빛이 스쳤다.

코가 긴 사내도 입을 찢으면서 웃었다.

둘은 서로 한 번 마주 보고는 다시 사라져버렸다.

* * *

석목 일행은 빠르게 하얀빛의 깊은 곳으로 날아갔고, 눈 깜짝할 사이 수만 리나 날았다.

깊이 들어갈수록 시간 법칙의 파동이 격렬해졌고, 신식도 더 많이 제한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바람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하얀빛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얀 폭풍도 나타났다.

폭풍은 천 장 가까이 되었고, 마치 하얀 풍룡처럼 들끓어 바람이 스친 곳은 허공이 바사삭 부서져 버렸다.

“시공간 폭풍!”

세 종족 사람들은 안색이 굳더니 날아가는 속도를 줄였다.

세 종족 사람들이 갖춘 실력으로 시공간 폭풍을 막아내는 건 너무 버거웠다.

묘공은 곧장 시공간 폭풍을 뚫고서 들어갔다.

석목은 묘공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시 노란 구름으로 세 종족을 감싸고는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매우 날렵하게 세 종족을 이끌면서 들이치는 시공간 폭풍을 피해 다녔다. 그러다가 가끔 폭풍 한두 갈래에 부딪히긴 했으나 노란 구름이 전부 밀어내 버렸다.

“석목 도우님, 감사합니다.”

구원과 다른 족장들은 긴장을 풀면서 석목에게 손을 굽히며 인사했다.

석목은 손을 흔들고선 계속해서 앞을 바라보았다.

여긴 하얀빛의 깊은 곳이니 구수도철은 바로 앞에 있을 터였다.

석목이 갑자기 눈을 크게 뜨자 하얀빛 속에서 검은 점이 어렴풋이 보였다.

검은빛은 반짝이며 사라졌지만 하얀빛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묘공도 검은빛을 보고는 흥분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금빛 번개로 변하더니 모든 시공간 폭풍을 찢어버리고는 빠른 속도로 검은빛을 덮쳤다.

이때, 하얀빛 속에서 파동이 이는 것이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것만 같았다.

“묘공 도우님, 조심하세요!”

석목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금빛을 뿜어냈다.

동시에 몸에 노란빛을 드리우며 멈춰 섰다.

석목이 말을 떨어뜨리는 순간, 하얀빛이 들끓기 시작하더니 두 갈래 흑백 깃발이 나타나 촘촘하게 몇 리 까지 날아갔다.

넓게 펼쳐진 하얀빛은 마치 소환되기라도 한 듯이 전부 흑백 깃발로 흘러 들어갔고, 빛나는 파동을 일으켜 묘공을 안으로 드리웠다.

석목은 안색이 굳어버렸다.

“뭐야!”

구원과 다른 족장들도 깜짝 놀랐다.

하얀빛은 빠른 속도로 모여서 눈 깜짝할 사이에 작은 산만 한 빛나는 누에 모양 구체로 변하였다.

빛나는 구체에 검고 하얀 커다란 깃발의 허상이 나타났고, 사방으로 파동이 밀려나 막강한 시간 법칙의 기운을 흘려보냈다.

묘공의 기운은 철저히 빛나는 구체 속으로 드리워져 완전히 금제되어 버렸다.

“다들 조심하세요!”

석목은 어두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노란 구름은 세 종족을 드리운 채 뒤로 밀려 수십 리 밖에서 멈춰 섰다.

그러나 석목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번개처럼 튀어 나가 빛나는 하얀 구체 위에 서서 눈에 빛을 번쩍였다.

하얀 구체는 무슨 비술 신통을 부렸는지 묘공을 완전히 묶어버렸다.

그러나 어찌 됐든 빨리 묘공을 구해내야만 했다.

석목은 주문을 외우면서 한 손으로 허공을 짚었다. 그러자 찬란한 금빛이 손바닥에 뿜어져 나왔는데 금빛 속에는 수많은 금색 법칙 부문들이 적혀있었다.

금빛은 살짝 들끓다가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금색 검으로 변하였는데 검자루가 길게 뻗어 검의 절반이나 차지했다. 그러나 검날은 자루와 달리 매미의 날개처럼 얇았다.

검날에 금색 법칙이 번쩍이더니 서로 이어져서 선을 이루면서 온 검으로 퍼졌다.

날카롭게 모든 걸 잘라버릴 것만 같은 막강한 법칙의 기운이 금색 검에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수십 장 안쪽을 비추던 하얀빛은 검영에서 이는 기운 때문에 전부 흩어졌고, 시공간 폭풍마저 검 가까이에 다가오지 못했다.

이건 석목이 스스로 깨우친 모든 금 속성 법칙을 불어 넣어 만들어낸 비술이었다. 때문에 검에서 천지를 뒤흔들 듯한 막강한 위력이 풍기고 있어 세상 만물이 잘려버릴 것만 같았다.

석목이 낮게 소리를 지르며 금색 검으로 아래를 힘껏 내리쳤다.

퍽!

커다란 검이 스치자 단단하기 그지없던 허공은 종잇장처럼 찢어졌고, 하얀 공간에 길이만 수십 리에 이르는 깊은 흔적이 생겼다.

금색 검이 반짝이더니 빛나는 하얀 구체 위에 나타나 다시 아래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거대한 검이 내리치기도 전에 빛나는 구체에서 하얀빛이 격렬한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때, 빛나는 구체 위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그림자 두 갈래가 날아 나왔는데 그들은 바로 독수리눈 남자와 코가 긴 사내였다. 두 사내는 각각 검은 깃발과 하얀 깃발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구수도철이 하사한 보물로 어렵게 묘공을 묶어버리긴 했으나 두 사내는 인족을 놓쳐버렸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온 힘을 다해 석목을 막아야만 했다.

둘이서 빠르게 주문을 외우자 흑백 깃발이 크게 부풀더니 족히 수십 장이나 되는 깃발 두 개가 검 앞에 나타났다.

흑백 깃발에서 빛이 얽히고설키면서 음양 태극 모양을 이루었다.

쾅!

금색 검이 흑백 태극 모양을 내리치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흑백 태극은 가볍게 금색 검을 막아내며 흔들리다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석목은 멈칫했다.

비술이 막강한 위력을 지닌 걸 보아하니 흑백 깃발은 번천곤보다 훨씬 높은 등급의 영보 같았다.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자 석목은 흠칫 놀랐다.

이어서 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두 남자가 주문을 외우자 흑백 깃발에서 투명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알 수 없는 법칙의 힘이 용솟음을 치며 금색 검을 내리쳤다.

금색 검은 격하게 흔들리다가 다시 뒤로 튕겨져 날아가 석목을 공격했다.

석목은 깜짝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는 주먹을 휘둘렀다.

노란 주먹 그림자가 나타나 금색 검과 강하게 부딪쳤다.

굉음과 함께 노란 주먹 그림자가 폭발하면서 금색 검이 흔들리다가 멈춰버렸다.

석목이 또 다른 손으로 허공을 잡자 금색 부문이 넓게 퍼지면서 부문 소용돌이를 이루며 검을 막았다.

금색 검이 순식간에 흩어져 금빛과 부문으로 변하더니 소용돌이 속으로 스며들었다.

비록 금색 검을 소용돌이 속으로 녹여버렸지만 석목도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이게 시간의 법칙이군……”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다시 뒤로 물러났다.

독수리눈 남자와 코가 긴 사내는 일단 석목이 날린 일격을 받아냈지만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리고 둘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석목이 다시 날아오려 하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깃발을 힘껏 흔들었다.

이때, 하얀빛이 흔들리면서 커다란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걸 보니 빛 속에 갇혀있는 묘공이 빛나는 구체를 공격하여 벗어나려고 시도를 하는 것 같았다.

두 남자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동시에 입을 벌려 흑백 깃발로 피를 뿜었다.

그러자 흑백 깃발에서 나는 빛이 더욱 밝아지면서 무늬가 줄줄이 나타나 시간 법칙 파동 한 갈래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하얀빛이 우르르 몰려들어 쇠사슬을 이루며 석목을 묶으려고 했다.

그중 일부는 번쩍이며 빛나는 하얀 구체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빛나는 하얀 구체가 살짝 흔들리다가 다시 안정되었다.

석목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자리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은 시간 법칙이 스며든 흑백 깃발로 하얀빛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얀빛은 평범한 힘이 담긴 빛이 아니라 시간의 힘이 담긴 빛이라 다스리기 어려웠다.

게다가 하얀빛은 무려 묘공을 묶어버린 빛이라 몸에 닿기만 하면 곧장 묶여버릴 터였다.

석목은 빠르게 법결을 짚어 두 팔로 두 갈래 붉은빛과 파란빛을 뿜어내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검으로 뭉쳤다. 그리고 다시 검영을 그리면서 몰려오는 하얀 쇠사슬을 내리쳤다.

탱!

하얀 쇠사슬은 석목에게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잘려버렸다.

그러나 석목도 몸이 밀려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검영과 하얀빛은 한참 동안 대치 상태를 이루었다.

석목은 하얀빛의 깊은 곳을 바라보며 초조한 기색을 내비쳤다.

“석목 도우님,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때, 빛이 여러 갈래 날아와 석목 근처에서 멈춰 섰는데 그들은 구원과 곤상을 비롯한 수라 성역 삼대 종족들이었다.

석목은 화색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두 사람만 잠시 잡아두시죠.”

세 종족은 대답을 하고는 각자 흩어졌다.

구원을 비롯한 고만족은 토템술을 시전하여 토템 본체로 변신하였다.

구원이 손을 흔들자 고만족들은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진형을 이루었다.

고만족에게서 빛이 피어오르며 서로 이어져서는 다시 구원에게로 흘러갔다.

구원은 이미 두꺼비로 변신했고, 이어서 빛들이 모여들자 몸집이 몇 배나 더 커지더니 이마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구원은 두 손으로 법결을 짚으며 낮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미간 사이에 세로로 자라난 눈에서 푸른빛 고리가 날아 나와 얇은 빛을 뿜어내더니 공간 파동을 일으키면서 두 남자를 공격했다.

그러자 두 남자는 다급하게 커다란 깃발을 휘두르면서 푸른빛을 막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