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1화. 결탁
수라주 일족도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거미 허상 수십 마리가 나타났다.
거미 허상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는 하얀 거미줄을 내뿜어 끈적이는 망을 이루며 날아오는 하얀 쇠사슬을 공격했다.
석목은 역시 세 종족을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세 종족은 구수도철을 해치울 때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런 자수들을 상대할 때엔 큰 역할을 할 터였다.
“석목 도우님, 이제 우리 종족의 비술을 시전해 두 사람을 막을 테니 그 틈에 묘공 도우님을 구하세요.”
곤상이 석목에게로 다가와 전음으로 말했다.
석목은 멈칫했다.
그러나 석목이 대답하기도 전에 곤상을 비롯한 명룡 일족은 이미 법결을 날렸다.
곤상의 입에서 주문이 울려 퍼지자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크기가 석 장에 이르는 검은 깃발로 변하였다. 그리고 깃발엔 흉악한 용의 그림자가 두 마리나 새겨져 있었는데 그림자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언제든 깃발에서 날아 나올 것만 같았다.
끝없는 요수의 기운이 깃발에서 뿜어져 나왔다. 또한 검은빛에 수많은 요수의 정백이 들어있어 요수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검은 깃발은 최상급 영보라 석목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 과연 수많은 요수의 정백을 모아 연화한 영보라 음의 기운이 왕성해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곤상의 뒤에는 명룡족 열한 명이 똑같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는데 그들은 몸에 검은빛을 반짝이더니 검은 깃발 하나씩 꺼냈다.
열두 깃발이 날아올랐는데 깃발마다 괴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만 괴수들은 전부 달라 원숭이도 있었고 구렁이도 있었다.
끝없는 요기와 검은빛이 열두 개 깃발에서 흘러나오는 걸 보니 깃발들은 묶음 법보였다.
“십이천요번(十二天妖幡)!”
그 광경을 바라보던 구원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소도 눈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
석목은 열두 깃발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거두어들이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석목의 손에서 금빛이 폭발하더니 막강한 영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금색 곤봉 번천곤이 나타났다.
끝없는 금빛이 번천곤에서 쏟아져 나왔다.
독수리눈 사내는 번천곤을 보자 깜짝 놀랐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의외로 당황하지 않았다.
석목이 냉소를 지으며 앞으로 날아가려 할 때였다.
순간, 석목의 머리 위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검은 깃발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검은빛이 깃발에서 쏟아져 나오며 빠른 속도로 석목을 가두려고 했다.
석목이 깜짝 놀라 피하려는 순간, 석목 주변의 허공에서 파동이 일며 하얀 줄기가 나타나더니 그의 몸을 묶어버렸다.
막강한 법칙의 힘이 석목에게 드리워 움직일 수 없었다.
검은빛이 불어나면서 빠른 속도로 석목을 감쌌다.
먼 곳에 서 있던 독수리눈 사내는 하얀 깃발로 석목을 가리키면서 의기양양한 기색을 드러냈다.
검은 깃발이 번쩍이며 철창으로 변했다.
이때,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곤상이 검은 철창 위에 나타났다.
곤상은 검은 철창으로 정혈을 불어넣었다.
검은 부문이 철창에 나타나 막강한 법칙의 파동을 일으켰다.
이때, 공법을 시전하던 명룡족 열한 명이 곤상의 옆으로 다가와 깃발을 검은 철창을 향해 녹였다.
그러자 검은 철창은 빛을 점점 뚜렷하게 내더니 절대 무너지지 않을 듯이 단단해졌다.
곤상은 안색이 창백해졌으면서도 온통 흥분한 기색이었다.
구원과 나소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을 때, 곤상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
“곤상! 뭐 하는 짓이야?”
구원이 공격을 멈추고는 소리를 질렀다.
“하하, 네가 곤상이구나. 그래. 잘했다. 아버지께서 네게 포상을 내릴 게다.”
곤상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독수리눈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곤상은 기뻐하며 손을 굽혀 인사를 올렸다.
“곤상, 너…… 너희 명룡 일족은 이미 도철과 결탁을 했구나.”
구원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나소는 안색이 굳더니 종족 사람들을 이끌고 고만족 근처로 다가가서는 명룡 일족과 거리를 두었다.
“결탁? 명룡 일족과 도철 어르신은 모두 상고 신룡의 혈맥이 흐르지. 원래 같은 뿌리를 둔 같은 종족이란 뜻이야. 우리는 지금 함께 외적을 물리치는 게지. 너희도 석목, 묘공과 결탁하지 않았는가!”
곤상이 냉소를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만약 오늘 석목과 묘공을 죽일 수 있다면 구원과 나소는 절대 도망가지 못할 터였다. 그렇게 두 족장을 전부 해치우면 명룡 일족은 두 종족을 철저히 멸할 수 있어 수라 성역을 통일하는 건 시간문제일 터였다.
이 또한 곤상이 구수도철과 연합을 한 이유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곤상은 갑자기 흥분을 해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
구원과 나소는 곤상이 짓는 표정을 읽고는 곧바로 꿍꿍이를 눈치 챘다.
“곤상, 도철은 수많은 명룡족을 죽였다. 그런데 희생한 명룡족들을 배신하고 이렇게 도철에게 환심을 사려고 안간힘을 쓰다니. 가소롭군.”
구원이 비웃듯이 말했다.
그러자 웃고 있던 곤상은 얼굴이 굳어 서리가 한 층 어렸는데 그 사나운 모습을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구원이 한 말이 곤상의 정곡을 찔렀다.
다른 명룡족들이 짓는 표정도 어두워졌다.
이때, 독수리눈 사내가 싸늘한 눈빛으로 곤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곤상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도철 어르신은 막강한 위력을 지니신 분이라 그 밑에서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건 우리 명룡 일족에겐 영광이지. 이전에 벌어진 보잘것없는 일들은 전혀 언급할 가치조차 없어. 너희처럼 석목과 묘공을 따라 도철 어르신과 싸우려는 것이야말로 무지한 행동이며 죽기를 자초하는 짓이야.”
그제야 독수리눈 남자의 얼굴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조심해. 저 인족 녀석은 막강한 신통을 익혔으니 절대 벗어나게 두어서는 안 돼.”
독수리눈 남자가 십이천요번을 녹인 철창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
“도우님, 걱정하지 마시죠.”
곤상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열두 요번을 합쳐 만든 천요대진은 신경 후기 여러 명이 동시에 공격을 한다고 해도 절대 벗어날 수 없었다.
성역에 이변이 일어나기 전에 명룡 일족은 십이천요번으로 수라 성역을 휩쓸고 다녔다. 그리고 천요대진에 갇힌 사람은 단 한 명도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비술로 천요대진이 지닌 본원의 요력을 써서 대진이 갖춘 위력은 가장 강력한 상태였다.
비록 이렇게 십이천요번을 시전하면 깃발도 어느 정도 훼손되지만 석목을 묶어두어 시간을 벌 수만 있다면 당연히 그래도 되었다.
곤상은 고개를 들어 하얀빛의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서 검은 그림자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게 마치 거대한 짐승이 엎드려있는 것만 같았다.
짐승이 주변을 비추는 하얀빛을 빠르게 삼키며 점점 불어났다.
독수리눈 남자는 코가 긴 사내와 법결을 날려 발밑에 뜬 빛나는 하얀 구체를 단단하게 만들면서 고개를 돌려 하얀빛 깊은 곳에 있는 그림자를 바라보더니 희색을 드러냈다.
구수도철의 자수인 두 사람은 구수도철의 기운이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세월의 강을 연화시키는 일은 이미 가장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고, 이제 곧 모든 게 끝날 터였다.
구원과 나소도 초조한 얼굴로 그림자를 바라보더니 이어서 사나운 빛을 날리며 동시에 날아올라 곤상을 덮쳤다.
구원의 미간 사이에서 푸른빛이 번지더니 푸른빛 덩이 수십 갈래가 ‘슥, 슥, 슥’ 소리를 내며 곤상을 내리쳤다.
나소도 다섯 손가락으로 공기를 잡으면서 하얀 비검 다섯 자루를 날렸다.
순간,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섯 자루 비검이 희미해지면서 검영이 허공에 나타나 커다란 검망을 이뤄 곤상을 짓눌렀다.
만약 석목과 묘공을 구하지 못한다면 두 족장도 절대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터였다.
두 족장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묘공이 아닌 석목을 구하려고 했다.
고만족과 수라주족도 족장들을 따라 무기를 휘둘렀다.
다양한 색깔을 띤 법보와 비술들이 빛을 뿜으며 한곳으로 모여 커다란 빛이 되어 흘러 명룡 일족을 내리쳤다.
그 광경을 본 곤상은 안색이 굳었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곤상은 손을 흔들어 검고 작은 산 법보를 꺼내더니 법보에 빛을 날려 크게 부풀려서는 천 장이나 되는 산봉우리로 뭉쳤다. 그러자 산에서 검은 부문이 흘러 다녔는데 단단하기 그지없는 모양새라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쾅!
법보의 흐름이 검은 산봉우리를 내리치자 산봉우리가 격하게 흔들려 겉면에 감도는 부문 또한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리고 산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더니 수많은 돌이 우르르 굴러 떨어졌으나 산봉우리는 여전히 강인하게 버텨냈다.
마지막 법보 하나가 산봉우리를 내리쳤다가 다시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검은 산봉우리는 처참하게 일그러졌고, 한 층 잘려나가 내뿜던 빛도 훨씬 어두워졌다.
곤상은 얼굴에 고통스러운 빛이 스쳤다. 이어서 곤상이 다급하게 법결을 날리자 검은 산봉우리가 빠르게 줄어들어 소매 속으로 날아갔다.
곤상이 검은빛을 반짝이며 또다시 공격을 날리려고 할 때였다.
이때, 검은 철창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단단하게 뭉친 검은 철창에서 빛이 미친 듯이 번쩍이더니 ‘쩍!’ 소리와 함께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갈라졌다.
곤상의 몸이 흔들렸고, 얼굴도 하얗게 질려버려 입에서 붉은 피를 뿜었다.
다른 명룡족들도 몸이 흔들려 입으로 피를 뿜어냈다.
“말도 안 돼!”
곤상이 입을 벌리고는 온통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울부짖었다.
이건 무려 천요대진인데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공격을 날리던 구원을 비롯한 이들은 그 광경을 보고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저는 괜찮습니다. 우선 저 두 놈을 막아 묘공 도우님을 도와주시죠.”
담담한 목소리가 검은 철창에서 흘러나왔는데 그 주인공은 석목이었다.
구원과 나소는 흠칫하다가 대답을 하고는 다시 두 남자를 공격했다.
두 남자는 바뀌는 상황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두 남자는 빛나는 하얀 구체를 지켜야만 해서 묘공이 안에서 끊임없이 날리는 공격을 막아내느라 곤상을 도와줄 틈이 없었다.
구원과 나소가 덮쳐오자 두 사람은 다급하게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흑백 깃발에서 일던 빛이 번쩍이면서 흩날리는 하얀빛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하얀 비늘 모양 방패로 뭉치더니 방패가 서로 연결되며 둥그렇고 하얀 보호막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보호막이 두 남자와 아래에 있는 빛나는 하얀 구체까지 드리웠다.
쾅!
구원과 나소가 하얀 보호막을 공격하자 다양한 빛이 폭발하면서 보호막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러나 보호막은 곧바로 부서지지 않았다.
두 남자는 처음처럼 차분하게 서 있지 못했고, 당황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구원과 나소를 비롯한 두 종족은 인원수가 많았지만 그들을 물리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석목이 대진을 뚫고 나온다면 아마 상황이 역전될 터였다.
그러나 두 남자는 여전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때, 곤상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더니 무릎을 꿇고는 다시 정혈을 철창으로 뿜어냈다.
정혈을 뿜어내자 곤상은 안색이 더욱 하얗게 질려 마치 백짓장처럼 혈색이 전혀 비치지 않았다.
곤상이 바퀴를 돌리듯이 빠르게 손을 움직여 철창 속으로 법결을 줄줄이 날렸다.
명룡족들은 전부 무릎을 꿇고는 곤상처럼 정혈을 뿜어 철창을 안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검은 철창에서 빛이 번지더니 거미줄처럼 갈라진 균열들이 다시 천천히 복구되기 시작했다.
쾅!
거미줄 같은 균열이 아직 완전히 복구되기도 전에 또 한 번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창이 격렬하게 흔들리자 더 깊은 균열이 생겼다.
곤상과 명룡족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시 붉은 피를 뿜어냈다.
수련 경지가 약한 명룡족은 연이어 부상을 당해 몸속에 흐르던 진기가 바닥이 나 절망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포기하지 마라! 계속 법결을 날려! 절대 석목이 나오게 둬서는 안 돼!”
곤상이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검은 철창이 다시 맹렬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흔들려 거미줄 같은 균열이 더 깊게 찢어졌다. 그리고 균열은 가운데가 뚫려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